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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03화 (403/741)

402화

경지를 오래 전 넘어선 초인의 안목은 무시무시한 것이어서, 오군성은 숨기고 있던 도진의 한계를 제법 정확하게 꿰뚫어 보았고 그에 맞춘 일격을 쏘아냈다.

필사의 힘을 다해도 조금은 모자랐을 정도의 일격.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진이 거기에 한 치의 물러섬 없이 맞서고, 그 후 바로 여유를 보일 수 있었던 건 단 한 시도 헛되지 보내지 않고 충실했던 시간 속에 있었던 수많은 대련이 천마 위지혁과 사신 장호를 상대로 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누구도 생각하기 힘든 것이지만, 기실 도진은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상대와의 싸움이 가장 익숙하니까.

그것이 만들어낸 것이 한 수의 교환 후 보일 수 있었던 여유다.

본래 호흡을 고르는 것이 이득이었을 그 여유를, 도진은 자신의 등을 응시하는 이들의 신뢰를 굳건히 하는 데 썼다.

그리고 이어진 사자군 오군성이 쏘아낸, 한 수의 격돌로 파악한 도진의 한계를 명백하게 넘어선 두 번째 수에 맞섰던 건 장호가 전수해 준 사신(死神)의 초수(初手)였다.

오군성은 두 번째 수에 일말의 손속도 두지 않았으며 그에 더해 명확하게 도진에게 패배를 안겨 주려는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오군성은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적자생존에 강자존.

그는 맹수였으며 상대에게 호의가 있다하여 손속에 자비를 두거나 온정을 베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자신의 손속을 이겨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비로소 호의를 보이는 것이 오군성이다.

그러니까 이 두 번째 수를 도진이 버텨내지 못한다면, 그는 가차없이 도진을 나락으로 밀어 버릴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도진이 결코 허락하지 않을 미래다.

이번 대결에서 도진은 천마신교의 교도들에게, 그리고 오성아에게 등을 보여주며 서 있었으니까.

그 등은, 그 등을 응시하고 있는 시선에 담긴 신뢰는 그 어떤 때에도 흔들려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언제나 그러했듯 도진이 내놓을 답은 하나뿐이었다.

해야 한다가 아니라, 한다.

초살(初煞).

도진을 찢어발기려는 사자패권의 기세를 단 한 점의 섬광으로 꿰뚫는다.

소리마저 죽이는 사신의 초수(初手)를 분명하게 재현했다.

"……."

아쉽게도, 오군성은 꿰뚫리지 않았다.

일전 안토니오의 한 수를 꿰뚫었던 도진의 초살은 오군성까지 꿰뚫지는 못했던 것이다.

안토니오는 경지를 넘은 무인이었으나 그 근본은 장인이었다.

허나 오군성은 천생 무인으로서 안토니오보다 훨씬 멀리, 더 높이 나아간 무인이었기에 그때보다 더 멀리 나아간 도진의 초살로도 닿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본래는 여기가 진짜 한계여야 했다.

전력에 이어 전력을 넘어서는 단 한 수를 가능케 하는 초살마저 막혔다.

심지어 여기에 흥이 오른 맹수는 더 강력한 한 수를 폭발시키려 하는 상황.

믿을 수 없는 두 수를 보여 주었으나 여기까지, 여야 하는 바로 그 상황에서.

훅-!

도진은 한 걸음을 더 나아갔다.

본래는 있을 수 없는 한 걸음.

존재할 수 없었을 한 수에.

"……!!"

퍼어엉-!

"제가 이겼네요?"

오군성은 마지막으로 남은 귀중한 한 수를 소모해 버리고 만 것이었다.

'허, 허허…….'

그것은 위기감이 반사적으로 출수하게 만들어 버린 한 수였다.

실제로는 허장성세였다.

도진이 처음으로 먼저 한 출수는 기실 오군성에게 해를 입힐 수 없는 허초(虛招)였다.

무흔잠영의 체술 중 그 성격이 다른, 먼저 공격하여 상대의 허점을 만들어내는 '찬(鑽)'.

그 찬의 묘리가 깃든 초식은 먼저 공격하여 상대의 틈을 만들어내는 데 목적이 있었다.

다만 이때의 도진은 그 틈을 만들어 내도 반격이 불가한 상태를 넘어 애초에 틈을 만들어내기 위한 공격마저 허초일 만큼 몰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군성이 그 허초에 반응하여 속은 것은 믿을 수 없게도.

사자군 오군성이 앞서 본 초살 때문에,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라는' 행위를 해 버린 것이다.

느껴지는 기운은 없는데 그 허장성세에 속을 수밖에 없을 만큼 선명한 기세가 담겨 있었기에.

불가능한 것에, 실패할 것이 뻔한 것에 머리를 들이미는 건 우군(愚君)의 자살 행위다.

그러나 성공할 수 있다면. 그리고 성공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그것을 실현해야만 하는 것이 또한 모두의 앞에 서는 지존으로서의 의무였기에.

그 의무를 다하기 위한 도진의 기세와 사신의 가르침이 담긴 한 수가.

"그렇구먼. 자네가 이겼어."

기어코 사자군 오군성과의 대련에서 도진이 스스로를 증명하는 한 수가 되었다.

"……."

경악한다.

경악이 내려 일대를 침묵으로 장악한다.

결코 일어나선 안 될, 일어날 수 없어야 할 일이 일어나 버렸다.

고속도로를 달리던 트럭을 막아낸, 일반인만이 존재하는 세계에 갑자기 무림인이 나타나는 일이 벌어졌다.

김도진이 오군성을 '이긴' 것은 아니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증명을 위한 자리였고 오군성은 '테스트'를 한 것에 불과하니까.

그러나 이것은 또한 증명을 위한 자리이기에.

불가능해야 할 일을 가능으로 만들어 버린 도진은 자신의 목적을 이룸으로써 '이겼다'고 할 수 있었다.

"자, 그럼 성아 누나와 저에 대한 의혹은 모두 해소되었다고 봐도 되겠죠?"

분명히 정상적인 상태가 아닐진대.

보통 사람이라면, 아니 설령 웬만한 무림인이라 해도 후들거리며 피를 토하거나 고통에 몸부림쳐야 할 진대.

오히려 웃으며 너스레를 떠는 도진의 모습에 오군성은 기어코 또 한 번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크하하! 그렇구먼. 그래, 자네 말대로야. 증명해 버리고 말았지. 자네와 성아에 관한 의혹은 모두 해소되었어."

잠룡문이 대한민국 최고의 문파가 될 거라고.

그 말이 결코 허황되지 않았다고.

증명해 버리고 말았다.

그것을 증명한 김도진이 오군성의 인정에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면 누나의 사표도 수리되는 걸로 봐도 되겠죠?"

"그래. 바로 처리될 게야. 그러니, 내 손녀를 데려가는 걸 인정하도록 하지."

"어,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조금 묘하게 들리긴 하는데……. 그래서 더 좋은 것 같기도 하네요?"

끝까지 너스레를 부리며 도진은 태연하게 걸어 시립해 있던, 격동의 눈망울로 자신을 응시하던 위연서의 앞에 섰다.

"여기 있습니다, 소지존."

"고마워."

그 위연서에게서 충돌의 순간 날려간 오성아에게 걸쳐 주었던 잠룡문의 코트를 받아들었다.

툭툭.

가벼운 손길로, 그러나 완벽하게 먼지를 털어낸다.

그리고 다시.

"아……."

오성아에게 걸쳐 주었다.

모두에게 보여주듯 천천히, 그러면서도 선명하게.

그리고서 끝까지 너스레를 떠는 것이었다.

"성아 누나는 이제 제 겁니다. 제 마음대로 데려갈 수 있는 겁니다."

* * * *

그리고 그날 밤 심상세계.

도진은 평소보다 더 열심히 수련하고 있었다.

"제자야, 조금 쉬어가면서 하는 게 어떻겠느냐?"

위지혁의 말에 도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연신극기공의 수련을 하면서…… 말이다.

현실이 아닌 심상세계이기에 실제 육체에 적용되지는 않지만 그러하기에 더더욱 극한의 도전을 할 수 있는, 그리하여 시행착오를 수정하고 현실에 적응하기 위한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터억 막히고 마는 강도였다.

"예. 쉬엄쉬엄 하겠습니다."

위지혁은 그런 도진을 지켜보며 허허 웃었다.

사실 위지혁은 제자들을 지옥보다 더한 세계를 보여주는 궤를 달리하는 '수련의 천재'이기도 했다.

말도 안 되는 천재라 범재를 이해 못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잘 이해하여, 그들을 극한까지 몰아붙이고 그로써 한계 밖으로 걷어차 버리는 무시무시한 스승이었다.

풀어줄 때는 풀어주지만 해야 할 땐 무려 천마의 제자로 낙점받은 이들마저 지옥을 힐링 타운으로 여길 만큼 빡세게 굴리는 사람이란 말이다.

그런 위지혁이 보기에도 연신극기공에 의해 상상도 못할 부하가 걸린 몸으로 '지옥 수련'을 하면서 웃는 제자는 과연 '아, 이건 좀'하고 생각해 버릴 정도로 신세계였다.

"…내가 쉬엄쉬엄의 의미를 조금 잘못 알고 있는 것 같구나."

그럴 리가 없는데.

"하하. 정말로 좀 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도진은 수련을 마무리하고 천마심공으로 혹사한 육체를 다스렸다.

성과가 있어서 앞으로는 조금 더 강도 높은 연신극기공을 현실에서 수행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곁에서 어느새 장호와 함께 선 위지혁이 말했다.

"제법 자극이 되었나 보구나, 이번 일이."

"예."

오군성과의 삼초식을 교환한 일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분명한 도진의 승리이자 본래는 불가능했을 일을 기어코 해낸 '기적'이라고까지 할 만한 일이었다.

추후 도진을 따라다닐 수많은 업적 중 하나로 회자될 만큼.

"…잘했다."

"예. 감사합니다, 장 스승님."

그리고 그 무뚝뚝한 장호가 칭찬을 할 만큼.

경계를 넘어선 자와 넘지 못한 자의 차이는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명확하다.

그러나 도진은 그만큼의 차이를, 천마신공만이 아니라 장호의 가르침까지 더하여 뒤집어낸 것이다.

가진 모든 것을 다하여서 성공의 가능성을 이끌어내고 언제나처럼 '한계에서 한 발 더 나아가' 기어코 가능성을 실현했다.

그 누구도 박수를 치지 않을 수 없는, 천마의 제자이자 미래의 신교의 인도자라는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업적이다.

그러니까 도진 역시 스스로의 성과에 가슴을 펼 수 있었다.

그러나 동시에 아쉽다.

그것은 만족을 모르는 과함이 아니라 향상심이 만들어낸 '결핍'이다.

스스로가 해낸 것이 얼마나 되는지 분명하게 인식하고 폄하하지 않는다.

허나 동시에 만족하지 않음으로써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가기 위한 원동력으로 삼는다.

도진은 지금, 진심으로 사자군 오군성을 이기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 제자의 모습에 위지혁과 장호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틀림없이 도달할 것이다.'

고대 무림에서마저 선택받은 이만이 도달할 수 있다 말해지던 바로 그 경지에.

그를 위한 발판은 이미 완성되어 있었다.

남은 것은 그 발판을 딛고 도약하는 것 뿐.

그 도약을 하지 못하여 발판 위에서 좌절하고 너머를 바라보지 못했던 천재들이 무수했지만.

거기에 두 사람의 제자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그저 스승으로서 기대할 뿐이다.

제자가 '진짜'가 되는 그 순간을.

* * * *

-속보! '오성의 여신', 잠룡문으로 자리를 옮긴다!

-오성아, 잠룡문으로 이직!

오성의 신년회 이후 뜬, 대한민국을 뒤집어 버린 속보였다.

-아니, 뭐요?

-오성아가 잠룡문으로 이직한다고?!

오성아라고 하면 그 직급은 높지 않지만 오군성의 손녀로 상징성이 결코 가볍지 않은 인물이었다.

조금은 오글거리지만 '오성의 여신'이라는 수식어가 그것을 잘 나타낸다.

바로 그런 인물이 '겸직'도 아니고 아예 소속을 잠룡문으로 옮긴다는 소식은 그만큼 충격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아니 도댕체 이게 무슨 일이여?

-오성 신년회 정보 삽니다;;; 부르는 대로 드림;;

-안알랴줌;;

-십색햐;;

-니들 왜 땀을 흘리면서 말하는데;;

-몰?루;;

세부적인 내용이 알려진 바가 없어 온갖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도진의 너튜브에 '오성아의 잠룡문 총관 정식 취임 축하 파티'라는 이름으로 생방송이 진행돼 폭발할 듯이 시청자들이 밀려들었다.

당연히 질문으로 도배가 되었고 도진은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아, 신년회에서 오군성 회장님한테 직접 허락받았습니다. '내 손녀를 데려가게'라고 하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데려왔습니다."

"야!"

-ㅖ?

-버!럭

-?????

-????????????????????????????;;

"자세한 건 역시 비밀엄수를 해야 해서 알려드리기 힘들구요. 오군성 회장님이 직접 대답하시지 않는 한은요."

-이걸 이렇게 떠넘긴다고?

-이렇게 된 이상 오성으로 쳐들어간다

-미친놈아 ㅋㅋㅋㅋ

-호기심은 사자군 소굴로 사람을 쳐들어가게 만든다;;

그리고 진짜로 회사 홈페이지에 문의가 쇄도하자, 놀랍게도 오군성 회장이 정말 대답을 해 주었다.

"잠룡문주 그 친구가 진짜 인물이란 말이지. 그래서 응원의 의미로 보내 주었네."

-? 결혼하나요?

-이건... 그.. 허락이지?

-오모씨 아들 모대용군 : 아니야 미친놈들아!

뭐, 그런 식으로 얼마간 떠들썩하게 오성아의 이직이 이슈가 되었지만 조금씩 사그라들었다.

그 외에도 많은 이슈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 이슈 안에는, 도진이 개입하지 않았음에도 본래 그리 되어야 하는 일이었던 것처럼 인연을 맺은 이들에 의해 시작된 이슈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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