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1화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거지?
이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은 반사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말았다.
그만큼, 잠룡문주 김도진이 내놓은 답이란 것이 터무니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잠룡문이 대한민국 최고의 문파가 될 것이라고?'
그것은 마치 어린아이가 어른의 칭찬에 '대통령이 될 거야!' 같은 말을 당당하게 하는 것만 같은 광경이었다.
꿈을 가지는 건 좋은 것이다.
그것을 크게 가질수록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줄 것이니까.
허나 그런 '꿈'을, 다른 곳도 아니고 바로 이런 자리에서, 사자군 오군성의 앞에서, 잠룡문주 김도진이 '근거'라고 내놓는 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일이지 않은가.
잠룡 김도진이 현재 대한민국에서 압도적인 실력과 명성을 자랑하는 후기지수라지만 어디까지나 후기지수란 전제 하의 이야기다.
잠룡문 또한 마찬가지다.
일전 어로스를 통하여 대박을 터뜨리고 화려하기가 비할 데 없는 인맥을 쌓았다지만 어디까지나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근거에 불과할 뿐 그것이 당장 대한민국 최고의 문파가 될 거라는 보증수표가 될 수는 없는 것이다.
한데 그들에게 있어 더욱 터무니없는 건, 그런 발언을 하는 도진의 모습이 터무니없어 보이지 않는 스스로의 감각이었다.
그래.
그런 소리를 하는 잠룡문주가, 김도진이 터무니없어 보이지 않는다.
믿을 수 없게도 그들의 본능이, 김도진의 발언이 허황된 소리가 아니라고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지금 사자군 오군성의 앞에 선 도진의 모습은 당당하기만 했다.
오군성이 맹수의 미소를 지은 얼굴로 말했다.
"대한민국 최고의 문파가 될 것이라……. 그래, 그렇구먼. 말이 돼."
"누구도 내가 그런 수작을 부릴 거라 말할 사람은 없겠지. 그런 억지는 스스로 생각해도 아무에게도 먹히지 않을 거라 판단할 테니까."
"마찬가지로 자네가 대한민국 최고의 문파의 문주가 된다면, 그런 하찮은 억지는 닿기도 전에 스러져 버릴 거야. 그렇지."
주억이던 오군성의 미소가, 돌연 이를 드러낸다.
"하지만 말야, 잠룡문주. 그건 어디까지나 바로 지금. 그런 위치에 있어야만 성립하는 것이야. 그렇지 않나?"
도진은 오군성의 이를 드러낸 미소를 정면에서 마주하며 고개를 저었다.
"아뇨. 하나 더, 성립할 수 있는 방법이 있죠."
"호오. 그게 무엇이지?"
오군성은 이미 답을 아는 얼굴이었다.
답을 아는 얼굴로, 어서 그것을 꺼내라는 표정으로 도진을 압박했고.
"제가 그 위치에 도달할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을 드리면 되는 것이죠."
도진은 그 압박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얼굴로, 오군성이 원하는 답을 내놓았다.
"크하하하! 그래. 맞아! 바로 그거야. 자네는 그걸 증명하면 돼. 그리고 그걸 증명하기 위한 아주 간단한 방법이 하나 있지."
크게 기뻐하는 오군성이 뒤에 내놓을 답을, 오군성이 그랬던 것처럼 도진 또한 알고 있었다.
이미 짐작한 얼굴의 도진을 마주하며 오군성이 말했다.
"무인(武人)이란 무(武)로써 증명하는 법. 잠룡문주. 자네, 나와 대련으로 그걸 증명하는 게 어떤가?"
"……!!"
쿠웅, 하고.
무형임에도 분명하게 무게를 지닌 어떤 것이 프레스티지 라운지에 내려앉았다.
오성아는 그 '말도 안 되는 제안'에 숨을 삼키고 말았다.
오군성.
대한민국 무림을 넘어 아시아의 무림에 군림하는 거인. 사자군(獅子君).
경계를 넘은 건 이미 오래 전의 일이며 지금 과연 어디에 서 있을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초인이었다.
그 초인이 검지와 중지, 그리고 약지를 펼쳐 보였다.
"세 수야. 그러니까 삼초식을 교환하는 거지. 내가 먼저 손을 쓸 수도 있고 자네가 나의 대응을 끌어내도 돼. 막아도 되고 피해도 돼. 어떤 식으로든 내가 세 번 손을 쓰게 만들면 자네는 자네의 말을 누구도 부정할 수 없도록 증명하는 거야."
그것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트럭을 정면으로 받아내라는 말과 같았다.
무림인이 아닌 일반인에게 말이다.
오성아와 이 자리에 있는 모두에게는 오군성의 제안이 그것과 다르지 않은 의미였다.
그 오군성의 제안에.
씨익-
"그거 좋네요."
도진은 웃으며, 흔쾌히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아……!"
오성아가 저도 모르게 손을 뻗으며 아름답게 빛나는 입술로 탄식의 숨을 토해내고 말았다.
모두의 시선이, 그리고 도진과 오군성의 시선이 그런 그녀에게로 향하고 말았다.
저도 모르게 나온 행동에 오성아의 어깨가 움츠러들려는 그 순간.
"미안합니다. 우리 누나가 조금 순수해서요."
도진이 너스레를 떨며 나섰다.
"너무 좋은 제안을 해 주시니까, 우리 순수한 누나가 기쁨을 숨기지 못하고 말았네요."
"……."
받아들이기 힘든 너스레에 모두가 말을 잊는다.
오직 오군성만이 피식 웃으며 그것을 받았다.
"내가 너무 손해를 보는 제안을 했다는 말인가?"
"네. 하지만 남아일언중천금에 낙장불입 아니겠습니까. 물러드리지는 않을 겁니다."
"크하하! 그렇게까지 말하니 어쩔 수 없구먼. 그대로 가는 수밖에."
"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한 뒤 도진은 오성아와 눈을 맞추고 씨익 웃어 주었다.
함께 온 독마전의 무인들을 본다.
위연서를 필두로 한 그들의 시선에는 한 치의 의심도 없다.
천마의 후예, 천마신교의 이름을 다시 떨칠 유일한 후계자 소지존을 대함에 있어 일말의 불안함도 보이지 않는다.
그에 비해 불안함을 다 숨기지 못하는, 자신 때문에 더욱 큰 부담을 지게 만들었다는 감정마저 더해진 오성아의 눈망울을 마주하면서.
도진은 그녀를 탓하지 않았다.
이런 때에 살펴야 할 건 스스로이다.
절대적인 믿음을 주지 못한 스스로에게서 문제를 찾는 것이 모두를 비추는 인도자이자 절대적인 버팀목, 그리고 중심이 되어야 할 지존으로서의 덕목인 것이다.
본질적으로는 같다.
천마의 후예, 아직 소천마를 자처할 순 없으나 소지존으로서 도진은 교도들의 믿음을 결코 배신해서는 안 된다.
그 이상을 보여 주어야만 하는 것이 그들에 대한 도진의 의무였다.
마찬가지로 오성아가 오늘 이후로 다시는, 그 어떤 때에도 도진을 믿고 흔들리지 않도록 자신을 증명해야만 하는 것이 도진이 지금 해야 할 일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그렇기에 도진은 흔들리지 않았다.
시종일관.
프레스티지의 중심에 오군성과 도진의 대련을 위한 대련장이 만들어지고 그 위에 오를 때까지, 그리고 그 위에 올라 오군성을 마주한 그 순간에도.
씨익-
도진은 미소를 잃지 않았다.
"시작할까?"
"좋습니다."
오오오오오오오오-!!
그리고 온전히 자신의 존재감으로, 그리고 천마기로 제국의 심장부를 가득 채웠다.
"크흐흐. 좋구먼. 믿을 수 없을 정도야. 자네, 정말 용이 맞나? 용이 이렇게 빨리 성장한다는 이야기를 나는 본 적이 없는데 말이야."
상대의 성장을 두려워하고 경계하는 건 소인배의 좁음이다.
오군성은 오히려 그것이 무시무시할수록 기꺼워하는 천생 무인이었다.
그런 연유로 흥이 오른 오군성은 기꺼움에 크게 웃으며 마주 기세를 드러냈다.
쿠우우우웅-!
무림의 거인이 드러낸 존재감은 대번에 도진이 지배하던 공간을 빼앗으며 대립한다.
그렇게 도진을 압박하며 오군성이 물었다.
"자네, 칼은 꺼내지 않아도 되겠는가?"
그 배려에 도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직 무기에 구애될 만큼 배움이 깊지는 않아서요."
그것은 흔히 알려진 배움이 깊어지며 무기에 구애되지 않는다는 이야기와는 대치되는 답변이다.
그러나 그에 담긴 뜻을 대번에 읽어낼 수 있는 오군성에게는 호탕한 웃음이 나오게 만드는 대답이었다.
"그렇구먼. 그래, 그렇구먼. 좋아. 그럼 사양할 필요는 없겠군."
"예."
대화를 끝낸 오군성의 꾸욱 쥔 주먹이, 낮춘 자세와 함께 맹수가 덮칠 듯한 기세를 자아냈다.
사자천권(獅子穿拳).
그 근본이자 정점의 기세는 주먹에 어리는 순간 일말의 여유도 주지 않고 도진을 덮쳤다.
소리없이, 공간과 시간마저 꿰뚫는 듯한 그 주먹을.
도진은 피하지 않았다.
효아(哮牙).
폭렬권(爆裂拳).
꽈아아아아아아앙-!!
"으허헉!"
쿠오오오오오오-!!
힘의 여파가 마치 태풍처럼 일대를 휩쓴다.
폭음은 귀를 멀게 하고 감각은 미쳐 날뛰는 기(氣)의 폭풍에 마비된다.
오성아 또한 위연서의 도움으로 도진이 걸쳐준 코트를 지키기는커녕 버티는 것이 한계였고.
"허어억!"
"저, 저걸 받았다고?!"
경악에 두 눈을 크게 떴다.
후오오오오…….
여파의 중심.
거기에는 한 치의 흔들림없이 오군성과 주먹을 맞댄 도진이 있었다.
"한 수 쓰셨습니다."
"그렇구먼."
봐 준 건가?
일순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경지가 높지 않다 해도, 인간으로서의 본능이 그 생각이 틀렸음을 먼저 자각하게 만든다.
오군성은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다.
허나 그것이 손속에 사정을 두었다는 말과 직결될 수는 없으니 애초에 경지를 넘지 못한 후기지수를 상대로 이 정도나 되는 여파를 만들어낸 사자천권은 결코 봐 준 것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꿰뚫지 못했구나.
-예.
오군성과 달리 도진은 '전력'을 다했다.
낼 수 있는 최대의 출력으로 폭렬권을 격발했고 오군성과 '동수'를 이루었다.
그것은 곧.
"다음엔 조금 더 진심을 담을 생각이야, 잠룡문주."
분명히 더 강할 다음 한 수에는 전력 이상의 것을 내어 놓아야만 버틸 수 있다는 뜻이었다.
오군성은 그런 사정을 보아줄 만큼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었다.
누구보다 그것을 더 잘 알고 있는 도진은 불안을 보이는 대신.
스르릉-
백설을 꺼내 들었다.
스으으…….
'…호오.'
오군성은 완전히 달라진 도진의 기세에 내심 이채를 발했다.
방금의 한 수로 분명히 꿰뚫어 보았다.
그의 눈앞에 선 '잠룡'은 분명히, 그 나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의 힘을 보여 주었지만 더 이상의 힘은 낼 수 없을 것이었다.
"……."
하지만 지금, 아까의 기세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고요해진, 벼려진 도진의 기세는 분명히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줄 것이란 본능의 경고를 이끌어 내고 있었다.
'재밌구먼.'
오군성은 살벌하게 웃었다.
쿠우웅…….
그리고 자비없이 다음 진각을 밟았다.
그것은 사자천권을 넘어 그를 상징하는 독문무공, '사자패권(獅子覇拳)'의 출수다.
그와 동시에.
두웅-!
한계까지 벼려졌던 천마기가 한 점에 집중되어 쏘아진다.
"……!!"
찰나를 쪼갠 순간 오군성은 결코 뚫리지 않아야 할 자신의 주먹이 뚫릴지도 모른다는 믿을 수 없는 감각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 힘을 더했다.
동시에 도진은 더욱 강해진 주먹에 오히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
지켜보던 모든 이가 여력만으로도 숨이 막힐 듯 패도적인 기세와, 그 기세를 꿰뚫는 한 점의 기세는 마치 거짓말처럼 다음 순간 소리가 사라진 것처럼 무음 속에서 퍼져 나가며 흩어졌다.
"허, 허헉!"
뒤늦게 잊고 있었던 숨을 누군가가 몰아쉼으로써 숨쉬는 것마저 잊었던 사람들이 거친 숨을 토해냈다.
그리고 그 중심에서 오군성은 경악했다.
'이런 것이…… 가능하다고?'
첫 수는 한계를 가늠하기 위한 한 수였다.
그것으로 오군성은 분명하게 경계를 넘지 못했던, 알고 싶었던, 눈여겨 두었던 후기지수의 한계를 파악했다.
그런데.
분명하게, 틀림없이 파악했던 그 한계 이상의, 믿을 수 없을 만큼 무시무시한 한 수가 그의 두 번째 출수에 맞섰다.
맞서냈다.
뚫리지는 않았지만 뚫지도 못했다.
무엇인가.
분명히 한계를 파악했거늘 도대체 무엇이 그 이상의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오군성은 잊고 있던 호승심이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믿을 수 없게도, 까마득하게 어린 '후기지수'에게서 느낄 거라곤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바로 그 감정을 말이다.
다행히, 아직 한 수가 남아 있다.
더욱 큰 즐거움을 선사할 바로 그 한 수를 사용하기 위해 오군성이 준비하려던 바로 그때였다.
훅-!
"……!!"
오히려 그보다 빠르게, 도진이 '한 걸음'을 더 내딛었다.
칼을 쥐고 있던 오른손이 우측의 바깥으로 빠지며 자연스럽게 왼손이 오군성의 비어있는 가슴팍에 촌경을 꽂아 넣으려 든다.
오군성은 반사적으로, 마찬가지로 왼손을 움직여 그 공격을 받아쳤다.
퍼어엉-!
"……!!"
도진은 그 공격을 감당하지 못하고 허공을 날았다.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높이 날던 도진의 모습이 지켜보던 이들에게 '패배'라는 두 글자를 떠올리게 만들었다.
"아……."
누군가의 아름다운 입술에서 탄식이 흘러나온다.
그 탄식이 채 흩어지기도 전에.
후욱!
"……!"
도진은 그림처럼 우아하게 몸을 돌려 바닥에 내려섰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제가 이겼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