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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401화 (401/741)

400화

주창명은 유독 치열한 오성 내에서도 상어라 불릴 만큼 비 오성의 '최전방 스트라이커'이자 산전수전을 다 겪은 베테랑 싸움꾼이었다.

그런 시절을 거쳐 임원의 자리에까지 오른 지금, 웬만한 일이나 상황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주창명이 오성아의 반응에 두 눈이 커질 만큼 놀란 건 그 반응이 거칠었다는 일차원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전혀 그럴 것 같지 않았던 사람이, 그럴 수 없도록 판을 짜 두었음에도 상상을 뛰어넘는 반응이 나왔기 때문에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 또한 오성 재단 소속으로 오군성의 손녀였던 오성아에 대해서는 충분히 숙지하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제아무리 오성의 사풍이 인재주의에 성과주의라 해도 '황제의 손녀'를 정말로 아무렇지 않게 취급할 수는 없었다.

업무적으로는 몰라도 그 외적인 부분에서는 그녀를 특별대우하고 더 정확히 파악해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제법 꿰뚫어 보고 있다고 자부할 수 있을 만큼 오성아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리광쟁이.'

그가 파악한 오성아는 어리광쟁이였다.

과연 오군성의 손녀답게 재능이 있고 끈기도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다하여 업무에 매진하지 않고 '설렁설렁'이었다.

하기 싫지만 해야 하니 딱 해야 할 만큼만 하려는 것을 놀랍게도 그는 꿰뚫어 보았던 것이다.

동시에, 그런 면으로 인해 그녀가 껍질을 깨고 나오지 못한 '어린애'라는 것까지도 파악했다.

컨설턴트로서 수많은 사람을 대해왔고 많은 것을 겪었겠지만 그것은 결국 '황제의 보호' 아래 했었던 경험이다.

누구에게도 미소짓는 얼굴로 여유를 가지고, 싫은 소리 한 번 하지 않으며 대할 수 있었던 것도.

동시에 그 어떤 이도 진심으로 그녀를 적으로 대하지 않았던 것도.

모두 결국은 오군성이란 보호자 아래 있었기 때문이라는 거다.

본래는 오성의 중심에서 호령하는 자리에 있어야 할 자질을 가지고 있던 그녀는 결국 그 정도에 그치고 말았다.

주창명은 그것을 자각하도록 준비했다.

오성아가 스스로 그것을 깨닫고 무너질 수 있도록.

선명하고도 거대한 적의를 느끼게 했고 반응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곧 잠룡문주와 함께 장난을 치며 여유를 보였지만 그것은 애써 만들어낸 것이라 여겼다.

그리고 여기에 비수를, 그녀가 오성을 배신하고 정보를 흘린 것이 아니냐는 형태로 결정타를 꽂아 넣었다.

평생을 보호 아래 살았던 그녀가 반드시 무너질 수밖에 없도록.

그렇게 결정타를 찔러 넣은 것이었는데…….

"그런 저급한 모함을 하려 들다니, 불쾌하기 짝이 없다구요."

오성아는 그런 주창명이 멍해질 만큼 당당하고도 '삐딱하게' 공격을 받아쳐 버렸다.

뭐지? 내가 잘못 판단했다고? 정말로?

일이 년도 아니고 몇 년을 보고 겪으며 판단한 것이 틀렸다니, 정말로?

주창명은 혼란을 느껴 대처가 늦고 말았다.

오성아를 받쳐주고 있는 잠룡문주 김도진이란 인간의, 그녀가 개화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지존으로서의 그릇을 파악하지 못하는 이상 그는 판단이 틀린 이유를 찾지 못할 것이었다.

"…감정적인 답변은 지양해 주셨으면 좋겠군요. 지금 이 자리에서 필요한 건 이성에 기반한 근거입니다."

그런 주창명을 대신하여 차진표가 나섰다.

오성아는 시선을 차진표에게로 향하며 말했다.

"근거라면 오히려 주창명 이사님이나 차진표 대표님께서 더 잘 알고 계실 거라 생각합니다만."

"제 업무는 오성 재단에서 필요로 하는 외부의 인재를 스카웃, 컨설팅하는 것입니다. 그 외의 부분은 제 직무가 아니니 당연히 접근 권한도 없고 열람 권한도 없습니다."

"그런 제가 어떻게 오성 재단도 아니고 타 지역의, 그것도 민감한 인재 정보에 접근하여 그것을 전달할 수 있다는 거죠?"

차진표는 고개를 끄덕였다.

"원론적인 답변이로군요."

"하지만 반론할 수 없는 답변이겠죠. 감사가 진행되면 드러날 부분입니다."

"예, 그렇군요. 하지만 좀 더 근본적인 부분에 대한 만족스런 답변은 되지 못한다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슨 말씀이신가요?"

"저희가 우려를 표한 건 오성아 컨설턴트가 오성의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보다 잠룡문의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하다는 부분이었습니다."

"하물며 방금 전 감정적인 답변에서 그게 더욱 크게 드러났으니, '우리 잠룡문'이라 발언하며 감정적으로 대처하셨지요."

"성문 재단에서의 사건은 물론 성문 재단의 잘못입니다. 그러나 그에 관한 전반적인 부분에서의, 오성아 컨설턴트의 태도가 과연 적절했는가에 대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저희는 제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타기다.

오성아는 대번에 그렇게 생각했다.

오성아가 그토록 당당하니까 한 번 찔러봤던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흐려 버리고 다른 쪽으로 논점을 끌고 가는 것이다.

"오성아 컨설턴트는 사표를 제출했지만 감사 여부에 따라서는 해고 처분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저희측 의견입니다."

제법 세게 나온 의견은 겨우 정신을 차린 주창명에게서 나온 것이었다.

그러면서 시선을 오성아의 뒤에 있던 도진에게로 향했다.

"잠룡문주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이런 일에 관해서는 전혀 경험이 없을, 본질적으로는 아직 '고등학교 2학년'에 불과한 도진에게로 칼끝을 들이밀어 본다.

그렇게 향한 칼끝에.

도진은 옅게 미소지으며 답했다.

"시나리오를 제법 잘 쓰시는 것 같습니다."

'시, 시나리오?'

도진의 답변은 주창명의 포커페이스를 또 한 번 강하게 두드려 버렸다.

그리고 이어서 후속타가 날아든다.

"뭐 반박을 드리자면 짧게 한 마디로 가능할 거 같네요."

도진과 주창명의 시선이 마주했다.

"우리가, 제가, 성아 누나가, 뭐가 아쉬워서 그런 공작을 해야 하죠?"

"……."

일순 어찌 답을 해야 할지 터억 막히고 마는 주창명이었다.

그는 달변가이자 숙달된 싸움꾼인 만큼 본래 어떤 식으로든 대번에 답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눈을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 잠룡문주 김도진의 존재감과 기세가 너무나 명확했기에 그에 준하는 논리가 아니고서는 말로서 성립하지 못한 것이다.

그래서 한 박자 늦게, 힘겹게 입술을 뗐다.

"동기에 관한 부분이라면 조사가 필요한 일일 것입니다. 다만 지금 당장 제시할 수 있는 의문들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죠?"

"첫 번째로는 앞서 제기했던 오성아 컨설턴트의 정체성입니다."

도진은 길게 늘어놓으려던 주창명의 말을 끊었다.

"그 부분은 더 언급할 필요도 없을 거 같은데요?"

"어째서입니까."

"오성에 겸직 금지 조항이 있나요?"

"……."

없다.

놀랍게도 오성에는 겸직 금지 조항이 없으니 애초에 오성이 겸직을 하며 살아남을 수 있을 만큼 만만한 회사가 아니어서 시도하는 이조차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오군성은 할 수만 있다면 겸직을 해도 된다는 입장이어서 굳이 조항을 신설하지도 않았다.

그러니까.

사락-

도진이 멋드러진 코트를 오성아의 어깨에 걸쳐준다.

금색 자수로 수놓은 '潛龍', 잠룡의 한자가 도드라지는 그것은 잠룡문을 상징하는 정장 무복의 코트다.

"완벽하게 자신의 직무를 수행했던 누나가 잠룡문의 총관을 겸하는 것은 어떤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죠."

"……."

"만약 오성 재단에서의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문제되는 부분이 감사에서 발견된다면 그건 그때 논하면 될 일이지 무죄 추정의 원칙을 따르는 대한민국에서 추측만으로 더 논할 일은 아니잖아요?"

"동의합니다."

오성측에서 지원 사격이 날아든다.

주창명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씀이십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생각해 두었던 카드를 꺼내들었다.

"두 번째로 짚고 싶은 것은 금번 사건의 처리에 관한 부분입니다."

"어떤 부분이죠?"

"감정론에 기반한 부분이긴 합니다만, 저희 오성과 잠룡문주님의 사이는 상당히 좋은 편이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주창명의 말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네.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상대가 의도대로 움직여 주자 주창명은 바로 공격에 들어갔다.

"한데, 어째서 공개적으로 오성 재단을 공격하는 듯한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셨는지에 관한 의문이 있습니다."

"흐음?"

"그것이 정말로 우연적으로 일어난 일이었다는 가정 하에, 잠룡문주께서는 해당 사건을 파악하셨다면 조금 더 부드러운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실 수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당장 곁에 오성 재단 소속의 오성아 컨설턴트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잠룡문주께서는 굳이 백주대낮에, 공개된 장소에서 일을 크게 터뜨리셨습니다."

'친구'의 허물을 왜 굳이 그런 식으로 들춰야만 했느냐.

그 의도가 무엇이냐.

주창명의 추궁에 도진은 미소를 더욱 짙게 하며 답했다.

"그러면 안 되나요?"

"……예?"

"그러면 안 될 이유가 있냐구요."

뻔뻔하게 나오려는 건가.

주창명이 그렇게 생각하며 답하려 했으나 도진이 한 발 빨랐다.

"아까부터 근본적으로 잘못된 논리를 자꾸 펼치시던데, 여기서 정정하고 가고 싶네요."

"무엇을 말씀이십니까?"

"뭐 성아 누나가 저에게 유리하도록 정보를 건네주고 그걸 바탕으로 이번 사건을 일으킨 게 아닐까 하는 시나리오를 자꾸 쓰시던데, 애초에 말도 안 되는 그 일의 잘못은 성문 재단과 성문 재단을 관리해야 할 오성 재단에 있단 말이죠? 근데 잘못은 그쪽에서 해 놓고 왜 그렇게 당당한지 모르겠단 말이죠?"

"무슨……."

"조금만 생각해도 알 수 있는 거 아닌가요? 성문 재단이 썩어 있었고 자정 능력을 잃은 상황이었어요. 그 때문에 이번 사건이 생겼는데, 따지고 보면 성문 재단은 독립된 재단이 아니라 그 위에 감시 기관이 또 있었단 말이죠? 그리고 그 감시 기관의 최상층이 바로 오성 재단이란 말예요."

"그건."

"그러니까, 책임을 물어야 할 건 오히려 지금 성아 누나를 추궁하고 있는 주창명 이사님과 차진표 대표님이란 말입니다. 제 말이 틀린가요?"

"……."

"뭐 일을 크게 터뜨린 게 야속하다구요? 그러면, 잘못된 일을 쉬쉬하면서 뒤에서 처리하는 게 옳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으신 건가요? 그게 오성의 방식이던가요?"

"그, 그건!"

주창명이 크게 놀라 목소리가 높아지고 말았다.

그 또한 오군성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오성에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아닌 건 아닌 거예요.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 하는 거고 그걸 쉬쉬하며 조용히 덮으려 드는 건 소인배나 할 일이란 겁니다."

모두의 귀에 도진의 말이 파고든다.

"크하하하하하!!"

그리고 그 말을 듣고 있던 사람 중 한 명, 사자군 오군성이 크게 웃었다.

흡족스레 고개를 끄덕이며 개입한다.

"그래, 맞는 말이야. 썩은 건 도려내야지. 숨기고 감출 이유가 없는 것이지."

지켜만 보고 있던 군주의 개입에 사위가 조용해진다.

이윽고 오롯이 집중되는 라운지의 중심에서 오군성과 김도진이 마주했다.

"우리 오성이 그런 부분을 감추고 쉬쉬해야 할 만큼 소인배는 아니거든. 역시 잘 알고 있어."

고개를 주억이던 오군성은 돌연 눈을 날카롭게 빛낸다.

"그런데 말이야, 잠룡문주. 내가 하나 궁금한 것이 있어."

"무엇입니까?"

"자네는 분명히 그렇게 말했지. '잠룡문이 그래야 할 이유가 없다'고."

"네."

"그런데 그 말에 대한 근거가, 아직 나오지 않았단 말이지?"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렇네요. 그 이유를 아직 말하지 않았네요."

도진의 시선이 오군성에게로 향한다.

"간단합니다. 그리고 명확한 이유죠."

"주창명 이사님의 논리를 그 누구도 오군성 회장님에게 적용하려 들지는 않을 겁니다. 당연하죠. 그럴 이유가 없으니까."

"그렇구먼."

고개를 끄덕이는 오군성을 마주한 채, 도진이 당당하게 선언했다.

"마찬가집니다. 잠룡문은 대한민국 최고의 문파가 될 거거든요."

"……!!"

"그러니까, 그런 의심을 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호오."

오군성의 입꼬리가 맹수의 호선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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