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400화 (400/741)
  • 399화

    오군성을 정점으로 한 오성의 오너 일가는 세가화(世家化)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무협지에서 흔히 말하는 바로 그 오대세가 운운할 때의 그 세가다.

    지금은 무가(武家)와 상가(商家)가 구분되지만 오래 지나지 않아 그 경계가 사라질 것이라는 예견을 이제 그 누구도 부정하지 않는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오성세가'는 무력과 자금력을 모두 갖춘 대한민국 최대의 세력 중 하나가 될 것이라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아무리 그렇다 해도 혈족만으로 오성이라는 거대한 그룹을 모두 아우를 순 없으니 오성은 오성과 비(非) 오성이라는 두 집단으로 크게 나뉘어 있었다.

    오성은 말 그대로 오성의 혈족이며 비 오성은 오군성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영입된 인재들로 구성된 집단이다.

    이렇게 구분된 두 집단이 경쟁함으로써 오성의 성과주의와 인재주의를 통한 성장이 극대화되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단점이나 부작용이 없지는 않다.

    하지만 그것은 항상 허용되는 범위 내에서 그쳤으니 집단의 정점에 절대적인 권위를 가지는 오군성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인 이상 서로를 미워하기도 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도 하지만 그 행동의 중심에는 오군성에 대한 충성심, 혹은 두려움이 분명하게 자리하고 있기에 벗어나선 안 될 선을 결코 벗어나지 않는다.

    그리고 오군성은 그 선만 벗어나지 않으면 그들의 자유와 경쟁을 보장한다.

    그러니까 도진이 보며 올라온, 지금 보고 있는 장기판을 그대로 가져온 듯한 대립은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 장기판의 저편 왕에 해당하는 포지션에 있는 것이 바로 오성 재단의 대표 이사 차진표였다.

    오성의 중심이 오성 하이테크의 대표 이사인 오주형이라면 비 오성의 중심은 오성 재단의 대표 이사인 차진표였기에.

    "오대용 바른 엔터테인먼트 대표 이사의 오성 하이테크 발령의 근거에 관하여 따져보아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오성의 세력을 더해줄 오대용의 합류를 공격할 것은 예정되어 있는 일이었다.

    차진표가 테이블의 서류를 볼 것도 없이 머릿속에 완벽하게 정리해 둔 내용을 말했다.

    "바른 엔터테인먼트는 소위 말하는 3대 기획사에 비할 만큼의 영향력과 명성을 확보하는 눈에 띄는 성장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대용 대표 이사의 실적으로 보기에는 많은 무리가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무리가 있습니까?"

    받아치는 건 오주형 부회장이다.

    아들을 변호하기 위해서가 아닌 한 집단의 수장으로서 대응하는 것이다.

    무형의 기싸움이 이루어지며 차진표가 답했다.

    "바른 엔터테인먼트의 성과는 우발적인 사고 후 있었던 우연의 산물입니다. 그 우연의 어디에도 오대용 대표 이사의 공적은 찾을 수 없습니다."

    "하물며 바른 엔터테인먼트의 팬과 명성 대부분은 저기 잠룡문주님에게 기대는 부분이 크지 않습니까. 심지어 지금 소속된 아티스트들에 대한 영향력마저 오대용 대표 이사가 아닌 잠룡문주님에게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저 대표 이사 자리에 있었다는 것만으로 실적을 인정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타당해 보이는, 고개를 젓기 힘든 논리로 보였다.

    그 공격에.

    "글쎄요. 전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오대용 본인이 나섰다.

    몰려드는, 무형임에도 실제로 무게를 가진 듯한 시선에도 오대용은 한 치의 흐트러짐도 보이지 않으며 당당하게 발언했다.

    "무엇이 다릅니까, 오대용 대표 이사."

    아이 취급하지 않고 그 직책을 언급한다.

    그 어떤 어리광이나 면죄부도 주어지지 않을 거라는 압박이지만 오대용은 오히려 대담하게 미소지었다.

    "저는 그렇게 배웠습니다. 그 직책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라고. 오성의 사람이라면 아마 모두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것은 오군성의 말이었다.

    그러니까 누구도 부정하지 않았다. 할 수 없었다.

    포커페이스를 유지하지만 분명하게 균열이 있었을 차진표를 마주하며 오대용이 말을 이었다.

    "저는 바른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이사로서 그 자리에 있었으며 대표 이사로서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거기에는 차진표 대표 이사님이 언급하신 것들이,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표 이사로서 해야 할 것은 위기 관리와 대처입니다. 그리고 호재가 있을 때엔 그것을 흘려 보내지 않고 최대한 이득이 되도록 대처하는 것으로 저는 배웠습니다. 동시에 외부에 보이는 '영웅적인 활약'에 가려 보이지 않을 수는 있겠지만 분명히 대표 이사로서 수행해야 할 보이지 않는 업무들이 있을 겁니다."

    "저는 바른 엔터테인먼트의 대표 이사가 수행해야 할 그 업무들을 수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그 어떤 책잡힐 부분도, 부족한 부분도 없었다고 자부합니다. 해당 부분에 관해서라면 요구하시는 어떤 자료도 즉시 제출할 수 있도록 해 두었습니다."

    오대용의 대담한 미소가 더욱 짙어졌다.

    "차진표 대표 이사님. 말씀하시면 해당 자료를 지금 즉시 전송하도록 하겠습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오대용이 이겼다.

    …라고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겉으로 보기엔 통렬한 일격을 먹인 것 같지만 차진표는 전혀 그런 표정이 아니었고 실제로도 그러했으니까.

    오대용의 오성 하이테크 발령은 어차피 막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오대용이 그런 식으로 받아칠 것까지도 심지어 차진표는 예견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이견을 제시한 건, 그것만으로도 오대용의 이름에 흠집을 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버려진 황태자'였던 오대용이 다시 오군성의 부름을 받아 안 그래도 공고한 오주형 체제의 오성 하이테크에 발령이 난다.

    그것은 비 오성의 입장에서 결코 달가운 일이 아니니 이런 식으로 '그래봐야 현실은 이렇다'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해 굳이 나섰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목적은 분명하게 달성되었다.

    다만 차진표 또한 속으로는 그리 좋지 못한 표정을 지었으니 그의 생각 이상으로 오대용이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분명한 애송이였다.

    아니, 애송이란 이름마저 과분하니 한 번 바닥을 쳤으며 무너지기까지 했었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다시 마주한 오대용의 기세가 오주형의 젊은 시절을 연상케 할 정도로 강렬하고 분명하다.

    바른 엔터에서의 실적은 무위로 만들었지만 그것을 상쇄할 만큼의 인상을 오대용은 남겨 버렸다.

    바로 그 차진표에게 정면으로 맞섬으로써

    '이 공고한 체제가 3대까지 이어질지도 모르겠어.'

    그것이 죽도록 싫지는 않다.

    그는 평생을 오성에 바쳐왔고 오군성에 충성하는 사람이었으니까.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면 오성이든 비 오성이든 개의치 않는다.

    그런 성정이기에 오히려 비 오성의 중심이자 정점에 있을 수 있었다.

    다만 그저, 뛰어넘을 수 있다면 그런 오성의 직계마저 뛰어넘고 싶다는 욕심이 있을 뿐이다.

    그 욕심을 불태우며.

    "제의하고 싶은 안건이 있다면 제의하시게들."

    차진표가 다시 나섰다.

    "오성아 컨설턴트에 관하여 다루어야 할 내용이 있습니다."

    "……."

    올 것이 왔다.

    오성아는 그렇게 생각하며 주먹을 꾸욱 쥐었다.

    그리고 차진표의 곁에 있던, 사나운 인상의 남자가 일어섰다.

    주창명 이사. 사람들이 뒤에서 부르기를 상어.

    비 오성 쪽의 싸움꾼이며 한 번 물면 피가 줄줄 흐를 정도로 공격적으로 '정치질'을 하는 사람으로 많이들 꺼려한다고 들었다.

    그의 사나운 인상을 상징하는 날카로운 시선이 오성아에게로 향했다.

    "오성아 컨설턴트의 최근 행보에 관하여 의문나는 부분이 있어 제의하게 되었습니다."

    오성아는 침착하게 마음을 다스리며 답했다.

    "어떤 부분에 의문이 있으신가요?"

    "오성아 컨설턴트는 오성 재단 소속 직원이며 더 나아가 오성의 직계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네."

    "하지만 근래 오성아 컨설턴트의 행보는 오성의 사람이 아니라 잠룡문의 사람으로 보입니다."

    "오성아 컨설턴트가 수행해야 할 직무는 오성 재단의 직무이며 그 직무의 연장 선상에서 잠룡문주님의 컨설팅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근래의 모습은 그 직무의 주객이 전도되어 있습니다. 오성 재단의 컨설턴트로서의 직무는 후순위로 밀려 있으며 잠룡문의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하게 드러나고 있습니다."

    "오성아 컨설턴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는 저에게 주어진 직무를 부족함없이 수행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문제가 된다는 말씀이시죠?"

    "예. 직무 수행의 차원이 아니라 오성의 구성원임에도 잠룡문의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이 더 강하게 드러나는 부분에서의 문제를 논하고 있습니다."

    이는 생각 이상으로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였다.

    어떤 집단의 구성원임에도 불구하고 그 마음이 다른 데로 가 있다는 건 정말로 큰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이를테면.

    오성아는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하지 않겠습니다. 저는 잠룡문에 마음이 더 기울어 있습니다."

    주창명의 말을 부정하지 않고서.

    "……."

    스륵.

    핸드백에 넣어 두었던 사표를 꺼내들었다.

    "더 이상 오성 재단 구성원으로서의 직무를 수행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스스로도 인정하는 바, 사표를 제출할 테니 수리해 주십시오."

    또각또각.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당당하게 걸어가, 차진표에게 직접 사표를 제출해 버렸다.

    그 행동엔 친동생을 공격한 차진표에게 한 방 먹이는 그림을 연출하려는 의도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본래 두려웠을 그 일은 도진이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기 때문인지 통쾌하기만 했다.

    너희들이 무슨 수작을 부리려는지, 나를 통해 어떻게 상대편을 공격하려 들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판에 끼고 싶지 않으니 그냥 사표나 수리해 버리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오성아의 사표를.

    "이 사표는, 안건이 끝난 뒤에 수리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차진표는 바로 수리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주창명이 나섰다.

    "앞서 나왔던 성문 재단과 관련한 사건에서의 의문점이 있습니다."

    오성아의 시선이 주창명에게로 향했다.

    "해당 사건은 잠룡문주님의 이벤트로 우연히 괴롭힘을 당하는 학생이 당첨되었고 그로 인하여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의 우연이 과연 정말로 우연인가에 관한 의문이 있습니다."

    "……."

    오성아의 표정이 굳었다.

    주창명은 의도했던 표정이 된 오성아의 모습에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정말로 단순한 우연입니까? 오성 재단의 내부 관계자인 오성아 컨설턴트를 통하여 정보가 유출된 것은 아닙니까?"

    의심할 수 있는 부분이다.

    "잠룡문주님은 저희 오성과 나쁘지 않은 관계이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형태로 큰 사건을 만들어 오성 재단에 큰 피해를 입혔어야만 했습니까? 좀 더 다른 형태로 일을 진행할 수도 있지는 않았습니까?"

    "동시에, 오성아 컨설턴트는 그 일을 왜 그저 방관하기만 했습니까?"

    몰아붙인다.

    주창명은 그렇게 몰아붙임으로써 오성아를 흔들려 했다.

    주창명의 경험으로 이것은 '어린 친구들'에게 그 무엇보다 효과적인 공격이었다.

    자, 어떻게 대답할 테냐.

    궁지에 몰려 버벅이다 무너질 테냐, 아니면 대답조차 못하고 굳어 버릴 테냐.

    이미 얼굴이 굳어 버린 시점에서 승패는 기울어 버렸다.

    주창명은 그렇게 판단하며 오성아를 마주했고.

    "…우리 잠룡문에 대한 그런 저급한 모함을 하려 들다니, 불쾌하기 짝이 없네요."

    "뭐, 뭐요?"

    경멸하는 시선과 함께 나온 '시정잡배'를 대하는 듯한 태도에 두 눈이 커져 버리고 말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