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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98화 (398/741)

397화

오성의 신년회는 오성의 간부들은 물론이요 일반 사원들까지도 참석할 수 있는 '축제'의 명목을 가진다.

그러나 그 안에 상벌위원회로서의 성격이 포함되어 있기에 몰래 '숙청'이라 불리곤 하는 것이다.

심지어 그것이 조율되는 일정에 따라 설날 전후에 개최되니 더더욱 잔혹한 부분이 있다.

물론 외부에 그렇게 떠들고 다니는 사람은 없으니 올해 신년회에 참석하는, 기자들이 포진한 오성 소유의 최고급 호텔에 속속 도착하는 이들의 얼굴은 표정 관리를 잘하여 밝기만 하다.

여기에 그런 상벌위원회를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이들, 이를 테면 오성과 연이 많은 초청받은 연예인이나 인플루언서 등도 포함되어 있어 호텔 앞 정문은 연말의 연예대상 같은 느낌마저 풍기고 있었다.

때문에 호텔 앞에 진을 친 기자단 또한 연신 셔터를 눌러대는 것이었다.

내부에 입장하는 건 불가하지만 외부에서의 촬영은 허가되었다.

인터뷰는 개인의 자유이지만 대외비는 당연히 언급할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중요한 건 건질 수 없지만 어찌되었든 화려한 면면이고 제법 조회수도 뽑을 수 있으니 연례행사처럼 굳어져 버린 이 일에 파견된 기자들은, 그러나 올해는 조금 분위기가 달랐으니.

"흐음. 인터뷰 안 해 주겠지?"

"그렇겠지."

그 이유는 요즘 그들에게 가장 큰 도움을 주는, 그러니까 기삿거리를 제공해 주는 잠룡문주 김도진이다.

얼마 전 어김없이 또 한 건을 해 주었는데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 바로 올해 오성의 신년회였던 것이다.

성문 재단과 관련한 이들, 그리고 당사자의 범주에 들어가는 간부 또한 오늘 신년회에 참석한다.

거기에 잠룡문주로서 김도진 또한 참석이 확정되었으니 매년 하던 일을 진행하면서도 분위기가 다른 것이었다.

"와, 왔다!"

"어디!"

그리고 술렁이던 분위기는 오늘의 '주인공'인 오거우가 등장하면서 바로 과열되었고 입구가 제법 소란스러워졌다.

찰칵찰칵!

"오거우 이사님!"

"하하하. 죄송합니다."

오거우는 철저하게 준비한 듯 몇 겹이나 되는 미소로 그 열기를 피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기자들은 아쉬워하면서도 그럴 거라 예상했기에 입장 사진을 건진 데서 만족했다.

그 사진을 첨부한, 쏟아지는 비슷비슷한 기사들을 써내던 그들은 곧 뒤이어 등장한 고급 외제차들에 시선이 쏠렸다.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저, 저거?"

"잠룡문이다!"

오성의 신년회인 만큼 고급 세단은 흔했지만 소위 말하는 '회장님 차'를 타고 온 이는 없었다.

바로 그 회장님 차를 타고, 도진이 도착했다.

먼저 내린 건 호위하듯 함께 온 두 대의 차다.

그 안에서 먼저 새하얀 블라우스와 대비되는 새까만 머리카락이 특징인 늘씬한 미녀, 독마전의 소전주 위연서를 필두로 잠룡문의 문도들이 내렸다.

슈미트라와 위취련의 강력한 건의에 따라 최소한의 수행 인력이 함께 온 것이었다.

요즘 위명을 떨치는 잠룡문의 상승세를 보여주듯 그들의 기세가 드높았다.

그들이 늘어선 뒤에야 가운데의 차에 탔던 인물들이 내렸다.

"오……."

"오성아다!"

기자들은 물론이요 시선을 집중했던 모든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건 다름 아닌 오성의 직계, 오군성 회장의 손녀인 오성아였다.

시스루 스타일의 군청색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그러나 그 드레스가 전혀 과하게 보이지 않을 만큼 드레스 이상으로 빛나고 있었다.

스윽-

그리고 그런 그녀의 곁에, 웨일스 후작이 운영하는 맞춤 양복 브랜드에서 새로 맞춘 정장 무복을 갖춰입은 도진이 내려 섰다.

도진은 이 드넓은 공간과 그 공간을 가득 채운 사람들 사이에서도 단연코 빛나는 그녀의 색을 전혀 가리지 않으면서도 동시에 자신의 존재감을 분명하게 각인시켰다.

평소 무흔잠영으로 가리고 있던 존재감을 이곳에서는 굳이 필요 이상으로 억누르지 않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누구보다 분명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도진이 옅게 웃으며 손을 내밀었고, 그 손 위에 또한 옅게 웃는 오성아가 자신의 손을 올려 잡았다.

오성아를 에스코트하며 도진이 걷고 그 뒤를 독마전의 무인들이 뒤따른다.

그저 평범한 숭무고생이자 한 명의 인플루언서가 아닌 이미 무림과 세계에마저 그 이름을 알린 무인이자 한 문파의 문주로서.

쟁쟁한 이들로 가득한 드넓은 정문의 길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면서.

도진은 오성아, 그리고 독마전의 무인들과 함께 정문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아."

"이런 미친."

그리고 멍하니 홀려 있던 기자들이 그렇게 도진이 사라져 버린 뒤에야 인터뷰를 하지 못했다며 한탄했다.

"와, 진짜 듣기는 엄청 들었는데 다르긴 다르네요."

"그러게. 나도 엥간히 무림인들 보긴 했는데 이렇게까지 그, 뭐라고 해야 하지. 존재감이 대단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건 처음이네."

"베테랑 선배들이 고수들은 다르다 다르다 하던 게 msg 좀 친 거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네요."

"그걸 아직 스물도 안 된 학생한테서 겪었다는 게 진짜 난 사람은 난 사람인가 보다."

"그런 김도진이랑 오군성 회장님이 오늘 싸우면……."

"…앞으로 한 달 정도는 기삿거리 걱정 안 해도 되겠지."

"어? 근데 생각해 보니 오성아는 오성 쪽 사람인데?"

"……그러네? 김도진이랑 같이 와도 되는 건가?"

* * * *

꽤나 무시무시한 소문과 오성아의 걱정으로 가득했던 오성 신년회의 시작인 2층의 홀은 그러나 제법 분위기가 좋았다.

도진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걷는 오성아는 매력적으로 반짝이는 레드핑크빛 입술로 사람들 몰래 한숨을 쉬고선 당연하다 말했다.

"여긴 그런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모인 자리니까."

이곳은 그러니까 비유하자면 '외곽'이라고 했다.

상벌위원회를 걱정해야 하는 건 비교적 윗 계급의 사람들이다.

좀 더 명확하게 말하면 최소한 중간관리직이고 중심은 임원들이 된다.

의외일 수 있는데, 사실 임원이란 곧잘 '파리목숨'이 되곤 하니 그들이 '계약직'이기 때문이다.

임원이 된 사원은 일단 퇴사를 하게 된다.

그러니까 일단 퇴사를 하고 퇴직금 정산까지 한 뒤 '계약직'으로 다시 입사를 한다.

임원이란 곧 임시직원이란 말이 나오는 이유다.

보통 1년 단위로 계약하고 실적에 따라 재계약이 이뤄지곤 하는데 오성은 그 부분이 더욱 엄격하니 1년의 실적을 평가받는 신년회가 그토록 무시무시한 이름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그런 임원들과 달리 이곳 2층의 홀은 주로 일반 사원들이 모인 자리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오성의 모든 직원이 신년회에 참석하는 건 아니다.

일부만이 이곳에 참석하는데 그나마도 놀러오는 게 아니라 참석한 자리에서 일을 한다.

말인즉 참석하여 파티를 즐기면서도 업무를 볼 수 있거나 오히려 이곳에 참석하는 것이 일인 사원들과 초대받은 인플루언서 등이 2층을 채우고 있다는 것이다.

"홍보나 마케팅을 담당하는 사원들이 대부분이지."

"그렇게 보이네요."

외향적이거나 사람을 대하는 사회 생활에 있어 특장점이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임을 도진은 단번에 알아보았다.

그들은 파티를 즐기면서 동시에 이곳에 참여한 오성과 관련된 외부의 인사들과 인사를 나누고 인맥을 쌓는 데 주력하고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잠룡문주님."

"네. 안녕하세요."

넉살 좋게, 혹은 대담하게 도진에게 인사하며 명함을 건네는 이들 또한 있었으니 2층의 분위기는 대략 그런 느낌이었다.

같은 회사지만 다른 부서의 사람들, 그리고 관련 있는 협력사의 사람들이 모인 회식 같은.

즐겁게 먹고 마시는 자리이지만 지킬 건 지켜야 하고 결코 마음을 놓아선 안 되는 그런 미묘한 분위기가, 이곳에는 흐르고 있었다.

"회사원이란 거, 정말 고달프네요."

도진의 말에 오성아가 응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나 사표내려는 거잖아."

"아하하. 전 따지고 보면 오너라서 다행이네요."

약간 긴장하고 있는 오성아의 긴장을 풀어 주며 도진은 윗층으로 향했다.

조금 오글거리게 말하자면, 이곳은 오성이라는 '제국'의 외곽에 불과하다.

도진이 오성아와 함께 가야 할 진짜는 이곳이 아닌 더 위.

제국의 심장부가 되어 있는 최상층의 프레스티지 라운지다.

* * * *

또각. 또각.

오성아는 긴장을, 뛰는 심장을 최대한 다스리며 위층으로 향했다.

또각거리는 힐의 굽이 오늘 유독 불편하게 느껴지는 건 그만큼 마음이 술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아무리 다스려도 진정되지 않던 마음이.

쿠, 웅…….

채 프레스티지 라운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크게 출렁이고 말았다.

"……."

간부들이 모이는 자리였다.

임원급 바로 아래의, 사내 정치에 휩쓸린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

그들은 마치 초한지를 형상화한 장기판의 위에 선 것처럼 둘로 나뉘어 있었고 그들 중 절반이, 오성아에게 적의 어린 시선을 보내고 있었다.

반드시 죽여야만 하는 적국의 중요 인물을 보는 것처럼 강렬하게.

수없이 많은 사람을 대해왔던 오성아의 눈은 그 시선에 담긴 말을 제법 정확하게 읽어냈다.

"김도진이랑 같이 오네."

"이젠 아예 대놓고 저쪽으로 배신했다는 걸 자랑하고 다니는구먼."

"오성의 이름에 먹칠을 한 놈이랑 같이 다니면서도 뻔뻔한 낯짝으로 웃어?"

쿵쿵쿵쿵.

심장이 거칠게 뛴다.

그것은 그 적의가 너무나 짙게, 오성아가 걱정하던 부분을 끊임없이 찔러댔기 때문이다.

그래.

그녀가 이토록 긴장하고 또 걱정하는 건 단순히 신년회에 사표를, 할아버지가 있는 자리에서 내야하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바로 지금 받고 있는 그런 시선들 또한 두려웠기 때문이다.

그녀는 도진의 행동을 결코 비난하지 않는다.

오히려 도진의 행동에 박수를 치고 무조건 잘했다고 편을 들어줄 것이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그녀가 평생을 몸담아왔고 또 '오너 일가'로서 소속돼 있는 오성의 사람들에게 이런 시선을 받는 것이.

평생 그런 시선을 받을 거라곤 상상조차 하지 않았던 상황을 마주하는 것이.

쿵쿵쿵쿵!

그녀가 상상하고 각오했던 것 이상으로 그녀를 뒤흔들 만큼 강렬하게 다가오고 말았던 것이다.

심지어 그렇게 강렬한 시선의 수마저 상상을 아득히 뛰어넘을 만큼 많아 그녀의 인식 범위를 가득 채워 버릴 정도였다.

사면초가(四面楚歌).

그녀에게 적의 가득한 이들에게 고립무원으로 포위당한 것만 같았다.

때문에 애써, 평생 해오던 표정 관리가 무너지고 몸이 외부에서도 대번에 알 수 있을 만큼 떨리려 하던 그때.

꾸욱.

마치 하늘에서 내리쬐는 햇살처럼 그녀의 손을 통하여 흘러드는 온기가 있었다.

'아…….'

도저히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던 포위망이 저절로 와해되어 버렸다.

아니.

처음부터 그녀는 그 포위망 안에 있지 않았다.

그녀를 뒤흔들던 적의를 보름달 앞의 반딧불로 만드는.

무수한 적의가 얼마나 되든 그 빛을 바래게 만드는.

그녀는, 이 자리에서 그 누구보다 강렬하게 존재하는 이의 에스코트를 받고 있었으니까.

그녀의 오너가 그녀의 눈을 마주했다.

그리고 미소지은 얼굴로 말했다.

"때려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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