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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97화 (397/741)
  • 396화

    무림학교는 일반적으로 그 자체만으로 명문으로 취급된다.

    당연한 일이다.

    의무교육인 초등학교에서 선별된 재능있는 학생들만이 무림중학교에 진학한다.

    그리고 거기서 또 선별된 학생들만이 무림고등학교에 진학하기에.

    학교는 그런 재능있는 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한 시설과 교육자들, 그리고 커리큘럼을 갖춰야만 하니 급이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를 위한 국가 차원에서의 지원은 물론이요 인재들을 원하는 여러 기업이나 문파와도 자연스럽게 끈이 닿았다.

    그런 시스템의 정수가 바로 도진이 재학하고 있는 숭무고다.

    국가 최고의 인재들이 모이고 그들을 위한 국가 최고의 시설과 교육자들이 포진하고 있으며 국가 최고의 지원이 끊이지 않는다.

    여기에 또 하나 커다란 자산이 그로 인한 인맥이다.

    '끼리끼리 모이는' 그들 사이의 인맥은 물론이요 졸업하여 사회와 무림에 나간 선배들과의 학연 등.

    문월중고 같은 '양아치 양성소'라는 불명예를 안는 일부 특수하고도 밑바닥의 학교를 제외한 무림학교는 자연스럽게 지역의 명문으로 자리잡는 것이다.

    성문중고 또한 마찬가지였다.

    성문중고를 운영하는 성문 재단은 무려 오성 재단 계열이었다.

    그러니까 성문중고는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는 바로 그 오성의 계열이었으니 명문이 아닐 수 없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오성 재단은 오성 그룹 내에서도 파워가 막강한 곳임. 오군성 회장님이 성과주의랑 인재주의를 강조하는 만큼 인재를 발굴, 양성하는 오성 재단은 힘이 쎌 수밖에 없단 거지. 그런데 그 오성 재단 계열인 성문 재단이 운영하는 성문중학교가 대들보가 두조각 나게 생겼네? 그것도 김도진 때문에?

    -어.. 듣고 보니 좀 많이 큰일 같은데..?

    -김도진이 외부 제의도 다 거절하고 스스로 문파를 세우고 무림에 나서려는 거 같지만, 따져 보면 오성이랑 제일 친함. 파트너 관계로 SNS 통해서 광고 계약 맺은 것부터 시작해서 오성아는 아예 안주인이라고까지 하잖아. 그런 관계였던 오성이랑 지금 처음으로 제대로 일이 터진 거임.

    -성문 재단 자체는 냉정하게 말해서 오성 기준으로는 별 거 아님. 하지만 어쨌든 오성의 간판에 흠집이 났다는 것 자체가 큰 문제라는 거지.

    -ㄷㄷㄷ 어케 되는 거임 그럼 이제?

    -모르지. 봐야지.

    * * * *

    -성문 재단 대변인은 이번 사건에 관해……

    여유롭게 엎드린 사자처럼 초고급의 리클라이너에 몸을 묻은 오군성이 뉴스를 듣고 있다.

    그 옆 사이드 테이블엔 마찬가지로 성문 재단과 관련한 사건이 대서특필된 신문이 펼쳐져 있었다.

    관련 자료를 정리해 온 검은 양복의 남자, 방계의 오정우는 마치 배경처럼 조용히 시립했다.

    그는 이 사건과 관련하여 오군성이 시키지 않는 한 입을 뗄 필요가 없었다.

    '오거우가 누구였지' 같은, 허세에 찌든 질문은 나오지 않는다.

    오성의 군주이자 무림의 절대자 중 한 사람인 오군성은 오성의 직계와 방계는 물론이요 계열사의 간부들을 모조리 기억하고 있으니까.

    단순히 이름과 얼굴만을 기억하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정보를 모조리 숙지하고 있다.

    그러니까 오정우가 할 것은 그저 잡일, 자료를 정리해 오는 것 뿐이었다.

    뉴스만이 흘러가며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 뒤.

    오군성은 나직이 말했다.

    "이번 신년회는 제법 재미있을 것 같군."

    "예, 회장님."

    여유로운 목소리로 말하는 오군성은 그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휴대폰으로 온갖 커뮤니티의 댓글을 훑는 중이다.

    "그래. 슬슬, 한 번쯤 재미를 볼 때가 됐지."

    댓글의 내용은, 도진과 오성 사이에 충돌이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오군성의 슬쩍 올라간 입꼬리가 마치 맹수처럼 번뜩였다.

    * * * *

    수많은 사람들이 '직관' 했던 성문중학교에서의 사건은 엄청난 관심 속에서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그저 학생들 사이의 괴롭힘 단위가 아니다.

    재단 전체의 비리는 물론이요 오성 재단에마저 불똥이 튈 만큼 커다란 단위의 사건이었고 그만큼 '숙청' 또한 요란했다.

    그렇게 숙청된 인사들은 경찰 조사 또한 받아야 했으니 이 과정에서 나선 것이 다름 아닌 나성보였다.

    으레 도진이 이런 사건에 연관되면 힘을 써 주었던 나성보가, 오성의 사건에마저 빠지지 않고 나선 것이다.

    외부의 시선이나 이야기와 달리 나성보는 일말의 자비조차 보이지 않고 사건을 처리했으며 도진 또한 그런 나성보와 마찬가지로 '언제나와 같은 태도'를 고수했다.

    "아으……. 나 위장약이라도 먹어야 할까 봐."

    걱정하는 건 나뿐인가? 정말로? 좀 억울한 거 같아.

    그런 말을 표정으로 더하며 오성아는 하소연했다.

    "어, 우리 보물 같은 눈나가 그러면 안 되는데. 자, 누워봐요. 안마해 줄게요."

    "아니, 무슨 안마가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당장 반응하여 말하는 도진에게 그러면서도 오성아는 얌전히 푹신한 소파 위에 엎드렸다.

    도진이 그런 오성아의 뭉친 어깨에 손을 댔다.

    그리고.

    꾸우우우우욱-

    "꺄아아아아아악!! 아파! 아파아아아아!"

    도진의 자비없는 '추궁과혈'에 자지러지며 비명을 내질렀다.

    "아프다고오오오오!"

    "어허, 참아요, 눈나. 걱정이 많아서 그런지 엄청 뭉쳐 있으시네."

    퍽퍽퍽퍽!

    소파를 내리치는 것이 마치 다급한 탭을 치는 것 같다.

    하지만 도진은 결코 손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게 누가 사서 걱정을 하래요. 그러니까 이렇게 어깨가 뭉치지. 좀만 참아요."

    "꺄아아악! 빨간약도 아니고 무슨 안마가 이래!!"

    "곧 신년회인데 눈나 예쁘게 차려입고 가려면 뭉친 곳도 좀 풀고 자세도 당당하게 교정해야죠. 좀만 참아요."

    "너어어어어!!"

    * * * *

    …안마는 15분이 지나서야 마무리되었다.

    오성아는 거짓말처럼 개운해진 몸에 도진을 째릿 노려보면서도 그 이상의 불만을 앙 다문 입술 밖으로 내보내지 못했다.

    "크흑, 귀여워."

    그리고 그것이 귀여웠던 도진의 표정과 말에 더더욱 불만어린 얼굴이 되었다.

    도진이 하하하 웃고선 말했다.

    "음, 그래서 민혁이 유학 관련 준비는 어때요?"

    오성아는 더 해봐야 귀요미 취급(?)밖에 못 받는 걸 알았기에 도진의 말돌리기에 어울려 주었다.

    "…다 됐어. 내일 비행기로 가기만 하면 돼."

    "역시 눈나. 일처리 확실하네요."

    "나는 명성공방 쪽 장학생으로 가지 않을까 했는데."

    "응, 그렇죠. 보통은."

    오성아의 말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만약 '평범한 천재'였다면 그럴 수도 있었다.

    우벽진도 성민혁을 제법 눈여겨 보았고 우서연이 손을 써 준 부분도 있었으니까 자연스럽게 여타의 세력들이 그렇듯 명성공방이 운영하고 있는 재단과 연결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굳이 '유학'까지 가야하는 바할라를 통하여 성민혁을 도와준 건 성민혁이 그 바할라의 투마전 구성원이 될 수 있는 인생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단순히 신마파산공에 이를 수 있는 자질만이 아닌, '천마신교의 교도'가 될 수 있는 자질을 성민혁은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도진은 성민혁을 엑소시아 후보로서 바할라로 유학보내기로 했다.

    무조건 엑소시아, 투마전의 구성원이 되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성민혁 스스로 원해야 하고 천마신교 교도에 어울리는 마음가짐을 갖추어야만 한다.

    일단 성민혁은 도진의 제안, 유학을 수락했다.

    "입학 시즌동안 집중 교육을 받게 될 거야. 학교에 입학한 뒤로는 방학마다 바할라로 가서 또 배우게 될 거고. 그러니까 학기중에는 한국에서 머무는 거지. 다만 엑소시아의 사람들이 한국에 머물면서 방과후에 널 가르칠 거야."

    어찌되었든 할머니와 있을 시간이 줄어들 수 있다는 부분에서 성민혁은 망설였지만 방학동안 바할라에 할머니와 함께 지낼 수 있을 것이며 전액 장학금도 나온다는 말에, 스스로의 삶은 물론이요 할머니를 잘 모실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 도진의 제안을 수락한 것이었다.

    "바할라는 한국에 지부를 세울 예정이거든. 거기에 니가 한 자리를 맡아줬으면 하는 생각이야."

    여기에 엑소시아가 된다 해도 바할라에서 살지 않아도 된다.

    바할라는 도진이 있는 한국에 지부를 세울 생각이고 도진의 말대로 성민혁은 한국 지부에서의 일을 맡게 할 계획이었다.

    "안녕하세요."

    "예. 안녕하세요, 선생님."

    "잠은 잘 잤어?"

    "네, 형."

    그런 인생 계획을 품게 된 성민혁, 그리고 할머니와 함께 도진은 바할라에서 대절한 비행기를 탔다.

    입학 시즌까지 바할라에서 머물게 된 성민혁과 할머니가 조금 더 편할 수 있도록 함께 가는 것이다.

    다만, 바할라행의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었다.

    늦은 밤.

    일정을 마무리한 도진은 왕성 내에서 슈미트라와 마주했다.

    예를 갖춰 소지존을 맞이한 슈미트라와 눈을 맞추며 도진이 물었다.

    "어떻던가요?"

    주어가 생략되어 있으나 그 내용을 알고 있었기에 슈미트라는 바로 답했다.

    "소지존께서 말씀하신 부분은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랬군요."

    두 사람이 마주한 테이블 위에는 역사서라 할 수 있는 책들이 놓여 있었다.

    바할라 왕가의 역사였는데 대대로 왕가의 사람이 투마전주를 역임했으니 동시에 투마전의 역사서가 된다.

    독마전과 달리 왕가의 역사에 투마전의 역사가 포함, 기록되었으니 더 철저하고 분명하게 기록되었다.

    때문에 도진은 기대했다.

    이번에야말로 천마신교가 '어떻게' 지금까지 그 명맥이 이어질 수 있었는지, 최소한 투마전만큼은 그 역사를 확실하게 알 수 있지 않을까 하고.

    하지만 기대는 빗나갔다.

    그날의 사건 이후 슈미트라가 관련 자료를 철저하게 확인하였으나 알려진 것 이상의 자료를 찾을 수 없었고 혹시 몰라 도진이 직접 찾아와 위지혁과 함께 확인했으나 역시나 다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한 가지 가정을 할 수밖에 없겠구나.

    장호의 고저가 일정한 말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쩌면, 의도적으로 누락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도진의 말에 슈미트라 또한 동의했다.

    "예. 이렇게까지 분명하게 무공이 전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럴 수 있었던 이유와 역사는 누락되어 있다는 게 말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 독마전 때야 어떻게든 납득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러나 투마전까지 이렇게 단절되듯 이전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면 의도적이라는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제법 답답한 노릇이로구나.

    -예, 스승님.

    도진과 마찬가지로, 혹은 그 이상으로 기대하고 있던 위지혁 또한 아쉬워했다.

    세상을 떠난 뒤로 이렇게 기적처럼 도진에게 깃들었고 천마신교의 명맥이 이어졌음을 확인했는데 그 과정을 알 수가 없다.

    당최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뭐, 어쩔 수 없죠. 일단은 여기서 일단락하도록 하죠."

    잠시의 침묵 후 도진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조급해봐야 모르는 걸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나아갈 수 없는 곳이라면 조금 돌아가는 게 중용(中庸) 아니겠는가.

    그 길 중 하나로, 도진이 천마신교의 부활을 선포한다면 독마전과 투마전만이 아닌 또 다른 천마신교의 맥을 이은 이들이 단서를 가지고 나타날 수도 있는 일이다.

    "수고했어요, 투마전주."

    도진은 격무 중에도 시간을 내어 자료를 정리한 슈미트라를 치하하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리고 설을 앞둔 1월의 끝자락.

    "나 괜찮지?"

    "언제나 그랬지만 오늘은 더 완벽해요, 눈나."

    도진은 오성아와 함께 오성의 신년회에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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