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392화 (392/741)

391화

집을 지었던 요 5일간.

도진은 성민혁에 대해 제법 여러가지를 알 수 있었다.

이를테면 감사할 줄 아는 성격.

이번의 집을 짓는 공사는 객관적으로는 큰일이었겠지만 도진에게 있어서는 그렇게까지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우벽진을 통하여 일을 진행하였기에 맨바닥에서 수소문할 것 없이 바로 필요한 여러가지를 주문할 수 있었고 그것은 벽돌 하나부터 쌓아 나가는 게 아닌, 모듈화되어 필요한 파츠를 주문하여 바로 조립할 수 있는 최신의 건축 재료들이었다.

그러니까 재료들이 도착하기 전 땅을 다지고 재료가 도착한 뒤에는 몇 가지, 배관이나 전선 등을 환경에 맞춰 조율만 하면 되었다.

여기서도 그 분야의 전문가를 부를 필요가 없었으니 바로 우벽진이 전문가였기 때문이다.

"내 집인데 남에게 맡길 순 없지 않은가 말이야. 자넨 이해하지?"

"그럼요."

우벽진이 가구 제작의 취미를 가지게 된 계기, 스스로 살 집을 짓던 과정에서 그는 전기 등의 분야에 관한 전문적인 자격증까지 따 두었던 것이다.

그 또한 단순한 장인이 아니라 무림인이자 천재였다.

덕분에 모든 것이 막힘없이 척척 진행되었고 그 일을 진행하는 것이 무려 고수급의 무림인들이었으니 비할 데 없이 속도가 빨랐다.

요즘엔 집 짓는 것이 과거만큼이나 크나큰 일은 아니었으니 다 무공의 존재 덕분이다.

사람이 기계만큼이나 '육체의 성능'이 올라가 그만큼 어려움을 덜게 되었다.

공사 기간의 단축, 그로 인한 비용 절감 등등.

하물며 그것이 고수라면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공사를 돕기 위해 찾아온 벽태웅은 특히나 중장비가 사람의 모습을 한 듯한 모습을 보여줘 시청자들의 넋을 빼앗을 정도였다.

여기에 외부의 복잡한 행정 절차는 우서연이 도맡아 주었다.

그 모든 요소들이 맞물려 성민혁과 할머니의 새로운 집이 4일만에 뚝딱 완성이 되었으며 비용도 채 3000만 원이 들지 않았다.

그 3000만 원이 '그렇게 대단한 일'이 아닐 정도로, 도진의 위치는 달라져 있었다.

허나 그건 어디까지나 도진의 입장이었으니 성민혁과 할머니는 연신 감사하다 말했다.

성민혁은 알바마저 쉬고 공사를 돕기 위해 나와 연신 몸을 움직였다.

무얼 해야 할지 잘 알고 일머리가 있다.

심지어 능숙하기까지 하니 2인분의 일을 하는데 한 시도 쉬려고 하질 않았다.

"감사합니다, 형."

그러면서도 도진과 마주치기만 하면 꾸벅 인사를 하고 지나쳤다. 한 번도 빼먹질 않고.

그것이 공허한 말 뿐이 아니라 분명한 감정들로 가득 채워져 있으니 도진으로서도 매번 허투루 받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착해 빠졌다는 것.

-저게 다 쑈인데 존나 오버질들 하네 ㅋㅋ

-그러게. 게다가 씨바 김도진네 빚도 아직 있다며? 저럴 쑈할 돈 있으면 빚이나 다 갚지 ㅋㅋ

모든 사람들이 다 긍정적이고 선하게 사는 건 아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 또한 얼마든지 있었고 개중에는 도진을 욕하기 위해 꼬투리를 잡는 이들도 있었다.

"죄송해요, 형. 저 때문에……."

구독자로서 댓글이나 반응을 찾아본 성민혁은 어쩔 줄 몰라하며 그렇게 말했다.

"야. 그걸 니가 왜 사과해? 전에도 말했잖아? 이건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라고."

도진은 피식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시궁창을 구르던, 거기서 도저히 빠져 나가지 못하고 허우적거릴 때였다면 그런 가치없는 말 하나하나에 일일이 반응했겠지만 이제는 아니다.

굳이 말을 하는 것조차 피식 웃음이 나올 일이다, 이제 그런 건.

무어라 비유하려고 하찮은 것들을 아무리 생각해도 오히려 그게 과하게 느껴지는 그런 것.

다만 구독자들을 위하여 도진은 말을 남겼다.

-갚아 나가고 있는 빚은 존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의 고집입니다.

갚으려면 얼마든지 갚을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러지 않은 건 말 그대로 그것이 도진의 아버지, 김서우의 고집이자 스스로 지려하는 책임이기 때문이다.

도진은 그런 아버지를 존중하여 나서지 않았다.

가장으로서, 아버지로서 김서우가 스스로가 매듭짓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을 도진은 독단적으로 나서지 않은 것이다.

이자만이 아닌 원금까지도 꼬박꼬박 갚아 나가고 있는 빚은 그리 오래지 않아 마무리 될 일이었다.

악플러들 때문에 오히려 이런 부분이 더 널리 알려졌다.

"그래도 저 도와주시려다 안 들어도 될 말을 들으신 거잖아요. 그러니까 제가 꼭 사과드리고 싶어서요."

"어이구, 그렇게 착해 빠져서 되겠어?"

"헤헤……."

중3, 이제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녀석인데 작은 체구에 속없이 웃는 얼굴이 세상 물정 잘 모르는 어린아이 같다 정말로.

교통사고로 부모님을 잃고 할머니와 단 둘이 살게 됐다고 들었다.

그때가 여섯 살.

천성이 순하고 착했기에 엇나가지 않고 할머니를 도와 집안일까지 배우며 재능이 있어 무림중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잠재력을 높이 사 재단의 장학금까지 받았지만 거기서 그치지 않고 택배 상하차에 숙식 제공 공사장 알바까지 하여 돈을 벌어 생활비와 학비에 보탰다.

보고 있자면 안타깝고 또 대견하여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싶게 만들었으니 참 잘 뽑았다 싶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이 들었기에, 도진은 생각을 정리하고 말을 꺼낸 것이었다.

"말해 줄 수 있는 일이라면, 어떤 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는지 형한테 말해 줬으면 좋겠어."

"아……."

성민혁은 머뭇거렸다.

쉽사리 꺼낼 수 없는 일이라는 걸 도진은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재촉하지 않고 조용히 기다렸다.

상하차 알바와 공사장 알바로 가렸지만 도진의 신안(神眼)은 속일 수 없었던 흔적.

누군가에게 구타당한 흔적에 관한 이야기.

성민혁은 곧 헤헤 웃고선 말했다.

"조금, 안 좋은 관계였던 친구가 있거든요. 근데 지금은 괜찮아요. 그 친구 덕분에 장학금 받으면서 고등반에도 진학할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그래."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진지한 얼굴로 다시 말했다.

"할머니에게 말씀드릴 순 없었을 거야. 안 그래도 널 걱정하고 힘드실 테니까."

"선생님에게 말해도 소용없겠지. 선생님이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니까. 선생님도 그걸 잘 아니 굳이 나서서 일을 벌려서, 자신에게까지 불똥이 튀는 걸 감수할 이유도 없지. 학생의 일을 해결할 수도 없는데 심지어 자신마저 힘들어지는 선택을 하는 건 어쩌면 어리석은 일이라고까지 할 수 있지."

"경찰도 마찬가지일 거야. 일을 해결하기 위해 들여야 할 시간과 인력에 비해 들일 수 있는 인력과 비용은 물론, 개인의 의지마저도 턱없이 부족하지."

그러니까 문제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도 없다.

착하지만 결코 어리석지 않으며 세상을 또래보다 더 많이, 일찍 알게 된 눈앞의 아이는 그래서 그런 대답을 내놓았을 것이다.

도진은 옅게 웃었다.

"알아. 너도 알 거야. 나 역시 그랬으니까. 누구보다 잘 아는 당사자였으니까."

성민혁과 분명하게 눈을 맞춘다.

"그런 당사자였던 사람으로서 분명하게 말할게."

그리고 가장 앞에서 등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으로서의 얼굴로 말했다.

"나한테는, 사실대로 말해도 돼."

* * * *

…'우연한 불행'이었다.

반찬통을 들고 옮기던 성민혁이 입학과 동시에 학교 짱, 아니 그걸 넘어 학교의 왕으로 군림한 오중혁과 부딪쳤던 것은.

"아, 미……"

뻐억!

오중혁은 입을 떼기 전 주먹부터 날렸다.

성민혁은 나동그라졌고 그렇게 나동그라진 성민혁을 오중혁은 사정없이 짓밟았다.

뻐억! 퍽! 퍼억!

"야야, 중혁아."

"후우……."

숨을 깊게 몰아쉴 정도로, 진심으로 얼마간 구타를 하고서야 오중혁은 친구의 말리는 시늉에 무자비한 폭력을 멈추었다.

그리고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이거, 이천만 원짜린데, 어쩔 거야?"

그가 입고 있는 무복이자 교복은 명품 공방에서 맞춤 제작한 것으로 무려 이천만 원짜리라고 했다.

하물며 특수 원단으로 된 것이라 드라이만 해야 하는데, 반찬통의 양념과 국물에 범벅이 된 그것은 원상복구가 불가하다고 했다.

"미, 미안……."

무자비하게 구타당한 성민혁이 오히려 사과를 했다.

물론, 그것으로 일은 해결되지 않았다.

"너, 오늘부로 내 전속 비서야. 알겠어?"

"……응."

이천만 원을 변상할 능력은 없었다.

할머니에게 말씀드릴 수도 없었다.

그런 성민혁에게 오중혁은 그 비용만큼 '일'을 해서 변제하라고 했다.

그날부터 성민혁은 오중혁의 '꼬봉'이 되었다.

아침이 되면 오중혁보다 일찍 와서 책상을 포함한 그의 것을 청소했고 대련 때엔 샌드백이 되었다.

뻐억!

오중혁의 강렬한 공중에서의 회전 발차기가 깔끔하게 가드를 올린 성민혁을 강타했다.

성민혁은 붕 날아 바닥을 굴렀고, 가뿐하게 착지한 오중혁은 마음에 들지 않는 얼굴이었다.

"와, 개 멋있네."

"진짜 개 쩔어."

친구들, 실제로는 똘마니들의 칭찬을 듣는 둥 마는 둥하며 지나쳐 오중혁은 나뒹구는 성민혁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일어나."

"아, 응. 고마워."

"와, 중혁이 멋있다."

"그러게."

일진 행세를 하는 것과 별개로 오중혁은 인기가 많았다.

따지면 팔촌이라고는 하나 어쨌든 오중혁은 바로 그 오성 그룹의 혈족이었으니까.

큰 키에 또래를 압도하는 무공 실력, 무림인답게 잘 빠진 몸매와 외모까지.

거기에 아버지가 오성 그룹 계열사의 이사라는 배경까지 더해졌으니 이곳 학교의 왕으로 군림하는 것이다.

똘마니들이 먼지를 툭툭터는 성민혁을 보며 비웃었다.

"아, 부럽다 부러워."

"그러게. 우리 왕님의 총애를 한몸에 받네."

"저 새끼 저거 중혁이가 안 거둬줬으면 학교 생활 참 힘들었을 텐데 운도 좋아."

할머니와 둘이서 사는 거지.

그러면서 성격도 어리숙해 그대로 뒀다면 학교 전체의 샌드백이 됐을 거라는 뒷담이 오간다.

어쩌면 그 말대로 됐을지 모른다.

가난이란 숨길 수 없는 낙인과 같아서 티가 난다.

그리고 세상은 착한 사람이 손해를 보게 되어 있다.

성민혁의 성격상 어떤 형태로든 일진들의 눈에 띄었다면 자연스럽게 찍혔을 것이고 평범한 학생들은 그렇게 찍힌 성민혁과 거리를 두었을 테니까.

차라리 학교의 왕인 오중혁의 '전용'이 된 것이 다행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현실이, 성민혁 스스로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야."

"응?"

그리고 어느날 오중혁이 말했다.

"나 고등반 진학할 건데, 너도 와라."

"나, 나도?"

"그래. 너 장학생 추천 넣었으니까 따라 오면 돼. 알겠냐?"

"아……."

큰 은혜를 베푸는 얼굴로 오중혁은 말했다.

성문중학교와 성문고등학교.

성문재단이 운영하는 무림학교로 성문재단은 오중혁의 아버지가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었다.

오중혁이 성문중의 왕으로 군림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그런 성문재단의 장학생으로 성민혁을 추천했다는 말을 오중혁이 한 것이다.

"인사는?"

"가, 감사합니다……."

"그래. 너 일 잘하니까 내가 특별히 추천 넣은 거야. 알겠으면 앞으로 잘하라고."

"응……."

* * * *

성민혁의 솔직한 이야기를 도진은 시종일관 진지한 얼굴로 들었다.

그리고 이야기가 끝났을 때 물었다.

"너는, 그걸로 만족해?"

거짓을 허락지 않는 물음에 성민혁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요."

거기에 담긴 건 수없이 많은 감정과 이야기다.

도진은 그것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했다.

"그래. 그러면, 내가 다른 제안을 하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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