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화
중학생이라는 걸 감안해도 앳된 얼굴에 작은 체구다.
머리카락은 그 어떤 기교도 없이 단순한 정리만 한 상태에서 어느 정도 자라 있다.
그 성격을 고스란히 반영한 듯 순한 표정과 얼굴이었는데, 그 얼굴과 체구에 어울리지 않게 옷은 공사판이라도 구른 듯 보인다.
정확히는 그렇게 구르고 먼지를 탈탈 턴 뒤 다시 입은 것 같다.
여기에 단순한 수련만으론 결코 나올 수 없는 겹겹이 쌓인 투박함이 묻어나는 손이 그 생각에 신빙성을 더하고 있었다.
소위 말하는 노가다나 그 이상으로 두려운 곳이라 여겨지던 택배 상하차 등의 알바 자리는 무림 르네상스 이후 무공을 익히는 학생들이 늘어나고 일반인의 평균도 올라가면서 근본적으로 큰 변화가 있었다.
일반인에게야 지옥을 보여 주며 몸과 생명을 깎아 근무한다는 말까지 있었지만 무림인에게는 그것이 단련이자 수련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때문에 무공을 제대로 익히고 있다면 중학생에게도 공개되는 알바 자리가 될 수 있었고 그들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개편되었다.
그러니까 아주 간단하게 추측할 수 있었다.
저녁 시간이 약간 지난 시간에 집으로 돌아온 이 어려 보이는 학생이 그런 알바에 익숙하며 오늘도 알바 후 돌아온 것이라는 걸.
그리고 그것들로 가렸으나 도진의 신안(神眼)에는 분명하게 보이는 다른 흔적들.
"들어오세요."
"네. 실례할게요."
구김살없이 웃으며 안내하는 작은 체구의 학생을 따라 대문을 넘는다.
깔끔히 청소를 했지만 어쩔 수 없이 관리가 부족한 티가 역력한 좁은 마당을 지나 안에 들어섰다.
중문이 없는 좁은 현관에서 바로 거실 겸 주방이 되는 공간이 펼쳐진다.
좌측에는 예의 난방을 기대할 수 없는 나무 창틀의 창문과 화장실로 통하는 낡은 문, 반대편에는 방문이 두 개 있다.
그리고 정면.
학생이 적었던 상부장이 떨어진 흔적을 한지로 발라 어설프게 막은 벽과 그 아래 역시나 어설프게 보수한 낡디낡은 싱크대가 보였다.
그것을 지금 바로 언급하지 않고 도진은 일행과 함께 학생이 안내하는 거실 가운데 앉았다.
"그, 우유 내드릴게요!"
"네. 잘 마실게요."
학생이 옷을 갈아입고 우유를 준비하는 사이 간단히 세팅을 마치고 김성덕이 촬영을 시작했다.
-오 시작!
-ㅎㅇ
이미 예고를 해 두었기에 시청자들이 댐 수문이라도 개방한 것처럼 쏟아졌다.
"드세요."
"고마워요."
-오, 저 친구가 럭키가이, 아니 보이네.
-커엽당.
언뜻 보면 초등학생이라 해도 믿을 만큼 작은 체구에 선이 부드러운 인상이라 시청자들이 호감을 보였다.
그리고 우유를 받은 도진이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저는 단 거 좋아하거든요. 그래서 가져왔는데 필요하신 분?"
-헐 저것은!
-제○!
-네스○!
도진이 꺼내든 것은 다름 아닌 코코아 파우더 스틱이었다.
우유에 타 먹을 수 있는 그것의 등장에 채팅창이 술렁였다.
"아, 나는 괜찮네."
"저도 괜찮습니다."
"저는 받을게요."
우벽진과 김성덕은 사양했고 형이 주는 것이라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었기에 우서진은 그것을 받아 먹는 대신 은근슬쩍 품에 넣었다.
"학생, 성민혁 군이었죠? 학생은요?"
"아, 그, 감사히 받겠습니다."
학생, 성민혁에게 스틱을 두 개 준 뒤 도진은 스틱을 무려 두 개나 풀어 우유에 타 먹었다.
-이렇게 보면 레알 초딩 입맛임ㅋㅋ
-ㄹㅇㅋㅋ
-그 갭이 참을 수 없이 자극적이야..
-?
바로 본론에 들어가지 않고 잠시간 잡담을 나누었다.
'음.'
그리고 그 사이 성민혁과 함께 사는 할머니의 기척이 느껴져 도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할머니께서 오셨네요."
"아, 네!"
도진의 말에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났고 곧 문을 열고 성민혁의 할머니가 안에 들어섰다.
"아이고, 손님들이 오셨네요. 민혁이가 말했던 분들이시죠?"
"네. 실례하고 있습니다, 할머니."
도진이 대표로 나서서 인사했다.
신안으로 훑은 성민혁의 할머니는, 예상 이상으로 정정했다.
일반인의 노화에 의한 어쩔 수 없는 부분들은 있었지만 그 외의, 이런 환경에서 노상에서 나물을 파는 할머니들이 으레 갖고 있어야 할 육체의 파탄 정도가 지극히 옅었다.
여기에 눈과 말에서 느껴지는 지식의 흔적이 그 시대 사람으로서는 손에 꼽힐 만큼의 교육을 받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게 했다.
"민혁이에게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상부장과 싱크장을 해 주신다구요. 이런 은혜를 그냥 받는 건 염치가 아닌데……."
"어허,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건 어디까지나 제 너튜브 홍보와 콘텐츠를 위한 일입니다. 그러니까 저 좋자고 하는 일이죠. 부담 가지실 필요 없습니다. 오히려 이렇게 콘텐츠를 제공해 주셨으니 제가 감사할 일이죠."
-구구절절 맞는 말씀.
-김도진이 언제 손해 본 적 있음?ㅋㅋ
-ㄹㅇㅋㅋ
화기애애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마치고 더 늦기 전에 본래 목적인 싱크대를 확인하기로 했다.
"흐음."
그릇 등 여러 물건을 담아 두었던 상부장이 썩어서 추락, 내용물이 깨지고 역시나 썩어 있던 싱크대의 상판이 부서졌음을 확인했다.
소위 말하는 MDF로 만든 제품으로 저렴하고 견고하다는 장점이 있지만 동시에 물이 묻으면 변형이 잘 된다는 단점이 있었던 탓이다.
세월에 시트지가 들뜨고 물이 스며들면서 썩어 갔으니 예견된 일이었다.
약 한 시간 가량 우벽진은 도진과 함께 그런 부분들을 넘어 집 곳곳까지 꼼꼼하게 체크 후 성민혁과 할머니를 다시 마주했다.
"음, 싱크대 설치를 위해서 이것저것 체크를 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습니다."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당연히 꼼꼼하게 보셔야죠."
-어, 어째 분위기가 쬐금 묘하다?
-그러게?
도진과 우벽진의 표정이 제법 진지했다.
그리고 나온 말은 시청자들이 잡아낸 묘한 분위기가 틀리지 않은 것이었다.
"일단 현재 벽의 상태가 싱크대나 상부장을 설치할 수 없을 만큼 좋지 않습니다."
"아……."
"내부가 부패한 상태라 상부장을 달 수 없으며 경량 제품을 단다 해도 내용물이 들어가는 순간 언제든 다시 떨어질 수 있습니다. 벽의 손상도 동반될 것이구요. 싱크대 또한 비슷한 문제가 있습니다."
집의 벽이란 게 통짜 벽으로 이루어진 경우는 거의 없다.
몇 겹을 덧대는 게 보통이고 그것은 꽤 오래된 집이라 해도 다르지 않았다.
그 덧댄 부분이 문제가 된 것이었는데…….
"제대로 된 싱크대를 설치하기 위해선 아무래도 선행 공사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싱크대나 상부장만이 문제가 아니었다.
집 전체적으로 문제가 산적해 있었다.
오래된 집은 사람과 마찬가지로 세월에 의한 노화(老化)가 진행될 수밖에 없으며 이로 인한 파탄은 연쇄적으로 나타나는 법이다.
그리고 그런 문제들은 해결이 쉽지 않거나 불가능한 경우가 많다.
그러니까 싱크대를 설치하기 위해선 아주 큰 공사가 필요했다.
-어..
-그러면..
이번 방문에서 우벽진과 도진이 우서진과 함께 해 주기로 한 것은 싱크대 설치였다.
그러니까 결론은 간단했다.
"우선 집부터 짓기로 하겠습니다."
"……네?"
-..어?
* * * *
"싱크대를 설치하려면 보수 공사를 해야 할 거 같은데, 차라리 새로 짓는 게 나을 거 같아서요. 그러니까 집부터 짓는 게 낫다는 결론입니다."
-아, 그..
-항상 내 생각을 간단히 넘어버렷!
태연히 웃으며 도진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싱크대를 설치하기 위해' 집을 짓겠다 말했고 우벽진 역시 덤덤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동의했다.
"허락해 주신다면 대략 5일 정도 집부터 짓고 싱크대를 설치하려고 하는데 어떠실까요?"
"어…… 5일만에 가능할까요?"
할머니의 물음에 우벽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립식으로 지을 예정이라 충분합니다. 허락만 해 주신다면 바로 착수할 수 있습니다."
"이런 걸 받아도 될지……."
아무렇지 않은 우벽진이나 도진과 달리 성민혁과 할머니는 부담스러워하는 얼굴이었다.
도진이 웃는 얼굴로 말했다.
"부담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이건 어디까지나 저희를 위한 콘텐츠니까요."
모든 일은 상대적인 것이다.
"그러니까 조금 불편하시겠지만, 죄송하게도 조금 양해를 해 주시면 호텔을 지원해 드릴 테니 거기서 며칠 정도만 머물러 주시면 그 사이 공사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 여러분들이 죄송할 일이 아닌데……."
"저희 사정으로 집 놔두고 호텔에서 머물러야 하시니 저희가 죄송할 일이죠."
그런 논조로 도진이 말을 이어나갔고 홀린 듯 성민혁과 할머니는 고개를 끄덕였다.
-여윽시 말빨갑 김도진이다.
-이길 수가 없지 ㅋㅋㅋ
그렇게 해서, 대번에 싱크대 설치의 과정에 집짓기가 들어가 버렸다.
-이걸 진짜 해 버리네 ㅋㅋㅋㅋ
-싱크대 설치하려고 집을 짓는 너튜버가 있다?! 뿌슝빠슝!
-이왜진 ㅋㅋㅋ
우벽진이 말했던 대로 집을 허물고 그 위에 다시 터를 다진 뒤 조립식 벽과 지붕 등이 배송되었다.
집이란 게 생각보다 복잡해 전기 배선이나 보일러 배관 등 고려할 게 많은데 그것까지 다 설계 단계에서 반영하여 완성된 것이어서 바로 조립에 착수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행정 절차는 우서진의 누나인 우서연이 나서 주었다.
그리고 실무에 우벽진과 도진, 우서진까지 무림인이 나서니 우벽진이 장담했던 대로 5일도 되기 전 4일 만에 집이 완성돼 버렸다.
-와..
-이게 진짜 되는구나 ㅋㅋ
-요즘 건축 기술 갱장해!! 무림인도 대단해!!
성민혁과 할머니가 우벽진의 지원 하에 호텔에서 머무는 사이 진행된 공사는 당연히 큰 화제가 되었고 심지어 뉴스까지 떴다.
[통 큰 너튜버, 구독자를 위하여 집까지 지었다!]
-아니 뭔 구독자한테 집까지 지어준다고... 어? 김도진이네.
-시바 무슨 너튜버 이야기로 뉴스를 내고 지.. 어? 잠룡이네.
-여윽시 김도진이다. 도멘..
-와.. 우벽진에 김도진이 콜라보를 하니까 클라쓰가 이 정도나 되는구나 ㅋㅋㅋ
사연을 보내 준 구독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집까지 지어 버린 영상은 대번에 조회수가 지붕을 뚫고 100만 킥을 달성해 버렸다.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그렇게 완성된 집에 허리를 깊숙이 숙이며 감사를 표하는 성민혁과 할머니를 위한 싱크대도 제작에 들어갔다.
미리 원하는 것들을 들어 맞춤 제작에 착수했었기에 앞으로 2주 안에 싱크대 또한 상부장을 포함하여 완성할 예정이었다.
"정말로…… 이렇게 받아도 되는 걸까요, 형?"
그리고 어느날 저녁.
성민혁은 도진과 만난 자리에서 짜장면을 앞에 두고 그렇게 말했다.
도진은 피식 웃으며 볶음밥을 비비면서 답했다.
"나는 눈에 들어온 건 해결해야 하는 성격이거든. 그러니까 한 거니까 고민하지 않아도 돼."
"복권에 당첨된 거라 생각하면 돼.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그런 행운. 다시는 오지 않을 수 있는 행운이니까 그 행운에 기대지 않고, 이 기회를 날리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하면 되는 거야."
"네에……."
아무렇지 않게 하는 도진의 말에 성민혁은 어려 보이는 외모에 어울리지 않게 깊이 생각하는 얼굴이었다.
그런 성민혁을 조용히 지켜보다 도진이 말했다.
"다른 이유가 없었던 건 아니야."
성민혁의 시선이 도진에게로 향했다.
"니가 무조건 해야 하는 건 아니고 빚으로 달아 둘 생각도 없어. 하지만 그래도 니가 날 형이라 부를 만큼 최소한의 인연이 우리 사이에 생기긴 했잖아?"
"네, 형."
"그러니까 묻는 건데, 대답해 줄 수 있으면 대답해 줬으면 해."
자신을 보는 성민혁과 눈을 맞추고, 도진이 물었다.
"너…… 어떤 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