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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90화 (390/741)
  • 389화

    도진의 대답은 섭음술이 아니었다.

    그에 이어진 오성아의 버럭 또한 섭음술이 아니었기에 당연히 채팅창에서 반응이 나왔다.

    -버럭 뭐냐 ㅋㅋㅋㅋ

    -1cm가 모자란다고? 혹시?

    -HOXY?..

    "나 167 맞다고!"

    "어, 누나. 그걸 직접 밝히시면……."

    "합!"

    고운 손으로 자신의 입을 막는 오성아였지만 당연히 늦었다.

    제아무리 고수라도 쏟아 버린 물은 주워담을 수는 있지만 내뱉은 말을 주워담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오성아는 널리 알려진 이미지와 다르게 원망을 담은 눈동자를 글썽였다.

    그런 그녀를 도진이 다독였다.

    "누나, 166.2라고 당당히 말해도 돼요."

    -엌ㅋㅋㅋ

    -어어엌ㅋㅋㅋㅋ

    -166.2라닠ㅋㅋㅋㅋ 그거 완전 남자로 치면 179.2..

    "아니야! 166.5라고! 그러니까 167이라고 해도 되잖아!

    "응, 그렇죠. 미안해요, 누나. 그래도 제가 누나 사랑하는 거 알죠?"

    -???: 그래도 사랑하시죠?

    "그리고 모자란 0.5센치에 누나는 집착하지 않아도 돼요. 누나만큼 프로페셔널하고 어른스럽고 매력적인 사람이 어딨다구요. 그렇죠, 약리지 씨?"

    갑작스럽게 자신에게로 향하는 시선과 카메라에 약리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며 '네, 네!'하고 답했다.

    -약들짝ㅋㅋㅋ

    -약리지는 방송이 아직 어색한 편이구나!

    -커엽다!

    "수련의 입장이긴 하지만 의사의 입장에서도 언니만큼 완벽하게 관리한 분을 보는 건 처음인 거 같아요."

    도진이 음음, 하고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 봐요. 리지도 그렇게 말하잖아요. 누나는 스스로에게 좀 더 자부심을 가져도 돼요."

    "응, 그런가?"

    "그럼요."

    -나왔다. 김도진 전매특허 대놓고 칭찬해서 홀리기.

    -김도진이 하면 저렇게 잘 먹히는데 왜 제가 하면 안 되는 걸까요?

    -님은 김도진이 아니잖아요.

    -인생**발..

    "그러니까 모자란 0.5센치, 아니 0.8센치에 집착하지 않아도 돼요."

    "야!!"

    -ㅋㅋㅋ 2버럭ㅋㅋ

    -2버럭 적립ㅋㅋ

    "유하각은 다 잡았나? 그럼 이제 166.2로 잡고 본격적으로 만들어 보도록 하지."

    -엌ㅋㅋㅋㅋ

    -마무리 좋았고요 ㅋㅋㅋ

    -우 명장님 입에서 유하각이란 전문 용어가 이렇게 자연스럽게 나와도 되는 거냐 ㅋㅋ

    얼추 정리가 되어가는 듯 하자 우벽진이 나서서 정리를 해 버렸다.

    오성아는 불만이 많아 보였지만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사실 처음부터 부질없고 희망없는 시도였다.

    무림인의 감각은 초월적이며 정확하다.

    은행원을 한다면 덥석 집은 지폐의 수량을 정확하게 인지하는 걸 넘어 종류마저 단번에 구분해 낼 것이었다.

    미식가라면 비법 레시피를 줄줄 읊을 것이요 도량에 있어선 센티미터가 아니라 밀리미터 단위까지도 눈대중으로 정확하게 잴 수 있었다.

    이러하니 김도진의 앞에서 키를 속이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했던 것이다.

    첨언하자면, 정말로 0.8cm에 집착할 이유가 없을 만큼 철저하게 관리한 그녀의 비율과 몸매는 완벽했으며 키도 큰 편이었다.

    "누나는 앉아서 일하는 시간이 많은데 휴대폰이나 태블릿 같은 걸 보는 경우도 많거든요."

    "그렇군. 그러면 좌판과 등받이가 연동해서 슬라이드 할 수 있도록 해야겠어."

    "네. 팔걸이도 단순히 평면으로만 움직이는 게 아니라 좀 더 3차원적인 부분에서 팔을 받쳐줄 수 있도록 가동 범위를 확보하는 게 좋을 거 같아요."

    -뭔지 모르겠으니까 존나 가만 있어야겠다.

    -음. 음.

    -ㄹㅇㅋㅋ만 치셈ㅋㅋ

    "오늘은 일단 좌판에 쓸 소재들도 주문해야 하니 설계도를 그리고 시제품에 필요한 부품들을 만드는 데 써야겠군."

    "네. 아, 누나. 잠시만 실례해도 될까요?"

    "아, 응? 응."

    시청자들처럼 멍하니 서 있던 오성아에게 도진이 다가오더니.

    스윽-

    "햐아악?!"

    갑자기 오성아의 매끈한 등허리를 스윽, 아무렇지 않게 훑어 버렸다.

    오성아가 화들짝 놀란 고양이가 되었고 시청자들도 미쳐 날뛰었다.

    "등을 밀착해서 받쳐주려면 알아야 할 부분이거든요. 그 외 부분은 약리지 씨한테 부탁하도록 할게요."

    "아, 그, 예."

    다시 자신에게로 향하는 카메라에 약리지는 또 한 번 버벅이다 고개를 끄덕였다.

    "이 부분은 눈나의 프라이버시가 있으니 비공개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

    -아.

    * * * *

    당연한 말이지만 공산품도 아니고 개인에게 맞춘 수제 맞춤 의자가 하루아침에 뚝딱 나올 수는 없는 것이었다.

    그냥 대충 만드는 거면 모르겠지만 오성아를 위한 본격적인 물건이었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와 사용자의 의견을 반영한 수정 작업도 거쳐야 했기에 완성된 의자를 오성아가 사용하는 장면을 담기 위해선 시간이 더 필요했다.

    "기대해 주세요. 최대한 누나가 편히 갈려 나…… 아니 일할 수 있는 의자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까요."

    "응, 뭔가 이상한 말을 들은 거 같지만 기대하고 있을게."

    -ㅋㅋㅋㅋ

    -도비는 무료에요.

    -도비 이스 프리!

    그렇게 오성아의 의자 제작이 진행되는 중에 도진이 가구를 선물할 또 한 명의 게스트를 초대한 방송이 진행되었으니 그 게스트는 다름 아닌 소담이었다.

    "나는 침대가 갖고 싶어!"

    소담은 무얼 갖고 싶냐는 질문에 바로 그런 대답을 했다.

    "그렇구나. 우리 공주님은 침대가 갖고 싶구나."

    "아으, 응……."

    -아!

    -커엽다!

    도진의 너스레에 새하얀 볼을 붉히는 소담에 대한 반응이 뜨거웠다.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듯 대번에 침대라는 대답이 나온 건 다름 아닌 저번 오성아와의 방송에서 있었던 해프닝 때문이었다.

    "나 대신 이 의자가 누나를 받쳐줄 거에요."

    -김도진이 오성아의 의자가 된다고?

    -ㅗㅜㅑ..

    -뭔 생각한 거냐 니들 ㅗㅜㅑ...

    흔한 드립이었다.

    -잠깐만. 눈나도 우리랑 같은 생각한 거 같은데? *-_-*

    문제는 거기에 오성아가 영향을 받아 얼굴을 붉혀 버린 것으로, 덕분에 10분이 넘게 오성아는 시청자들의 공격에 시달려야 했다.

    더불어 그날 방송에서는 알려질 수가 없었던 것으로, 방송을 보고 있던 소담 또한 영향을 받아 이불을 뻥뻥차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것이다.

    한 마디로 침대를 도진으로 치환해 생각해 버렸다.

    "호오, 공주님 침대라. 제법 구미가 당기는 컨셉이구먼."

    -ㅋㅋㅋ 명장님 또 마이웨이..

    여기에 어느새 컨셉처럼 제작에 진심인 우벽진이 진지하게 말했다.

    흔히 말하는 어린 아이들의 '공주 침대'가 아니라 진지하게 고귀한 공주가 사용하는 고급스러우면서도 과하지 않은, 그 품격을 고스란히 나타내는 컨셉의 침대를 구상해 보는 것도 좋은 도전이 되겠다는 내용이었다.

    그에 도진이 아하하 웃었다.

    "일단 소담이가 마음에 들어 해야죠. 어때?"

    "응. 괜찮을 거 같아……."

    "오케이. 그러면 한 번 진행해 보죠."

    그리고 잊고 있었다는 듯 시선을 약리지에게로 향했다.

    "미안합니다, 약리지 씨. 오늘은 등장할 기회가 없었네요."

    "아, 그. 아뇨. 굳이 이렇게 인위적으로 챙겨주실 필요까지는……."

    "에이. 그건 아니죠. 저번에 온갖 상상으로 딸기가 되어 버린 약리지 씨에 대한 수요가 높거든요."

    요즘 소녀인 약리지는 오성아의 해프닝 때 화면 끄트머리에서 새하얀 얼굴이 붉게 물든 모습이 계속 잡혀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약리지 또한 뒤늦게 그것을 확인하고 이불을 뻥뻥 찼다.

    사족이지만 한창 소담이 이불을 뻥뻥차던 시간과 재미있게도 시간이 일치했다.

    "꺄아아악! 선뱃! 그걸 왜 굳이 말해욧!!"

    약리지는 격렬히 반응하며 캬아앙, 분노하는 고양이가 되었다.

    -엌ㅋㅋㅋㅋ

    -대노 ㅋㅋㅋ

    -약리지도 제법 버럭이 찰지네 ㅋㅋ

    -매가 약이란 말이 있자너. 매=약. 약봉이 그 약이 아니라 매라는 소문이 있음.

    -? 그런 소문이 있음?

    -매면 몽둥이잖아. 몽둥이를 한자로 하면 봉인디? 봉..봉?

    -봉봉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봉봉ㅋㅋㅋㅋㅋ

    -도랏나 ㅋㅋㅋㅋ

    "꺄아아아아악! 선배 때문에 이상한 별명 생기고 있잖아요!"

    "오, 봉봉. 귀엽다……. 귀여운 너랑 잘 어울리는 거 같아."

    "아, 그, 네?"

    "앞으로 봉봉이라고 불러도 될까? 봉봉?"

    "아아악!"

    -엌ㅋㅋ

    -그 와중에 그걸 놀리냐 ㅋㅋㅋ

    * * * *

    오성아와 소담에 이어서는 상미가 게스트로 나왔다.

    "개인 수납장이 갖고 싶어요. 저만 안을 볼 수 있는……."

    상미 또한 망설이지 않고 프라이버시가 보장되는 개인 수납장이라 답했다.

    그런 식으로 도진의 인연들이 게스트로 출연하는 사이 첫 번째 증정 이벤트 당첨자가 뽑혔다.

    전체 중 추첨하는 게 아니라 프로젝트 출연진들이 뽑는 당첨자로, 채널의 주인인 도진의 픽이었다.

    - - - -

    주방의 상부장이 떨어져 싱크대가 부서졌습니다.

    상부장의 물건들은 제가 임시로 만든 보관함에 담는 것으로 해결했는데, 싱크대는 번듯한 물건으로 두고 싶습니다.

    싱크대를 요청해 봅니다.

    - - - -

    이런 식의 이벤트에는 으레 한국의 과자 이상으로 포장하고 과장한 댓글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 담백하면서도 사연이 느껴지는 댓글이어서 시선이 갔고 그래서 뽑았다.

    -어? 정말인가요?! 정말요? 네! 감사합니다!

    당첨 메시지를 보내고 일정을 잡는 통화까지 마쳤다.

    변성기가 아직 오지 않은 제법 앳된 목소리가 많이 쳐줘도 중학생으로 보였다.

    이벤트 특성상 한 번에 몰아서 제작하고 증정하는 등의 방식으로 진행하는 건 힘들었기에 이렇게 순차적으로 당첨자를 뽑고 찾아가는 식으로 진행하기로 했었다.

    여기에 희망하는 사람에 한해 촬영을 하기로 했는데 첫 번째 당첨자는 촬영을 희망해 촬영 담당인 김성덕이 함께 가기로 했다.

    김도진과 우벽진, 우서진.

    여기에 녹화를 담당할 김성덕까지 하여 시간이 맞는 네 명이 약속을 잡고 당첨자인 학생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흐음…….'

    주소를 따라 찾아간 곳에는, 예상만큼이나 사연이 많아 보이는 집이 자리해 있었다.

    단열을 기대할 수 없는 낡은 나무 창틀.

    세월에 닳고 닳아 버린 외벽, 그리고 슬레이트 지붕.

    웃풍은 물론이요 빗물이 온갖 곳으로 스며들 구멍이 굳이 신안을 통할 것도 없이 무림인의 눈에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사실 이미 그럴 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걸어온 길이 달동네였으니까.

    주소지는 그 달동네에서도 터가 안 좋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는데 더더욱, 관리까지 제대로 되지 않은 티가 물씬 풍겼다.

    그리고 신안을 통해 외부에서 읽을 수 있는 흔적들이 알려 주었다.

    이 집에 살고 있는 것이 할머니와 어린 학생 단 둘일 것이라고.

    당첨자인 학생과는 이 집에서 대략 30분 뒤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안에는 아무도 없으니 둘 다 외출 중이라는 게 되는데, 도진은 이 집으로 가까워지는 기척에 몸을 돌렸다.

    무흔잠영의 묘리가 기척이 앞의 집으로 연결된 선을 그릴 수 있게 해 주었기에 오늘 만날 약속을 잡은 당첨자이자 어린 학생일 거라 생각했고 정답이었다.

    "아, 안녕하세요!"

    문 앞에 선 도진을 알아본 학생이 후다닥 달려와 꾸벅, 인사를 했다.

    도진이 웃으며 그 인사를 받았다.

    "네, 안녕하세요."

    그리고 도진의 눈이 깊어졌다.

    시야에 들어오는 건 작은 체구의 남학생이다.

    그 남학생의 모습에서, 낡은 집 이상의 사연이 묻어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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