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388화 (388/741)

387화

한유아는 말했다.

"회사를 확장해 봐야지."

한유아의 회사는 '민간 무력 기업'의 범주에 속한다.

무림의 특별한 영역이라 딱 맞지는 않지만 굳이 비유하자면 자영업의 느낌이라고 할 수 있다.

무림인이 운영하는 무림의 민간 업체 느낌인데 여기서 더 나아가 정말로 큰 기업의 형태가 되면 '민간 무림 군사 기업'으로 분류가 된다.

군사라는 단어가 붙을 만큼 좀 더 본격적으로 운용하는 장비의 규모와 퀄리티도 달라지며 법과도 깊이 얽히는 대기업의 느낌이다.

한유아는 졸업 후 바로 이 민간 무림 군사 기업으로 회사를 확장시키기 위해 움직일 거라고 했다.

민지서는 그런 한유아를 최대한 서포트할 거라 말했다.

"나는 이제 대리야. 초고속 승진이지."

류대현은 자랑스레, 엣헴하며 그렇게 말했다.

오너 일가로서의 '빽'이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 승진한 것이기에 그렇게 자랑스러움이 묻어나는 것이다.

"나는 도진이네 문파로 파견보내 달라고 조르고 있어!"

"…선배. 체통을 지키세요."

마지막으로 또한 자랑스럽게 말하는 유지은의 모습에 주정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뭐 그런 느낌으로 3학년의 송별회는 슬프지 않도록 분위기가 조절되었다.

그리고 2학년도 반쯤의 송별회를 하게 됐다.

"나는 이번 프로젝트 마무리되면 본사로 발령이 날 거 같아."

그렇게 말하는 건 오대용이었다.

오성의 중심에서 살기로 마음먹은 오대용은 드디어 본사의 일을 맡으라는 이야기를 오군성에게서 듣게 된 것이다.

이번 정글 게임 관련 사건으로 바른 엔터는 궤도에 올랐고 오대용은 나름의 성과를 쌓게 되었다.

그 성과의 중심인 정글 게임 관련 프로젝트가 마무리되는 대로 본사에서의 일을 맡게 되며 바른 엔터의 대표 자리를 내려 놓을 예정이라고 했다.

"뭐, 실질적인 경영은 전문가 분들이 했으니까 말야."

그리고 본사에서 맡게 될 일은 1차 협력사인, 주정아가 이어받을 성운과 관련한 자리가 될 확률이 높았다.

"커플 아니랄까 봐 떨어질 생각을 안 하는 구나, 너희는."

"내가 대용이 잘 건사해야지."

싱긋 웃으며 주정아가 도진의 말을 받아쳤다.

…그런 이유로 두 사람은 3학년이 되면서 학교보다는 가업에 좀 더 신경을 쓰게 됐다.

평범한 숭무고의 3학년들처럼, 재학은 하고 있지만 사회의 일에 좀 더 집중하는 것이다.

나지윤 역시 마찬가지였다.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됐거든."

바할라와의 협업으로 답청문은 꽤나 바빠지게 됐으며 자금 문제의 해결로 독마전과 마찬가지로 상당한 변화와 성장을 앞두고 있었다.

더 이상 학생으로서의 신분과 답청문주로서의 신분을 온전히 양립할 수는 없게 된 것이다.

"…어쩐지 다 떠나버리는 거 같아서 슬프네요."

약리지는 그렇게 말했고 벽태웅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선배는요?"

그리고 향하는 시선에 도진은 웃으며 말했다.

"나는 수업은 계속 들을 예정이야."

처음에는 막연하게 '출세'를, 성공을 위해서 택한 숭무고였지만 이제는 조금 다르다.

도진의 무공 세계는 깊지만 아무래도 넓이는 부족한 편이다.

더 많고 다양한 것들을 접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그런 면에서 숭무고는 대한민국 최고의 환경을 자랑하는 곳이니까.

졸업까지는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배움터인 이곳에서의 공부를 계속할 예정이었다.

"나도."

그리고 소담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그녀 또한 작은 사회라 불리는 학교에 머물며 세상을 배우기 위해서다.

"와! 그럼 선배가 부장 1년 더 맡아주시는 거죠?"

"응? 그게 그렇게 돼?"

"네!"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약리지와 1학년들이었다.

상미는 눈으로 '오빠말고는 존재할 수 없어요'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우서진은 이하동문, 벽태웅 또한 당연한 것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었으니…….

남사현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동기들의 의견에 동조했다.

"원래 부장은 2학년이 맡는 게 전통이라던데……. 어쩔 수 없네?"

그리하여 많은 것이 변화한 중에도, 도진은 집행부의 부장으로서 1년을 더 보내게 되었다.

* * * *

송년회이자 송별회, 그리고 신년회가 마무리되고 방학이 찾아왔다.

꽤나 긴 겨울방학을 맞이한 도진은 여전히 밀도 높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잠룡문의 일, 천마신교의 일, 가족과 보내는 일상까지.

여기에 가끔씩 웨일스 후작가의 아이들이 찾아왔으며 이웃인 명장 우벽진 일가와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그리고 공언한 대로 수련이다.

두, 우웅……!

묵직하게 퍼져 나가는 건 오롯이 위지혁의 존재감으로 가득하던 세계를 잠식해 들어가는 도진의 존재감이다.

위지혁의 천마군림에 도진이 자신의 천마군림으로 맞서는 것이다.

마치 몰아치는 폭우를 우산 하나로 힘겹게 견디는 듯 했던 형상이 이제는 제법 안정적이기까지 하다.

퍼퍼퍼퍼펑-!

말 그대로 비가 되어 쏟아지는 천마의 검기를 도진이 자신의 검기로 우직하게 받아쳐 낸다.

전부 받아낼 필요는 없다.

그것은 실제로 비처럼 쏟아지기만 할 뿐이니 스스로가 젖지 않을 공간만 확보하면 된다.

콰아아아아아-!

그리고 이어서 몰아치는 폭풍은 조금 자세를 달리하여 마치 갈대처럼 순응하면서도 결코 뽑히지 않았다.

그야말로 자연재해를 높은 깨달음으로 감당하는 그 모습은 과거 양민들이 보았다면 주저없이 하늘에서 내려온 신장(神將)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정작 그 모습을 보여준 도진은 조금 불만이 묻어나고 있었으니 한 차례 대련이 끝난 후 위지혁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녀석. 답답한 모양이로구나."

"예. 조금은요."

변화가 다가오는데 아직 천마심공의 5성에 도달하지 못한 것에 대한 답답함이다.

사실 도진의 입문 시기를 생각하면 그 답답함은 차라리 기만이다.

위지혁은 씨익 웃었다.

"본래 결핍이 발전을 가져온다 하였으니, 나쁘지는 않구나."

조급하지 않다면 결핍은 긍정적인 것이 된다.

사람이란 항상 결핍을 통하여 발전해 왔으니까.

도진이 조급하거나 길을 잘못 들 만큼 심지가 연약하지 않다는 걸 알기에 위지혁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원인도 알고 있었다.

위지혁도 그늘에서 조용히 존재를 감추고 있는 장호도 도진이 안고 있는 문제를 꿰뚫어 보았다.

그것은 현실과 심상세계 사이의 간극을 만들어내는 '깨달음의 공백'이다.

단순히 육체의 제약 때문이 아니라 깨달음이 부족하여 발생하는 공백.

비유하자면 일본 만화에서 흔히 보이는 '이건 그냥 그러니까 이해하세요'라고 어물쩡 독자의 양해를 구한 뒤 거기서부터 설정을 채워나가는 느낌이다.

평범한 학원물에서 갑자기 초능력이 당연한 것이 되고 그 초능력에 논리적이거나 과학적인 어떤 설정을 붙여 설정이 탄탄한 것처럼 보이려는 그런 부류의 것.

굳이 이런 비유를 가져오는 건 도진이 심상세계에서 발휘할 수 있는 능력 또한 그렇게 '그냥 가능하다'는 발판 위에 있기 때문이다.

그 깨달음이 거짓은 아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모든 것의 기반이 되는 깨달음을 도진은 심상세계이기에 '믿으면 가능하다'는 것으로 대체했다.

때문에 현실과 심상세계 사이에는 본래 있어야 할 간극을 메꿔 줄 다리가 없었고 그 다리가 없기에 도진은 더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하는 부분이 생기고 말았다.

도진이 천마심공의 5성에 이르기 위해 극복해야만 하는 관문 중 하나이기도 했다.

위지혁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다. 너는 이미 그 답을 알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깨달음이란 어떤 이는 평생을 매진하여도 잡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또 어떤 이에겐 결국 닿고 마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은 넓고 어두운 공간 속에서 지극히 작은 버튼을 찾는 것이니 포기하지 않고 모든 곳을 더듬다 보면 기어코 누를 수 있게 되니까.

위지혁의 말에 도진도 확신을 가지고 고개를 끄덕였다.

쌓아 온 시간이 그렇게 스스로에게 확신을 가질 수 있게 해 주었다.

* * * *

"음."

어느 날.

도진은 고민하는 얼굴로 편안히 앉아 품에 안은 솜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냐아앙."

기분 좋게 우는 솜이의 몸은 열양지기를 품고 있어서인지 따듯한 데다 보드라운 털이 풍성하여 이 이상으로 쓰다듬기에 좋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슥슥 쓰다듬는 손을 멈추지 않는 채 도진이 고민하고 있는 건 갑자기 비어 버린 시간을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가, 였다.

특별한 무언가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일 중독자마냥 해야 할 일들을 척척 해치우다 보니 자연스럽게 몇 시간이 비는 날이 찾아온 것일 뿐이었다.

문제는 또 으레 일 중독자들이 그렇듯 시간이 비자 무얼 해야 할지 모르게 되었다는 거다.

그래서 잠시 고민하던 도진은 이내 개인 방송을 켜기로 했다.

-오? 갑자기 라방(라이브 방송이라는 뜻ㅎ)?

-이게 웬 떡이냐

시청자들은 그렇게 방송을 켜고 솜이와 함께 모습을 비춘 도진을 반겨 주었다.

"안녕하세요, 여러분들. 갑자기 할 게 없어서 방송을 좀 켜 봤습니다."

-엌ㅋㅋㅋ

-할 게 없어서 방송을 키다니 그렇게 기만하면 우리가 기뻐할 줄 아셨습니까? 그렇게 아셨다면 크나큰 땡큐입니다.

도진의 개인 SNS와 연동돼 있는 너튜브는 급성장을 해 이런 갑작스러운 방송에도 상당한 시청자가 몰려들었다.

그렇게 몰려든 시청자들 중 몇 명이 물었다.

-그러고 보니 도진님 구독자 수가 곧 100만인데, 예전에 말씀하신 이벤트 이제 알려주실 때 되지 않았나요?

"아! 그렇네요."

그 질문에 도진이 무언가를 깨달은 얼굴로 답했다.

-어? 뭐죠? 지금 막 생각난 듯한 리액션은?

-설마..?

시청자들의 요동치는 민심에 도진이 아하하 웃었다.

"아뇨, 아닙니다. 준비는 하고 있었어요. 그게 아니라 지금 비는 시간에 무얼 해야 할까 고민할 필요가 없어져서 그런 거예요."

-응?

"100만 구독자 이벤트 준비를 하면 되는 거였어요."

-어? 잠깐만요.

-그건 곧 지금 라방을 끄시겠다는……?

"아, 바로 끄는 것도 좀 정이 없죠? 그럼 한 시간 정도만 진행하다 끄고 가도록 할게요."

-휴.

-인류애 잃을 뻔 했습니다.

* * * *

그렇게 한 시간 가량의 방송을 끝낸 뒤 도진이 외출을 준비할 때였다.

띵- 동-

누군가가 방문하였으니 예상치 못했던 사람.

"안녕."

"어, 누나. 어서오세요."

잠룡문의 안주인으로 불리는 오성아였다.

도진 이상으로 일 중독자인 그녀가 방문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기에 도진은 의외라 생각하면서도 반갑게 그녀를 맞이해 주었다.

도진이 직접 끓여 준 차를 홀짝이며 오성아가 싱긋 웃었다.

"어디 나가려고 했나 봐."

"네. 그런데 그렇게 급한 건 아니어서 괜찮아요."

"응, 그렇구나. 지금 보니까 100만 구독자 이벤트 준비하려고 했구나."

발없는 말보다 훨씬 빠른 소문이 벌써 인터넷에 퍼졌다.

도진은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수제 가구 추첨 이벤트를 해볼까 싶어요."

"응? 수제 가구 추첨 이벤트?"

무언가 싶어 고개를 갸웃거리던 오성아는 이내 짐작가는 바가 있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헤에, 그렇구나. 혹시 그거, 나도 도와줘도 돼?"

"누나가요?"

안 그래도 바쁠 텐데 일을 추가해서야 되겠느냐는 시선에 오성아는 씨익 웃었다.

"괜찮아. 여유 있거든. 대신, 너도 내 부탁 하나만 들어주지 않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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