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385화 (385/741)
  • 384화

    숭무고에 마련된 스터디룸의 '클라스'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단순히 넓고 깨끗하다거나 고급스러운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카페에서 공부하는 걸 선호하는 이들을 위해 카페 형태의 룸을 만들거나 백색 소음이 있어야만 집중을 할 수 있는 학생들을 위해 과학적인 연구를 통해 특히 유용하다 여겨지는 백색 소음만을 골라 수억 원대의 음향기기로 송출하는 룸도 있었다.

    물론 평범한 룸도 있어서 도진은 그 평범한 룸 중 가장 작은 룸을 예약했다.

    함께 저녁을 먹고 예약해 둔 룸에 마주 앉았다.

    그리고 소담은 수업 공부를 하는 대신 도진을 보는 공부를 했다.

    사각. 사각.

    "……."

    자연스럽게 책과 도진을 소담의 시선이 오간다.

    그것이 결코 어색하지 않도록, 책의 내용이 아닌 도진을 집중해서 본다는 걸 들키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는 것이 워낙 진지하여 마치 수련을 하는 것만 같다.

    "……."

    오뚝한 코……라고 할 수 있는 코.

    그리고 날렵한 턱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의 턱선.

    특출나지는 않지만 모난 부분도 전혀 없다.

    그리고 소담은 생각했다.

    '도진이는 정말 피부가 좋구나…….'

    콩깎지가 씌인 눈은 역시 장점을 본다.

    도진의 피부는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다.

    무림인이란 으레 그럴 수밖에 없으니 몸 속에 노폐물이 결코 쌓이지 않게 하고 또 몸에 안 좋은 건 멀리하며 몸에 지극히 좋은 내공과 외공 수련을 하기 때문이다.

    같은 맥락으로 그래서 무림인들은 몸매도 좋고 피부가 좋아 미남미녀가 많고 무공이 퍼짐으로써 인류의 평균이 올라갔다.

    거기에 한 가지 더 첨언하자면 무공의 특성에 따라 구릿빛 피부를 가지는 이가 있는가 하면 살이 타지 않는 이들 또한 많았으니 도진은 후자여서 피부가 하얬다.

    사각사각.

    '도진이는 글씨가 멋있구나.'

    거침없이 써 내려가는 글씨는 호쾌하면서도 어떤 현묘함이 선마다 느껴진다.

    '도진이는 글씨를 쓰면서 외우는 타입이구나.'

    그렇게 계속 집중하여 보는 동안 공부하는 방식도 알게 됐다.

    도진은 책을 집중하여 보면서 필기, 정리하며 외우는 타입이었다.

    동시에 단순히 머리에 때려 넣는 게 아니라 한 덩어리로 묶어 차곡차곡 머릿속에 정리하는 타입이다.

    이를테면 역사의 경우 연표를 외우며 동시에 파생되는 사건을 마인드맵 형식으로 정리한다.

    크게 보면서 동시에 자세히, 그러면서도 철저하니 올라운더 그 자체다.

    그렇게 조용한 가운데 시간은 흐른다.

    그리고 문득 소담은 생각했다.

    '말없이 함께 있어도 어색하지 않은 게 정말로 특별한 사이라던데, 우리가 딱 그런 사이구나.'

    어쩐지 표정 관리가 안 될 것만 같아 소담은 책에 시선을 파묻으며 입꼬리를 떨었다.

    함께 있는 게 자연스러운 사이라니!

    이렇게 아름다운 말이 또 있을까 싶다.

    …만약 지금의 소담을 유지은과 설현주가 보았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함께 있는 게 아무렇지 않은 건 좋은 게 아니야, 후배."

    "그거 안 좋은 걸 텐데……."

    라고.

    그러면서 '함께 있을 땐 당연히 설레야지!', '늘 특별하고 즐거워야지!', '자연스럽다는 건 신혼 때가 지난 부부 같은 거란 말야! 한창 연애하는 커플들을 보라고!'라면서 열렬한 강의를 해 주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이 자리엔 도진과 소담 단 둘이라 그런 설교를 해 줄 사람이 없었다.

    때문에 소담은 스스로의 생각에 빠져, 도진을 보느라 그런 쪽의 생각을 하지 못했지만…….

    곧 스스로 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시간이 많이 늦었네."

    "아, 응. 그렇네."

    공부에 집중하던 도진이 그렇게 입술을 뗀 건 무려 자정이 되어서였다.

    그러니까 날이 지나 버린 때가 되어서야 잠시 공부를 중단한 것이다.

    "들어가지 않아도 돼?"

    도진의 물음에 소담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움직임과 함께 찰랑이는 기다란 머리카락은 뭇 남학생들을 홀리기에 충분한 광경이다.

    "아냐. 괜찮아. 시험 기간이니까. 공부 열심히 해야지."

    도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렇지. 나는 아무래도 좀 뒤쳐진 부분이 있어서 더 해야 할 거 같은데, 만약 피곤하면 먼저 들어가서 자. 컨디션 관리도 중요하니까."

    "아, 응."

    "뭐 마실래? 끓여 줄게."

    "그, 그럼 홍차!"

    "그래. 그럼 나도 홍차 한 번 먹어봐야겠다."

    먼저 들어가서 자라는 말에 조금 섭섭할 뻔 했던 마음이 차 끓여 준다는 말에 대번에 증발해 버렸다.

    "자."

    "고마워."

    그래서 도진이 끓여 준 차를 소중하게 홀짝이며 핑크빛에 허우적거리다 또 두 시간이 지났을 즈음.

    '…이거, 맞는 걸까?'

    소담은 스스로 어떤 의문을 떠올리고 만 것이었다.

    저녁을 먹고 공부를 시작해 벌써 7시간은 지났다.

    그런데……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까 정말로 공부만 하고 아무것도 없었단 말이다.

    이건 자연스러운 걸 넘어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가뭄' 같은 거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고 말았다.

    그래, 공부하려고 모였으니까 공부를 하는 게 맞지.

    그런데 이렇게 남학생과 여학생이 조용한 곳에서 단 둘이 있으면!

    무언가 미묘한 분위기가 흐르다니 문득 눈이 맞아서! 시선이 맞아서!

    그 시선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며 이윽고 키…….

    움찔!

    "응? 왜 그래?"

    "아, 아무것도 아니야."

    "그래."

    쿵쿵쿵!

    도진 정도 되면 분명히 자신의 심장소리를 눈치챌 거라는 생각에 소담은 필사적으로 호흡을 다스렸다.

    그리고 '현타'가 오고 말았다.

    현자타임.

    어느덧 두 시를 넘어 있었을 때였다.

    공부가 참으로 잘 됐다.

    * * * *

    "그럼 들어가."

    "응, 도진이 너도 잘 자."

    도진은 누군가를 대할 때 꼭 눈을 마주한다.

    그 눈을 마주하고 있는 게 참으로 좋다고 생각하며, 소담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도진은 채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새벽 수련을 마치고선 외출하여 숭무동 내의 어느 단독 주택으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스승님."

    인형 같은 외모의 금발 소녀는 다름 아닌 도진의 1호 제자, 클로에 덴젤이다.

    불사마공의 수련을 돕기 위해 도진이 찾아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기에 맞이하는 태도 역시 당연히 자연스럽다.

    초기만큼이나 잦지는 않아도 최소한 한 달에 한 번은 도진이 직접 확인을 해야 했고 가능하면 일주일에 한 번은 방문하는 게 효과가 좋고 진척도 빨랐기에 도진은 가능한 대로 자주 방문을 했다.

    클로에가 가부좌를 하고 그 뒤에 도진이 앉아 새하얀 등의 맨살에 손을 댔다.

    그리고 천마기가 아닌 최대한 정순한 내공을 이용하여 대주천, 불사마공의 내기가 몸 전체에 스미도록 이끌었다.

    투둑. 뚝.

    여전히 피가 흐르고 살갗이 갈라진다.

    그러나 그 정도는 초기만큼 심하지 않아서 클로에는 수련 후 붕대를 감고서나마 일상 생활이 가능할 만큼 호전이 되었다.

    "감사합니다, 스승님."

    "고생했어."

    붕대를 감은 클로에는 그렇게 허리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한 뒤 물었다.

    "식사는 하셨습니까, 스승님."

    "뭐, 아침을 먹긴 했지."

    그 말이 정말 깊은 새벽에 수련을 하기 전 먹었다는 뜻이라는 걸 이제 클로에는 잘 알고 있었다.

    "그럼 식사를 준비할 테니 함께 드시지 않겠습니까."

    "응. 그럴게."

    "예. 그럼 준비하겠습니다."

    클로에의 제안으로 도진은 함께 식사를 하게 됐다.

    클로에는 식탁 위에 미역국과 몇 가지 반찬을 정갈하게 차렸는데 직접 차린 것이라고 했다.

    "헤에, 미역국이구나. 하긴 몸조리하는 데에 좋지."

    말을 하면서 도진은 아차하는 생각을 했다.

    도진이 알기로 외국, 특히 서양은 미역국을 안 먹으니 이에 관한 이야기도 모를 것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클로에는 바로 알아들었다.

    "예. 스승님 말씀대로입니다."

    "어, 클로에. 미역국에 관해서 좀 알아?"

    "예. 요즘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스승이 한국인이고 앞으로 스승과 함께 살게 될 거라 생각한 클로에였기에 한국 문화 전반에 관한 공부를 그 말대로 열심히 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런 배경으로 미역국이 나왔다.

    "그렇구나. 잘 먹을게."

    "예, 스승님."

    그렇게 뜨끈한 국물로 한 끼를 해결한 도진은 클로에의 배웅을 받으며 바로 학교로 가는 대신 잠룡문의 사무실로 향했다.

    "어서 와."

    "예, 누나."

    잠룡문은 근래 일이 많았다.

    공식적으로 바할라와 잠룡문이 협력하게 되었고 답청문 또한 바할라와 협업 중이다.

    '천마신교'의 부분으로도 투마전과 독마전이 추후 상대해야 할 무형독을 압도하기 위해 본격적으로 협력하고 있었다.

    실무야 실무진에게 맡긴다지만 잠룡문주이자 소지존으로서 도진이 보고 듣고 알아야 할 내용들이 있었기에 이렇게 매일 잠룡문에 시간을 할애하는 것이다.

    오성아를 통하여 잠룡문의 일을 확인, 검토하고 위취련과 위연서를 통하여 투마전과 독마전의 협업을 확인했다.

    -바할라의 피땀이 어린 자금입니다. 부디 유용하게 쓰시길 바라겠습니다.

    "피땀이 아니라 오일이 어린 자금 아닌가요?"

    '음…….'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 여전히 위취련과 슈미트라, 독마전주와 투마전주가 주고받는 말에는 가시가 있다.

    그 가시의 근원이 소지존의 곁에 있지 못하는 슈미트라의 아쉬움이고 그걸 잘 알고 있는 위취련인 만큼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거기에 위취련과 달리 소전주인 위연서는 슈미트라를 살갑게 대해 사이도 좋았고 말이다.

    "너는 투마전을 꺼리지 않는구나."

    위취련의 말에 위연서가 활짝 웃으며 답했다.

    "그럴 이유가 없잖아요, 스승님."

    "흐음. 그렇긴 하지."

    간단하지만 정론에 위취련은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직 투마전주님은 제자가 없잖아요. 당연히 제자는 연배가 어릴 것이고 그때 잘 대해주면 다음 대의 투마전주는…… 호호."

    '아.'

    어른스런 매력(?)을 가득 발산하는 위연서의 말에 도진이 저도 모르게 입을 벌릴 뻔 했다.

    "네가 나보다 낫구나."

    위취련은 위연서를 칭찬했다.

    * * * *

    잠룡문에서의 업무를 간단히 해결한 뒤에야 도진은 등교했다.

    우선 기숙사로 가 교복으로 갈아입고 소담과 함께 일상이 된 길을 걸어 집행부실에 들어섰다.

    "어서 와."

    "안녕."

    3학년과 동기들, 그리고 1학년들까지 모인 자리에서 인사를 나누고 자리에 앉으니 약리지가 다가왔다.

    "왜?"

    "선배, 진짜 괜찮으세요?"

    약리지가 걱정스레 묻는 건 요즘 도진의 생활 패턴 때문이다.

    수업에 빠졌던 시간을 보충하기 위해 따로 교수들을 찾아가 묻기도 하고 보충 과제도 했다.

    여기에 시험 공부까지 밤늦도록 하는데 수련도 빼먹지 않으니 얼마 전처럼 도진이 도대체 언제 자냐는 글이 또 올라오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잠룡문도 활동을 시작하는 듯하니 당연히 문주인 도진 또한 그에 관한 관리를 해야 했는데 심지어 클로에의 수련을 봐주는 일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이게 도저히 사람이 하루에 소화할 수 있는 일인가 싶은데 심지어 그걸 일주일 넘게 지속하고 있으니 제아무리 '김도진'이라 해도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심지어 약리지는 의가(醫家)의 후계자이니 더더욱 그랬다.

    그런 걱정이 묻어나는 약리지의 얼굴에 도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응, 조금 안 괜찮아."

    "……!"

    "……!"

    설마 겉치레가 아닌 정말로 '안 괜찮다'는 말이 나올 줄은 몰랐기에 약리지의 안 그래도 커다란 눈동자가 정말로 토끼처럼 커다래졌다.

    동시에 집행부의 시선이 모조리 도진에게로 몰렸다.

    약리지가 거리를 급격히 좁히며 목소리를 높였다.

    "어디 아파요! 증상은요!"

    너무나 격렬한 반응에 도진은 굳이 기세를 살짝 일으키며 손을 휘휘 저었다.

    "아하하. 걱정할 정도는 아니고. 말 그대로 그냥 조금 피곤하다는 거지. 설마 내가 자기 관리도 못 할까 봐?"

    요동치던 분위기가 그 말에 가라앉는다.

    하긴 그렇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무림인, 김도진이 자기 관리를 못 할 정도로 무리할 만큼 신뢰가 부족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게 분위기를 정리한 도진이 말을 이었다.

    "뭐, 그래서 대책을 세워뒀지."

    "대책이요?"

    "응."

    * * * *

    그날 오후.

    에타에 그런 글이 올라왔다.

    -시발 집행부에 도대체 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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