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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83화 (383/741)
  • 382화

    바할라의 폭로는 마치 지뢰밭에 불을 던진 것처럼 국제사회에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켰다.

    -우리나라 여당 국회의원도 무형독에 포섭당한 놈이었어! 어쩐지 말도 안 되는 짓거릴 하더라니!

    -우리나란 무림맹의 간부가 초월공을 익히고 있다는 게 드러났어!

    -우린 유명한 문파의 문주가 스스로 무형독에 포섭당했다는 걸 실토했다고…….

    세계 각지에서 웬만한 수준을 넘어선 인지도를 가진 무인이나 고위 인사들이 무형독에 관련되어 있다는 게 연쇄적으로 드러나거나 스스로 실토했다.

    확정적으로 토사구팽 당하는 운명이란 걸 알게 되자 극심한 균열이 발생한 덕분이다.

    사람들은 그로 인해 드러난, 상상 이상으로 깊숙이 침투해 있는 무형독에 경악했으며 국제사회 단위에서 대처에 돌입했다.

    그것은 마치 충치 같았다.

    방치하면 돌이킬 수 없게 되며 이윽고 이를 완전히 뽑아야 하는.

    그러나 돌이킬 수 없게 되기 전에, 조기에 발견하여 두려움과 아픔을 참고 치료하면 삭제되는 부위를 최소화 할 수 있는 충치.

    그리고 지금 무형독에 대한 대처는 다행스럽게도 늦지 않은 것이었다.

    여기에 개인이나 한 국가를 넘어 국제사회 단위에서 단합하기까지 했다.

    대부분의 개인이야 말할 것도 없이 무형독을 적으로 규정했다.

    상류층 또한 개인과 의견이 일치했으니 설령 부패했든 악하든 '밥그릇'을 빼앗으려 드는, 혹은 생명에 위협이 되는 무형독은 그들에게도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적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하나된 국제사회의 무형독을 제거하기 위한 움직임은 상상을 넘어선 규모와 강력함을 보여 주었고 그만큼이나 무형독에 치명적이었다.

    무색무취의 독을 무서운 기세로 사르는 불의 파도.

    그리고 이런 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결정적인 한 수가 바로 라드헬의 생포였다.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도진은 그렇게 생각했다.

    무엇 하나라도 어긋났다면, 혹은 모자랐다면 라드헬의 생포는 불가능했을 것이었다.

    가장 큰 것은 역시 초월공과 무형독에 관한 정보가 연결된 것이다.

    대한민국을 넘어 국제 뉴스에도 등장했던 개미굴 사건의 초월공은 그러나 출처 등 일정 이상의 정보를 전혀 얻을 수 없어 조사의 진척이 없었다.

    그런 초월공의 출처가 무형독이라는 걸 슈미트라가 운용하던 정보국을 통해 알게 됨으로써 결정적인 한 걸음을 나아갈 수 있게 됐다.

    르슈라를 무조건 제거할 거라고 확신한 가운데 움직일 수 있었고 위취련을 필두로 한 독마전 덕분에 라드헬이 르슈라를 제거하였음을 확인, 탈출하기 전에 포위할 수 있었다.

    라드헬은 예상을 넘어선 수준의 내공을 보유하고 있었으나 경지를 넘어선 위취련과 슈미트라의 상대가 결코 될 수 없었기에 생포, 무형독의 급소에 박아 넣는 칼이 되었다.

    이것이 더욱 의미를 갖는 건, 무형독에 대한 폭로가 바할라만의 위험으로 그치지 않게 했다는 것이다.

    "무형독에 관해 폭로하겠다고요?"

    "예. 그들은 바할라를 도모하려 한 불구대천의 적입니다."

    사건만을 남기고 그 실체를 보이지 않는 무형독에 대한 폭로는 지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말 그대로 사건만이 있을 뿐 그들에 대한 실마리조차 남기지 않기에 '무형독'이란 이름이 붙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허나 라드헬을 생포함으로써 드디어 명백하면서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가 생겼고 슈미트라는 망설임없이 그들에 대한 폭로를 결정했다.

    본래 이것은 너무나 큰 희생과 위험을 걱정해야 할 일이었다.

    필사적으로 감추려 했던 것에 대한 폭로는 당연히 그들의 보복을 불러올 것이었으니까.

    바할라는 폭로로 인해 그토록 은밀히, 그러나 치명적이고 또 거대한 일들을 벌이던 조직의 타깃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흡성대법을 익히고 르슈라를 죽인 라드헬의 존재와 수법, 그리고 관련된 이야기들이 이 사건에 국제사회가 얽혀들게 만들었고 바할라 대 무형독이 아닌 국제사회 대 무형독의 구도를 만듦으로써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아마도 복수하는 대신 더 깊이 숨지 않을까?"

    유지은은 그런 의견을 내놓았다.

    "그럴까요?"

    되묻는 도진에게 유지은이 확신이 깃든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무형독은 철저하게 음지에서 조종하려고만 했어."

    그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무언가 몸통의 일부를 내놓고 활동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유지은의 말대로 그들은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누군가를 내세우거나 이용하였으며 목적을 달성하면 미련없이 자신들에 관한 모든 것을 지우고 사라졌다.

    그 목적이란 것도 그들과 관련된 무언가가 남는 일이 결코 없을 정도였다.

    라드헬의 경우만 해도 그들의 의도대로 되었다면 르슈라와 라드헬이 동시에 제거당하는 형태로 무형독이 '증발'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수법만이 아니라 이름까지도 완전히 드러나 버렸잖아. 전 세계를 적으로 돌린 상황에서 모습을 드러내기보단 더 철저하게 숨으려 들 거야. 혹시라도 복수를 하겠다고 모습을 드러낸다면 오히려 평가에 훨씬 못 미치는 조직이었다고 봐야겠지."

    "그렇겠네요."

    도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도 동감하는 그녀의 의견은, 나지윤이 앞서 해 준 이야기와도 일치했다.

    "그토록 광범위하면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면서도 결코 앞으로 나서지 않았지. 복수보단 더 철저하게 몸을 숨기고 길게 보려 들 거야. 그러니까 더 무서운 조직인 거고."

    나지윤은 그렇게 말했다.

    당장은 괜찮겠지만 더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실체가 없던 무형독에 통렬하게 한 방을 먹인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심지어 거기서 그치지 않고 놈들의 '보이지 않는 칼'을 걱정하지 않을 수 있을 만큼 멋진 한 수였다.

    허나 그것도 영원하지 않다.

    모습을 감추는 건 후퇴가 아니라 숨을 고르기 위함이고 그것이 끝나면 더 빠르고 강력한 칼이 어둠 속에서 날아들 것이었다.

    "두렵지는 않습니다."

    "동감입니다."

    슈미트라의 말에 도진이 호전적인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두려워하거나 숨으려 드는 인간은 이 자리에 없다.

    놈들은 도진의 주변을 어지럽혔다.

    그것은 용서할 수 없는 수준이었고 방치하면 더욱 심각해질 것이었다.

    그러니까 싸울 것이다.

    "독마전주."

    "예, 소지존."

    "투마전주."

    "예, 소지존."

    "협력해서 준비하세요."

    "존명(尊命)."

    "명을 받듭니다."

    그동안 있었던 마찰에서 얻은 모든 정보를 독마전과 투마전이 협력하여 연구한다.

    투마전은 투마전에 그치지 않고 부국 바할라의 자원까지 활용할 것이고 큰 자금이 필요한 독마전은 그에 힘입어 비할 데 없이 눈부신 성과를 낼 것이다.

    이 과정에서 자연스레 덩치도 커질 터.

    "협력을 부탁해도 될까?"

    "그 의뢰를 기다리고 있었어."

    여기에 나지윤이 합류하여 바할라의 정보국과 협력한다.

    '천마신교'라는 이름은 말하지 못했지만 바할라의 정보국과 나지윤의 답청문이 협력하는 데엔 큰 문제가 없다.

    모습을 감추는 그들을 답청문과 바할라의 정보국이 끈질기게 추적할 것이다.

    "투마전주는 앞으로 많이 바빠지겠네요."

    "이런 일이라면 얼마든지 밤을 새도 좋습니다."

    "하하."

    슈미트라는 도진의 말대로 앞으로 며칠 밤 새는 건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바빠질 예정이었다.

    이번 사건으로 바할라의 인지도가 수직 상승했다.

    여기에 무장 세력을 넘어 그 뒤에 있던 나라를 좀먹는 반대파 또한 쓸어냈으니 원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도 총력을 다해야 할 타이밍이다.

    이를 위해 나라의 안만이 아닌 바깥에도 신경을 써야 했다.

    "우선 목표는 공화정이죠?"

    "예. 여기에 더해 천마신교를 국교로 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와, 역시 왕자님이라 그런지 스케일이 남다르네요."

    형형하게 빛나는 슈미트라의 눈을 보고 있자면 30년 내로 바할라가 강대국 반열에 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도진이었다.

    물리적인 한계, 인구수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극복한다면 세계의 패권을 다투는 나라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천마신교가 국교가 되면 그건 투마전이 아니라 투마국(鬪魔國)이라 불러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과연. 그걸 목표로 정진해 보겠습니다."

    "아하하."

    농담을 던졌는데 슈미트라는 진심으로 답했다.

    과연 이 부분에 있어서는 천마신교의 충실한 교도답다고 생각하며 도진은 웃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설령 투마전이 투마국이 되더라도 부담스럽지 않을 미래를 최대한 앞당기기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 * * *

    까드득-

    신풍회의 회주, 카자카미 노보루의 이를 가는 소리를 자리에 모인 멤버들 중 누구도 신경쓰지 않은 채 회의가 시작됐다.

    "뭐 다 알고 있는 이야기일 테니 간단히 말하자면, 진행하던 사업들 대부분이 크게 엎어졌어."

    -초월공을 익힌 자는 모르모트다.

    -무형독의 목적이 달성되면 기필코 토사구팽 당하며 모르모트는 원하는 걸 얻지 못한다.

    두 가지 사실이 드러나며 그들이 펼치던 '사업' 대부분을 망치게 됐다.

    이에 관한 손해는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라 그 어떤 것으로도 바꾸거나 얻을 수 없는 '막대한 시간'을 잃게 만들었다.

    "…초월공과 무형독이 연결되어 있다는 걸 들킨 게 치명적이었지. 도대체 어디서 드러난 거지?"

    "…관리는 철저했던 것으로 알고 있어. 우리들 중 그런 실수를 했는데 감춘 자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기 힘들고 만약 감췄더라도 분명히 들켰겠지."

    초월공과 무형독이 연결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를 했다.

    그 보안 수준은 상상 이상이었고 더 무서운 것은 설령 보안이 뚫렸다 해도 즉시 알고 대비를 할 수 있도록 이중삼중의 장치를 해 두었다는 것이다.

    한데 그것이 작동조차 되기 전에 일이 벌어져 버렸다.

    그들로서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고 그래서 이토록 허무하게 당하고 말았다.

    "……."

    "으음……."

    도진의 신안(神眼)을 알지 못하는 이들은 결코 풀 수 없는 문제에 고민했다.

    그러나 도저히 답이 나올 수가 없으니 이윽고 화제가 전환되었다.

    "이대로 물러날 건가?"

    누군가가 분노를 담아 물었다.

    대답은 금새 쏟아졌다.

    "물러나지 않으면? 손을 쓰자고?"

    "여기까지 해 놓고 발끈해서 나서자니. 요즘 애들도 그런 멍청한 짓은 안 해."

    "게임하는 애들도 다 아는 이야기라구. 자리를 잡고 준비를 해서 유리한 곳으로 상대를 유도해야지 발끈해서 생각없이 들어갔다간 게임 오버야."

    "…빌어먹을!"

    쾅, 하는 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퍼졌다.

    그에 달래듯 차분한 목소리가 중앙의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진정하십시오, 여러분들."

    얼굴없이 목소리만이 스피커를 통해 나오는 그는,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을 연결하는 자다.

    그가 말했다.

    "숙원은 최악의 경우 10년 정도 늦어지겠지요. 그러나 여러분들. 그 10년이란 시간이 치명적인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지 않습니까?"

    "……."

    대답하는 이는 없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결코 부정적이지 않았으니 이곳에 모인 모든 이들의 얼굴에 모종의 자부심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은 '무형독'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수단으로써 다루는 힘일 뿐."

    "여러분들은 '진짜 무공'을 익히지 않았습니까. 10년이란 결코 치명적이지 않으며 오히려 여러분들의 군림을 더욱 공고히 해 줄 것입니다."

    "그러니, 더 완벽한 숙원의 달성을 위해 협력합시다."

    * * * *

    바할라에서의 사건을 마무리하고 귀국한 한국은 완연한 겨울이 되어 있었다.

    어느새 12월.

    많은 것들이 변화할 시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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