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1화
-충격! 국제사회를 좀먹고 있는 암약 단체가 있었다?!
-세계에 스며들어 있던 '무형독'. 그 실체를 폭로하는 바할라!
그것은 아침부터 전 세계를 강타한 충격적인 뉴스였다.
금번의 사건으로 사람들이 이름을 알게 된 남쪽의 나라 바할라.
그 바할라의 왕세자가 직접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뉴스에 나와 발언하고 있었다.
"…그러면, 일전 한국에서 있었던 사건의 카자카미 가문의 무인들에게 위험한 무공을 건넸던 이들과 이번 바할라의 2왕자님에게 접근한 세력이 동일한 세력, 즉 무형독이란 말씀이시군요."
"예, 맞습니다. 그에 관한 증거는 나눠드린 자료에 자세히 기입되어 있습니다."
간밤에 바할라 2왕자 르슈라가 살해당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그것도 자신의 침실에서 아무도 모르게.
은밀히 발생한 그 믿기 힘든 사건의 범인은 본래 유유히 빠져나가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범인, 라드헬은 도주에 실패했다.
* * * *
보고를 마치고 통화를 종료한 라드헬은 미리 예약해 두었던 비행기를 타고 출국할 예정이었다.
필요에 의해, 그 어떤 부자연스러운 부분도 없는 자연스러운 업무를 위한 출국이다.
애초에 왕자와의 만남도 출국 전 근심을 덜어주기 위한 것이었고.
그렇게 왕자와 만난 뒤 라드헬이 탄 비행기는 새벽에 출항하여 망망대해 위에서 사고에 의해 추락하게 되어 있었다.
생존자는 당연히 0명. 그 안에는 라드헬 또한 포함되어 있으니 이번에도 무형독은 사건만을 남기고 연기처럼 사라지게 된다.
여기서 라드헬은 여타의 인물들과 달리 실제로 죽지 않는다.
그는 무형독의 '진짜 멤버'이기에 그런 식으로 소모되지 않는 것이다.
추락 전 낙하산을 이용해 낙하,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배를 타고 빠져 나갈 예정이었다.
그 예정은.
"……!"
꽈아아앙-!!
갑작스런 습격에 분쇄됐다.
라드헬이 운전하던 차가 어마어마한 충격에 박살이 났다.
무시무시한 경력(勁力)을 감지하자마자 운전석을 박차고 뛰쳐나가지 않았다면 라드헬 또한 차와 같은 꼴이 되었을 것이었다.
터억.
차를 박차고 나온 라드헬은 굳은 얼굴로 착지해 주변을 경계했다.
무형독의 매뉴얼에 따르면 이 경우엔 뒤도 안 보고 도주해야만 했다.
무형독은 적에 '맞서 싸우는' 조직이 아니었으니까.
그러나 라드헬은 매뉴얼에 따를 수 없었으니 그 도주에 필요한 방위를 절묘하게 점하고 있는 '습격자들' 때문이었다.
그 습격자들의 면면이 라드헬의 얼굴이 평소의 가면조차 쓰지 못할 만큼 굳게 만들었다.
"…저하."
"왜 그러지? 무형독의 주구."
뒤를 점한 것은 달리던 차를 맨몸으로, 맨주먹으로 박살을 낸 슈미트라다.
평소 지혜롭고 인자한 얼굴의 지도자가 지금은 야차와 같은 얼굴이다.
그리고 뿜어내는 기세는 그가 파악했던 것을 아득히 넘어서 있었다.
동시에 정면의 양방을 점하고 있는 건 한국에서 온 자들.
김도진과 위취련이었다.
만약 그럴 만한 '각'이 보였다면 라드헬은 한 방향을 전력으로 뚫고 도주했을 것이다.
그러나 슈미트라는 물론이요 위취련에, 심지어 놀랍게도 김도진 또한 그가 단번에 뚫고 나갈 수 없을 만큼 만만찮은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무림인이 내뿜는 '기세의 그물'은 그 경지와 영향력을 나타내는데 일대를 가득 덮은 그물 중 어느 곳도 단번에 뚫어낼 수 없었던 것이다.
'어찌 이런 일이……!'
1왕자와 여자 또한 경악스럽지만 그들에 대한 경악이 무색할 만큼, 젊은 애송이의 기세가 믿을 수 없게도 그가 경시할 수 없는 경지에 있었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멈춰선 그가 물었다.
"…어떻게 알았지?"
모든 것이 자연스러웠다.
애초에 이런 때를 대비하여 만들어 둔 '루틴'이었다.
밤중에, 출장을 앞두고 2왕자를 라드헬이 방문하는 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며 의식조차 하지 않을 만큼 일상으로 인식시켰다.
바깥에서 정보를 캐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랬다.
설령 그것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의심한다 하더라도 적어도 지금 '출국하는 라드헬'을 갑자기 덮칠 만큼의 어떤 빌미를 전혀 주지 않았는데.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보고 이들은 습격을 해왔단 말인가.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무조건 자랑스레 비밀이고 설정이고 떠벌리는 만화도 아니고 그걸 왜 얘기해준단 말인가.
그러니까 도진은 '피 냄새는 지워도 피 냄새를 지우는 약품 냄새는 못 지웠잖아'라고 말해 주는 대신 피식 입꼬리를 올릴 뿐이었다.
그들이 믿고 있는 '피 냄새를 지우는 약품의 존재를 알 수 없다'는 잘못된 믿음을 정정해 줄 이유도, 독마전의 능력이 어느 정도일지 알려줄 이유도 없다.
"넌 그냥 잡히면 돼."
…뿌득.
라드헬은 이를 갈았다.
그럴 순 없다.
조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는 이곳에서 잡혀선 안 됐다.
드드드드드…….
그의 전신에서 그 의지를 반영하여 무시무시한 기세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입술이 열렸다.
"우습군. 나는 다른 소모품들이랑 다르다."
그래, 정말로 달랐다.
그는 소모품들과는 다른 무형독의 정식 멤버다.
그리고 그가 정식 멤버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이유는.
두, 우웅……!
"경지를 넘어선 나를, 네놈들이 상대할 수 있겠느냐?"
그의 내공이 경지를 넘어선 고수들의 수준으로 대단했기 때문이다.
본의는 아니지만 만만찮은 이들을 상대로 시간을 끌 수도 없고 힘을 아낄 수도 없다는 판단에 그는 전력을 내보인 것이었다.
이로써 상대가 위축되거나 틈을 보인다면 그의 의도대로였다.
그러나.
"조잡하네."
돌아온 건 새파랗게 어린 놈의, 도진의 비웃음이었다.
그것이 그의 머리를 새빨갛게 물들일 만큼 분노하게 만들었다.
"감히!"
포효하며 그가 진각을 밟아 탄환처럼 쏘아졌다.
탄신(彈身).
말 그대로 탄환처럼 몸을 날려 상대를 꿰뚫는 수법이다.
지극히 간단하지만 간단한 만큼 모든 것을 속도와 기습에 투자한 이 수법은 강력할 수밖에 없다.
동등한 수준의 무인이 아니라면 일격필살이 될 만큼.
허나 그것은 도진을 꿰뚫지 못했다.
훙-!
마치 오감이 고장난 듯 그의 시야가, 감각이 휙 돌았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는 비포장 도로를 스스로의 육신으로 갈아 버리며 나가떨어졌다.
꽈과과과광-!!
"커흑!"
붉은 피를 토해내며 그가 억지로 감각을 퍼뜨리며 자세를 다잡았다.
그러나 자세와 달리 눈은 흔들리고 있었으니 믿을 수 없게도 그의 회심의 한 수가 너무나 무력하게 '튕겨졌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분노하여 돌진했지만 기실 그것은 이 자리를 탈출하기 위한 냉정한 의도가 담겨 있는 절초였다.
탄신은 강력하지만 상대가 쉽게 피할 수 있다는 게 약점이다.
그러나 그 약점은 도리어 불리한 상황에서 상대의 회피를 유도하고 그대로 속도를 유지하여 도주하기 위한 목적을 가미했기에 존재하는 약점인 것이다.
앞의 '허세'마저 그를 위한 포석이었거늘, 그 회심의 한 수가 도진의 앞으로 이동한 여자에 의해 너무나 쉽게 무력화되고 말았다.
분명히 자신의 통제 하에 있어야 할 힘이, 심지어 일부러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강하게 발현한 힘마저 그녀가 그리는 원에 빨려 들어가 버렸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였다.
"…화경(化境)의 고수란 말인가!"
화경. 경지를 넘어선 고수.
그처럼 내공을 흡수하여 억지로 양만을 충족한 게 아닌 이치에 닿아 온전히 경지에 닿은 고수가 아니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달 아래 고고히 선 신비롭고 아름다운, 그러나 치명적인 그녀의 자태에서 이제서야 절망적일 정도의 격차를 인지한다.
그녀의 차가운 눈이 흡성대법, 타인의 내공을 갈취하여 자신의 내공을 쌓는 마인(魔人)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그 하찮은 수준으로 소지존의 눈을 더럽히지 마라."
경멸로 가득한 모욕에 화를 내고 싶었으나, 그러나 라드헬은 그러지 못했다.
갑자기 온몸이 저려왔기 때문이다.
'독……!'
깨달았을 땐 이미 늦어 있었다.
라드헬에게로 세 사람이 포위를 좁힌다.
그리고 도진이 말했다.
"헛수고하지 말고 잡히자?"
* * * *
무형독의 특성상 분명히 꼬리 자르기를 할 것이었으니 요주 인물인 르슈라의 주변 경계를 강화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발 늦을 수밖에 없었던 건, 르슈라가 결국 도진의 말에 마음을 돌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르슈라는 살해당했고 그 범인인 라드헬의 신병을 구속하는 데 만족해야 했다.
그 평판이 어떠했든 르슈라는 바할라의 제 2왕자.
그런 인물을 살해한 이들이 무형독임을 분노한 바할라는 전 세계에 밝혔다.
단순히 거기에 그치지 않고 무형독이 어떤 이들인지도 폭로했다.
무형독의 그림대로였다면 르슈라와 함께 비행기 추락으로 '제거당한' 라드헬은 범인이 되지 못했을 것이고 그렇다면 사건은 결코 풀 수 없는 미궁에 빠졌을 터.
그러나 바로 그 라드헬이 잡힘으로써 거침없는 합동 수사에서 얻은 증거들에 더해 폭로가 가능해졌다.
-카자카미 방계에만 손을 뻗는 게 아니라 바할라 왕족한테까지 저랬다고?..
-지금 드러난 큰 게 저 둘인거고 당연히 훨씬 많겠지.
-초월공이라는 생명 깎아먹는 무공으로 온갖 사람들을 다 유인했다고 함.
-저번 개미굴 사건도 초월공 익힌 흑도 무인들 때문에 문제가 커졌었지.
-숭무고 독살 사건도 무형독 짓이라매.
-ㅇㅇ 남욱현이 왜 그랬는지 동기가 안 밝혀졌었는데 이 초월공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이 있음.
-목적 달성하고 나서 초월공조차 안 주고 토사구팽했다는 거지.
정규 방송 송출을 중단하고 다뤄질 정도로 한국에서는 무형독에 관한 이야기가 들끓었다.
물론 이런 현상은 한국에 국한되지 않고 국제사회 전체가 그러했으니 암암리에만 언급되던 무형독이 수면 위로 부상할 뿐 아니라 만천하에 공개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이것이 바할라의 무형독에 대한 뼈아픈 일격이 되었으니 이름만이 아니라 그들이 즐겨 쓰던 토사구팽 수법 또한 함께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초월공이든 뭐든 미끼 걸고 꼬신 담에 목적 달성하면 죽여서 입막음 한다는 거네.
-한 마디로 그렇지 ㅇㅇ
-개 멍청한 새끼들이네 ㅋㅋㅋ
-직접 안 당해보면 모르는 거지.
-아니 ㅋㅋ 뻔하자너. 지가 욕심이 있으니 멍청해지는 거고, 그러니까 저런 거에 당하는 거지. 젊은 놈들이 보이스피싱 당하는 거랑 다를 게 뭐임?
-넌 너무 의견이 극단적인듯ㅇㅇ
말이야 간단하지만 당연히 무형독이 어설픈 수법을 쓸 리는 없다.
그래서야 카자카미 히로토나 르슈라 같은 인물이 당했겠는가.
허나 이제는 무형독의 방식이 토사구팽이라는 게 명명백백하게 드러났고 그것을 '당사자들' 또한 인지했을테니 그들이 광범위하게 전개하고 있던 사업들에 어마어마한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동시에 그동안 미제로 남았던 사건의 피해자들 또한 그 적이 무형독이라는 걸 알게 됐다.
"호협남가는 무형독의 멸문에 결코 힘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숭무고 독살 사건으로 인해 불명예를 안았던 호협남가는 물론이요.
"…저희 카자카미 가문 또한 그들의 죄를 묻기 위하여 협력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선포합니다."
신풍회의 주인 가문인 카자카미 가문 또한 방계가 무형독에 의해 포섭당해 큰 잘못을 저지름으로써 막대한 피해를 입은 피해자의 입장에서 회주가 입장 발표를 했다.
그러나 호협남가와 달리 굳은 얼굴로 발표를 한 신풍회 회주의 속내는 다른 방향으로 치솟는 불길로 뜨거웠으니 그가 바로 지금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무형독에 깊이 관여한 자이기 때문이다.
회주는 자신만이 이용할 수 있는 본가 깊숙한 곳에 위치한 보안 회의실에 들어섰다.
그 회의실 가운데 위치한 최고급 의자에 착석하자 전면에 펼쳐진 스크린에 온갖 나라의 인물들이 나타났다.
그들의 시선이 일제히 신풍회의 회주, 카자카미 노보루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그들 중 한 명이 비죽 입꼬리를 올리고선 말했다.
"그럼, 이번 대실패에 대한 대책회의를 시작해 볼까?"
까드득-
카자카미 노보루가 이를 갈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