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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81화 (381/741)
  • 380화

    슈미트라가 함께 하는 합동 수사대의 행보에는 거침이 없었다.

    직인이 찍힌 영장을 직접 발부하기만 했어도 합동 수사대는 막강한 권한을 얻었을 텐데 거기에 그치지 않고 왕세자가 직접 참여했으니 막히는 게 있을 수가 없다.

    때문에 합동 수사대는 거대 상회의 주인은 물론이요 군의 고위 간부, 심지어 고위 귀족을 대상으로도 성역없는 수사를 진행해 나갈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도진은 과거 자신의 짐작이 틀렸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바할라에 오기 전.

    도진은 나지윤이 건네 준 바할라 제 1왕자 슈미트라에 관한 정보를 보면서 생각했다.

    정보만 보면 정말로 대단한 지도자처럼 보이지만 어디까지나 포장이 잘 되었을 뿐 사실은 평가에 미치지 못하는 사람일 수 있겠다고.

    생각의 근거는 그가 정글 게임 촬영팀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왕세자는 분명히 정글 게임팀의 촬영에 협조하기로 했었고 거기에는 자연스레 '안전' 또한 포함되는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바할라는 정글에 거점을 두었던 무장 세력을 군대까지 동원하여 몰아내 주기는 했지만 그 뒤의 습격에는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했었다.

    그러니까 도진은 생각한 것이다.

    자신의 말을 완벽하게 지키지 못한 왕세자는 평가와 달리 부족한 사람일 거라고.

    하지만 합동 수사대와 함께 행동하며 도진은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슈미트라가 부족한 게 아니었다.

    바할라 내의 반대 세력이 너무 큰 것이었다.

    거대 상회, 군 간부, 고위 귀족까지.

    현왕의 능력이 부족했던 시기 그들은 너무나 크게 세를 불렸다.

    여기에 세계 단위의 은밀한 단체인 무형독마저 암수를 뻗었으니 외부만이 아닌 내부의 방해마저 있는 상황에서도 무장 세력의 도발에 발빠르게 대처하여 피해를 최소화한 슈미트라의 능력은 오히려 크게 평가받아야 할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외부에서 할 수 있는 감정을 배제한 객관적인 평가이고 스스로에게 더 엄격한 슈미트라는 자신의 실책을 용서할 수 없었기에 직접 합동 수사대에 참여하여 이토록 무시무시한 숙청을 계속해 나가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

    슈미트라는 자신의 이복동생이 머무는 별장마저 '성역없는 수사'의 대상으로 지목했다.

    합동 수사대를 마주한 르슈라는 꽉 쥔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형님."

    정말로 이 선을 넘을 거냐는 시선에 슈미트라는 일말의 흔들림조차 보이지 않았다.

    이미 몇 번이고, 몇 년이고 기다려 주었고 기회를 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생은 변함이 없었으니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때였다.

    "반군에 물자와 자금을 지원한 이들이 이곳을 드나들었다는 증언과 증거가 확보되었다. 이에 따라 이곳을 수색할 것이다."

    방해한다면 합당한 대가를 치러야만 할 것이다.

    누구나 짐작할 수 있는 내용은 생략되었다.

    르슈라는 이를 악물었으나 이윽고, 자신의 휘하에 있는 무인들과 함께 물러났다.

    그는 자신의 형에게 대적할 만큼의 기개를 가지지 못했다.

    열린 길을 슈미트라를 필두로 한 왕궁 직속 무인들, 투마전의 무인들이 앞장 섰고 그 뒤를 한국의 합동 수사대가 뒤따랐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도진의 시선이 잠시 르슈라에게 머물렀다 떠났다.

    "머리카락 한 올까지 단 하나도 빠뜨려서는 안 된다."

    "예!"

    합동 수사대는 의심가는 것들은 물론이요 그것을 넘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확보했다.

    머리카락, 미세한 피부 조각까지도.

    그 모든 행위 또한 뉴스가 되어 바할라를 넘어 세계 뉴스에까지 실렸다.

    이 또한 의도한 바였다.

    늦은 밤. 왕세자궁 내에서 도진이 말했다.

    "슬슬, 반응이 올 때가 됐죠."

    "예."

    합동 수사대의 작전은 '타초경사(打草驚蛇)'였다.

    그러니까 수풀을 휘저어 뱀을 놀라게 해 드러나게 하는 것.

    회의를 통해 이번 일을 벌인 게 단순히 바할라 내의 반군 세력이 아니라 무형독이 가세하여 있다는 정보를 공유했다.

    보통의 경우 무형독은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겠지만 이번만큼은 조금 경우가 달랐다.

    그들이 바할라에 들인 공이 소리소문없이 사라지기엔 너무 막대했기 때문이다.

    "놈들은 분명하게 바할라를 탐내고 있습니다."

    이번 일이 있기 전까지 바할라는 아는 사람만 아는, 대중의 인지도가 지극히 낮은 나라였다.

    하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부국이며 신마파산공의 계승자가 왕족으로 있기까지 한, 그야말로 엄청난 나라.

    무형독은 그런 바할라를 은밀히 집어삼킬 공작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쉽게 발을 빼지 못할 확률이 있다.

    설령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련없이 발을 뺀다 해도 깊숙이, 그리고 거대하게 침투한 만큼 분명히 흔적이 남고 만다.

    합동 수사대는 그 흔적을 놓치지 않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동생분은……."

    "소지존께서는 개의치 않으시기 바랍니다."

    도진의 말에 슈미트라는 분명하게 답했다.

    2왕자 르슈라.

    그는 결국 지금까지도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수사가 진행되는 중에 그는 몇 번이고 모습을 비추었고, 우유부단하게 시비를 걸다 사라지기 일쑤였다.

    그 과정에서 도진은 계속해서 르슈라를 설득하기 위해 은밀하게 전음을 보냈다.

    -봤지? 아후드 장군도 너와 같은 초월공을 익히고 있었어. 그런데 장군이 익힌 초월공이, 니가 익힌 초월공보다 좀 더 완성되어 있었지. 이래도 무형독을 믿을 거야?

    조사 과정에서 알게 된 것들 중 르슈라가 이용당하고 있다는 증거가 될 만한 내용을 몇 개나 알려 주었다.

    만약 르슈라가 그저 '2왕자'였다면 이렇게까지 해 주지 않았을 것이다.

    도진의 도기로서의 성정은 선민 사상에 찌든 채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 인간에게는 베풀어지지 않는 것이었으니까.

    그러나 그가 이복동생이라 하나 슈미트라의 동생이었기에.

    도진은 몇 번이고 르슈라를 회유하려 했지만.

    오늘 마주한 르슈라의 약간은 흔들리고 있었지만 달라지지 않은 눈을 통하여 결국은 그를 구할 수 없을 거라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이 들었다.

    "예. 그러면, 계속 진행하도록 하죠."

    "예, 소지존."

    그리고 도진과 슈미트라는, 그런 결과에 흔들리지 않는 심지와 가치관의 소유자들이었다.

    * * * *

    별장의 압수 수색이 있었던 날 저녁.

    또 다른 별장에서 르슈라는 근심에 범벅이 된 얼굴로 고민하고 있었다.

    -초월공을 주었다는 건, 너를 모르모트로 여기고 있다는 증거야.

    -너는 왕으로 선택받은 게 아니야. 꼭두각시로 선택받은 거지.

    한국에서 온 건방진 놈, 그러나 감히 대들 엄두가 나지 않는 놈이 한 말이 도무지 머릿속을 떠나질 않는다.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는 분명히 왕이 되기 위해 태어났는데, 내가 왕이 되어야만 하는데 왜 이런 고민을 하고 있어야 하는가.

    근본적으로 잘못되어 있는 그의 고민은 꼬리를 물고 끝나질 않는다.

    그렇게 괴로워하던 르슈라의 방문을 두드리는 이가 있었다.

    똑똑.

    "왕자님, 라드헬입니다."

    "…들어오시게."

    홀로 안에 들어서는 청수한 인상의 노인은 르슈라가 스승으로 모시는 이였다.

    바할라 최고의 대학을 나온 지식인이었으나 2왕자의 스승이라는 걸 제외하면 특별한 이야깃거리나 업적은 없었고 그렇기에 명성이랄 것도 없는 사람이었다.

    영화로 치자면 화면에 비치지만 등장인물이 아닌 배경이나 장치로써 존재하는 그런 사람.

    그렇기에.

    "주군, 초월공의 성취는 어떠십니까?"

    무형독이 바할라에 침투시킨 독이 되기에 제격인 인물이었다.

    문사(文士)의 얼굴이 대번에 독인(毒人)의 얼굴로 바뀐다.

    허나 르슈라는 '주군'이라는 호칭에 흡족해하며, 그리고 다시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말했다.

    "5성을 목전에 두고 있소."

    4성에서 나아가지 못하고 정체되어 있음을 르슈라는 그렇게 포장했다.

    라드헬은 르슈라의 대답에 안타까운 얼굴이 되었다.

    "안타깝군요, 주군."

    그런 라드헬의 반응에 르슈라는 울컥했다.

    평소라면 괜찮다며, 곧 성취가 있을 거라며 격려해 주었을 텐데.

    내 사정이 요즘 나빠져서인가 라드헬도 변심하려는 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드는 르슈라였다.

    그로 인한 울컥한 심정을 내뱉으려던 르슈라는.

    푸욱-!

    그러나 단전을 파고드는 손에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입만 쩌억 벌리는 모양이 되었다.

    "……!!"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것이 통증이나, 단전을 꿰뚫은 손을 통하여 빨려 나가는 내공 때문이 아닌 독에 의한 것임을 르슈라는 타들어가는 성대의 고통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내공을 흡수하며 자신의 내공으로 지금 일어나는 모든 소란을 덮은 라드헬이 말했다.

    "정말로 안타깝군요, 주군. 당신을 주군이라 부르며 바할라에 머물 수 있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조금만 더 쓸 만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꼬……."

    중얼거리는 라드헬의 목소리는 바깥으로 새어 나가지 않는다.

    르슈라는 고통에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어 어떤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떤 것도 생각하지 못한 채, 숨이 끊어졌다.

    라드헬은 그렇게 숨을 거둔 르슈라의 몸에 어떤 용액을 뿌렸다.

    그러자 거짓말처럼 피가 굳었고 흩어졌던 피들은 증발해 사라졌다.

    그 존재만이 아닌 냄새마저 완벽하게 흩어 버리는 용액이었다.

    처리를 완료한 라드헬은 르슈라의 시체를 침대에 반듯하게 눕히고 이불까지 덮어 준 뒤 바깥으로 나왔다.

    문 밖을 지키던 이들은 아무 것도 묻지 않았고 라드헬은 느긋한 걸음으로 별장을 나와 차를 몰고, 바할라를 떠났다.

    떠나는 길에 그는 전화를 걸었다.

    "직장을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수고했네.

    대화는 한국어도 일본어도, 심지어 영어도 아니지만 유명한 언어로 짧게 오고간 뒤 종료되었다.

    그리고 라드헬이 건 전화를 받았던 이는, 녹음이 우거진 숲의 모처에서 특수 제작된 통신기를 놓고 있었다.

    * * * *

    신풍회의 회주는 통신기를 두고 편안히 몸을 눕혔다.

    그런 회주에게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은 목소리가 흘러들었다.

    "…손해가 막심하군요."

    "예. 큰 공을 들였는데…… 아쉽게 되었습니다."

    "조금 더 정밀하게 일처리를 할 수는 없었습니까?"

    "그들의 정보망이 우리의 예상 이상이었습니다. 허나 이 부분은 분명한 제 불찰, 사과드리겠습니다."

    "……."

    "하지만 동시에 아쉽습니다. 습격이 성공했다면 다른 결과를 맞이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

    "……."

    가시가 있는 말이었다.

    꼬리가 잡힌 건 자신의 실책이지만 너희 역시 대규모 진을 펼치고도 습격에 실패했으니 할 말이 없지 않냐는 뜻이다.

    사아아아…….

    바람에 불편한 침묵이 실린다.

    그러나 그 침묵은 이내 바람과 함께 사라졌으니, 그럼에도 그들은 협력해야만 하는 관계이기 때문이다.

    커다란 배에 여럿이 함께 노를 젓고 있다.

    한 손으로는 합을 맞춰 노를 젓지만 다른 한 손에는, 소매 안에 칼을 감추고 있다.

    심지어 그것을 서로가 알고 있음에도 그들은 함께 노를 젓는다.

    그런 오월동주(吳越同舟)의 관계를 아직은 계속해야 하기에, 그들은 다음 이야기를 나눈다.

    "뒤처리는 되었으니 실패에 연연하기보단 차선책에 집중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아쉽지만 차선책 또한 나쁘지는 않으니 그게 옳겠습니다."

    바할라를 집어삼키지 못한 것은 아쉽다.

    그러나 실패한 일에 연연해서야 아무 것도 되지 않으니 함께 진행하고 있던 차선책에 집중하기로 한다.

    "그 일은 다른 이들이 맡을 터이니 회주께서는 당분간 손해를 회복하는 데 집중하시면 되겠습니다."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그들을 뒤쫓던 합동 수사대는 결국 닭 쫓던 개, 아니 지붕 위의 닭조차 보지 못하게 될 터이니 신경 쓸 필요가 없다. 언제나처럼.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게 무슨……!"

    크게 뜬 회주의 탁한 눈에는, 무형독에 관한 세계 토픽이 비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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