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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80화 (380/741)

379화

도진의 말에 영민한 슈미트라는 바로 짐작가는 바가 있었다.

"…르슈라가 시비를 걸었던 바로 그때로군요."

"네. 전음으로, 다른 사람들은 모르게 말을 해 두었어요."

합동 수사대는 물론이요 슈미트라마저 이상하게 여기고 있던 부분.

도진이 갑작스레 나서 르슈라를 말로 '두들겨 팬' 그 행동에는 이런 내막이 숨겨져 있었던 것이었다.

위취련은 도진의 말에 슈미트라에게 시선을 주며 '어떠냐'는 얼굴로 자랑스러워 했다.

전음도 결국엔 입술과 혀를 움직여 말을 자아내고 그것을 내공을 매개로 하여 원하는 지점에만 전달하는 기술이다.

한데 도진은 겉으로 소리 내어 말을 하면서 동시에 전혀 다른 내용을 '티나지 않게' 전음을 이용, 르슈라에게 전달했던 것이다.

말과 말 사이의 틈을 이용하여 전혀 다른 내용을 티나지 않게 전달하는 이것은 사신 장호에게 배운 잡기(雜技) 중 하나다.

물론 말이 잡기지 훌륭한 능력 중 하나였으며 그것을 이용하여 아무도 모르게 말을 전달했으니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슈미트라는 위취련의 자랑스러운 얼굴에 극히 최소한의 근육만을 사용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 소지존 대단한 건 나도 잘 안다'는 뜻을 명확하게 전달해 보였다.

그런 두 사람의 기싸움을 도진은 너그러이 모른 척 해주며 말을 이었다.

"이용당하고 있다. 제거당할 위험이 있으니 마음을 돌리는 게 좋을 것이다…… 라고 해 두었어요."

"제거당할 위험……. 어떻게 아셨습니까?"

슈미트라의 말에 도진이 옅게 웃으며 답했다.

"저한테는 보였거든요. 동생분이 익히고 있는 어떤 '위험한 무공'이."

그 위험한 무공은 개미굴에서 처음 보았고 카자카미 가문의 무인들마저 사용했던 무공, 바로 '초월공(超越功)'이었다.

초월공은 가진 내공을 증폭시켜주는 효용이 있었으나 제대로 된 무공이 아니어서 사람의 진원진기를 상하게 만들었다.

그러니까 생명을 불태워 그것을 내공으로 치환하는 자살무공이라 해야 할 위험한 무공이었다.

개미굴에서 생포한 자들, 그리고 카자카미 히로토를 포함하여 생포한 이들을 통해 한국은 그 초월공에 관한 정보를 어느 정도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얻은 정보는 국제 무림맹에 등록이 되어 무림인이라면 누구나 열람이 가능했으니 도진 또한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완성도가 달랐지.'

개미굴의 뒷골목 흑도의 무인이 사용한 초월공과 카자카미 히로토가 사용한 초월공의 완성도에는 확연한 차이가 있었다.

후자는 제한적으로 사용한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만큼 보완이 돼 실전성마저 확보했다.

그를 통해 초월공은 불완전한 무공이며 이걸 익힌 이들은 기실 '모르모트'로 이용되고 있었을 거라는 추측이 가능했다.

생포한 이들의 진술로 그 추측이 옳다는 걸 증명했다.

"잘못 쓰면 목숨이 위험하지만 잘만 쓰면 더 강해진다고 하니 익혔습니다."

"우리 같은 씨발 인생이야 그런 거 따지겠습니까."

그저 힘을 준다고 하니 알면서도 배웠고, 실제로 주의점만 지켜 사용하니 당장 죽지도 않았다.

당연히 소문이 퍼졌고 그렇게 모인 이들 덕에 세력이 커졌으니 개미파가 예상 이상으로 거대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바로 초월공이었다.

그리고 그런 초월공을 거슬러 올라간 곳에 카자카미 히로토가 있었다.

카자카미 가문의 방계.

드러난 것 중 '가장 완성된' 초월공을 익히고 있던 것이 그였는데…….

"…아무것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또한 아는 바가 없었다.

카자카미 히로토 역시 '실험쥐'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에게 초월공을 준 이가 누군지, 인상착의조차 알 수 없었다.

그리하여 단서는 거기서 끊겼고 흑막에 관해선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한 채 사건은 미제로 남았다.

한데 바로 그 미제로 남았던 사건의 단서가, 전혀 생각지 못한 곳에서 이어졌던 것이다.

도진이 어느 정도 잡음을 감수하고 나섰던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슈미트라는 도진의 설명에 놀라움을 드러냈다.

그는 르슈라가 초월공을 익히고 있다는 건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가 파악하지 못할 만큼 초월공은 스스로 드러내지 않는 이상 파악하지 못할 만큼 은밀한 무공이었으며 르슈라는 이 부분을 철저하게 감추었기 때문이다.

한데 도진은 그것을 꿰뚫어 보았으니.

"소지존께서는 신안을 뜨셨군요."

천마가 가지고 있다는 신안(神眼).

그것은 말 그대로 상대를 꿰뚫어 보는 눈이다.

본래 입신지경(入神之境)에 이르러야만 뜰 수 있다는 바로 그 신안을 벌써 떴다는 걸 알게 됐으니 그 태산 같은 슈미트라마저 놀라움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도진은 싱긋 웃었다.

"아직 완전하진 않지만요."

도진은 초월공을 몇 번이나 경험했다.

그때의 경험이 르슈라의 초월공을 익힌 흔적을 짚어낼 수 있게 해 주었다.

"초월공을 익히고 있다는 건 핵심이 아니라 언제든 쓰다 버릴 수 있는 버림패로서 이용당하고 있다는 뜻이겠죠. 거기에 관한 부분을 설명해 주었는데……."

과연 말을 들을지는 미지수다.

도진의 말에 무언가를 깨닫거나 의심을 가지지 못할 정도로 우둔한 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깨닫게 된 것을 인정할 수 있느냐는 다른 문제였다.

이에 관해 슈미트라는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무형독이 내미는 독은 달콤하기 그지 없으니까요."

"……!!"

그 말에, 도진은 물론이요 위취련마저 놀란 얼굴이 되었다.

놀랄 수 밖에 없었다.

슈미트라의 입에서 나온 것이 '무형독'이었으니까.

도진이 물었다.

"무형독……이라구요?"

"예. 감언이설로 르슈라의 환심을 산 이들은 세간에 무형독이라 불리는 조직입니다."

그것은, 파편화되어 있던 정보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아주 커다란 연결점이 될 정보였다.

"그 조직이 무형독이라는 걸, 어떻게 알게 된 건가요?"

한층 진지해진 도진의 물음에 슈미트라가 성실히 답했다.

"바할라가 벌어들이는 이득의 많은 부분을 투자하여 만든 정보국이 있습니다. 그 정보국을 통하여 르슈라에게 접근한 이들이 무형독이라는 걸 확인했습니다."

"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시대에 돈이란 무언가를 이룰 수 있는 지극히 강력한 만능의 수단 중 하나다.

바할라는 산유국이자 희귀 광물의 수출국으로 어마어마한 부국(富國)이었는데 그 부의 상당수를 정보에 투자했다.

이런 바할라에서 무형독이 현재진행형으로 공작을 벌이고 있었기에 정보국을 운용, 그들에 관한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덕분에 도진은 파편화되어 있던 정보들을 맞춰 하나의 그림을 완성할 수 있었다.

"개미파와 카자카미 가문의 방계, 히로토를 이용했던 조직 또한 무형독이었다는 말이 되네요."

"예. 소지존의 말씀대로입니다."

카자카미 히로토에 이어 바할라의 르슈라까지.

이를 통하여 초월공의 출처가 무형독임을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

더 나아가 하나 더.

이들이 세계의 여러 곳에서 위험한 공작을 광범위하게 벌이고 있다는 것까지도.

방계라 해도 일본 최고의 가문 중 하나인 카자카미에 이어 바할라의 2왕자에게까지 마수를 뻗었으니 이들의 위험성이 어느 정도일지 쉬이 짐작이 가지 않는다.

"이러면…… 계획을 하나 더 세워야 할 것 같네요."

"예. 그것이 좋을 듯 싶습니다."

본래의 계획은 정글 게임팀을 습격한 이들을 찾는다는 조금 두루뭉술한 것이었다.

무장 세력과 관련이 있을 터이니 거기서부터 시작할 예정이었는데, 생각지 못하게 '꼬리'를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를 정보가 모였다.

"그럼, 이렇게 해 보죠."

생각을 정리한 도진이 제안했다.

* * * *

다음날 아침.

도진은 합동 수사팀에 말했던 대로 말끔한 모습으로 아침 회의에 참석했다.

회의는 합동 수사대만이 아닌 바할라의 1왕자인 슈미트라 왕세자와 귀족들 또한 모인 가운데 진행되었다.

"사전에 협의된 내용대로, 무장 세력을 은밀히 지원하는 이들에 관한 무력을 포함한 수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슈미트라가 말했다.

그것은 까놓고 말해 무장 세력을 뒤에서 지원하는 특권층을 때려잡겠다는 말과도 일맥상통했으니 당연히 귀족파의 귀족들이 반발했다.

"저하! 그 부분에 관해서는 재고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귀족들의 대표 중 한 명인 늙은 귀족의 말에 슈미트라의 시선이 향했다.

"무엇이 말이오?"

날카로우면서도 묵직한 시선과 목소리였으나 늙은 귀족은 움츠러들지 않고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엔 타국의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들의 힘으로 바할라의 사람을 친다니, 언어도단입니다!"

그러니까 외세의 힘을 빌려 자국의 백성을 쳐서야 되겠냐는 말이다.

여러 귀족들이 '맞습니다!', '다시 생각하셔야 합니다!'라며 동조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 아우성을 슈미트라는 부드럽지만 명백한 존재감을 담아 잠재웠다.

그리고 귀족들의 눈을 하나하나 마주하며 힘주어 말했다.

"그 죄인들 때문에 상처입은 이들을 대신하여 온 것이 이분들입니다. 이분들과 함께 하는 것은 그저 타국의 사람과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 피해입은 이들이 손을 잡고 함께 가해자를 징치하는 것이란 말입니다. 거기에 이기적인 계산을 감춘 발언이 끼어드는 건 용납될 수 없는 일입니다."

"……!!"

늙은 귀족은 입을 뻐끔거렸으나 결국 대꾸하지 못했다.

그의 언변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다.

그의 기백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본래 그는 젊었을 적부터 귀족들의 중심이었으며 한창 때에는 젊은 시절의 현왕마저 압도할 만큼 기질이 드센 사람이었다.

그러나 늙어 버린 그의 기세는 신마파산공의 경지에 다다른 슈미트라에게 전혀 미치지 못했다.

젊었을 적이라 해도 감히 대항하지 못했을진데 안주한 자리에서 노쇠해 버린 지금의 그가 슈미트라에게 대항할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그리고 이것이, 쇠락했던 바할라의 왕권을 다시 강력하게 만든 슈미트라의 카리스마였다.

바할라는 아직 '왕국'이다. 귀족들이 바라는 대로.

결국 군주인 슈미트라의 카리스마가 모든 것에 가장 앞서는 율법이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수사는 합동 수사팀과 슈미트라가 원하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나마트. 라화 상회의 회주로 내란 세력에 은밀히 물자를 지원한 혐의가 있다. 사실인가?"

"…죽어라!"

거대 상회의 회주였던 번듯한 인상의 중년 남성은 직접 영장을 들고 찾아온 슈미트라에게 칼을 박았다.

카앙-!

그러나 그 칼은 슈미트라의 근육을 뚫지 못했고 회주는 두터운 손에 목이 잡혀 연행되었다.

대낮에 이루어진 그 일을 백성들이 분명히 목격했다.

라화 상회를 시작으로 바할라에는 숙청의 바람이 불었다.

으레 숙청이란 부정적 의미로 쓰이는 때가 많았지만 이번만큼은 예외였다.

왕국의 백성들은 슈미트라를 절대적으로 지지했고 그 지지를 등에 업은 슈미트라의, 나라를 어지럽힌 이들에 대한 숙청이 지극히 정의로웠기에 숙청은 사전의 가장 첫 의미대로 '어지로운 상태를 바로잡는' 행위가 되었다.

부패한 관리, 졸부, 군인 등이 친히 수사대와 함께 하는 왕세자에 의해 체포되었고 죄 지은 자들이 벌벌 떨었다.

"지은 죄에 대한 심판에는 성역이 있을 수 없다."

슈미트라는 그렇게 선언했고 그것을 증명하듯 다음 행선지는 파격적이기 그지없었으니.

"…형님."

합동 수사대의 앞에는 그들을 증오하여 노려보는 바할라의 2왕자, 르슈라가 대치하듯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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