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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79화 (379/741)
  • 378화

    왕세자궁.

    왕세자가 허락한 이만이 들어올 수 있는 그 궁의 거실 내에 도진과 독마전, 그리고 투마전의 사람들이 모여 앉았다.

    크게 보면 천마신교 교주와 교도들의 모임이요 작게 보면 도진과 위취련의 독마전, 그리고 슈미트라의 투마전이다.

    그리고 흐르는 분위기 또한 셋으로 나뉘었으니 도진을 사이에 두고 위취련과 슈미트라가 미묘하게 기싸움을 하는 형국이다.

    수장이 그러하니 덩달아 독마전과 투마전의 교도들도 은연중 기싸움을 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껄껄. 본래 투마전과 독마전은 사이가 좋지 않은 편이었지.

    그것은 성향에 의한 자연스러운 껄끄러움이 낳은 관계였다.

    탁탑마왕이 전주로 있던 투마전은 정직한 육체의 수련으로 얻은 힘으로 모든 것을 정면돌파하는 성격이었다.

    반대로 독마 하연화가 전주로 있던 독마전은 눈치채지도 못할 정도로 은밀하게 독을 이용하여 상대를 제압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를테면 그런 것이다.

    탁탑마왕은 정면에서 상대를 때려 부수길 선호하는데 독마는 그렇게 당당히 모습을 드러낸 상대에게 은밀히 독을 살포하여 제압하는 걸 선호한다.

    이러하니 자연스럽게 서로의 사이가 좋을 수가 없었다.

    FPS 게임에 대입하면 더욱 이해하기 편한데, 조금 다르지만 여포와 존버에 대입할 수 있다.

    자신의 사격 실력을 믿고 종횡무진 맵을 누비며 상대를 학살하는 여포.

    그에 비해 은엄폐하여 기회를 포착, 상대를 처치하는 존버는 맞지 않는 것이다.

    당연히 성격도 달랐고 탁탑마왕과 독마는 티격태격하기 일쑤였다.

    -어린 아해가 벌써부터 빠졌구나.

    -뭐라는 거예요, 꼰대 장로.

    물론, 성향이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사이가 나빠지는 건 아니다.

    인간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동경하는 성향도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첫 단추부터 잘 꿰었다면 얼마든지 이야기가 달라질 수 있었겠으나…….

    -투마전의 아해가 먼저 시비를 걸었으니 사이좋게 하하호호하긴 힘들겠구나, 제자야.

    -예, 스승님.

    슈미트라의 첫 한 수.

    도진이 다 해소하지 못한 그 첫 수의 경력이 위취련에게로 향한 건 우연이 아니었다.

    슈미트라가 처음부터 그것을 의도했기에 일어난 일이었고 상대할 자가 드문 경지의 위취련이 그것을 간파하지 못할 리가 없었다.

    -왜 당신들이 먼저 소지존을 만난 거지?

    -어쩌란 말이냐.

    그렇게 슈미트라가 선빵(?)을 날렸으니 천마신교의 전통 아닌 전통은 지켜져 현대에서도 두 전의 사이는 좋지 않을 예정이었다.

    다만 큰 문제가 되진 않을 것이었다.

    -네 역할이 클 것이다, 제자야.

    -예.

    둘은 상극이고 둘끼리만 만났다면 서로 밀어내기만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 도진이 있다.

    둘은 서로를 직접 마주하지 않아도 된다.

    직접 마주하는 건 도진이면 충분하며 도진의 등을 따라가면 된다.

    그런 도진이 중화제가 되어 둘 또한 서로 함께 있을 수 있다.

    본래라면 하나로 모일 수 없었을 이들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 또한 천마의 역할이다.

    -나 때에도 그러했느니라.

    그러면서 위지혁이 들려주는 건 그가 살아 있던 시대의 일화다.

    -얼마 전 게임에서도 혈교(血敎)가 등장했었지.

    -예.

    -그 혈교는 실재했고 혈교의 발호가 나의 시대에 있었느니라.

    혈교는 정말로 무시무시한 광신도들의 단체였다.

    그 이름대로 피를 통하여 사공(邪功)과 마공(魔功)을 익히니 골수에 마기가 들어차 미쳐 버린 자들로 가득했다.

    위지혁은 그 혈교 무리를 투마전, 그리고 독마전과 함께 마주하게 되었다.

    -키히히히히.

    -키기기기기.

    미쳐 버린 자들.

    스스로의 몸을 그어 피를 내고선 그걸 다시 빨아먹는 자들, 눈깔이 시뻘게져 뒤룩거리는 자들.

    그런 자들을 거느린 혈교주는 이렇게 말했다.

    -혹세무민하여 배에 기름이 가득한 천마야. 내 앞에 조아릴지어다.

    …그리고 탁탑마왕과 독마가 그 조롱에 '훼까닥' 해 버렸다.

    -뿌려.

    -가.

    둘은 긴말을 하지 않았다.

    탁탑마왕을 필두로 한 투마전이 혈교를 불도저마냥 밀고 들어갔다.

    콰드득!

    "끄아아아악!"

    "머, 멈춰!"

    탁탑마왕은, 투마전의 교도들은 거슬리게 앞을 막고 있는 자들을 그야말로 '분쇄'하며 나아갔다.

    세상을 공포에 떨게 만들었던 광신도들은 투마전 앞에 무력하게 으스러지고 찢기고 갈려 나갔다.

    그것은 투마전만이 아니라 독마전이 합세하여 합작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미, 미친놈들이!!"

    독마전은 독을 뿌렸다.

    그냥 뿌린 게 아니라 아군과 적이 뒤섞여 있는 곳을 구분하지 않고 망설임없이 살포했다.

    문제는 그렇게 적아를 가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혈교의 교도들만이 나뒹굴었다는 것이다.

    독마전이 조절을 한 게 아니었다.

    그저 투마전이 독마전의 독에 당하지 않을 정도로 터프했을 뿐이다.

    완전히 영향이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것을 감내할 정도로 투마전은 터프했다.

    "싸우는데 고통이 없어서야 밋밋하지!"

    칠공에서 피를 흘리며, 혹은 피부가 검게 죽은 채 크하하 웃는 투마전.

    "저 무식쟁이들이 어떻게 중독되는지 잘 봐두도록."

    그런 투마전을 혀를 내빼고 나자빠지는 혈교도들과 비교 분석하며 독을 계속 뿌리는 독마전.

    그리하여 가짜 광기는 진짜 광기…… 아니 충성심에 분쇄돼 사라졌고 그것을 목도한 혈교주는 그대로 '빤스런'을 시도했으나 탁탑마왕과 독마에게 붙잡혀 나무에 거꾸로 매달려 생리현상을 강제로 해결하는 치욕을 당하고 세상을 하직했다.

    -그러니 제자야. 너도 이들을 잘 이끌어야 한다.

    -아, 예에.

    감동적인 이야기이자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얘기인 거 같은데 무언가 조금 미묘하긴 하다.

    일단 무제한 등급으로 영상화하려 해도 안 될 정도의 장면들이 가득할 것은 확실했다.

    어쨌든 틀린 이야기는 아니어서 도진은 착실히 대답하고 생각했다.

    위취련과 위연서, 그리고 독마전은 도진을 소지존으로 인정하고 따라주고 있었다.

    그것은 천마신공을 익히고 경지를 넘어 온전히 그 이름을 계승하는 미래를 도진이 보여 주었기 때문에.

    나아가 그것이 가능할 만큼의 심지가 있는 인간이라는 걸 증명했기 때문이다.

    슈미트라와 투마전의 무인들도 그렇다.

    도진은 슈미트라와의 '아이레'를 통하여 물리적인 시간을 초월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 대화를 투마전의 무인들 또한 보고 들었기에, 이들은 도진을 분명한 소지존으로 인정해 준 것이다.

    그러니까 이대로만 하면 된다.

    도진은 오늘보다 내일, 그리고 모레 더 나은 모습을 계속해서 보여줄 것이고 이들에게 자신이 모두가 동의하고 인정할 수 있는 천마임을 증명해 줄 것이다.

    그렇게 결론 내린 도진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설마 바할라 왕국의 왕세자님이 탁탑마왕의 진전을 이은 분일 거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네요."

    "예. 소지존의 말씀대로입니다."

    당사자인 슈미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천마신교의 교도라면 생각하기 힘든 일이었으니 천마신교는 태생에 의한 계급을 인정하지 않으니까.

    애초에 고대 무림에서 천마신교가 황궁에 의해 '혹세무민하는 마교'라는 누명을 쓰고 변방으로 쫓겨난 이유부터가 그것이었다.

    태생부터가 군주제와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 천마신교인데 바로 그 군주제의 나라인 바할라의 왕세자가 투마전의 전주였으니 도진이 앞서 천마신교의 교도인 독마전을 만난 경험이 있음에도 그리 놀랐던 것이다.

    "바할라는 사실, 150년 전만 해도 '나라'라 하기 힘들 정도로 엉망인 곳이었다고 합니다."

    그에 관해 슈미트라가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본래 힘이란 것은 너무도 쉽게 나쁜 방향으로 흐르고 마는 성질이 있습니다."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음에도 대쪽 같은 성격으로 올곧은 슈미트라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말이었다.

    "바할라의 사람들은 큰 힘을 가지고 있었으나 배움이 얕고 가르침이 없는 곳이었기에 마치 순리처럼 나쁜 방향으로 기울어 갔지요."

    그런 나라를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왕자가 있었으나, 그의 노력은 오히려 스스로의 목숨마저 위험하게 만들었으니 나라의 주인이었던 왕이 가장 부패해 있었기 때문이다.

    "낳아준 어머니마저 잃고 쫓겨난 왕자는 본래 목숨을 잃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인연이 닿아 원하던 바를 이룰 수 있는 힘을 얻게 되었으니 당대의 투마전주를 만난 것이었습니다."

    투마전주는 쫓겨난 왕자의 자질을 알아보고 신마공을 전수했다.

    그리고 왕자는 말 그대로 뼈를 깎는 노력 끝에 그 정수에 닿아 신마파산공의 경지에 이르러 다음 대의 투마전주가 되었고 왕위를 찬탈, 새로운 바할라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음,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네요."

    도진은 이 이야기를 나지윤의 자료를 통해 알고 있었다.

    바할라의 올바른 정신과 나라에 대한 자긍심 고취 등을 위해 동화책으로도 널리 퍼져 있는 이야기였다.

    다만 한 가지, 그 왕자가 투마전주와 만났고 신마파산공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라는 건 지금 처음 알게 되었다.

    "새로이 왕이 된 조상께서는 신교의 교리를 깊이 이해하고 공감하셨기에 그것에 따르고자 하셨습니다."

    "음."

    그것은 어떻게 보면 위험한 일이었다.

    '왕국'에 갑작스럽게 민주주의를 도입하려는 것이었으니까.

    다행히 선대의 왕은 지혜로운 사람이었다.

    "물론 급격한 변화는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으니 천천히, 우선 그 사상을 퍼뜨리고 조금씩 나라를 바꿔 가려 하셨습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타성에 젖어 자신의 권리 위에서 깨지 않으려 하는 자가 있었으며 반대로 손에 쥔 권력을 결코 놓지 않으려 하는 자 또한 적지 않았다.

    허나 신마파산공의 경지에 이른 왕의 의지는 그 이상으로 강렬했으니 바할라는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지금의 슈미트라에게까지 이르렀다.

    "아쉽게도 저의 아버지께서는 좋은 왕은 되지 못하셨습니다."

    슈미트라의 아버지, 현 바할라의 국왕은 안타깝게도 신마파산공의 경지에 이르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 의지도 심약한 편이라 무공의 경지에서도 나라의 운영에서도 큰 진전을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아들인 슈미트라가 역대급의 재능을 타고 났다.

    그 슈미트라가 선대의 의지를 이어 나라를 더 좋은 방향으로 바꿔 나가려 했으나…….

    "분에 넘치는 것을 쥐고 놓지 않으려는 이들의 방해가 거셉니다."

    국왕의 힘이 약한 틈에 그에 저항하는 세력이 커지고 말았다.

    예의 정글에 자리잡았던 무장 세력 등이 그랬다.

    그들은 단순한 무장 세력이 아니라 왕국의 변화에 반대하는 귀족파의 은밀한 후원을 받는 세력이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한 일이구나.

    -예.

    왕은 자신의 권력을 모두에게 나눠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한데 귀족은 그 왕이 계속 왕으로 있을 수 있도록, 왕이 나눠준 힘을 이용하여 반대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들은 슈미트라가 점진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공화정에 결사 반대한다.

    "그들은 저를 대신하여 동생을, 르슈라를 왕세자로 바꾸기 위하여 공작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르슈라. 선민사상에 찌들어 있던 바할라의 2왕자.

    그리고 슈미트라의 이복동생.

    "…동생분은 교도가 아니시겠죠."

    "예. 그리고 신마공을 익히는 것조차 거부했습니다."

    "그것뿐만이 아닌 것 같던데요."

    도진의 말에 슈미트라가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르슈라는, 외부의 세력과 결탁하고 있습니다. 아주 위험한 곳과."

    "그런 것 같았어요. 그래서…… 조용히 말을 전달해 두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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