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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77화 (377/741)
  • 376화

    소란으로 인해 아닌 밤중에 모두 모이게 된 합동 수사팀의 사람들은 걱정을 지우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으음……."

    "문제가 생기지 않아야 할 텐데 말입니다……."

    그들의 걱정은 다른 게 아니었다.

    바로 어어하는 사이 슈미트라와 함께 외부인 접근 금지 구역으로 가 버린 도진과 잠룡문도들이다.

    소란은 슈미트라의 개입과 사과로 인해 큰 문제로 번지지 않고 마무리 되었다.

    2왕자의 무례를 사과받았으니 손님의 입장으로서 문제가 최소화될 좋은 형태였다.

    문제는 그 마찰 과정에서 있었던 도진의 행동이다.

    "명성이 높고 실력도 대단하지만 사실은 고등학생이지 않습니까."

    "아직 혈기가 왕성할 때이니……."

    상식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분명히 잘못한 건 2왕자였다.

    지극히 객관적으로 판단해도 2왕자의 일방적인 잘못이었다.

    그런 2왕자의 잘못을 통렬히 지적하고 되돌려준 도진의 언행은 또한 분명히 '사이다'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고 잘못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상식이 통하지 않고 잘못이 되는 일이 사회에서는 빈번하게 일어나곤 한다.

    정부와 무림맹 소속 무인들이 그 상식을 몰라서 기세를 일으키는 중에서도 참은 게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란, 상식과는 다른 방향으로 튀는 경우가 많은 감정 또한 크게 작용하는 것이기에.

    상대의 잘못에 불쾌함을 그대로 드러냄으로써 개인 대 개인마저 넘어 그 이상의 영역에서 문제가 생길 것을 걱정했기에 참은 것이다.

    한데 바로 그런 때에 도진이 갑자기 나서서는 내키는 대로 행동해 버리고 말았다.

    '어른의 입장'에서 볼 때 그것은 너무나 경솔한, 그 나이대 아이들의 감정이 앞선 태도였다.

    "미리 경고를 했었어야 했는데……. 저희의 실책이로군요."

    "예. 불찰입니다."

    그들은 이번 일을 아직 햇병아리인 도진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자신들의 책임이라 자책하며 불미스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걱정했다.

    '응…….'

    허나 유지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유화성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그저 가문 최고의 보물인 조카의 딸이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 아니라 거기서 더 나아가, 그런 이유로 조금 더 찬찬히 관심을 두고 지켜보아 알게 된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정글에서 모두를 이끌고 나아가던 그 등이 많을 걸 알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들의 말처럼 도진이 그저 혈기로 경솔하게 행동할 이가 아니란 걸 유화성은 확신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무언가 의도가 있었다는 건데…….

    그 의도가 무엇이었는지 아직은 짐작이 가지 않는다.

    거기까지 도진을 파악하지 못한 대다수의 이들은 그저 걱정이다.

    바할라는 국제 협약을 받아들인 국가 중 하나였으니 최악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거라는 최소한의 믿음은 있었다.

    애초에 정글 게임팀이 이곳을 촬영 장소로 삼은 것도 바할라가 그런 협약을 받아들인 '현대의 상식이 통하는 나라'였기 때문이었으니까.

    허나 그렇다 해도 도진의 행동은 왕권을 완전히 무시하는 행위로 받아들일 여지가 있을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여기에 도진을 마주하며 말하던 슈미트라의 기세는 웃고 있었으나 심지어 2왕자를 향할 때 이상으로 강렬했다.

    슈미트라 직속 경호대로 보이는 범상치 않은 무인들의 기세 또한 마찬가지였으니 불안과 걱정이 도저히 가시질 않는다.

    그런 슈미트라를 웃는 얼굴로 따라간 도진의 배짱이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뒤늦게 감탄이 나오고 만다.

    "혹시 도진 학생의 귀가가 늦어지면 한 번 찾아가 보기는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에. 그러도록 하겠습니다."

    정부 측 대표가 무림맹 측 대표의 말에 꺼림칙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설마 큰일이야 있겠습니까."

    "예, 그렇지요."

    대한민국 최대의 관심이 집중된 후기지수가 김도진이었기에 그들 또한 김도진에 관한 상당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되로 받으면 기필코 되 이상으로 돌려주는 성격이라는 것을.

    허나 동시에 때와 장소를 가리는 지혜 또한 있다는 걸 안다.

    슈미트라야 말할 것도 없다.

    그 덩치와 기세와 다르게 지혜롭고 인자한 왕세자로 정평이 난 사람이다.

    그러니 더욱 이렇게 바로 행동하지 않고 걱정만 하며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

    "하하하. 뭐 설마 주먹다짐이라도 하겠습니까."

    "하하하하. 그렇지요, 예……."

    * * * *

    도진은 위취련을 필두로 한 잠룡문도들과 함께 슈미트라와 그 직속 무인들을 따라 걸었다.

    조용한 가운데 그들은 외부인은 출입이 불가한 왕세자궁 안에 들어섰고 그 즈음 슈미트라가 침묵을 깨고 입술을 뗐다.

    "한국에는 '아이들은 싸우면서 큰다'는 말이 있었지요."

    "네."

    "바할라에도 잘 들어맞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바할라가 주먹다짐에 인색하지 않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

    "하하. 예, 맞습니다. 다만 그것이 단순히 호전적이기 때문은 아닙니다."

    그러면서 슈미트라가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바할라의 사람들은 불만이 있으면 그것을 드러내 놓고 이야기하는 게 미덕이지 참는 걸 미덕이라 생각지 않습니다."

    바할라 사람들의 기질이 거칠기에 그렇다.

    담아두면 오히려 그런 부정적인 감정이 커지고 이윽고 더 큰 싸움을 낳기에.

    "부정적인 감정을 그 자리에서 털어 내고 깔끔하게 없애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말로 해결이 되지 않으면 싸우게 되는 것이지요."

    그 싸움은 서로의 악감정을 쌓기 위함이 아니다.

    언쟁으로 인해 머리에 몰린 피를, 너무 뜨거워진 감정을 쏟아내고 식히기 위한 싸움이다.

    그렇기에 그 싸움은 단순한 싸움이 아니며 서로 간의 예의를 지킨 '비무'의 형태가 된다.

    "좋은 문화네요."

    도진은 설명에 진심을 담아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불만을 속에 담아두기만 하면 그것은 쌓이고 쌓여 부패한다.

    바할라 사람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자신들의 기질이 거칠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기에 담아 두어 증오를 만들기 전에 오히려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주먹다짐을 함으로써 깨끗하게 털어 내고 더 나아가 관계를 돈독히 하는 것이다.

    "그 예의를 다한 결투를 우리는 '에이레'라 부릅니다. 에이레는 신성하고 현명한 행위로, 에이레를 통하여 감정을 다스리고 상대에 대해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렇군요."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일행은 왕세자궁 깊은 곳에 위치한 독특한 형태의 실내 연무장 안에 들어섰다.

    형이상학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었던 복잡했던 외부와 달리 내부는 그저 엄청나게 넓은 공터였다.

    그 공터의 가운데로 천천히 나아간 슈미트라가 몸을 돌려 도진을 마주했다.

    "잠룡문주 김도진. 당신에게 에이레를 신청합니다."

    웃으며 청하기에는 무시무시한 내용이다.

    그러나 도진은 오히려 기다렸다는 듯 웃는 얼굴로 흔쾌히 그 에이레를 받아들였다.

    "예. 좋습니다."

    꽈아아아아아앙-!!

    * * * *

    서로 간의 인사 후 선공을 취한 것은 슈미트라였다.

    웃는 얼굴과 정중한 예의가 허상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강렬한 일격이, 마치 공간을 접은 것처럼 무시무시한 속도로 때려박혔다.

    꾸, 우우웅-!!!

    마치 수류탄이라도 터진 듯한 굉음은 진각이었다.

    그리고 도진에게 때려박힌 일격은 그 진각을 통하여 증폭된 일권(一拳)이다.

    슈미트라는 180을 조금 넘은 도진보다 10cm가량 더 크다.

    허나 두 사람 간의 체급차는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두 배는 될 정도로 느껴졌으니 단순히 키만이 아니라 슈미트라의 체격 자체가 압도적으로 월등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그 쇄도는 마치 곰이 인간을 습격한 듯한 형상이었으나 위취련을 포함한 잠룡문도 중 누구도 도진을 걱정하지 않았다.

    도진은 그 일격을 한 손으로 받아냈다.

    주먹이 다 뻗기도 전에 오히려 왼손으로 마중을 나갔다.

    그 왼손이 거대한 주먹에 닿는 순간 자연스럽게 허리를 틀며 왼발을 함께 끌듯 물러남으로써 거대한 경력 대부분을 무위로 만들고 남은 것은 흘려냈다.

    찰나에 일어난 그 한 수를 위취련은 자랑스런 얼굴로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눈에 담으며, 마치 일부러 그런 듯 자신에게로 쏘아진 도진이 흘려낸 남은 여력을 새하얗고 고운 손으로 받아냈다.

    사락.

    옷자락이 부드럽게 스치는 소리와 함께 손이 원을 그렸다.

    정글에서도 한 번 선보인 적이 있는 그 한 수는 독마 하연화의 수공(手功)에 깃든 묘리를 구현하는 것이다.

    독을 다루기에 위취련의 손은 그 어떤 이보다 정교하게 움직여야만 했다.

    그렇기에 그녀의 수공은 지극히 높은 경지에 이르러 있었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거대한 경력을 자신의 지배 하에 두고.

    꽈아아아앙-!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연무장의 벽에 때려박아 버렸다.

    '제법 단단하구나.'

    남은 여력이라 하나 철판 정도는 두부처럼 우그러뜨릴 위력이었음에도 실내 연무장엔 미세한 흔적만이 겨우 남을 정도였다.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지 바할라의 무인들 중 누구도 위취련이 쳐낸 경력에 시선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슈미트라 또한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날뛰고 있었다.

    부웅-!

    무시무시한 경력이 담긴 주먹이 크게, 그러나 빈틈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유연하게 경로를 그리며 도진을 노린다.

    꽈아앙!

    마치 주먹이 아닌 미사일이 쏘아지는 듯하다.

    도진은 그것을 정면에서 받아내지 않고 위력을 경감시키기 위해 마중을 나가고, 최대한 흘려내는 데에 집중했다.

    흩날리는 옷자락 사이로 드러나는 슈미트라의 구릿빛 근육은 차라리 예술의 영역에 이르렀다 해야 할 정도로 초월적이다.

    도진이 아는, 육체의 부분에 있어 최고의 자질을 타고난 벽태웅마저 슈미트라에 비하면 손색이 많다고 해야 할 정도다.

    그것은 슈미트라가 벽태웅 못지 않은 천부적인 육체를 타고난 데에 그치지 않고 그 육체를 더욱 연마하여, 상상도 못할 피나는 노력을 통하여 더욱 높은 경지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신마공(身磨功).

    육체를 담금질하여 주어진 한계를 깰 수 있도록 해주는 연신공.

    그 신마공의 육체를 갈고 부수는 고통을 감내하여 이윽고 극성에 다다르는 데 성공하면, 신마공은 하급의 연신공에서 신공(神功)으로 탈태한다.

    그것이 바로 신마파산공(身磨破山功).

    이름없는 고아에서 천마신교의 장로가 된 탁탑마왕(托塔魔王)의 진신절기였다.

    인간의 몸으로, 인간의 주먹으로 산을 부술 수 있게 해주는 무공.

    눈앞의 왕세자 슈미트라는 바로 그 신마파산공의 경지에 이른 무인이었다.

    1, 2년으로는 결코 이룩하지 못할, 평생을 쉼없이 연마하여 이룩한 육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산을 부술 거력(巨力)이 폭풍처럼 도진을 몰아친다.

    꽈아앙-!

    꽈광!

    도진이 맞상대하지 않고 최대한 그 위력을 죽였으나 그럼에도 흘려내지 못한 경력이 사방으로 몰아치며 폭음을 터뜨린다.

    그 중심에 있는 도진은 폭풍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워 보인다.

    그러나 지켜보는 위취련을 포함한 독마전의 무인들 중 누구도, 여전히 한 점의 불안도 비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이 보고 있는 도진의 등이 언제나처럼 명확했기에.

    -강하구나.

    도진의 안에서 위지혁이 말했다.

    -예, 스승님.

    도진은 부정하지 않고 사실 그대로를 인정했다.

    눈앞의 슈미트라는, '지금'의 도진보다 강했다.

    -그런데 우리 제자는…… 어쩐지 신이 난 것 같구나.

    위지혁이 웃었다.

    씨익-

    그리고 도진도 웃었다.

    -예. 그 말씀대로입니다.

    콰악-!

    시종일관 펼쳐진 채 유능제강(柔能制剛)의 묘리를 따르던 도진의 손이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오오오오오오오-!!

    천마기가 그에 호응하듯 포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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