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2화
'정글 게임'은 좌초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 정도로 큰 사건이 있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촬영은 완료되지 못했으며 심지어 완료되었다 해도 이런 일이 있었던 프로그램을 지상파에 어떻게 방영하겠느냐는 말이다.
때문에 외주 제작을 의뢰했던 방송사는 약속했던 계약금을 포기하면서까지 계약을 무효로 해 버렸고 정글 게임은 전파를 탈 기회가 사라져 버렸다.
여기에 손정혁의 사건까지 터지며 이미지마저 나락으로 갔으니 회생 기회조차 없을 것 같았다.
방송국 외 투자했던 곳들 또한 발을 빼려 했다.
바로 그런 때에 나선 것이 오대용과 도진이었다.
-속보! 바른 엔터, '정글 게임'을 샀다!
-'도렌 진핏' 김도진, 정글 게임에 투자했다
바른 엔터가 정글 게임의 판권을 샀다.
이미 촬영된 분량에 추가 촬영을 더하여 너튜브, 바른 엔터 TV를 통하여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가능성이 있어."
오대용은 어느 정도 확신을 가지고 있었으며 잠룡문의 문주로서 투자를 결정한 도진 또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이야 아직 TV가 중심이지만 콘텐츠의 중심은 오래가지 않아 웹으로 옮겨가게 된다.
너튜브가 성장하며 '아주 강력한 콘텐츠'를 TV가 아닌 너튜브에서 제작, 공개하였을 때 그것이 증명되었다.
도진은 그것을 전생에서의 경험으로 알고 있었으며 오대용은 그동안의 공부와 경험으로 직감했다.
그리고 이제 '버려진 황태자'가 아닌 오성의 중심에서 살기로 결심하며 완전히 달라진 오대용은 과감하게 투자를 결정한 것이다.
-이걸 예토전생 시키겠다고?
-김도진이 나섰으니 성공이야 하겠지만 이건 쵸큼.. 무리수가 아닐런지..
여론은 그리 좋지 않았다.
이미 보여준 게 많은 도진이 투자를 결정했으니 성공은 할 거라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러나 그것과 별개로 어떤, 새하얀 벽에 묻고 말 어떤 오점의 이미지 또한 공존했던 것이다.
바로 그런 때에, 안티체리의 진심이 세상에 통했다.
한 번의 진심은 오히려 통하지 않을 때가 더 많다.
몇 번이고 진심을 가지고 두드려도 외면당하는 경우 또한, 많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두드리다 보면 가끔은.
그렇게 쌓이고 쌓인 진심이 모두 드러나는 때가 있다.
너무나 드높은 벽 뒤에 가려졌던 진심은, 그렇기에 드러난 순간 그 벽보다 커다란 진심을 사람들에게 알게 해 주었고 이윽고 그만큼의 보답을 받게 되었다.
-안티체리, 모든 것에 배신당한 때에도 스스로 한 기부 약속을 배신하지 않았다.
-팬들에게, 무대에 언제나 진심이었던 안티체리.
도진의 지인 관계에 있어 안티체리는 아픈 손가락 같은 것이었다.
이은지는 도진이 아니어도 결국은 성공할, 성공할 수밖에 없는 '주인공' 같은 사람이었다.
동기인 레드슈 또한 그 노력은 기필코 보답받을 거라 믿을 수 있는 빛나는 사람이었고.
그러나 안티체리는 아니었다.
너무나 늦어 있었고 너무나 많은 것이 잘못되어 있었다.
그래서 그토록 분명한 진심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성공할 거라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도진이 그러하니 당사자인 안티체리는 더더욱 그것을 잘 알고 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 싶은 것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니까.
도진은 안티체리의 성공을 바랐고 그를 위해 도움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안티체리가 드디어, 보답을 받았다.
"…제의가 왔어."
"제의?"
"응. 크라우드 펀딩을 하고 싶대."
오대용을 통해 온 팬클럽의 제의가 있었다.
'정글 게임'에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투자하고 싶으니 함께 판을 짜달라는 것이었다.
"이런 건 당연히 해야지?"
"동감이야."
그래서 바른 엔터는 열일을 해 크라우드 펀딩을 위한 굿즈를 제공하기로 했다.
금액을 10만 원, 5만 원, 3만 원, 만 원으로 나누고 금액별로 굿즈를 제공하기로 했으며 일인당 한 번 참여하는 방식이었다.
…그리고 예상외의 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 집 가챠 왤케 하자가 있음?
-그러게. 절라 짜네.
-?? 혜자 아님?
-아니 혜자는 맞는데 왜 단뽑밖에 없음. 가챠면 10연뽑이 있는 게 정상 아님?
-10연뽑 미친놈아 ㅋㅋㅋㅋㅋ
-미친놈들아 이거 뽑기 아니라고 ㅋㅋ
정글 게임에 관한 펀딩이었으니 안티체리만이 아닌 이은지, 레드슈에 관한 굿즈를 제공했는데 포토 카드 등 정석적인 것들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다만 랜덤 증정하는 것들도 있었는데 그걸 뽑기, '가챠'라고 하며 여러 번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격렬한 항의(?)가 들어온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사행성 도박(?)을 장려할 순 없었기에 시스템을 유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러자 팬들은 언제나 그랬듯 방법을 찾아냈다.
-가족이나 친척, 친구한테 부탁하면 됨.
-ㅋㅋㅋ 악랄한 소속사 놈들. 그런다고 가챠 못 할 줄 아냐?
-아 ㅋㅋ 입벌려 지갑 들어간다 ㅋㅋ
-아니 사장님, 지금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요, 물건 안 내놓으면 무사히 못 넘어간다고 ㅋㅋ
기실, 정글 게임 정도 규모의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제작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오대용이 '재벌 3세' 타이틀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면, 도진이 어로스를 통하여 큰 자금이 생기고 그것을 오성아를 통해 지금도 불리고 있지 않았다면 시도도 못할 일이었다.
한데 여기에 팬들의 펀딩이 더해지면서 호랑이가 날개를 단 듯한 형국이 되었다.
팬들의 협박(?)에 굴복하여, 그들이 혹시나 좋지 않은 형태로 중복 참여를 할까 참여 횟수도 늘렸다.
프로그램은 분명히 성공할 것이었으니 이보다 좋을 수가 없다.
여기에 더해 손정혁에 대한 여론도 반전했다.
-이게 그 씨발데레인가 뭔가 하는 그거냐.
-손정혁은 앞으로 평생까방권 인정하겠읍니다..
안티체리를 등지지 않고 계속 진실된 팬으로써 있있던 손정혁의 행보가 드러났다.
동시에 그가 자숙하게 된 이유가 안티체리를 원색적으로 욕하던 이들과의 싸움이었음이 드러나며 더더욱 여론이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손정혁, 바른 엔터와 계약! 안티체리와 한솥밥 먹는다.
떡상한 손정혁은 바른 엔터와 계약했다.
-와.. 이게 성공한 성덕인가.
-이 정도면 소설 아님? ㅋㅋ
그야말로 '성공한 팬'으로 안티체리와 같은 소속사에 입성한 손정혁의 이야기는 더더욱 회자되었고 정글 게임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계약을 해지했던 방송국 쪽에서 연락이 왔다.
"정글 게임 관련해서 할 말이 있다는데?"
"이야기를 들어는 봐야겠지?"
"그러려고."
바른 엔터를 필두로 하여 정글 게임 투자자들, 그리고 팬들까지 모인 자리가 만들어졌고 예능국의 국장이 방문했다.
은빛 안경테가 차가운 카리스마를 상징하는 50대의 여성이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단단히 결심한 얼굴로 말했다.
"다시는 이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저에게 힘을 실어 주십시오."
그것은 단순히 뒤늦은 사과가 아닌, 이런 일을 만들지 않을 수 있도록 힘을 가지고 싶다는 말이었다.
들은 게 있었다.
애초에 방송국 측에서는 계약금조차 책임을 물어 회수하려 했다고.
한데 그것을 결사 반대하여 계약금을 포기하고 해지하는 형태로 진행한 게 현 예능국의 국장이라고 했다.
애초에 그런 이야기를 들었기에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이었는데, 그녀의 말이 참석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대표로 오대용이 물었다.
"믿어도 되겠습니까?"
국장이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단 한 단어에 담은 결심이 느껴졌다.
오대용이 마주 고개를 끄덕이고서 말했다.
"좋습니다. 그러면, 협의를 진행해 보도록 하죠."
* * * *
협의를 통하여 정글 게임은 다시 지상파를 통하여 송출될 수 있게 됐다.
다만 방송국이 독점할 수는 없었으니 그에 관한 권리가 바른 엔터와 잠룡문, 팬들 등에게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정글 게임은 TV로 송출되지만 동시에 그 하이라이트, 흔히 말하는 클립 등이 바른 엔터 TV를 통해서 업로드 되는 형태가 되었고 수익 또한 주주들에게 배당되듯 나뉘게 됐다.
미래엔 오히려 방송국 등이 앞장 서서 너튜브에 채널을 개설, 진행하는 일과 개인의 소액 투자 등이 조금 더 빠르게 실현된 느낌이다.
동시에 이와 관련한 부분에서 연락을 위한 창구를 오직 한 명, 예능 국장에게만 허락함으로써 그녀의 입지가 커질 수 있도록 했다.
그런 식으로 정글 게임과 관련한 일이 일단락 되었을 때, 도진은 또 다른 쪽의 일에 관해 나지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선은 세 가지야."
나지윤은 무림인으로는 보이지 않는 곱고 기다란 손가락을 세 개 펼치고서 하나를 접으며 말했다.
"첫 번째. 그놈들, 영어를 썼지만 동양인이었지."
"응."
"그런데…… 어느 나라 사람인지 특정이 되지 않아. 몽골로이드, 동아시아인인 건 확실한데 말야."
도진과 독마전에 의해 생포된 놈들은 당연하게도 입을 열지 않았다.
심지어 자백제를 써도 나오는 게 없었는데, 그렇게 심문을 받는 놈들의 맨얼굴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동양인의 얼굴. 그러나 그 동양 중 '어느 나라 사람인가'를 특정할 수가 없었다.
언뜻 중국인인가 싶다가도 뜯어 보면 많이 다르다.
한국인, 중국인, 일본인은 물론이요 그 어떤 나라의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 없을 만큼 이질적이었다.
"성형의 흔적은 없었어. 그렇다면 국적을 특정할 수 없도록 관련된 특별한 무공을 사용해서 특징을 없앴을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확단할 순 없지."
심지어 영어의 억양마저 페이크일 수 있다.
그리고 두 개째의 손가락이 접힌다.
"두 번째. 목적이 명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어."
이번 습격은 치명적이었다.
도진이 아니었다면 분명히 다 죽었을 터.
그러나 결과적으로 단 한 명도 죽지 않았는데 이 부분에 의문점이 있었다.
"놈들은 철저하게 일반인만을 노렸다고 했어. 그런데 결코 급소를 노리지 않았지."
그래, 그들은 철저하게 정의검가의 경호를 뚫고 일반인만을 노렸다.
그러나 즉사하지 않도록 급소를 피해 노렸으니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부분이었다.
"습격은 2왕자 세력을 돕는 형태로 진행됐어. 한국의 개입이 무서워 정글 게임팀을 죽이지 않으려 했던 거라면 이해할 수 있지. 하지만 마지막에 네가 개입하기 전, 그때가 되어서는 태도가 달랐다고 했지?"
"맞아."
처음부터 죽일 의도가 없었다고 하면 마지막까지 그래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도진이 도착한 그때에는 분명히 다 죽이려고 했다.
하마터면 설현주가 목숨을 잃을 뻔 했다.
그래서 모순이 생겼다.
"세 번째. 놈들의 연락 체계가 어설픈 부분이 있었어."
"음."
"그 정도의 진법마저 준비하고 정의검가의 통신마저 먹통으로 만든 세력이라기엔 연락 체계가 너무 어설펐어."
그랬다.
도진이 거침없이 진입하여 놈들을 마주쳤을 때, 놈들은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예상과 다르게 도진이 전혀 헤매지 않고 도착했다 해도 그 사이의 시간에 놈들이 연락을 받을 여유는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말이다.
결정적으로, 진법의 중심에 도착했을 때 놈들은 철수를 다 하기도 전에 도진에게 붙잡혔다.
따져 보면 정말로 어설픈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삼류 악당도 아니고 그 정도나 되는 역량을 보여준 세력이 그렇게 꼬리를 잡힌다고?
"뭔가 알아낸 건 많은 거 같은데, 오히려 아리송한 부분은 더 늘어난 거 같네."
도진의 말에 나지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응. 뭔가,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고 있는 놓친 부분이 있다는 거지."
이쪽 입장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들이 있을 때엔 그 이해를 방해하는, 공백을 채워야 할 요소들이 있다는 소리다.
"일단 네가 들었다는 그 '도적'이란 호칭도 상당히 신경쓰이고."
"그렇네."
그들은 원주민이 아니었고 정글 게임팀과 구원 부대 또한 침략자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구원 부대를 '도적들'이라 불렀다.
"뭐, 문제 풀이를 위한 공식이 없는 상황에서 골몰만 하고 있을 순 없으니 공식을 찾아봐야겠지."
"그래."
웃으며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도진은 그날 벙커에서 공식을 찾기 위한 단서 하나를 손에 넣었다.
수기로 작성된 장부에서 본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던 이름 하나.
Mu Seok-ho.
그 이름은, 다름 아닌 DS 엔터테인먼트 대표의 이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