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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71화 (371/741)
  • 370화

    도진 일행을 마주한 복면인들의 수장, 무인대(霧刃隊)의 2대주는 분노했다.

    그의 휘하에 있던, 그가 대주가 되어 이끌어야 했던 무인대의 신입들이 전멸했으니 분노할 수밖에 없었다.

    그 분노를 이를 악물고 억누르며 퇴각하려 했는데.

    겁도 없이 일부의 인원이 코앞에 나타났다.

    2대주는 오히려 그것을 반겼다.

    어찌 반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주친 이상 기필코 살인면구해야 했으니 퇴각하지 않고 증오스런 놈들의 목을 벨 수 있게 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것은 뒤처리를 위해 남았던 무인 1대의 대원들 또한 마찬가지여서 그들은 대번에 살기를 내뿜으며 도진 일행을 포위하려 했다.

    그러나 그들의 살기는 도진에게 미치지 못했으니 위취련을 필두로 한 독마전의 무인들이 앞으로 나서며 무인대의 살기를 차단한 것이었다.

    2대주의 분노가 더욱 팽창하며 살기와 함께 일렁였다.

    그런 2대주의 모습에 위취련은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찮은 미물 따위가 감히 소지존께 냄새를 풍기게 할 수는 없느니라."

    위취련은 겉보기에 30대 중반 즈음으로 보인다.

    그것도 그냥 30대 중반이 아니라 TV에 나오는 여배우처럼 상상도 못할 수준의 케어를 받고 자기관리를 한 것 같다.

    그러나 기실 그녀의 나이는 오십을 바라보고 있으니 노화를 늦출 만큼의 경지를 거기서 엿볼 수 있다.

    2대주는 위취련에 관해 자세히 알지는 못했으나 느껴지는 기세만으로도 범상치 않은 고수라는 걸 알아볼 만큼의 안목은 있었다.

    "감히!"

    때문에 눈동자를 일그러뜨리며 외쳤으나 펼쳐지는 초식만큼은 정교하고도 예리했다.

    훅-!

    쏘아진 단검은 '꿰뚫는다'고 해야 할 만큼 빠르고도 매섭다.

    본래 단검이란 사정거리가 짧은 것이 단점이었으나 위취련은 무기를 들지 않았기에, 손에 낀 복잡한 디자인의 수투가 전부였기에 고스란히 이점만을 취할 수 있었다.

    위취련은 쏘아진 단검을 받아내는 대신 피했다.

    종이 한 장 차이로 아슬아슬하게 독묻은 단검은 얼굴을 스쳤고 그것이 채 회수되기도 전에 하단을 노리고 쏘아진 단검 또한 옆으로 반걸음 옮기며 상체를 트는 것으로 무위로 만들었다.

    펑!

    그리고 동시에 마술처럼 이루어진 출수(出手), 왼손의 촌경을 2대주는 가까스로 피해냈다.

    '…….'

    시간으로 따지면 채 2초도 되지 않을 만큼 짧은 순간의 공방.

    2대주는 그 짧은 순간으로 위취련이 짐작한 것보다 더 고수라는 걸 깨달았다.

    후훅-

    펑!

    파르라니 독이 묻어나는 단검은 현란한 곡선을 그리는 대신 무시무시하게 날카롭고 빠른 직선을 연달아 그어냈다.

    전형적인 암살자의 투로다.

    다만 전형적이라고 폄하하기엔 그 완성도가 높으니 2대주의 경지가 그만큼 높다는 뜻이다.

    하지만 그런 2대주의 무공은 위취련에게 단 한 번도 닿을 수가 없었다.

    "……."

    으득-!

    2대주가 이를 악물었다.

    그의 투로가 완벽하게 읽히고 있었다.

    위취련의 흔들림없는 시선이 그를 온전히 포착하고 있으니 단검이 닿을 수가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의 단검은 '단순한 직선'을 그리는 게 아니다.

    암살검이란 은밀하게 상대의 허를 찔러야 하는 것.

    그의 단검 또한 위취련의 시선을 피해, 사고의 공백을 피해 움직였다.

    허나 그 모든 시도가 무위로 돌아갔다.

    대부분은 '눈'을 피하지 못했고 기껏 시야를 벗어났다 싶으면 귀신처럼 수투를 낀 손이 투로를 꺾어 버렸다.

    훅-!

    미간을 노리는 단검에도 위취련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는다.

    그저 반걸음 물러나는 것으로 사정거리에서 벗어나려는 그녀에게, 2대주는 돌연 단검을 퉁기듯 날려 버렸다.

    자신의 무기를 날려 버리는 의외의 행동에 당황할 법도 한데 위취련은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 단검을 무려, 잡아채 버렸다.

    그리고 원을 그려 짧은 순간 회전을 담아 오히려 2대주에게 쏘아냈다.

    단검을 잡아채는 것부터 쏘아내기까지가 하나의 원을 그리며 이루어진 경탄이 나오는 한 수였다.

    '크흑.'

    2대주는 그것을 가까스로 받아냈다.

    투로는 단순했으나 생각 이상의 내공이 담겨 있어 주춤거리며 두 걸음이나 물러나고 말았다.

    눈앞의 '도적'은, 인정하기 싫지만 그보다 높은 심후한 내공을 보유하고 있었다.

    '…….'

    호흡의 틈을 이용하여 주변을 파악했다.

    무인 2대의 대주인 그를 포함한 무인대의 20여 명은 목적을 전혀 이루지 못하고 있었다.

    새파랗게 어린놈으로 이어지는 길은 완전히 차단되어 있었으며 이번 목표물이었던 정의검가의 무인들마저 강 건너 불구경하듯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다.

    위취련을 필두로 한 독마전은 그만큼이나 상정외의 전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대로는 명백히 득보다 실이 많을 수밖에 없는 구도다.

    같은 판단을 한 무인대 대원들의 시선이 찰나간 그물처럼 스쳐간다.

    스스슷-

    다음 순간 무인대 대원들이 모조리 뒤로 몸을 물렸다.

    그리고.

    사아아아아아…….

    짙은 안개가 일대를 뒤덮었다.

    "……!"

    유화성을 포함한 정의검가 무인들의 얼굴에 경악이 번지며 무기를 빼들었다.

    분명히 진을 파괴했거늘 다시 안개가 끼다니……!

    허나 그들과 달리 도진은 일말의 동요조차 보이지 않았으니 안개가 끼는 순간 기민하게 움직여 도진과 어깨가 닿을 만큼 밀착한 유지은이 물었다.

    "후배."

    "네, 선배."

    "방금 그거, 진법이었지?"

    도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맞아요."

    이 안개는 환영미로진의 축소판 같은 것이다.

    특기할 만한 부분이라면 그것을 만들어낸 것이 도구가 아니라 사람이란 점으로, 썰물 빠지듯 몸을 물렸던 복면 쓴 놈들이 특정 방위를 밟고 내공을 움직여 진법을 발동시켰다.

    유지은은 찰나의 순간 그것을 놓치지 않고 보았다.

    "진법이란 거, 기계랑 비슷한 느낌이네."

    "역시 똑똑하시네요, 선배."

    비할 데 없는 천재답게 그 현상을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담았고 이내 안에 담긴 이치마저 꿰뚫어 보았다.

    그녀의 말대로 진법이란 현대의 기계를 닮았다.

    줄을 당겨 바구니를 당기는 도르레는 보는 순간 이해할 수 있지만 버튼을 누르면 엘리베이터가 도착해 문이 열리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더 나아가, 버튼 한 번으로 다른 대륙에 오차 범위 1미터 내에 착탄하는 '대륙 간 탄도 미사일'쯤 되면 아예 다른 차원의 영역처럼 느껴질 수 있다.

    진법도 그렇다.

    극한에 이른 진법은 마법에 비할 만큼의 이적을 일으키지만 그 본질은 '학문의 영역'에 있는 것이다.

    현대에서 구현해낸 진법은 이를 테면 '도르레' 정도에 머물러 있었다.

    때문에 '엘리베이터'쯤 되는 불완전한 환영미로진을 이해하는 건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원리와 발동을 무인대는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고 그것이 유지은이 진법에 대한 어떤 이치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버렸던 것이다.

    사아아아아…….

    그렇게 짧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안개는 바로 앞을 보기도 힘들 만큼 짙어졌다.

    잔뜩 경계할 수밖에 없는 상황.

    허나 도진은 그 자리서 자연스레 서 있을 뿐이었으니 독마전을 믿고 있는 것이다.

    그런 도진의 영향으로 유지은 또한 불안하지 않을 수 있었다.

    스윽-

    무인대는 안개 속에 소리와 기척을 감추었다.

    무인대(霧刃隊).

    무인(霧刃)이란 안개 속에 감춰진 칼날을 뜻한다.

    그 이름대로 무인대는 안개 속에서의 은밀한 싸움에 특화된 암살자들이었으며 그 안개 속에서의 싸움이 가능한 전장을 만들어낼 수 있는 특수한 무공을 익혔다.

    그러니까 무인대는 지금 전력을 다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한 것이다.

    2대주는 살기를 벼린 단검을 들어 안개에 갇힌 위취련을 노려 보았다.

    그래, 정말로 인정하기 싫지만 상대의 눈과 손, 그리고 내공은 자신보다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그건 암살자에게 있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암살자의 존재의의와 무공은 정면 싸움에 특화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열세를 인정하고, 지금부터는 철저하게 암살자로서 움직인다.

    훅-!

    2대주가 안개의 흐름에 섞여 소리없이 위취련의 옆을 잡았다.

    뒤가 아닌 옆.

    지금 상대의 중심을 읽고 가장 방어하기 취약한 부분을 노려 단검을 찔러 넣었다.

    챙-!

    "……!"

    그러나 그 공격은, 또다시 허무하게 막히고 말았다.

    경악하여 커진 눈을 정확하게 마주하며 위취련이 말했다.

    "살기조차 감추지 못하는 애송이로구나."

    "……!!"

    분노로 눈앞이 시뻘겋게 물드는 것만 같았다.

    2대주는 가슴에서 들끓는 분노를 얼음처럼 차가운 이성으로 억누르며 안개 속에 몸을 감추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위취련을 두들겼다.

    채채채채챙!!

    마치 일부러 그러는 듯, 위취련은 피하는 대신 그것을 받아내며 또 느긋이 말했다.

    "네놈들은 독을 다루는 암살자였지."

    2대주는 대꾸하지 않았다.

    위취련은 전혀 신경쓰지 않고 시린 곡선을 그리는 입술로 말을 이었다.

    "한데…… 어찌 그렇게 안일하게 숨을 쉬느냐?"

    "……!!"

    2대주의 눈이 부릅 떠졌다.

    안개 속을 기민하게 누비던 몸이 덜컥 굳었다.

    "커, 커흐흑!"

    그리고 다음 순간 시커멓게 죽은 피를 토해냈으니 치명적인 독에 당한 것이었다.

    언제 당했는지조차 그는 알 수 없었다.

    그것은, 필연적인 결과였다.

    위취련의 눈이, 손이 2대주를 앞서는 건 눈과 손을 그만큼 철저하게 단련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위취련이 눈과 손을 그리도 철저하게 단련한 이유는 하나.

    독공(毒功)을 구사하기 위해서다.

    은밀하게,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게.

    독공 사용자란 '마술사'가 되어야 한다.

    나름 독을 쓴다는 것들이 그런 마술사를 알아보지도 못하고 일절 경계하지 않은 채 천둥벌거숭이처럼 날뛰는 꼴이라니.

    수투와 단검이 닿으며 독이 흩날리는데 그조차 눈치채지 못했다.

    위취련은 이런 하찮은 무인이 소지존의 눈과 손을 번거롭게 하지 않게 만들어 다행이라 생각했다.

    "커컥!"

    "컥!"

    안개 속에서 연신 피를 토하는 소리가 들렸다.

    2대주만이 아닌 안개 속에 은신했던 무인대의 암살자들이 모두 독에 제압되는 소리였다.

    일대를 뒤덮고 흐르는 안개는 오히려 독마전의 편이었던 것이다.

    독을 쓰면서도 독에 대한 대처가 안이했던 무인대는 독마전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사아아아아…….

    무인대가 모조리 제압당하자 그들에 의해 펼쳐졌던 안개 또한 사라지고 온전한 정글이 드러났다.

    진법의 영향으로 비정상적으로 안개가 짙게 끼었던 탓에 그 반작용으로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하게 드러난 정글.

    그 정글을 배경으로 위취련이 도진의 앞에서 고개를 숙였다.

    "소지존의 명을 완수했나이다."

    "수고했어요."

    위취련의 보고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이고서 정글 안에 위장되어 있던 벙커로 시선을 향했다.

    "그럼, 증거를 한 번 찾아보도록 하죠."

    * * * *

    벙커는 본래 무장 세력이 거점으로 사용했던 곳이었다.

    그 무장 세력이 정글에서 몸을 빼면서 텅 빈 곳이 되었으나 정글 게임팀을 습격한 의문의 세력이 사용하며 채워둔 것들이 남아 있었다.

    철수하던 중이었기 때문에 대부분은 이미 파기되거나 회수되었다.

    그러나 그것이 완수되기 전에 덮쳤기에 도진은 채 정리되지 못한 수기로 작성된 장부 하나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장부 안에서, 결코 넘어갈 수 없는 이름을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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