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369화 (369/741)

368화

정의검가에서 파견한 구원 부대의 총책임자는 60대의 무인으로 장로에 해당하는 위치에 있는 가문의 어른이었다.

일반인의 경우도 그렇지만 설령 무림인이라 해도 노쇠에 의한 육체의 약화를 피할 수는 없었다.

그러나 무림인은 그 노쇠에 의한 약화가 아주 더뎠으며 반대로 육체에 깃드는 무공의 수준과 내공은 높아지기에 오히려 이 시기에 전성기를 맞이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 유화성 또한 이제 전성기를 맞이한 정의검가의 핵심 전력이자 이름 높은 무인으로 그 나이에 걸맞는 경험까지 보유한 구원 부대의 총책임자로서 이 자리에 있었다.

때문에 본래는 이 구원 부대를 이끄는 자리에 있어야 할 그는, 그러나 한 발 물러선 자리에서 가장 앞서 걷는 한 명의 학생을 지켜보고 있었다.

"여기서 또 두 명이 부상을 입었네요."

한 치 앞도 분간하기 힘들 만큼 안개는 짙어져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을 인도하면서 걷는 학생은 단 한 번의 망설임조차 보이지 않고 걷는다.

그렇게 학생이 걷는 길이 올바른 길이라는 것을, 주기적으로 발견되는 증거를 통해 알게 된다.

핏자국은 뒤에 발견되는 것이 더 나중의 것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구원 부대는 틀림없이 적들을 피해 이동했던 정의검가의 무인들과 촬영팀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안개가 더 짙어졌네."

한 걸음 뒤에 선 유지은의 말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진의 중심을 향해 가고 있으니까요."

"안개가 거기서부터 발생하고 있다는 거야?"

"네."

이 진법은 인위적으로 환경을 조성하여 안개를 발생시킨 뒤 그것을 퍼뜨리는 형태였다.

그리고 특성상 중심으로 갈수록 그 위력이 강해지며 멀어질수록 효과가 미미해진다.

1팀의 백업팀이 흔적을 발견하고 다시 나올 수 있었던 건 그런 연유로, 외곽은 진법의 효과가 극히 미미했기에 길을 헤매지 않았던 것이다.

도진의 설명에 유지은이 고개를 끄덕였으며 다른 이들 또한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감탄했으니, 그 말에 따르면 진의 중심으로 향하고 있는 지금 진법의 효과는 실시간으로 강해지고 있는데도 도진은 전혀 헤매지 않는 것이다.

그들 또한 이제는 느끼고 있었다.

진법에 의해 감각이 어긋나 있다는 것을.

그것은 미미했으나 이렇게 범위가 넓으면 그 미세함이 눈을 굴리듯 덩치를 불려 길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더 무서운 건 안개에 의해 시야가 차단되어 그것이 어긋나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직선'이라 믿으며 움직이게 된다는 점이다.

그들은 도진 덕분에 그 미세한 어긋남을 자각할 수 있었다.

그렇게 도진을 인정하고 믿는 분위기와 모습에, 유화성은 겉으로는 티를 내지 않았으나 속으로는 옅게 미소지었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저 기꺼운, 조카의 딸이 그토록 관심을 가질 만한 특출난 후기지수와 즐거운 이야기를 나눴을 텐데.

본래 한 무리의 선두에 선다는 것은, 그들을 이끈다는 것은 그 의미를 분명히 알고 있다면 실제로 무릎을 꿇어 버릴 만큼 무거운 것이다.

하물며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평범한 이는 감히 앞으로 나설 엄두조차 내지 못한다.

한데 저 특출난 후기지수는 그것을 오히려 너무나 당연하게 맡아야 하는 사람인 것처럼 감당하고 있다.

무림에서 이름 높은 그라 해도 저 자리에 있었다면 뒤따르는 이들에게 저토록 명확한 등을 보여주진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바라게 된다.

저 명확한 등을 따라가 보게 되는 것이, 비극이 아니기를.

* * * *

채챙-!

채채챙!!

고립된 정의검가의 경호팀은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우산'이라 부르는, 실전에서 저격을 막기 위해 사용되는 방탄 방패를 연결하여 바리케이드로 삼고 내부에 지켜야 할 정글 게임팀을 두었다.

그리고 요소요소에 정의검가의 무인 60명을 배치하여 철옹성을 구성했다.

채챙!

흔히 무림인이라고 하면 단신(單身)으로 단체(團體)를 부수는 무력을 연상케 한다.

허나 무림인이 익히는 무공은 단순히 개인의 무력을 향상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단체의 무력을 증가시키는 역할도 할 수 있으니 '합격진(合擊陳)'이 바로 그것이다.

현대의 합격진은 무협 소설에서 나오는, 서로의 내공을 증가시킨다거나 상대의 내공을 제한하는 등의 '판타지스런' 효과를 발휘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합격진의 가장 기본이 되는 효과, 1+1을 2가 아닌 3이나 그 이상의 효과를 볼 수 있도록 발전시킬 수는 있었으니 눈부시게 발전한 학문의 영역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챙-!

파고드는 복면인의 독이 묻어 새파란 단검을 정의검가의 무인이 쳐낸다.

단순히 쳐내는 것이 아니라 특정 방향으로 유도하는 힘이 깃들어 있었고 그 힘에 의해 복면인은 너무나 자연스럽게 합격진이 원하는 방향으로 치우쳤다.

스각!

그리고 스스로 몸을 들이민 것처럼 이미 그 자리에 있었던 다른 무인의 검에 옆구리를 베였다.

목숨을 잃지는 않았으나 전투에서 이탈해야 할 만큼 큰 상처였다.

고도로 정밀하게 계산된 투로를 따라 연계하여 움직이는 정의검가의 경호팀은 그렇게 가문의 비기로 취급되는 합격진에 힘입어 최후의 저항을 이어 나가고 있었다.

마치 현대 문명을 꽃 피운 첨단 문물의 정수처럼.

수에서 열세였던 그들은 그렇게 언제까지고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 것만 같았고 실제로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체력과 정신력이 고갈되지 않았다면, 말이다.

카캉-!

지극히 정밀하게 맞물려 움직여야 하는 톱니바퀴가 삐걱인 것처럼 정의검가 무인 중 한 명의 검이 불협화음을 일으켰다.

정해진 경로로 상대를 밀어내지 못했고 대기하던 검을 복면인은 피해내며 몸을 빼냈다.

강철 같은 정신은 육체를 움직이게 만든다.

그러나 제아무리 단련된 정신이라 해도 결국은 육체에 깃든 것.

육체가 정말로 한계에 달하면 정신 또한 흐려질 수밖에 없다.

결국, 정말로 한계를 향해 치닫던 정의검가 경호팀의 철옹성에 금이 가고 이내 틈이 벌어져 버렸다.

훅-!

그 틈을 복면인들은 놓치지 않았다.

채채채챙!

"크아아아아아!!"

절규하듯 소리치며 정의검가의 무인 중 한 명이 검을 휘둘렀지만 이미 복면인이 통과한 뒤였다.

절대로, 결코 통과해서는 안 될 영역을.

그리고 그렇게 질주하는 복면인의 정면에는.

파르르…….

떨리는 손으로 검을 쥔 레드슈의 세 사람이 있었다.

* * * *

'아…….'

결사 항전의 순간.

경호받던 이들 중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무기를 들었다.

최후의 최후의 순간이 되었을 때, 최소한의 저항이라도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하여 검을 쥔 레드슈의 세 사람이었으나.

덜덜덜…….

그녀들은, 심지어 나름 단단한 심지를 지녔던 리더 박소진마저 감히 검을 높이 들 엄두를 내지 못했다.

무공(武功)이란 단순히 몸을 단련하고 기술을 연마하는 무술(武術)이 아니라 정신과 마음을 수양하는 무도(武道)라고 했었다.

숭무고의 관문 시험을 통과하고 저조한 성적이나마 2학년 과정을 소화하고 있는 레드슈의 세 사람은 그 말을 믿었었다.

그러나 지금, 그렇게 믿고 있던 것이 피상적이었을 뿐이라는 걸 강제로 깨달아야 했다.

스스로의 육체를 연마하고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할 무공은 지금.

서걱!

"끅!"

살을 가르고 뼈를 잘라 피가 튀게 만드는, 오로지 사람을 더 잘 죽이기 위한 기술로써 사용되고 있었다.

그녀들이 잘 알고 있다고 믿었던, 몸에 깃들였던 무공이 마치 완전히 다른 괴물이 된 것만 같은 감각에 도저히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그리고 또 깨닫는다.

후기지수가 제아무리 뛰어나도 무림인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를.

이런 '진짜 무림'을 모르는 이상, 그 실력이 어떻든 무림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래도 우리 역시 제법 괜찮은 무림인이지 않을까.

그녀들의 동기이자 항상 옆에서 웃어주던 도진이 세간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것을 보면서 저도 모르게 착각하고 있었음을 강제로 자각한다.

지금 쇄도하는 복면인의 시리도록 새파란 단검을 박소진은 결코 맞설 수 없었다.

그래서, 배운 대로 눈에 힘을 주었다.

그렇게나 대단한 도진이 말했다.

-시야를 넓혀야 해요.

-이런 이야기들이 있죠. 상대의 눈을 봐야 한다. 상대의 어깨를 봐야 한다. 경지에 이르면 근육 한 올 한 올의 움직임을 보고 상대의 움직임을 예측할 수도 있다.

-틀린 얘기는 아니지만, 또 그걸 맹신해서는 안 돼요. 나무를 보느라 숲을 놓칠 수 있는 거니까요.

-그렇게 유심히 상대를 보느라 시야가 좁아졌을 때 상대가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면? 모든 게 소용없는 거예요. 뭐, 닭과 달걀의 관계 같은 거긴 한데 지금은 눈높이 교육이니까.

-그러니까 일단은 상대를 놓치지 않도록 시야를 넓혀요. 그래서 상대를 놓치지 않으면, 상대를 시야에 넣어 놓고만 있으면 대처를 할 수 있어요.

도진의 말대로 시야를 넓혀 상대를 놓치지 않았다.

-그렇게까지 '예지'를 하지 않으려 해도, 보고 있으면 접근하는 상대가 어디를 노릴지, 벨지, 찌를지, 휘두를지 정도는 알 수 있잖아요? 거기에 맞춰 대응하는 거예요. 예지하지 않아도, 보고 있으면 대비할 수 있잖아요?

도진의 말대로 접근하는 복면인이 자신을 찌르려 한다는 것을 박소진은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고 하죠. 그러니까, 상대가 공격을 실패했다는 건 동시에 방어에 실패했다는 것이기도 해요.

-공격을 실패한 상대에게 반격하는 거예요.

안타깝게도, 박소진에게는 복면인에게 반격을 할 정도의 실력이 없었다.

-만약 반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피해요. 아주 크게. 나려타곤이라는 말 있죠? 그런 것처럼 부웅, 몸을 날려서 크게 피하세요.

그래서 도진의 말에 따라 크게 몸을 날렸다.

다행히 유혜진과 여은영 또한 똑같이 행동했다.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구요? 겨우 한 번 피한 것 뿐이라구요? 아뇨, 아니에요. 무력하게 당하지 않고 한 번이라도 피했다는 게 중요한 거예요.

"……!"

세 사람이 몸을 피한 것에 복면인이 아주 잠시 흔들렸다.

푸욱-!

그리고 그 복면인의 가슴팍을, 추격했던 정의검가의 무인이 꿰뚫었다.

'아아…….'

박소진이 바닥을 구르며 안도했다.

'……!'

그러나 그 안도하던 눈은 다시 크게 뜨였으니, 추격하던 무인에 의해 더 커진 틈을 비집고 또 한 명의 복면인이.

손정혁의 앞에 선 설현주를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언니!'

찰나.

일반인인 그녀는 놀랍게도 도진의 가르침에 따라 분명하게 복면인을 시야에 넣고 있었다.

-미리 대비하면 돼요. 먼저 몸을 날리면, 한 번은 피할 수 있는 거예요.

설현주가 도진의 가르침을 잊지 않았음을 그래도 무인으로서의 눈으로 박소진은 파악할 수 있었다.

차이는 절망적이지만 인지하고 있다면 한 번은, 딱 한 번은 피할 수 있다.

분명히 그랬는데.

푸욱-!

"……!!"

설현주의 배에.

복면인의 새파란 단검이 박혀들었다.

* * * *

설현주는 분명히 복면인을 시야에 넣고 있었다.

배운 대로 몸을 날려야만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었던 건, 그녀의 뒤에 손정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피하면 손정혁이 죽는다.

그것이 그녀가 몸을 날릴 수 없게 만들었고 덜덜 떨리는 손으로 쥐고 있던 봉을 휘두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를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휘두름은.

푸욱-!

…결코 기적에 이를 수 없었다.

복면인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봉을 피하고 단검을 찔러 넣었다.

그 두 눈에는 분노가 깃들어 있었다.

무공도 익히지 못한 양민 따위가, 감히 나의 공격을 보고 반응하여 봉을 휘둘렀다.

그것이 분노를 불러 일으켰고 분노는 고스란히 단검을 쥔 손의 힘이 되었다.

이대로 내공이 깃든 단검을 쳐올릴 것이다.

그래서, 이 건방지기 짝이 없는 양민의 몸을 두 조각으로 갈라 버릴 것이다.

그렇게 생각했던 복면인은.

쿠, 우웅-!

'……!'

갑자기 온몸을 덮치는, 말도 안 되는, 미증유의 공포에 찰나 몸이 굳고 말았다.

콰드득!

그리고 다음 순간 공포가 실체화한 듯 머리를 부여잡은 손에 의해 온몸의 힘을 잃게 되었다.

"……!!!!"

마치 괴물에 의해 온몸이 짓씹힌 것처럼.

머리를 붙잡은 손을 통하여 체내에 침투한 괴물에 의해 온몸의 혈맥이 갈가리 찢긴 그의 몸이 단검을 놓치고 덜렁거렸다.

털퍽!

찌꺼기를 버리듯 손은 복면인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손의 주인.

도진이 포근하게 웃는 얼굴로 설현주에게 다가가 몇 군데의 혈을 짚었다.

"잘했어요, 누나."

"…뭘, 잘했는데?"

"급소를 피해 맞았잖아요. 생명에 지장은 없을 거예요."

"헤, 헤. 그냥, 우연인데?"

"우연이라도 배운 대로 잘 했으니까 칭찬하는 거예요."

"히, 그렇구나."

"누나."

"응."

"눈 감고, 양 백 마리만 세고 있어요. 알겠죠?"

"응, 아빠."

설현주는 정말로 말 잘 듣는 딸처럼 파리한 얼굴로 눈을 감고, 속으로 백을 세기 시작했다.

이 악몽이 금방 끝날 거라고 굳게 믿으며.

그런 설현주에게서 몸을 돌린 도진의 얼굴은 깊이, 깊이 가라앉아 있었다.

두…… 웅.

미지의 공포가 일렁이는 것만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심연에서 결코, 절대로 눈을 떠서는 안 되는 어떤 것이 스멀스멀 기어 나오려는 것만 같은 공포가 퍼져 나간다.

도진이 입을 열었다.

"독마전."

도진의 부름에 위취련을 필두로 한 독마전이 도열했다.

"단 한 놈도, 놓치지 마."

독마전이 고개를 숙였다.

"존명(尊命)."

그리고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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