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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67화 (367/741)
  • 366화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시간.

    도진은 남쪽 나라로 향하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었다.

    긴급 상황.

    수업을 들을 때가 아니었기에 따로 결석에 관한 조치조차 뒤로 미루고 비행기를 띄운 것이다.

    그리고 굳은 얼굴로 영상을 통해 나지윤의 이야기를 들었다.

    -정기 보고가 있어야 할 시간에 보고가 오지 않은 걸로 정의검가는 이변을 인지했어.

    해당 장소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무려 군대가 나서서 주변 정리를 했었다.

    정글에 숨어 있던 것으로 추정되던 무장 세력은 다급히 모습을 감춰 피를 흘리지 않고 일대를 확보할 수 있었다.

    허나 그렇다 해도 먼 타국에서 변수를 배제할 수 없는 경호 업무였다.

    때문에 정의검가는 고레벨의 경호 업무로 받아들이고 일을 진행했으니 그 중 하나가 정기 보고였다.

    철저하게 시간을 지켜 해야 할 그 정기 보고가 오지 않았으니 이변이 생겼다고 판단, 행동에 나선 것이었다.

    -그리고 알게 된 거야. 경호팀만이 아니라 촬영팀 전체가 연락두절이 돼 버린 걸.

    대기하고 있던 1팀의 백업이 다급히 촬영이 진행되고 있던 정글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그런데 정글 전체에 짙은 안개가 껴 버렸어.

    바다를 끼고 있는 그 정글에는 본래 안개가 자주 낀다고 했다.

    사전 탐사를 통해 그 정보를 알고 있었기에 굳이 이 시기에, 안개가 잘 끼지 않는 시기를 골라 촬영에 착수했는데 상황이 안 좋게 흐르려니 하필 오늘 짙은 안개가 껴 버린 것이었다.

    더더욱.

    -사라졌던 무장 세력이 대규모 무력 도발을 하며 소란을 피워서 그쪽 정부에서도 큰 지원을 할 수가 없게 됐어.

    거점을 잃은 보복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무장 세력이 도시를 점거하며 무력 도발을 해 그쪽 정부에서도 여력이 없다시피 했다.

    -어쩔 수 없이 정의검가의 백업팀이 위험을 감수하고 촬영지로 들어가 봤는데, 핏자국을 발견했다고 해. 심지어 독에 당한 것처럼 변색돼 있었대.

    "……."

    -그리고 정글 내부에는 통신 장비를 무력화하는 방해 전파가 흐르고 있다는 것까지 확인했어. 연락이 안 되는 이유였지.

    "계획적인 습격…… 이라고 봐야겠네."

    -응.

    -우리 정보망이 거기까지 미치지는 못해서 어디까지나 추론이지만, 1왕자를 실각시키기 위해서 2왕자가 손을 썼을 거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촬영이 진행된 정글을 국토로 보유하고 있는 남쪽 나라는 왕정 국가다.

    현재 늙은 왕을 대신하여 왕관을 이어받을 1왕자가 전권을 위임받아 나라를 통치하고 있는데, 거기에 관해 2왕자가 불만이 많다는 이야기다.

    -이번 촬영이랑 관련해서 골치를 썩이던 무장 세력을 몰아내고 관광 명소였던 정글 일대를 되찾는 업적으로 자리를 공고히 하려던 1왕자의 계획을 엎어 버리기 위해 이번 일을 벌였다는 거야.

    괜히 무장 세력을 건드려 그들에 의한 테러와 폭동이 일어났고 외국에서도 관심을 가지던 이번 일을 최악의 형태로 실패했다.

    그런 명분을 만들면 1왕자를 실각시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를 위해서는, 한국에서 온 촬영팀이…….

    "……."

    4시간 단위로 해야 하는 정기 보고의 마지막이 새벽 1시였다.

    오전 5시의 보고가 오지 않았고 사태를 파악, 행동에 나선 지금이 오전 9시를 넘어가고 있다.

    최대한 서두른다 해도 정글에 도착하는 건 오전 11시는 넘어야 할 테니 최악의 경우 상황이 발생한지 10시간이 넘어서야 현장에 도착할 수 있다는 계산이다.

    그나마도 현장에 도착이지 짙은 안개가 끼고 통신마저 되지 않는 정글 안에서 그들을 언제 찾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

    '…….'

    6시간의 시차를 감안해 밤에 습격이 이루어졌다고 가정한다 해도, 최대한 늦게 잡는다 해도 이것은 의미가 없다.

    습격이 있고 일이 벌어졌다면, 채 한 시간도 지나기 전에 상황이 끝나 버렸을 수도 있는 것이니까.

    …어쩌면.

    상황은 최악이었다.

    * * * *

    갑작스런 '저격'에도 정의검가의 경호팀은 혼란없이 신속하게 대응했다.

    저격을 피할 수 있도록 '우산', 방탄 방패를 펼치고 부상을 입은 사람을 데리고 숲 안으로 대피했다.

    "독이군요. 저격과 습격에 주의하면서 정글을 나가야겠습니다."

    저격은 총이 아닌 특수한 형태의 화살로 이루어졌다.

    화기가 사용되지 않은 건 다행이었으나 그 화살에 독이 발라져 있던 건 불행이었다.

    신속하게 판단을 내리고 우선 지원 요청을 하기 위해 도시에서 대기하고 있던 백업팀에 연락을 넣은 그는, 지직거리는 소리에 얼굴을 더 굳힐 수밖에 없었다.

    '방해 전파라고?'

    무인으로서의 본능이 섬뜩한 경고를 했고 그것을 구체화하는 것처럼 안개가 끼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어두운 정글에 내린 안개는 순식간에 짙어져 먼 시야를 완전히 차단해 버렸고 사람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었다.

    '하필 지금!'

    팔을 관통해 버린 화살.

    그리고 단번에 검은 피로 처치한 붕대가 물드는 피해자의 모습은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한데 거기에 갑작스럽게 안개마저 껴 버렸다.

    '…나가야 한다.'

    상황이 더욱 나빠졌으나 경호팀의 총책임자인 유공환은 그렇기에 더욱 빠르게 움직여 정글을 나가려 했다.

    독화살로 소리없이 저격할 수 있는 이가 하나는 아닐 것이다.

    그런 저격수들을 보유한 습격자들을 상대로 수성전을 벌였다가는 필연적으로 전멸이다.

    정의검가의 경호팀이 버티는 걸 논하기 이전에 그들이 지키는 일반인이 버티지 못한다.

    하물며 독에 당한 피해자의 상황이 시시각각 나빠지는 게 눈에 보일 정도다.

    이런 피해자가 늘어날수록 전황은 기하급수적으로 불리해진다.

    이변을 백업팀이 알아채길 기다려서는 늦다.

    그런 판단으로 앞장서서 정글을 나가려 했던 유공환은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으니.

    '…길이 달라졌다고?'

    출구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정의검가 가주의 동생으로 수준급의 무림인이다.

    안개가 끼었다고 해서 길을 못 찾을 리가 없는데, 분명히 맞는 방향으로 걸었음에도 정글을 벗어나지 못했다.

    결코 정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급박함에도 한 번은 발을 멈출 수밖에 없었고 기다렸다는 듯 습격이 있었다.

    채챙!

    챙!

    "히이익!"

    안개를 뚫고 기습을 가한 건 복면으로 얼굴을 가린 자들이었다.

    총원 80명 중 백업팀 20명을 제외하고 촬영팀을 지키고 있던 60명의 정의검가 무인들이 그들의 기습을 막아냈다.

    그러나.

    퍼퍽!

    퍽!

    "끄으아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그들이 저격에 대비하여 펼친 방탄 우산의 틈을 뚫고 들어온 독화살이 또 두 명의 부상자를 만들었다.

    의도적으로 복면인들이 기습을 가하여 틈을 만들고 한 저격에 사람들이 패닉에 빠졌다.

    "진정하십시오! 흔들리면 더 큰 피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안 그래도 60명으로 그 두 배인 120여 명의 일반인을 안개 끼고 어두운 정글에서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진형이 무너지고 혼란이 발생하면 끝장이었다.

    때문에 굳이 내공을 담아 크게 소리쳤고 사람들은 공포에 질려 떨면서도 입을 다물었다.

    "…응급 처치 후 움직이겠습니다."

    두 명의 부상자는 앞서의 부상자와 마찬가지로 팔을 꿰뚫렸다.

    처치를 하고 범용 해독제를 투여함으로써 최악은 피할 수 있었으나 당한 독이 다르지 않으니 얼마 가지 않아 누군가가 업어야 할 만큼 상태가 나빠질 것이었다.

    '이곳의 지리를 잘 알고 미리 준비를 했으며 안개 속에서도 자유자재로 기습을 가할 수 있다는 건가…….'

    그런 그들과 달리 믿을 수 없게도 자신은, 정의검가는 길을 잃었다.

    방법은 지금 알 수 없지만 이 또한 그들에 의한 것일 터.

    꾸욱-

    유공환은 오래도록 사용해 착 감기는 검을 거세게 쥐었다.

    그는 정의검가의 직계로 현 가주의 동생이었다.

    그 신분에 걸맞게 무림에서도 알아줄 만큼의 실력과 명성, 그리고 경험까지도 지니고 있었다.

    그렇기에 도리어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상황이, 너무나 절망적이라는 것을.

    상대가 이런 식으로 치고 빠지기만 반복해도 정의검가는, 그리고 촬영팀은 무너질 수밖에 없다.

    그 전에 어떻게든 길을 찾아야 한다.

    혹은 구원이 와야 했다.

    하지만 그 구원이 과연 언제 올지, 늦지 않을 수 있을지.

    유공환은 희망을 가질 수가 없었다.

    아직, 아침조차 요원한 시간이었다.

    * * * *

    도진은 해가 높이 떠오른 때가 되어서야 정의검가와 함께 정글에 도착했다.

    그나마도 정부, 왕가에서 헬기를 지원해 줘 한 시간을 단축한 것이었다.

    허나 그렇게 번 한 시간이 무색하게도, 정의검가는 바로 정글에 돌입할 수 없었다.

    "방해 전파를 당장 해결하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왕가에서 붙여준 전문가와 정의검가의 전문가가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안개 역시 흩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군요."

    "이렇게 짙은 안개는 저도 처음 봅니다."

    긴박한 상황이다.

    이미 늦었을지도 모를 만큼.

    한시라도 빨리 진입해야 하건만, 그 모든 것을 감안하고도 정글에 진입할 수 없게 만드는 요소들이 가득했다.

    촬영팀과 정의검가를 습격한 자들이 저 짙은 안개가 낀 정글 안에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상대로 통신도, 시야도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조건 돌입하는 건 희생자를 늘리는 것밖에 되지 않는다.

    제아무리 식구라 해도.

    그 식구를 구하기 위해 대책없이 돌입하는 건 한 명을 구하기 위해 두 명이 죽으러 들어가는 것 이외의 무엇도 아니었다.

    때문에 자신을 아껴주던 작은아빠를 걱정하여 하얀 손이 파르르 떨리는 유지은으로 대변되는 마음에도 불구하고 정의검가는 행동하지 못하고 있었다.

    바로 그런 때에, 도진이 앞으로 나섰다.

    "후, 후배?"

    망설임없이 정글에 진입하려는 듯한 모습에 유지은이 도진을 불렀다.

    도진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들어가려는 거야?"

    "네."

    "괜찮은…… 거야?"

    "네. 길을, 찾을 수 있거든요."

    믿기 힘든 말이었다.

    단순히 길을 찾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천하의 정의검가가 단순히 안개 때문에 정글에 들어가지 못하는 게 아니잖은가.

    기습은 없을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따져봐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잠룡? 후기지수를 넘어선 후기지수?

    제아무리 그 이름이 높다 해도, 지금의 상황은 그런 명성으로도 명함을 내밀기 힘든 심각한 상황이란 말이다.

    그러나.

    정의검가의 사람들은 곧 그 의문을 뒤덮는 '어떤 아우라'를 느끼게 되었다.

    처억.

    앞장 선 도진의 뒤로, 도진과 함께 온 독마전의 무인들이 도열했기 때문이다.

    위취련과 위연서. 그리고 독마전의 교도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도진의 뒤에 섰다.

    그리고 그들 모두의 시선을 등으로 온전히 받아들이고 있는 도진의 모습은 한 점의 빛조차 없는 어둠 속을 밝히며 가장 먼저 나아가는, '인도자'로서 도진을 다시 보게 만들었다.

    명성이 높아봐야 아직 무림인이 아닌 학생?

    그 어떤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사지(死地)에 걸어들어가는 무모한 행동?

    그 모든 이론은 이 순간 의미를 잃었다.

    도진이 그 어떤 망설임도 없이 걸음을 내딛었고 그 뒤를 독마전이 뒤따랐다.

    그리고, 정의검가가 그 뒤를 따라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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