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366화 (366/741)
  • 365화

    바른 엔터 대표 사무실.

    오대용은 그곳에서 컴퓨터로 바른 엔터의 웹 예능 TV를 모니터링하고 있었다.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을 쌓은 직원들과 함께 하는 시간 이외에도 따로 이렇게 혼자 모니터링을 하며 공부하고 있는 지식을 실제로 적용하는 등 노력을 아끼지 않는 오대용이었다.

    지상파에 아직 출연하지 못하고 있는 레드슈와 안티체리는 도진의 아이디어로 시작하여 큰 성공을 거둔 너튜브 채널을 통해 인지도와 팬을 쌓고 있었다.

    아직은 업계의 중심이 지상파이지만 머지 않아 그 중심이 너튜브로 옮겨갈 것을 오대용은 내다볼 수 있었다.

    때문에 앞으로 이은지를 필두로 하여 바른 엔터가 지상파에서도 활발히 활동할 수 있을 만큼 성공한다 해도 오대용은 바른 엔터 TV라는 채널에 계속해서 투자하며 공을 들일 생각이다.

    그런 오대용이 지금 눈여겨 보고 있는 건 다름 아닌 '댓글'이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피드백을 바로바로, 심지어 즉시 받을 수 있었으니 시청자들의 채팅과 댓글이 바로 그것이다.

    당연히 아주 중요한 요소였는데 거기서 유독 신경 쓰이는 채팅이 있었다.

    -JH님이 1,000원 후원!

    아니 그래가지고 정글에서 1인분 하겠음?

    -JH님이 1,000원 후원!

    엄살로 오디오 채우지 말고 열심히 합시다

    '흐음…….'

    닉네임 JH.

    소위 말하는 '네임드'는 아니다.

    엄청 큰 후원을 한 적이 없어서 주목받은 적이 없다.

    그러나 채팅을 할 때마다 이런 식으로 후원을 하여 지정된 목소리가 나오는 '슈퍼 채팅'을 사용해 누적 금액은 제법 크다.

    이렇게만 보면 'VIP'인데…… 그 내용이란 게 도진의 표현을 빌려 '인내심이 증발된 상태'라면 단번에 폭발할 만큼 신경을 건드리는 내용이란 게 문제다.

    당장 위의 두 개만 봐도 설현주가 따로 체력을 키우기 위해 훈련을 하다 정말로 힘든데 애써 분위기를 좋게 만들기 위해 엄살 부리는 행동을 하는 걸 비꼬거나 정색하는 내용이었다.

    정말로 아슬아슬하게 선을 넘지 않을 뿐이고 받는 쪽이 상황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정색할 수 있는 수준.

    심지어 이런 짓을 바른 엔터 TV 초창기부터 꾸준히 해 왔다.

    오로지 안티체리를 상대로만 말이다.

    도진이 없을 때만 출몰해 도진은 모르지만 안티체리와 레드슈, 그리고 오대용과 주정아까지도 이 JH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

    -도진이한테는 말하지 마.

    -그래. 도진이한테는 말하면 안 돼.

    -이 사람, 우리 '찐팬'이니까.

    한데 안티체리는 JH에 관해 그렇게 말했다.

    안티체리가 한창 잘 나갈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히 있어 준 오래된 고마운 팬이라면서.

    저 채팅에 관해서도 웃으며 부드럽게 받아주어 분위기가 싸해지거나 그가 욕을 먹지 않도록 했다.

    오대용이 보기엔 틱틱거리며 인내심을 깎아먹는 악성팬인데 정작 당사자들인 안티체리가 그렇게 말을 하니 일단은 조치를 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

    어쨌든 지금 '팬'과 마찰을 일으켜서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판단으로.

    그랬었는데…….

    이게 너튜브 채널에서 그치지 않고 현실로 문제가 이어져 버렸다.

    'JH. 정혁.'

    JH라는 닉네임은 정혁이란 이름의 앞글자를 딴 것이다.

    그리고 그의 성을 포함한 이름은 손정혁으로, 이번 정글 게임에 캐스팅된 연예인 중 한 명이었다.

    * * * *

    출국한 정글 게임 촬영팀은 비행기에서 내린 뒤로도 차를 타고 몇 시간이나 달리고서야 촬영이 진행될 정글의 초입에 도착할 수 있었다.

    거기서 몇 장면을 찍은 뒤 이번엔 두 시간여를 걸어서 정글을 통과해 메인이 될 장소, 바다를 인접한 공터에 도착했다.

    "와……."

    "바다 진짜 이쁘네요."

    레드슈가 감탄하고 이은지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좋다……. 우리 바다 오랜만이지?"

    "응."

    안티체리는 그녀들과 달리 일반인이다 보니 땀을 닦으며 호흡을 고르는 힘든 중에도 역시 동감하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우, 엄청 힘들게 온 보람은 있는 거 같네요."

    그녀들의 반응에 이번 출연진들 중 메인이 되는 사람인 40대 중년의 방송인 차정만이 싱긋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각진 얼굴에 돌 같이 단단한 근육이 인상적인 그는 무림인 출신 방송인이었다.

    무림인 출신이다 보니 당연히 일반인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육체 조건이 좋았고 여기다 생존술까지 익히고 있어 이번 정글 게임을 위해 준비된 것처럼 딱 맞는 사람이었다.

    그는 투덜거리지 않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내뿜은 바른 엔터팀에 미소지으며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비해서…….'

    그리고 슬쩍 보이는 반대편 DS팀의 얼굴에는 속으로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방송이란 걸 잊기라도 한 것처럼 표정들이 썩어 있다.

    무림인이 아닌 일반인에게는 힘든 일정이긴 했지만 마찬가지로 일반인의 범주에 있는 안티체리는 심지어 여자임에도 열심인데 말이다.

    말만 하지 않을 뿐, 아니 오히려 그래서 입을 꾹 다물고 짜증과 불평이 묻어나는 얼굴이니 저래서야 카메라가 갈 수가 없다.

    그러다 보니 촬영팀도 아예 바른 엔터 쪽에 카메라를 집중하고 있다.

    그 경향은 6일 내내 이어져서, 억지로 분량을 맞추고 씬을 건지기 위해 제작진은 일을 더해야 했고 DS에 대한 혐오를 제조했다.

    "어휴, 애새끼들 진짜. 지들이 무슨 대스타인 줄 아나."

    "대스타도 요즘엔 인터넷 무서워서 못 저러지."

    카메라를 들이대면 그나마 웃긴 하는데 그렇게 억누른 짜증은 사라지지 않고 촬영 외의 시간에 분출되곤 했다.

    물론 PD 등에게 그것이 쏟아지진 않았지만 그런 짜증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보고 듣는 것도 스트레스가 된다.

    "김도진이 괜히 안티체리 편들어 주는 게 아니구만."

    "그러게 말이야."

    그들의 시선은 작업 중인 안티체리의 두 사람과 또 한 명의 출연자, 손정혁이 나눈 대화가 재생되는 화면으로 향했다.

    20대 초반의 손정혁은 무림학교 출신으로 고등반 진학에는 실패하여 무림인이라 할 만큼의 실력은 못 되었지만 그래도 일반인보다는 확연히 높은 육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준수한 페이스에 그 이상으로 돋보이는 몸매로 진로를 틀어 모델에 도전, 여차저차하여 방송인이 되었다.

    끼가 있어 이른 나이에 탄탄대로를 걷나 싶었는데 지인들과의 술자리에서 일반인과 시비가 붙어 싸운 것 때문에 자숙의 시간을 가졌던 사람이다.

    그런 그의 복귀 방송이 정글 게임이 되었다.

    손정혁과 설현주, 주교은이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 겨울 아냐? 여긴 왜 이렇게 더워?"

    설현주의 말에 손정혁이 피식, 비웃음처럼 보이는 웃음을 짓고서 말했다.

    "아니, 누나. 여기는 남쪽 나라잖아요. 한국 아니에요."

    "응, 그렇지?"

    "네. 외국 안 나가봤어요?"

    "아냐. 나 외국 많이 가 봤어."

    "아아. 그랬죠?"

    생글생글 웃으며 말하는 설현주다.

    오늘 낮 촬영된 대화인데, 설현주의 태도가 제법 감탄이 나온다.

    연출된 그림을 보면 손정혁이 설현주를 무시하고 극딜을 넣는 것 같다.

    그리고 촬영팀이 보기에는 방송이 아니라 실제로 손정혁이 그런 태도를 취한 것처럼 보였다.

    외국 안 나가봤냐는 질문과 그 뒤의 '아아. 그랬죠'하는 말이 확신이 들게 만들었으니 안티체리가 제법 잘 나갔을 때 한 외국에서의 공연을 연상케 하며 지금은 왜 그러냐는 뜻이 담겨 있는 것 같았으니까.

    버럭 화를 내고 대판 싸워도 무죄 아닐까 싶을 정도다.

    그러나 설현주는 겉보기와 달리 산전수전 다 겪은 베테랑으로 충분히 그 뜻을 알아챘을 텐데도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부드럽게 받아 주었다.

    이것은 같은 감상을 받을 시청자들에게 손정혁을 비호감으로 만들면서 동시에 설현주에 대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부여할 테니 감탄이 나오지 않을 수 없는 처신이었다.

    6일 간 한 번도 얼굴을 찡그리지 않고 열심히 했던 그녀였으니 이런 계산이 아니더라도, 그 본래의 성격만으로도 그렇게 대처했을 거라는 걸 아니 더 호감이 간다.

    심지어 3일째.

    직접 바닷가에서 물고기를 잡아 구워 먹는데 제작진 중 한 명이 꼬르륵 소리를 내니, 자신도 배가 고플 텐데 입술을 오물거리며 고민하다 자기 몫을 내밀었을 땐 그렇게 귀여운 천사가 따로 없었다.

    그런 그녀와 주교은, 레드슈, 그리고 이은지는 늦은 밤 모닥불 앞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손정혁이 피곤하다며 얼기설기 엮어 만든 '집' 안으로 자러 들어가 바른 엔터의 여섯 아이돌만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말야."

    "응."

    "너는 왜 도진이랑 서로 존댓말 해?"

    레드슈의 멤버 중 한 명, 잘 때 수면 양말을 선호하고 낯을 좀 가리지만 궁금한 건 참지 않는 편인 유혜진이 물었다.

    이은지가 그 물음에 음, 하고 답했다.

    "그, 다시 만났을 때 도진 씨가 먼저 존댓말을 썼거든. 그래서 나도 존댓말 썼는데 그게 그대로 굳어진 느낌?"

    "아, 그런 거 좀 있지."

    "맞아."

    유혜진이 고개를 끄덕이니 또 한 명의 멤버인 여은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본래 청순한 이미지의 그녀는 정글에서의 활동으로 제법 야생의 분위기가 묻어나게 됐다.

    "같은 집에 살았고 같이 밥 먹기도 한 데다가 동갑인데도 계속 존댓말하는 거 어색하지 않아?"

    그렇게 묻는 건 안티체리의 리더 주교은이다.

    '입학 시험에서 떨어지지 않았으면 동기가 되었을 텐데'라는 내용을 넣지 않은 건 그녀의 세심한 부분이다.

    "음, 그렇긴 하죠. 기회되면 한 번 말 해 볼까, 싶긴 해요."

    "으응. 내 생각엔 말이야, 그거 다 도진이 계략일지도 몰라."

    "아니, 언니는 또 무슨 말을 하려고 그래요."

    무려 계략이라는 단어 사용에 주교은이 설현주에게 시선을 향한다.

    설현주는 그에 굴하지 않고 전혀 진지하게 느껴지지 않는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그 잘생긴 남자 배우님도 그랬잖아. 어색한 게 더 위험한 거라고. 도진이는 화화공룡이니까, 전략적으로 은지랑 편해지지 않도록 존댓말을 쓰는 거지!"

    "…아, 네에."

    "언니, 피곤할 텐데 어서 자요."

    받아 주기엔 버거운 헛소리에 그녀들은 최연장자에게 수면을 권했다.

    제법 괜찮은 장면이었기에 제작진은 웃으며 내용을 갈무리했다.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가질 잠룡 김도진에 관한 이런 귀중한 썰을, 그녀들은 모닥불 앞에서 자주 풀곤 했다.

    제작진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화수분이나 다름없었다.

    '이대로면 충분히 먹힐 만한 내용이 될 거야.'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괜찮은 그림들이 많았다.

    여기에 이런 식의 살을 더해줄 대화 내용들 또한 기대 이상이었으니 제작진은 들뜰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제작진 중 한 명이 자리에서 일어나 소변을 보러 갈 때였다.

    퍽!

    "……?"

    "어……?"

    무언가가, 그의 팔을 관통했다.

    일순 세상이 느려지고 그가 멍하니 자신의 팔로 시선을 향했다.

    푸슈우우우우우!!

    관통당한 부분에서 피를 내뿜는 그 순간이 되어서야 그, 그리고 그들은 되돌아온 시간과 함께 상황을 인지할 수 있었다.

    "끄아아아아악!!"

    "으, 으아아아아악!!"

    "꺄아아아아악!!"

    * * * *

    금요일 새벽.

    훈련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던 도진은 갑자기 찾아온 나지윤을 통해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정글 게임 촬영팀이, 습격을 당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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