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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64화 (364/741)
  • 363화

    2학년 2학기.

    무림학교의 학생이라면 본격적인 실습에 매진할 시기였다.

    교복이라는 면죄부를 걸친 채 무림을 경험할 수 있는 마지막 시기였기에 숭무고생들은 수업마저도 실습이나 무림과 관계있는 것들로 철저하게 컨설팅을 받아 구성할 정도로 공을 들인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1학년 때와 마찬가지로, 심지어 2학년 1학기 때와 마찬가지로 남일이라는 듯 이론 쪽에 치중된 시간표를 짠 도진은 이레귤러에 다름없었다.

    비유하자면 취업을 목표로 하는 학교에 와 놓고 뜬구름 잡는 이론에 치중한 공부만 하는 격이다.

    허나 그럼에도 누구 하나 도진을 비웃거나 바보 같다고 하지 못하는 건, 도진의 실력이 압도적이며 동시에 단순히 실습이나 하는 학생이 아니라 아예 의뢰를 딸 수 있는 문파의 문주 자리에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도진에게 유지은이 가져온 의뢰는 제법 '클라스'가 있는 의뢰였다.

    "해외로 나가야 하는 의뢰야."

    "해외라면 어디로요?"

    "남태평양! 거기서 촬영을 할 거래."

    유지은의 말을 정리하면 이러했다.

    어느 외주 제작사가 방송국의 의뢰에 따라 엄청난 자금이 투자된 예능 프로그램을 촬영, 제작하여 납품하기로 했다.

    장소는 남태평양에 문명의 색이 거의 묻지 않은 바다를 인접한 정글로, 출연자를 포함하여 120여 명을 경호하는 일이었다.

    그리고 여기 캐스팅 목록에 바른 엔터 소속의 걸그룹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유지은이 '딸래미들 경호하는 일'이라고 한 것이다.

    이에 관한 이야기를 도진은 바른 엔터 대표 사무실에서 오대용과 주정아, 이은지에 레드슈와 안티체리까지 모인 자리에서 나누게 되었다.

    "확정되진 않았는데 '정글 게임'이란 이름의 프로그램이래."

    "정글 게임."

    그 이름을, 도진은 알고 있었다.

    TV 자체에 관심이 없던 도진이 알고 있을 만큼 인기 예능 프로그램으로 지상파 중 한 곳의 간판 프로그램이자 세계적으로 크게 히트했을 만큼 대박을 친 프로그램이었다.

    문명의 혜택이 미치지 않은, 그래서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자연의 영상미에 더해 출연자들이 두 팀으로 나뉘어 거점을 만들고 경쟁을 하는 등의 포맷이었다.

    내용 자체는 이렇게 간단히 줄여지지만 그 영상미와 제작 스케일은 물론이요 게임까지도 사람을 매료시킬 만큼 수준이 높은 게 주요했다.

    굳이 비교하자면 자원을 캐 이것저것 만들고 탐험하는 네모네모한 바로 그 컴퓨터 게임을 연예인들이 실제로 하는 걸 보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다만 처음 이 프로그램을 런칭할 때의 여론은 그리 좋지 않았다.

    "도진이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사실 많이 위험한 거 같아."

    주정아의 말에 도진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 불안한 부분이 있는 게 사실이지."

    문명이 스며들지 않은 오지.

    언뜻 낭만이 있어 보이지만 이 시대에 그것은 동시에 언제든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위험 지역과 같은 말이었다.

    문명이 미치지 못했다는 건 곧 국가의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런 곳에는 '악의 조직'이 숨어들어 있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그 위험성 때문에 투자를 받기도 힘들었고 소속사도 캐스팅 제의에 소극적이었다.

    위험성에다 소속 연예인들이 왜 그런 오지에 위험을 감수하고 가서 개고생을 해야 하냐는 반발 또한 있었기 때문에.

    …레드슈와 안티체리에게까지 제의가 온 데에는 그런 배경 또한 작용했다.

    "그래도 가능하면, 나는 나가고 싶어."

    대표로 나서 말한 건 레드슈의 리더 박소진이었다.

    오대용이 박소진의 말에 동의해 고개를 끄덕였다.

    "응. 좋은 기회인 건 사실이야."

    그것은 프로그램의 성패를 논하기 이전의 문제였다.

    외부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꾸준히 성과를 쌓아 나가고 있는 레드슈와 안티체리였지만 그와는 별개로 여전히 지상파의 문을 두드리진 못하고 있었다.

    관현 게이트가 터진지 그리 오래 지나지도 않았고 특히 안티체리에 관해서는 '장작'이라 부를 만큼 언급만 됐다 하면 논쟁이 불붙을 정도였으니까.

    금지 리스트엔 오르지 않았으니 어디 한 곳에서 스타트만 끊어주면 물꼬를 틀 수 있을 텐데 더러운 DS 때문에 쉽지가 않았다.

    그러던 중에 드디어 기회가 왔다.

    요즘 바른 엔터의 주가가 치솟는 데 크게 공헌하고 있는 이은지에 더해 아예 레드슈 전원과 안티체리의 두 사람까지 총 여섯 명을 캐스팅하고 싶다는 제의가, 그것도 지상파에 납품될 예능 프로그램에서의 제의가 온 것이다.

    단순히 노래만 잘하는 게 아니라 '아우라'가 있는, 그래서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라는 딱지를 떼고 한 사람의 아이돌이자 실력 있는 뮤지션으로서도 인정받고 있는 이은지는 예의 오디션 프로그램의 제작사였던 방송국과도 계약으로 묶여 있었는데, 바로 그 방송국이 정글 게임의 외주를 준 곳이라 캐스팅을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은지와 레드슈, 안티체리가 함께 할 수 있게 됐으니 이 또한 플러스 요인이다.

    "프로그램이 성공하든 실패하든 지상파에 모습을 비췄다는 것만 해도 우리에겐 큰 성과잖아. 그것만으로도 나갈 가치가 있다고 나도 생각해."

    주교은 역시 평소와 다르게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위험한데다 개고생이 확정되어 있는 것 같지만 그런 것 때문에 사릴 만큼 안티체리는 '배부른 돼지'가 아니었다.

    "알아보니까 그 나라 정부에서도 협조하기로 했대."

    그런 오지에 범죄 조직이 숨어듦으로 인해 생기는 문제를 겪는 나라가 한둘이 아니었다.

    이번 촬영지를 국토로 보유하고 있는 나라 또한 같은 상황이었는데, 이번 기회에 그들을 싹 쓸어 버리고 해당 구역을 관광지로 만들기 위해 협조를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는 정보를 오대용은 입수해 왔다.

    도진은 알고 있는 내용에 티를 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였다.

    걱정과 달리 프로그램은 아무런 사고도 터지지 않았고 심지어 첫 화부터 대성공을 거두었다.

    '범죄 조직'은 파견된 군대에 저항하지 않고 자취를 감추었고 촬영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군대까지 투입한다면 어느 정도는 안심해도 되지 않을까 싶긴 하네."

    사실 확신은 할 수 없었다.

    이건 이미 '달라진 미래'였으니까.

    전생에서 이 프로그램 첫 화에 출연한 건 DS와 바른 엔터가 아니었다.

    유행에 편승하지 않아 방송을 보지 않았던 도진이어서 본래 출연한 연예인들이 누구였는지는 몰랐다.

    유명하지도 않았으니 이름을 들었다 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게 당연했다.

    허나 '큰 흐름'은 변하지 않았으니 이번에도 괜히 과한 걱정을 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었다.

    "우리 딸래미들이 강력하게 희망한다면 밀어줘도 되지 않을까, 하고 나는 생각해."

    해당 국가의 지원만이 아니다.

    여기 오기 전 들었던 대로라면 따로 방송국에서 고용한 정의검가의 무인들이 호위로 따라붙는다.

    이 정도면 믿어도 될 법했고 이은지와 레드슈, 안티체리 모두에게도 기회였다.

    예능에서의 성공은 아이돌로서의 성공에도 보탬이 되며 심지어 다른 분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할 수도 있게 해준다.

    실제로 정글 게임에 출연해 고정이 되었던 연예인들은 모두 대박을 쳤다.

    한국에 국한되지 않고 해외에서의 인기가 더 클 정도였으니 보통 대박이 아니다.

    그런 계산으로 도진이 긍정적인 의견을 내니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케이. 우리 투자의 귀재 도렌 진핏님의 말씀에 따라 나도 찬성에 한 표."

    소속사 대표인 오대용이 표를 던졌고 당사자인 이은지와 레드슈, 안티체리도 찬성이었으니 결론은 나왔다.

    "뭐 걸리는 게 몇 가지 있긴 하지만 걷어차기엔 아깝지."

    "걸리는 게 더 있어?"

    도진의 물음에 오대용이 흥, 하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게 두 팀으로 나뉘어서 경쟁하는 거잖아. 그 중 한 팀은 우리 바른 엔터팀. 그리고 거의 확정된 다른 한 팀이…… DS팀이야."

    "DS? 거기?"

    "어. 거기."

    그것은 정말로 예상외였다.

    아니, 다른 곳도 아니고 3대 기획사 중 하나인 DS 소속 연예인들이 뭐가 아쉬워서 여기에 나간단 말인가.

    오대용이 웃는 얼굴 그대로 어깨를 으쓱였다.

    "요즘 여론 안 좋으니까 그 잘나신 콧대를 꺾고 다른 면모를 보여주겠다 이건가 봐."

    "아, 그래."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게다가 생각해 보니 DS 팀 중 하나인 신인 아이돌 팀이 그 부정적인 여론까지 더해져 기대와 달리 부진하다고 했던가.

    럭셔리한 이미지를 고수하던 전략을 바꿔 개고생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미지 세탁을 노리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방송국놈들은 신나겠네."

    "그렇겠지?"

    성사된다면 DS 대 바른 엔터인데 외적인 이야기들로 인해 오히려 'A급'들로 섭외하는 것보다 흥미를 끌 수 있는 조합이 아닌가.

    "오케이. 그러면 도장 찍고 회의 일정 잡고 올게."

    "넹. 수고해요, 사장님."

    안티체리의 큰언니 설현주가 웃으며 살랑살랑 손을 흔들었다.

    그 인사에 답해 손을 흔들고 사장실을 나서며, 오대용은 생각했다.

    '괜찮겠지.'

    문제는 하나둘이 아니라 '몇 가지'였다.

    도진에게는 말하지 않은, 안티체리가 굳이 말하지 말라던 '사소한 문제' 또한 거기에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일일이, 모든 것을 아기에게 젖병을 물려주듯 다 처리해 줄 수는 없는 일이다.

    오대용은 자신의 소속사 아이돌들을 믿기로 하며 자신이 해 줄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 * * *

    계약은 성사되었다.

    동시에 보도 자료가 배포되며 네티즌들이 예상대로 장작을 태웠다.

    -바른엔터vsDS 캐스팅 실화냐? 가슴이 웅장해진다;;

    -왘ㅋ 시밬ㅋㅋ 이건 무조건 본다 ㅋㅋㅋㅋ

    -이거 안 보면 인생 절반 손해임. 내가 미래에서 보고 옴;;

    -미래 보고 온 선생님, 올해는 리중딱 벗어나나요?

    -그건 관심없어서 안 보고 왔지만 안 봐도 뻔한 걸 왜 물음?

    -이**끼가?

    도진의 오함마로 상징되는 바른 엔터와 DS의 경쟁 구도는 연예계 최대의 '꿀잼 이슈'였다.

    그것이 무려 정글 오지에서 생존과 경쟁을 동시에 수행한다는 프로그램에서 성사되었으니 기대를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그 관심은 자연스럽게 '아빠 매니저' 김도진이 오랜만에 출연한 바른 엔터의 웹 예능으로 몰렸다.

    평소의 다섯 배는 될 법한 시청자 수를 찍은 라이브 방송에서 도진은 이은지와 레드슈의 세 사람, 그리고 안티체리 중 뽑힌 두 사람 리더 주교은과 큰언니 설현주를 앞에 두고 말했다.

    "최대한 안전을 확보한 상태에서 촬영을 하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절대로! 방심하면 안 돼요. 프로그램의 컨셉도 그렇고 최대한 체력을 키워야 하고 위험에 대비해서 항상 긴장해야 한단 말예요. 그러니까 무조건! 불편해도 지급하는 방탄복은 벗으면 안 돼요. 알겠죠?"

    "네에."

    도진의 당부에 이은지를 포함한 여섯 명이 병아리처럼 네에, 하고 대답한다.

    "그런데 아빠."

    "네, 설현주 양."

    -아빸ㅋㅋㅋ

    -심지어 그걸 자연스럽게 받네 ㅋㅋㅋㅋ

    -두 사람 나이 띠동갑 아님?

    -아니 미친놈아 ㅋㅋ 그건 너무하자너 ㅋㅋㅋ 열세살밖에 차이 안남.

    -? 열세살이면 띠동갑보다 더 많이 나는 건데?

    -잔인한 색기들;;

    채팅창을 애써 모른 척하며, 입술을 삐죽이며 설현주가 말했다.

    "너무 겁주는 거 아냐? 방탄복 꼭 입고 다니라니, 꼭 총 맞을 거 같잖아."

    "그 정도로 긴장하란 말이에요. 그리고 정말 혹시 모르는 거잖아요. 조심해서 나쁠 거 없어요. 총알도 살살 맞으면 안 아프다고 하잖아요."

    -?

    -ㅖ?

    "? 그런 말이 있어?"

    "뭔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주교은이 빽 소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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