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9화
숭무고 독살 사건은 장기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2주가 지났음에도 연일 기사가 보도되면서 여전히 큰 관심을 받고 있는데 범인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비판 기사가 슬슬 올라오는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 긴급히 구성된 수사 본부의 책임자가 된 강연수 본부장은 자고 일어나면 베개 주위로 흩어진 머리카락을 한 움큼씩 볼 만큼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시발, 나더러 어쩌라고.'
이번 숭무고에서 일어난 독살 사건은, 단순 비교야 할 수 없겠지만 굳이 말하자면 청와대에서 독살 사건이 일어난 것에 댈 수 있을 만큼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과장이 아닌 것이 숭무고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재벌, 국회의원, 대문파, 그 외 온갖 고위층의 자제들이 아닌가.
심지어 그런 배경에 재능까지 있는 대한민국의 '미래'들이다.
당연히 이들을 지키기 위해 천문학적인 자금이 투입되고 있었고 그 자금에 걸맞는 보안을 유지하고 있는데 살인, 그것도 독살이 일어났으니 이 난리가 나는 것이다.
이래서야 우리 후계자들을 맡길 수 있겠느냐는 성난 소리가 터져 나올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고스란히 압박이 되어 수사 본부장 자리에 앉은 강연수를 찍어 눌렀다.
'답답하면 니들이 수사하든가!'
맘 같아선 그렇게 소리치고 싶은데 그랬다간 뼈도 못 추릴 게 뻔하니 그저 전자 담배만 뻑뻑 피워댈 수밖에 없었다.
보신을 최고의 가치로 두는 그는 무공을 꾸준히 익히고 있어서 그냥 담배도 피지 못한다.
그래서 불만으로 그득한 그를, 마주앉은 푸른색 정장 무복을 번듯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위로했다.
"고생이 많으시군요, 선배님."
"어후, 말도 마라. 이러다 진짜 탈모 오겠다.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그냥 현장 지원할 걸 그랬어."
"하하. 그렇게 노래를 부르시던 화이트칼라가 되셨으면서 이제와서 후회하십니까."
"후……. 넌 이런 거 하지 마라. 차라리 몸 힘든 게 낫지."
"예. 동감입니다."
그는 중요했던 임무에서 선임을 잃었다.
그 때문에 갑작스런 진급을 하게 되었고 그 자리에서 준비되지 않은 '화이트칼라'로서의 업무 또한 떠맡아야 했다.
제일 힘든 게 사람 대하는 일이라더니, 그 말의 뜻을 몸으로 체감하는 나날이었다.
그 사람 대하는 일을 주로 하게 된 까마득한 선배의 한탄을 들어주고 있을 때였다.
우우웅-
"아, 죄송합니다."
"그래. 어여 받아."
진동으로 설정해 두었던 그의 스마트폰이 울었다.
양해를 구하고 전화를 받은 그의 귀로, 생각지 못했던 인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녕하세요, 유상균 부대장님.
목소리의 주인은 그가 대장이 아닌 부대장이었던 시절.
무림 전담 타격대 부대장으로서 투입되었던 임무에서 그를 구해 주었던 학생.
대한민국에서 지금 가장 주목받는 후기지수인 김도진이었다.
* * * *
현재 종합 연구동을 지키고 있는 무인들 중 절반은 무려 무림 전담 타격대의 무인들이었다.
숭무고 독살 사건이 얼마나 중요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일면이었는데, 도진은 바로 그 무림 전담 타격대에 인연이 있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개미굴에서 인연을 맺었던 부대장이었다.
"아, 진급을 하셨군요."
"예, 그렇게 되었습니다."
"축하드려요."
카페에 앉아 본론에 앞서 인사를 나누다 도진은 그가 대장으로 진급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딱딱하게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는 없어 인사를 나누기는 했으나 본론이 따로 있다는 걸 서로가 알고 있었기에 서론을 길게 가져가진 않았다.
당장 도진의 옆에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았던 위연서가 있었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도진이 말했다.
"단도직입적으로 부탁드릴 게 있어서 이렇게 연락을 드렸습니다."
"예, 무엇입니까."
유상균에게 있어 도진은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진급의 은인'이기도 했다.
일전의 신풍회 사건 때의 부탁을 들어줌으로써 오히려 그가 큰 공적을 쌓았고 그것이 진급으로 이어졌으니 말이다.
그런 도진이 긴히 제보할 것이 있다고 해서 이렇게 자리를 가진 것이었다.
도진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남욱현의 방을 위연서 강사님이 수색할 수 있도록 조치할 수 없겠습니까."
"…남욱현의 방이요?"
"네. 기숙사가 아니라 본가의 방을요."
"…그 말씀은?"
도진의 고개가 무겁게 끄덕여졌다.
"네. 이번 사건의 범인이."
남욱현일지도 모릅니다.
유상균의 얼굴이 무겁게 굳었다.
* * * *
다음날.
수사 본부의 조사팀은 외부인 둘과 함께 호협남가의 본가를 방문했다.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는 말에 호협남가는 별다른 말 없이 문을 열어 주었는데, 그렇게 안에 들어서는 조사팀 안에 포함된 외부인 둘은 다름 아닌 도진과 위연서였다.
"아니, 그러니까 남욱현이 범인일지도 모른다고? 죽은 학생이?"
"그럴지도 모른다는 이야기입니다. 밑져야 본전이니 데려가서 조사해 보는 건 어떻겠습니까."
"하…… 이게, 씨. 그러니까 그 위연서 입에서 나온 말인데 그걸 믿고 조사를 해보자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도진 학생이 보증을 서면서 한 말이니, 어차피 이대로 있어봐야 위에서는 압박만 할 텐데 그럴 바엔 조사라도 해 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끙."
도진의 부탁에 유상균은 강연수 수사 본부장을 설득해 주었다.
도진의 입장에서는 위연서가 갑자기 그런 충격적인 증언을 하는 것보다야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생각으로 한 일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그것이 정답이었다.
무림 전담 타격대 대장으로 진급한 그는 이번 사건의 수사 본부장을 맡은 강연수와 괜찮은 선후배 관계였던 것이다.
덕분에 이렇게 다음날 즉시 조사를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저벅. 저벅.
호협남가 내부는 당연히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다만 그 성질이 조금 다르다고, 도진은 생각했다.
마치 평소와 같은 분위기에 검은 얼룩이 묻은 듯하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그 얼룩의 느낌을 한 마디로 하자면.
'권력 투쟁인가.'
도진으로선 한 번도 겪은 적이 없는 것이었는데도 보고 듣고 배운 것들을 통해 대번에 그런 단어가 도출되었다.
남욱현이라면 직계에 가까운 인물인데, 그 인물의 죽음 자체에 대한 슬픔보다는 그로 인한 변수를 걱정하는 듯한 분위기가 그런 단어를 도출하게 만들었다.
세가(世家)의 이름과는, 그리고 도진이 아는 남사현과는 참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여깁니다."
도진은 조사팀과 함께 남욱현이 머물던 방에 도착했다.
호협남가의 무인들, 그리고 남욱현의 형과 어머니가 지켜보는 가운데 위연서가 나섰다.
스으으-
위연서가 내공을 일으켰다.
그 내공을 감각의 연장선으로써 퍼뜨렸다.
그리고 예상이 맞았다는 얼굴로 품에서 작은 병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게 뭡니까?"
자원하여 조사팀으로 함께 온 유상균이 물었다.
위연서가 뚜껑을 열며 말했다.
"혼합독의 일종입니다."
"…예?"
이 자리에서 언급하기엔 민감한 단어에 모두가 움찔했다.
위연서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설명했다.
"이곳은 이미 '청소'가 끝나 있습니다."
"청소?"
"예. 은어인데 흔적을 완전히 지웠다는 말입니다. 독의 흔적을 지우기 위해 또 다른 독을 써서 상쇄, 검출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한 거죠."
독끼리 서로 반응하여 합쳐지면 물이 되도록 만든 느낌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진짜 물이 된 건 아닙니다. 또 거기에 반응하는 검출용 독이 있거든요."
그렇게 말하며 위연서가 바닥의 한곳에 작은 병 속 액체를 똑, 떨궜다.
그러자.
치이이익-!
"헉!"
"……!"
바닥의 일부가 검은 연기를 내며 타들어갔다.
위연서는 그 액체를 자신의 손등에도 흘렸으나 그것은 물처럼 아무렇지 않게 흘러내렸다.
치이익!
그리고 하얀 손등에서 떨어진 물방울은 바닥에 떨어지며 또 한 번 바닥을 태웠다.
"……."
침묵이 내려앉는다.
그 침묵이 마치 확성기라도 된 것처럼 위연서의 입술에서 시작된 말을 증폭하여 전달했다.
"남욱현 학생의 이동경로를 따라 확인해 보면 동일한 반응들을 다른 곳에서도 확인할 수 있을 거예요."
"그 말씀은?"
그 뉘앙스는, 마치 범인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아아아악!!"
침묵을 찢어발기는 절규에 가까운 외침은 호협남가의 사람들 사이에서 나왔다.
그야말로 귀기가 서린 듯한 얼굴로 나선 것은 다름 아닌 남욱현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위연서를 죽일 듯이 노려보며 씹어뱉듯 말했다.
"너. 용의자로 의심받았던 년이지. 그랬던 년이 갑자기 나타나서 뭔지도 모를 걸 뿌리고서는 우리 아들이, 죽은 아들이 범인이라고 하는 거야? 이게 말이 돼?! 말이 되냐고!!"
"당신들은 지금 용의자 데려와서 이걸 수사라고 하고 있는 거야? 제정신이야? 우리가 우스워? 우습냐고!!"
소리가 점점 커진다.
누구 하날 죽일 것처럼 독기 가득한 얼굴로.
그러나 그 악의를 정면에서 마주하고 있는 위연서는 담담한 얼굴이었다.
담담한 얼굴로, 자신을 위협하는 기세에 기세를 일으켜 맞대응했다.
후욱-
"흡!"
"……!!"
그렇게나 살기등등하던 남욱현의 어머니가 저도 모르게 뒷걸음치며 입을 다물고 조사팀 또한 반사적으로 무기를 그러쥐었다.
숨을 쉬면 그대로 중독되어 죽을 것만 같아서.
실제로 독을 푼 게 아니라 그런 착각을 하게 만들 만큼 위연서의 기세는 미지의 공포를 선사했다.
그렇게 다시 한 번 침묵을 만들어낸 위연서가 말했다.
"하나 분명하게 정정해 두죠. 나는 용의자가 아니에요."
"그리고 또 하나 분명하게 말하죠. 내가 이 검출용 독을 사용한 건 많은 것의 희생을 감수한 거예요."
"이번 살인 사건은 외국에서는 유명한 청부 조직이 한 일이라고 나는 보고 있어요. 내가 독공을 다루니까, 그리고 중국에서 살았으니까 들은 이야기를 근거로요."
"나는, 그런 조직의 수법을 밝혀낼 수 있는 수단이 있다고 지금 스스로 드러낸 거예요."
"독을 다룬다는 이유만으로 받게 된 의심에도 나는 성실히 조사에 임했고 이제는 이런 손해와 위험까지 감수하고 있는데, 그딴 식의 말을 들을 이유는 어디에도 없어요."
"그리고 당신. 아들 때문에 그렇게 화를 내는 것도 아니잖아요. 당신에게 피해가 올까 봐, 그것 때문에 나선 것 뿐이잖아요?"
"그……!"
"아닌가요?"
억지로 무언가를 토해내려던 그녀는, 그러나 위연서의 시선을 정면에서 마주하자 다시 한 번 입을 다물고 말았다.
그 깊고 검은 눈동자가 마치 자신의 심연을 비추는 것만 같아서.
그리하여 유지되는 침묵이 위연서의 말을 긍정하고 있었다.
위연서는 그런 '어머니'를 경멸하는 눈으로 보다 몸을 돌리고서 말했다.
"조사해 보면, 범인이 누구인지 밝혀질 거예요."
* * * *
며칠 뒤.
사람들을 경악에 빠뜨리는 기사가 나왔다.
-충격! 숭무고 살인 사건의 범인은 피해자 중 한 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