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8화
이건 또 전혀 생각지 못했던 전개다.
때문에 반사적으로 존대가 나온 도진의 모습에 위연서는 조금의 아쉬움을 느꼈으나 질척이지 않고 설명했다.
"소녀는 독마전(毒魔殿)의 소전주(小殿主)이옵니다."
"독마전."
"예. 선조께서 지존의 명에 따라 맡으셨던 바로 그 독마전이옵니다."
독마전.
위지혁이 독마 하연화의 별호를 따 지었던, 독을 전문으로 취급했던 마교의 '비대칭 전력'이다.
마교는 종교 세력이지만 또 동시에 무림 세력인 만큼 당연히 거대 문파로서의 체계 또한 갖추고 있었다.
그 체계를 구성하는 거대 조직 중 하나가 독마전이었는데…….
"그걸 부활시켰다는 건가요? 아니, 부활시켰다는 거야?"
"그렇나이다. 스승님의 말로는 120여 년 전 즈음 제대로 된 기반을 닦았다고 했나이다."
그렇다는 말은.
"무공만 전수한 게 아니라 독마전 자체를 부활시키고 유지해 왔다는 거네?"
"그렇나이다. 곧 소지존을 배알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원이 얼마나 되는데? 날 찾아오겠다고?"
"소녀와 스승님을 포함하여 오십두 명입니다. 모두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신실한 신도로만 구성되어 있습니다."
조금 자세한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그런 도진의 말에 위연서가 정리하여 설명을 해 주었다.
"독마전은 대외적으로는 독공 연구 회사로 알려져 있나이다."
조직의 성격상 '우리는 고대 무림의 천마신교의 한 무맥을 이은 조직이다'라고 말할 수는 없었기에 독마전은 외부에 번듯하게 간판을 내걸 수 있는 독공 연구 회사의 형식을 취했고 실제로 운영을 했다.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대외적인 부분이고 본업은 따로 있었다.
"민초들을 대신하여 징벌해야 할 자를 징벌해 주었고 그 과정에서 독마전을 유지하기 위한 재물을 확보하였습니다."
그러니까 청부 의뢰를 받았다는 말이다.
현실적으로 볼 때 감당할 수 없는 불행에 허덕이는 하층민이 독마전에 청부를 할 만큼의 여유가 있을 리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마전은 그런 이들의 청부를 받아들여, 하늘을 대신하여 징벌을 행했다.
으레 그런 이들은 부정부패하여 온갖 불법을 통하여 축재한 재산이 있었으니 그것들을 몰수하여 활동 자금으로 삼았다는 거다.
현대판 홍길동 같은 느낌인데 현대의 법으로 보자면 당연히 불법이다.
그러나 도진은 '잘했네'라고 칭찬해 주었다.
그들이 징치한 대상은 그래도 되는,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을 오염시키는 오물 그 자체였으니까.
위연서가 처음으로, 소전주로서 멸망시킨 뒷골목의 집단도 그러했다.
'연서는 한국인이지. 그런데 아기일 때 스승에게, 중국에서 주워졌다고?'
이야기를 들으면서 가졌던 의구심이었다.
그 답을 이야기 중에 들을 수 있었다.
"소녀의 부모님은 중국 관광을 왔던 한국인 부부였다고 합니다. 한데 길을 잘못 들어 뒷골목에 들어서고 말았고 그대로 납치당하여 죽었다고 들었습니다."
중국은 눈부시게 발전하고 강해졌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어둠 또한 짙어졌다.
선택과 집중은 거대한 땅떵이를 모두 아우르지 못하게 만들었고 빛이 미치지 못하는 뒷골목은 그야말로 마경(魔境)에 다름없었다.
그런 식으로 국가의 영향력이 제대로 미치지 못하거나 거대 범죄 세력이 득세하는 나라의 뒷골목은, '밤에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한국'에 사는 한국인으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벌어지는 완전히 다른 세계였다.
빈곤국도 아니고 선진국인 한국의 관광객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나 찾을 도리가 없을 만큼.
그리고 그들 부부와 함께였던 갓난아이 또한 찾지 못했다.
그 아이가, 위연서였다.
위연서의 부모를 납치한 그들은 사람을 해체하여 돈으로 바꾸는 자들이었다.
상품성이 있다면 살려서 팔기도 한다.
당연히, 아기 또한 돈이 된다면 상품으로 취급했다.
위연서는…… 그렇게 팔리기 전 돌연 취소가 되어 버려졌고 그것이 독마전의 인연으로 이어졌다고 했다.
"제가 서류에서 알아낸 것은 이것이 전부였나이다."
"…그랬구나. 출생신고가 되어 있지는 않았어?"
"갑작스레 여행 중 저를 출산해 그런 절차를 하지 못한 듯합니다."
"그래."
안 되려고 하니 철저하게 안 되는 방향으로 일이 흘러 버린 것이다.
도진이 언뜻 본 기억으로는 해외 여행 중 출산시에도 얼마든지 출생 신고가 가능했던 것 같은데 당시의 자세한 상황을 모르니 이제와서 따져 볼 수도 없다.
'한국인 부부'라는 것도 그들 식으로 하자면 '상품 분류'였기에 알 수 있었던 내용이었으니 출생신고가 되지 않은 위연서의 연원은 알 방법이 없었다.
독마의 이름을 잇는 것은 무조건 여자여야만 한다.
그리고 그 아이는 천애고아 중에서 찾았다.
그리하여 위연서는, 자신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했던 아이는 자신의 국적만을 유지한 채 중국에서 독마의 전인 위연서로서 살게 된 것이었다.
"독마전은 그런 식으로 명맥을 이어 나갔으나 근래 들어 변화가 불가피해졌나이다."
제아무리 뒷골목이라 해도 매번 일을 벌일 수는 없다.
그 이름이 극비인 독마전의 구성원들 또한 대외적으로는 번듯한 신분을 가지고 있었다.
위험한 외줄타기를 능숙하게 해 나가던 독마전은 그러나 결단이 필요하게 되었으니 두 가지 요인 때문이었다.
"몸통은 들키지 않을 수 있었으나 결국 길어진 꼬리가 노출되고 말았나이다."
마경이라 해도, 악마들의 소굴이라 해도 나름의 법칙으로 그 세계는 돌아가는 법이다.
독마전은 그 법칙을 어기는 존재였다.
뒷골목의 집단을 구분없이 말살하고 다녔으니까.
공공의 적이 되는 건 필연적이었고 독마전이 아무리 뛰어나도 운신의 폭은 점점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때에 뒷골목 말살 정책이 펼쳐진 것입니다."
"아, 그랬지."
도진도 인터넷 뉴스로 읽었다.
중국의 크나큰 문제 중 하나가 너무 강성하고 커진 뒷골목이었다.
내부를 좀먹기 시작한 뒷골목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칼을 뽑아들었다는 기사를 도진은 이미 1년도 더 전에 보았다.
그리고 그 정책으로 인해, 안 그래도 운신의 폭이 좁아졌던 독마전의 뒷골목에서의 활동이 더욱 어려워지고 말았다.
차라리 완벽하게 뒷골목의 구성원이면 모르겠는데 버젓이 양지에서의 활동도 병행하고 있기에 어려움이 가중될 수밖에 없었다.
"저희는 본거지를 옮길 결단을 했고 그 장소로 한국을 선택했나이다."
태풍은 피하고 볼 일이다.
하물며 돌아가는 상황을 보아하니 변화는 불가피했고 차라리 본거지를 옮기고 의뢰가 있으면 교도를 파견하여 일을 수행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안전했으며, 재물에도 여유가 있으니 당분간은 연구에 조금 더 할애하자는 결론이었나이다."
얼마 전 했던 이야기가 떠오른다.
-더 이상 연구가 힘들 거 같긴 해서 한국에 자리를 잡아볼까 하는 생각이 있기는 해요
당시엔 평범한 의미였는데 이런 속 내용이 함축되어 있었음을 알게 된다.
"음, 그러니까 한국으로 이사를 하게 됐으니 곧 독마전 전부를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거네."
"그렇나이다."
그리고 그것은, 곧 도진의 휘하에 독마전이 합류하게 됨을 의미한다.
갑작스럽긴 하지만 받아들여야 할 일이니 우왕좌왕하는 대신 대비를 하기로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연결된 거간꾼을 통하여 의뢰를 받았나이다."
거간꾼이라면 그러니까 브로커다.
여기서부터가 이번 사건과 연결된 부분이었다.
"죽여야 할 자가 있는데 맡아달라고 했고 저희는 내용을 확인 후 수락했나이다."
무인의 수준이 대단치 않았고 노릴 수 있을 만한 포인트 또한 얼마든지 있었다.
임시라고는 하지만 숭무고 강사라는 부분이 걸리긴 했으나 독마전이 어려움을 겪을 만한 난이도는 아니었다.
브로커들 입장에서도 한국에서의 실적이 없을 뿐 실력있는 자들을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으로 고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었다.
"보수는 낮았으나 한국에서 자리를 잡기 위한 커넥션이 필요했으니 수락했나이다."
그렇게 수락한 타깃이.
그래, 양원치였다.
"양원치에게 청부 살인 의뢰가 걸렸다니, 무슨 이유였어?"
썩어 빠진 부패 교사이긴 했으나 피라미였다.
그런 양원치에게 청부 살인이라니. 이유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도진의 물음에 위연서가 즉시 답했다.
"그는 문월고 입시와 관련한 브로커 역할 또한 했는데, 의뢰를 받아 놓고 약속을 지키지 않자 청부가 들어갔습니다."
'…잠깐만.'
위연서의 설명을 들은 도진이 멈칫했다.
전생에서 양원치가 어떻게 됐는지에 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그래서 살인 사건이 있었는데 몰랐던 건지 아니면 이번 생에 처음 발생한 일인지 몰랐던 일이 지금, 명확해졌다.
이 살인 사건 또한, 도진으로 인한 나비효과의 연장선상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다.
도진이 전생에서 풀지 못했던 의문 중 하나였던 문월고 합격에 관한 비사.
문월동 재개발 추진 위원회의 위원장이 됨으로써 행패를 부렸던 구장성이 아들을 무림고에 넣기 위해 부렸던 수작에 자신의 의사와 관계없이 포함되어 도진은 본래 들어갈 수 없었을 무림고, 문월고에 들어가게 되었다.
도진은 이것을 나성보가 구장성을 탈탈 터는 과정에서 나온 비리를 통해 알게 되었다.
한데 여기에 당시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또 다른 범죄자가 있었으니 그것이 바로 브로커로서도 활동했던 양원치였던 것이다.
'하.'
구장성과는 연관되어 있지 않아서, 그리고 그것이 잔챙이였기에 당시 양원치는 그물망을 피해갈 수 있었다.
보통은 갑자기 감투를 쓴 구장성과 잔챙이 브로커인 양원치가 얽혔을 텐데 이걸 운이 좋았다고 해야 할까.
아니, 양원치 입장에서는 독살을 당하고 말았으니 오히려 재수가 없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니까 의뢰를 받긴 했는데 그때 일 때문에 분위기가 살벌해져서 약속을 못 지키게 되자 먹튀를 했고 그 먹튀에 열받은 부모가 살인 청부를 넣었다는 거네."
"그 말씀대로입니다."
브로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아 학생은 문월고에 들어가지 못했다.
그 학생의 부모이자 피해자(?)는 뒤가 구리다 보니 신고를 할 수는 없고 아예 살인 청부를 넣어 버렸다는 거다.
골때리는 일이다.
"그래서 연서 니가 원래 죽였어야 할 놈이었다는 거구나. 양원치가."
"예. 하지만 제가 손을 쓰기도 전에, 다른 독수(毒手)의 손에 죽었나이다."
"……."
그것은 도진이 생각했던, 범인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며 조사의 방향 자체가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대비할 수는 없었던 거야?"
"예. 이곳에는 독마전의 영향력이 전혀 미치지 못하기에, 미리 알았음에도 대비를 할 수가 없었나이다."
그 말대로였다.
독마전에게 있어 이곳은 그냥 타지도 아니고 연고 하나 없는 외국이었다.
특성상 수많은 커넥션이 필요한 독마전이었는데 그런 게 하나도 없으니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때문에 위연서는 범행 하루 전 남사현에게서 혼합독의 냄새를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살인을 막지 못한 것이었다.
'음…….'
"그놈들이 누구인지는 알아?"
"수법으로 볼 때 외국에 알음알음 알려져 있는 '무형독(無形毒)'이 아닐까 소녀는 추측하고 있나이다."
"무형독?"
"예. 어떤 흔적도 남기지 않고 자신들을 드러내지도 않으면서 대상을 독으로 암살하는 조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조직의 이름조차 알려진 바가 없어 편의상 무형독이라 불리고 있는데 중국을 포함하여 치안이 불안정한 곳에서는 그 이름이 사신처럼 취급되고 있나이다."
"흐음."
사신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 녀석들이다.
"그 정도 되면, 범인을 찾는 건 불가능하겠네."
이미 미궁에 빠져 버린 사건이다.
심지어 위연서마저 이렇게 말할 정도라면 범인을 찾을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한데 바로 그때, 위연서가 말했다.
"무형독의 조직원은 찾을 수 없겠지만 이번 살인 사건을 행한 범인이라면, 소녀는 확신할 수 있는 인물이 있나이다."
"뭐? 범인을 알고 있는 거야?"
도진의 말에 위연서가 고개를 숙이고서 말했다.
"예. 아직은 심증이지만, 그들을 죽인 것이 무형독이 맞다면 소녀의 생각이 틀리지 않을 것입니다."
범인은…….
위연서의 입에서 나온 이름은, 생각지도 못한 사람의 이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