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358화 (358/741)

357화

마교(魔敎).

무협 소설에서 그곳은 단일 세력으로 무림을 전복시킬 수 있는 무시무시한 문파로 등장한다.

천마는 천하제일을 다투는 카리스마 있는 최종 보스급 무인이고 그 아래 수하들 또한 손꼽히는 천하의 강자들이다.

작품마다, 작가마다 마교에 관한 설정에 차이가 있었지만 대체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일치했는데 이것은 도진이 알게 된 '현실의 천마신교' 또한 다르지 않았다.

물론 그 부분을 제외한 많은 부분이 픽션과는 달랐다.

순수한 악의 집단도 아니었고 골수까지 마기가 들어찬 마인들의 집단도 아니었다.

다만 보통의 문파와는 비교조차 안 될 만큼 구성원들의 충성도가 광신적이라고 할 만큼 대단했으니 그 원동력이 바로 천마신교가 교(敎), 종교로 묶인 집단이라는 것이었다.

마교는 '무림 세력'이지만 동시에 종교 세력이기도 했다.

아니, 오히려 무림 세력이 곁가지이고 종교 세력이 중심이라고 해야 할 만큼 그 근본은 종교적인 부분에 있었다.

그토록 커다란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교리에 사람들이 심취했기 때문이며 심지어 그토록 많은 고수가 나올 수 있었던 것도 다 '신실한 신자'로서의 마음가짐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무공은 육체만이 아닌 정신과 마음까지도 다스리고 단련해야만 선을 넘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종교는 분명히 큰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말이지.'

도진은 머릿속에 휘몰아치는 생각을 차곡차곡 접어 정리하며 자신을 하늘에서 강림한 구세주라도 마주한 듯 올려다 보는 위연서의 시선과 관련한 부분만을 추려냈다.

'…정말로 신실한 교도라고 봐야겠지, 이건.'

도진이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강사님은 버려진 아기였는데 스승님이자 어머님이 거두어 양녀로 삼고 길러 주셨으며 무공을 전수해 주셨다는 거네요."

"그 말씀에 틀림이 없나이다, 소지존."

중국은 세계의 패권을 다투는 강국이 되었다.

현대에 등장한 무림이 큰 영향을 끼쳤음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다.

다만 빛이 강하면 그림자 또한 강해지듯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았으니 광량이 모자란 형광등이 달린 커다란 방처럼, 그 빛이 미치지 못하는 '뒷골목'은 더욱 어두워졌다는 것이다.

그 뒷골목의 어둠 속에서 울고 있던 부모도 모르는 아기를 거두어 준 것이 그녀, 위연서의 스승이었다.

그리고 그녀 또한 신실한 천마신교의 교도였다.

"어머니께서는 저에게 신교의 교리와 무공을 사사해 주셨으며 동시에 선조와 지존의 이야기를 자장가처럼 저에게 들려주셨나이다."

그렇게 말하는 위연서의 얼굴엔 추억과 행복이 가득하다.

훈훈한 이야기이긴 한데…….

문제는 거기에 기준치를 초과한 감정 또한 포함되어 있다는 거다.

천마신교의 교리는 특히나 '불합리한 불행을 감당해야만 하는 민초(民草)'들에게 매력적이다.

위연서 또한 그 범주에 있었으니 그녀를 거두어 준 스승이자 어머니를 통하여 천마신교의 신실한 교도가 되는 건 차라리 필연적이라 할 수 있었다.

한데 거기에 단순히 교에 대한 충성만이 아닌, '지존에 대한 동경'이 섞여 버린 게 문제였다.

"매일밤, 매일밤. 소녀는 소녀가 모시게 될 지존을 상상하고 또 모시게 될 날을 고대하며 잠들었나이다."

그러니까 혼자만 하는 연애도 아니고 만나지도 않은, 심지어 누군지도 모를 지존에 대한 호감도, 내적 친밀감 같은 게 이미 맥스를 찍어 버린 게 위연서였다.

도진의 사고방식으로는 뭐 억지로 이해는 해도 납득은 못할 일이다 보니 이토록 당황스럽기만 하다.

아니, 서로 존재조차 모르고 살았으면서 갑자기 이러는 게 가능하냔 말이다.

그러면서도 종교가 엮이면 그럴 수 있지 하면서 한편으로는 납득을 하니 더 복잡한 느낌이다.

동시에 또 다른 생각도 든다.

'어색해.'

일방적인 짙은 감정에 대한 어색함이 아니다.

그녀의 태도와 말투를 포함한 것들에 대한 어색함이다.

그녀는 마치 무협 소설 속에서 튀어나온 것만 같은 느낌이 있다.

'강사 위연서'일 때는 분명히 현대인이었는데, 독마 하연화의 전인임을 밝히고 도진의 앞에 무릎 꿇은 채 말하고 있는 그녀는 무협 소설 속의 인물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고대 무림에서 현대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게 아니라 고대 무림에서 현대로 '점프'를 해 버린 듯한 어색함이 느껴진다.

'…청학동도 아니고.'

적어도 격리된 사회에서 무협 소설 속 사람들처럼 살아온 집단이 발견됐다는 보고를 도진은 들어본 적이 없었다.

도대체가, 풀어야 하고 들어야 할 이야기가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러나 도진은 이내 모든 것들을 앞서 생각처럼 차곡차곡 정리하여 한 켠에 밀어 두었다.

일단은 먼저 해결해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

이에 관한 이야기는 위연서가 독마 하연화의 전인임을 밝히고 도진을 소지존으로 모시는 태도에서 볼 때 얼마든지 날을 잡고 제대로 된 자리를 마련하여 진행할 수 있었다.

그게 먼 이야기도 아니었으니 일단은 당면한 일을 해결하기로 결정을 한 도진이 말했다.

"위연서 강사님."

"예, 소지존."

도진의 부름에 위연서가 공손히 답한다.

한데 그 얼굴에 무언가 말하고 싶은 게 있다는 티가 역력하게 드러나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도진이 그것을 지적하자 위연서가 파, 하고 얼굴이 피며 입술을 뗐다.

"예, 소지존. 불경하지만 소녀가 감히 한 가지를 부탁드려도 되겠나이까."

"…예. 말씀해 보세요."

"계속 강사님이라 부르시니 소녀 너무나 불편하고 거리감이 느껴져 슬프나이다. 소녀를 소지존의 수족이라 여기시고 그저 연서라 불러주시면 안 되겠나이까."

아.

가깝다.

내적인 거리가 일방적으로 너무 가깝다.

도진은 그렇게 생각했지만 여기까지 와서 더 입씨름을 하기도 번거로웠다.

안 그래도 해야 할 이야기가 구만리인데.

그래서 가타부타 말하는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럼 앞으로는 그냥 이름으로 부를게요. 그럼 연서 씨, 우선 자리에 앉아서 이야기하죠."

그녀는 여전히 바닥에 무릎 꿇은 채 정갈한 자세로 소파에 앉은 도진을 올려다 보고 있었다.

그래. 자리를 옮겨 도진이 소파에 앉자 그 옆 바닥에 공손히 무릎 꿇고 앉았단 말이다.

그게 부담스러워 도진은 본격적인 이야기 전에 이야기를 꺼낸 것이었다.

그 말에 위연서가 답했다.

"그…… 소지존."

"……네."

아, 또 왜.

그런 말이 나올 뻔 했으나 꿀꺽 삼킬 수 있었다.

그 기색마저 귀신처럼 읽은 위연서가 그러나 조심스레 자신의 요구를 꺼냈다.

"가까운 수족처럼 여기시어 편하게, 반말로, 명령해 주시면 소녀는 정말 기쁘겠나이다."

…돌겠네 진짜.

이마를 짚을 뻔 했다.

실례가 되고 위연서가 무안할 거라는 생각에 그 행동을 자제하며 도진은 생각했다.

'그래.'

겉으로야 열여덟이지만 도진은 사실 전생과 현생까지 더하면 서른일곱쯤 되지 않는가.

지금 무릎 꿇은 채 올려다 보고 있는 위연서가 제아무리 요염하고 남고딩 정도는 눈빛만으로도 넉다운 시킬 수 있는 어른스런 매력의 소유자라 해도 도진의 시선으로 보면 파릇파릇한 '20대 소녀'일 뿐이다.

동년배나 나이가 어린 입장에서 보면 어른일지 몰라도 나이를 훨씬 더 먹은 입장에서 보면 결국 어린 티가 난다는 말이다.

도진이 한창 무공을 배우고 있을 때 위연서는 '응애, 나 아기 위연서. 맘마 줘' 말도 못하는 갓 태어난 아기였다.

'오케이.'

결론을 내리고 도진이 위연서와 눈을 맞추었다.

"오케이. 그럼 앞으로 편하게 대할게. 위연서, 일단 저기 자리에 앉아."

"……예! 소지존!"

기뻐한다.

정말로 기뻐하며 몸을 일으키는 위연서였다.

도진은 약간 길게 숨을 내뱉고서 말했다.

"아, 그 전에 옷 갈아입고 와."

"알겠나이다, 소지존!"

"그리고 가능하면 소지존 말고 나도 좀 무난하게 불러주면 좋을 거 같아."

그 말에 위연서는 진지한 얼굴이 되었다.

"그건 안 될 말씀이옵니다, 소지존. 소지존을 소지존이라 부르지 말라고 하셔서는 절대! 안 되나이다."

"……."

"소지존께서 우려하시는 바가 어떤 것인지 소녀도 감히 짐작은 할 수 있나이다. 걱정하지 마소서, 필요할 때에는 자연스럽게 행동하겠나이다."

"…그래, 고맙다."

생각해 보니 회귀한 후로 이렇게 말리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위연서는 곧 옷을 완전히 갈아입고 나왔다.

정장이 아닌 외출복 차림이었는데, 자켓에 스커트까지 한껏 신경을 쓴 모습인 것이 도진이 큰 영향을 미쳤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옷을 갈아입은 그녀가 도진의 맞은편에 다소곳이 앉았다.

그녀를 마주한 도진이 후우, 숨을 내쉬고서 말했다.

"내가 이곳에 찾아온 건, 위연서 당신을, 아니 연서 너에 관해서는 물론이고 이번 사건에 관해서도 알고 싶은 게 있기 때문이었어."

"예, 소지존."

눈을 마주하고 있으니 그녀가 도진이 무엇 때문에 여기에 왔는지, 또 무엇을 묻고 싶어하는지 다 알고 있는 듯한 얼굴이다.

'소지존에 관한 건 무엇이든 다 알고 있나이다' 같은 감정이 느껴지는데,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소곳이 앉은 채 듣고 있는 건 그야말로 훌륭한 수하로서의 표본이다.

'끙.'

-햐, 저놈 이야기라고 하긴 했는데 이걸 이렇게 벌써 보게 되네. 꿀잼이구나, 장 제.

-그러게 말입니다.

'…….'

"…일단 단도직입적으로 물을게."

"예, 소지존."

"니가 죽인 거야? 양원치랑 남욱현."

도진의 물음에 위연서는 옅은 미소를 지은 얼굴로.

"제가 죽이지 않았나이다, 소지존."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 말했다.

* * * *

말의 진위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실이었다.

소위 말하는 '감'이 그러했으며 도진이 신안으로 보고 장호에게 배운 '사람 보는 법'을 포함한 가르침들 또한 객관적으로 그렇게 판단할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래, 다행이네."

그 대답으로 앞서 했던 많은 걱정들 다수를 덜 수 있었다.

그녀는 천마신교의 교도로서 결코 넘어선 안 될 선을 넘지 않은 신실한 교도였다.

'이렇게 되면…….'

그녀가 범인이 아니라면 정말로 사건은 미궁에 빠진다.

사실 혼합독 전문가라는 이유만으로 의심을 받게 됐으니 그녀로서는 정말로 억울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다.

화를 내도 무죄란 말이다.

한데 그런 일이 벌어질 정도로 의심가는 인물이 없다.

그녀의 증언으로 의심의 화살이 향했던 남사현 또한 범인이 아니라는 쪽으로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위연서도 아니고 남사현도 아니고, 그 외 가능성이 있었던 업무 보조인 또한 아니다.

그렇다면, 범인은 전혀 예상치 못한 인물이며 조사의 방향 자체가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흐른다.

'추리는 자신없는데…….'

추리 만화는 좀 보았지만 뇌를 비우고 그냥 스토리만 보았다.

애초에 도진은 추리와 그리 궁합이 좋은 타입도 아니었다.

더 나아가, 생각해 보면 굳이 도진이 범인을 추리할 이유도 없긴 했다.

남사현과 약리지, 두 후배를 위해서이자 독마 하연화의 전인인 위연서가 얽혀 있어 사건에 개입하긴 했는데 그 사건을 도진이 주도적으로 풀어야 하는 건 아니었다.

수사 방향이 남사현의 무죄가 증명되고 위연서가 범인이 아니란 것도 알게 됐으니 더더욱.

그렇게 도진이 생각할 때였다.

"제가 죽이지 않았지만, 본래는 제가 죽여야 할 인물이었나이다, 소지존."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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