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5화
사건의 개요는 이러했다.
오전 6시 30분경.
양원치는 강의를 수강하는 학생 중 한 명인 남욱현과 만나 아침 식사를 함께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단순히 강의를 하는 게 아니라 제자를 찾는 데 목적을 두었기에 제자들과 개인적으로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곤 했으니 이것은 특별한 일정이 아니었다.
앞서 몇 번이고 양원치는 여러 제자들과 수업 외의 만남을 가졌다.
의심가는 부분 없음.
오전 7시 30분경.
식사가 끝나고 자리를 옮겨 자신에게 배경된 개인 업무실에서 차를 마시며 남욱현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두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었던 개인 업무실은 '밀실'이 되었다.
양원치는 따로 기명 제자가 없기에 학교와 계약한 사람이 업무 보조를 맡고 있었는데 양원치가 제자와의 '사적인 이야기'를 하는 데 타인이 있는 걸 싫어해서 일부러 자리를 비웠다는 진술을 업무 보조인에게 받았다.
역시 의심가는 부분 없음.
오전 8시경.
당일 오전 9시에 있던 수업의 준비와 관련하여 문의할 게 있어 업무 보조인이 부득이하게 노크를 하였다.
그러나 안에서 반응이 없어 업무 보조인은 갈등하다 우선 물러났다.
그리고 10분 뒤.
다시 찾아가 노크를 했으나 이번에도 안에서 반응이 없었다.
이상함을 느꼈고 더 이상 일을 미룰 수도 없는 상황이라 업무 보조인은 문을 열었고.
'……!!'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야 할 양원치와 남욱현이 쓰러져 있는 걸 발견, 다급히 학교에 신고를 넣은 것이었다.
그는 교육받은 대로 학교에 신고를 넣었고 학교 측은 바로 행동에 나서며 경찰에 연락, 현장을 보존하고 차단한 것이 8시 17분경이었다.
이 과정에서 현장을 훼손하거나 혼선을 주려는 시도는 일절 없었다.
이어서 도진과 소담을 포함한 학생들에게 '휴교령'이 내려온 것이 8시 30분.
나지윤이 상황을 파악하고 집행부실에 나타나 내용을 설명해 준 것이 8시 50분경이었다.
그 나지윤 덕분에 도진은 조금 더 많은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피해자 두 사람, 양원치와 남욱현은 혼합독에 당했다.
그리고 그 방식은.
"양원치는 믹스 커피를 즐기는 성격이었어. 그래서 개인 업무실에 항상 믹스 커피가 비치되어 있었지. 그 믹스 커피의 스틱 안에 혼합독의 재료가 주입되어 있었어."
썩어도 준치라고, 양원치는 그래도 제법 인정을 받는 무림인이었다.
그런 무림인이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감쪽같이 포장돼 있던 믹스 커피의 스틱 안에 독을 섞었다.
"그리고 거기에 섞여 맹독이 되는 다른 재료가 컵에서 검출되었어. 입술을 대고 마시면 섭취, 내부에서 혼합되는 독이었지."
두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고 차를 마심으로써 죽음에 이르는 독에 당한 것이었다.
죽기 전에야 그것을 알게 돼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으나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죽었다.
개개의 원료로는 독이 아니어서 대비가 힘들다는 혼합독의 무서운 점이다.
"초동 수사 단계에서 의심가는 인물은 둘이었어. 한 명은 위연서."
외부인이면서 혼합독 전문가. 그리고 알리바이가 완벽하지 않았기에 조사 대상이었다.
"그리고 다른 한 명이 업무 보조인이었지."
범행을 하기에 가장 유리한 포지션이었던 게 업무 보조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업무 보조인은 독에 관해 문외한이었고 조사를 하면 할수록 의심을 놓을 수밖에 없을 만큼 깔끔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위연서 강사가 더 의심을 받기는 했는데…… 사실은 이쪽도 억울할 수 있지."
혼합독 전문가에 알리바이가 완벽하지 않다.
그러나 사실 사람이 언제나 알리바이가 완벽할 수는 없다.
특히 연구실에서 연구를 하는 시간이 많은 독공 연구자라면 더더욱 말이다.
기실 종합 연구동의 독공 사용자들 중 세 명을 빼고 알리바이가 완벽했던 것도 그들의 특성상 출입 기록만큼은 철저하게 관리되기 때문이었다.
하물며 위연서가 양원치나 남욱현을 죽일 동기조차 없었으니 단서가 없어 위연서가 부각되는 것일 뿐 그녀 또한 어디까지나 참고인으로서 조사에 협조를 부탁하는 단계였다.
그리고 그 조사 단계에서 위연서는 조사의 흐름을 뒤흔드는 진술을 했으니.
"남사현에게서 혼합독 중 하나의 냄새가 났다고 진술했어."
학교 내에서 강사와 학생이 마주치는 우연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수업을 듣지 않더라도 남사현과 위연서가 스쳐가는 일 또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었다.
그 우연이 일어났던 때에, 위연서는 혼합독 전문가로서 남사현에게서 혼합독에 사용되는 원료의 냄새를 맡았다고 진술한 것이다.
"그리고 조사 결과 그 진술이 사실이었던 걸로 드러난 거야."
그날 입었던 남사현의 무복에서, 기숙사에서, 동선 곳곳에서 범행에 사용되었던 혼합독의 원료가 검출되었다.
전문적으로 훈련받지 않고선 눈치챌 수 없는, 그리고 취급할 수도 없는 원료가.
그것이 어디까지나 피해자 가문의 직계이자 사촌동생이었던 남사현이 용의 선상에 오르게 만들었다.
그리고 남사현 또한 양원치와 개인 업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것도 남욱현이 양원치와 이야기를 나누기 바로 전날 말이다.
이때 남사현은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면서 직접 잔과 쟁반을 정리하여 업무 보조인에게 건넸다고 했다.
그리고 컵에 발라져 있던 독은, 두어 번 씻는 것만으로는 효과가 사라지지 않는 독이었다.
"…어떻게 생각해?"
도진의 물음에 나지윤은 약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라고 생각해."
"동감이야."
남사현이 그럴 리가 없다.
어디까지나 감정적인 판단이었지만 때로 그것은 논리보다 명확하게 본질을 꿰뚫곤 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것에 동감하는 건 아니었다.
학생들 사이에서 소문이 퍼져 나갔고 일부는 남사현이 범인일 거라는 생각을 조심스레 내놓곤 했다.
-사람 속은 모르는 법이잖아. 수업 중에 양원치 강사가 남욱현을 편애했다면서.
-외국의 유명 MC, 국민 MC가 사실은 소아성애자였다는 게 밝혀지면서 난리가 나기도 했지. 진짜 사람 속은 모르는 거야.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사람의 속은 결코 읽을 수 없으니 치명적인 증거가 나온 지금 남사현이 범인일지도 모른다는 의견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물론, 남사현을 잘 알고 겪어 본 사람들은 아닐 거라 강하게 믿었고 그 증거 하나만으로 남사현을 범인으로 몰 수는 없었기에 사건은 미궁에 빠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너무한 거 같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잠깐 찾아온 약리지는 눈가가 붉어진 얼굴로 그렇게 말했다.
소꿉친구가 말도 안 되는 의심을 받는 게 분하고 슬프다는 게 하얀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리고 사건 발생 후 8일째.
휴교령이 풀리고 정상 수업이 진행되었다.
길어질 조짐이 보이는 사건 때문에 언제까지고 숭무고를 셧다운 시킬 순 없었기 때문이다.
도진은 결론을 내리고 행동에 나섰다.
"강사님. 이 시기에 죄송하지만 찾아봬도 괜찮을까요?"
독공 개론 수업이 끝나고 묻는 도진에게 위연서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괜찮아요. 30분 뒤에 연구실로 오실래요?"
"네. 그럼 그때 뵐게요."
위연서는 어디까지나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았기에 강사로서의 일상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녀는 당당하게 행동했고 학생들도 그녀가 범인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럴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그저 독공 사용자라 억울하게 의심을 받은 거라고 그녀는 물론 학생들도 받아들였다.
…하지만 도진은 아니었다.
도진은 홀로 약속 시간에 맞춰 그녀의 연구실을 찾아갔다.
출입 명부를 작성하고 연구동 안 그녀의 연구실로 향했다.
위연서의 연구실은 외딴섬처럼 연구동 내에서도 구석에 홀로 떨어져 있었는데 의도적인 배치다.
중국만 그런 것이 아니라 한국 또한 외부인에 대해 배타적이었기에 그런 위치에 연구실을 배정받았다.
그리하여 안 그래도 인적이 드문 독공 연구동 내에서도 구석진 곳 위연서의 연구실 앞에 선 도진이 작게 노크했다.
똑똑.
'네, 어서오세요.'
항상 들리던 그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다.
도진은 한 번 더 노크하는 대신 손잡이를 잡고 문을 밀었다.
홍채 인식을 포함한 최첨단 잠금 장치가 풀려 있었기에 문은 너무나 간단히 열려 버렸다.
그리고 거실의 한 켠.
당연하게도 잠겨 있어야 할 진짜 연구실의 문 또한, 열려 있었다.
…….
암막 커튼이 쳐진 그 너머의 공기가 마치 보이지 않는 손의 형태를 이루어 손짓하는 것만 같다.
'이리로 와.'
노골적이다.
숨길 생각이 전혀 없다는 듯, 서로의 패를 확인해 보자는 듯 유혹하는 그 손길을.
저벅.
도진은 거부하지 않았다.
사락-
암막 커튼을 지나 안에 들어선다.
내부는 지독하게도 어두워 도진으로서도 내공을 일으키지 않고선 주변을 파악하기가 어려울 정도였다.
그 안에, 위연서가 있었다.
"어머, 도진 학생. 독공 연구실에는 허락없이 들어오면 위험한데……."
어둠 속에서도 더욱 특별한 검은색으로 반짝이는 눈동자의 위연서가 말했다.
그 특별한 검은 눈동자에 도진을 담고서, 어둠 속에서도 느껴지는 부드럽게 감겨드는 듯한 몸짓으로.
그런 위연서를 눈과 감각으로 분명하게 인지하며 도진이 답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꼭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게다가 문이 열려 있는 게 꼭 들어오라는 것만 같았거든요."
"흐응……. 그래도 조심하셔야 돼요. 이런 말이 있거든요."
-독공 사용자의 연구실에 들어가는 건 용의 보물고에 들어가는 것과 같다.
……그 말은, 조금 멀게 들렸다.
휘청!
그리고 도진의 몸이 휘청였다.
한 발을 강하게 내딛지 않았더라면 바닥에 그대로 쓰러졌을 것이다.
마치 마취가 절반만 효과를 발휘한 듯 감각이 멀고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그렇게 한 발을 내딛은 채 상체를 숙인 도진에게로.
또각. 또각.
위연서가 천천히 거리를 좁혔다.
한 걸음씩, 완전히 거리를 좁힌 위연서는 마치 정인(情人)을 몰래 포옹하듯 도진에게 밀착해서는, 귓가에 요염하게 반짝이는 입술을 댔다.
"이렇게, 거미줄에 걸린 먹잇감처럼 붙잡히게 되거든요."
그것은 혼합독이었다.
만지거나 무언가를 먹는 게 아니라 공기 중에 살포하여 작용하는 혼합독.
거실의 공기를 흡입하고 이어서 이곳 연구실의 공기를 흡입하면 작용하도록 용독(用毒)한, 웬만한 독공 권위자라 해도 엄두를 못 낼 고차원의 용독술.
심지어 그것은 천마기를 익힌 도진에게도 효과를 발휘할 정도로 강력하다.
그러니까 그녀는, 말도 안 되는 수준의 독공 사용자였다.
독공의 고수로서의 면모를 드러낸 그녀는 여전히 도진의 귓가에 입술을 댄 채 말했다.
"사실은 저도 묻고 싶은 게 있었어요. 그동안은 제가 항상 답하는 입장이었으니 이번에는, 도진 학생이 양보를 해 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해요? 응…… 대답하지 않는다면 동의하는 걸로 간주할까 싶은데……."
속삭이는 위연서.
누구보다 도진의 상황을 잘 알면서 그런 말을 속삭인다.
그런 그녀의 명치에.
꽝-!
독기를 폭발시키며 도진의 촌경(寸勁)이 작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