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4화
2학년 2학기는 그야말로 평화로운 나날들이었다.
만약 그것이 소설이었다면 '몇 주가 지났다' 같은 짧은 문장 하나로 대체가 가능할 정도로.
도진의 입장에서야 위연서의 존재로 인해 어마어마한 사건 하나가 섞인 시간이었지만 숭무고 전체로 보자면 일상 그 자체로 채워진 시간이었다는 말이다.
그랬기 때문에, 주말이 지나 월요일 돌연 모든 수업이 중지되고 출입마저 통제되는 상황에 학생들을 포함한 상황을 모르는 모든 구성원이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조용했던 시간이 폭풍전야의 고요였던 것처럼 학교는 소리없는 폭풍에 휩쓸린 듯 요동쳤다.
내부에서는 종합 연구동이 완전히 차단되었다.
출입이 엄중히 금지되는 붉은 '이벤트 라인'이 사건 현장 일대를 감쌌고 그것을 무림을 전담으로 하는 경찰들과 무림맹의 무인들이 지키고 섰다.
현장에는 숨쉬는 것조차 신경이 쓰일 정도로 살벌한 침묵이 내려앉아 있었다.
외부, 숭무고 바깥은 완전히 정반대였다.
웨에에에에에엥-!!
투투투투투투-!!
취재를 위해 차량은 물론이요 심지어 헬기까지 동원되어 인파와 함께 뒤섞인 소음이 요란하게 몰아쳤다.
허락되지 않은 이는 그것이 누가 되었든 절대로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이었기에 소란은 오로지 경계 바깥에서만 파생되었으며 그 소란만이 경계 너머로 퍼져 나가는 상황이다.
때문에 그 소란이 미치지 않는 학교의 가운데는 침묵과 소란 사이에서 불편한 공기를 만들어 안에 머무는 사람들을 짓누르고 있었다.
일상처럼 본가에서 복귀, 기숙사에서 일어나 소담과 함께 집행부를 향해 걷던 도진은 그런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며 집행부에 들어섰고.
"양원치가 살해당했어. 그것도 독으로."
마찬가지로 무거운 분위기 속에서 모여 있는 집행부 멤버들 사이에서 평소보다 조금 늦게 온 나지윤에게 이 분위기의 이유를 들을 수 있었다.
"양원치가 독으로 살해당했다고?"
"응. 그것 때문에 비상이 걸린 거야. 지금."
숭무고는 대한민국 최고의 배경과 재능을 가진 학생들이 모이는 곳이다.
거창하게 말할 것도 없이 팩트만으로도 '대한민국의 미래'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곳이란 말이다.
당연히 최고 수준의 보안이 유지되고 있었으며 그 이상의 관리 시스템이 적용되어 있었다.
무림 르네상스 이후 적어도 알려지기로는 단 한 번도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던 최고 등급의 시설이었다.
그런 시설에 다른 것도 아니고 살인 사건이, 그것도 독살(毒殺)이 발생하고 말았으니 이토록 어마어마한 사건이 된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슬쩍 보기만 했는데도 TV에서는 온갖 프로그램이 취소되고 실시간 특보가 흘러나오는 중이었으며 포털의 메인 뉴스 역시 모조리 숭무고 독살 사건으로 도배가 되어 있는 등 그 소란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용의자는 아직 특정되지 않았어. 종합 연구동의 독공과 관련된 사람들이 집중 조사를 받고 있지. 그리고 지금 용의자로 가장 의심을 받고 있는 건, 위연서 강사야."
외부의 인물이 범행을 저질렀을 확률은 지극히 희박하다는 의견이 대세였다.
그렇다면 내부의 인물인데, 독으로 살해당했으니 어쩔 수 없이 독을 다루는 이들이 용의 선상에 오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거기서 특히 의심을 받는 게 위연서였던 건, 살해에 사용된 것이 '혼합독'이었기 때문이다.
혼합독.
단독으로 사용하는 게 아니라 이름 그대로 혼합해서 사용함으로써 독이 되는 독이다.
단독으로는 독이 되지 않으니 많은 대비책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게 장점이지만 반대로 그렇기에 용독(用毒)이 조금 더 까다롭다.
그리고 이 혼합독을 특기로 하는 것이, 위연서였다.
하물며 종합 연구동, 특히 독공 연구와 관련된 시설은 철저하게 보안 카메라가 운용되고 있다.
사생활까지는 침해하지 않지만 출입만큼은 투명하고 엄중하게 체크가 되고 있었다.
이 출입 관리 기록에서 '완벽한 알리바이'가 입증되지 않은 사람이 셋 있는데 그중 하나가 위연서였고 그 위연서는 혼합독 전문가다.
"온 지 얼마 안 된 외부인. 그리고 유일한 혼합독 전문가. 완벽하지 않은 알리바이. 의심을 살 수밖에 없지."
"……."
도진에게 머무는 상미의 시선에 조금 더 감정의 무게가 더해진다.
바로 이번 주말에 들은 것 때문이었다.
토요일.
도진은 소담과 상미, 나지윤과 우서진에 클로에, 서태주까지 연락해 모였다.
단순한 인연이 아닌 지금 시점에서 '하나의 집단'으로 묶일 수 있는 관계의 인연들을 모았다.
"슬슬, 말을 해야 할 때라고 생각해서 모여달라고 했어."
모인 자리에서 도진은 말했다.
자신은 아주 특별한 무맥(武脈)을, 집단의 후계자이며 아직 자격을 갖추지 않아 스스로 그것을 천명할 수 없다는 것을.
클로에와 관련한 일로 기자 회견 때 했던 말을 시작으로.
"그때가 되면 모든 걸 분명하게 말해줄 수 있을 거야. 그러니까 조금만 더 기다려 줘."
깊은 인연을 맺음으로써 한울타리에 들어온 이들이 있다.
그것을 넘어 무공을 전수받은 이들도 있다.
그 무공을 익히는 건 자연스레 그 무맥의 일원이 된다는 뜻이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기에 지금껏 말로 하지 않았던 그것을, 암묵적인 합의만이 있던 관계를 조금 더 분명하게 했다.
"언제가 되었든 준비하고 있으니까 부담없이 질러 줘."
서태주는 그렇게 말했다.
잠룡문에 합류하지 않았던 건 그것이 준비 단계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던 서태주는 그러나 때가 되었을 때 언제든 합류할 수 있도록 수련에, 그리고 집안의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정식으로 도진이 '진짜 개파(開派)'를 했을 때 자신만이 아닌 집안 전체가 합류할 생각으로 말이다.
그것은 서태주만의 생각이 아니라 부모님의 생각이기도 했기에 지금은 아직 합류를 하지 않은 것이다.
덤으로 도진의 후광이 아닌 자신만의 힘으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이기도 했고.
"저는 언제나 오빠를 위하고 있어요."
상미는 그저 그렇게 말했다.
말로는 그녀의 마음을 다 담을 수 없기에 오히려 간결하고 명확하게만.
"제 인생은 스승님의 것이니까요. 믿고 있습니다."
클로에 역시 도진의 말에 믿음으로 답해 주었다.
그렇게 암묵적이던 것이 명확해진 다음 서태주가 말했다.
"굳이 지금 이 말을 하는 건…… 그거 때문이지?"
"응, 맞아."
서태주의 물음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독공 개론의 강사를 보고 도진이 흔들렸던 건 소담을 넘어 도진과 인연이 있는 모든 이들이 보았던 것이다.
서태주만이 조금 떨어진 위치에 있었으나 서태주 또한 풍문으로 들은 게 있었다.
그러던 중에 갑자기 이런 이야기가 나왔으니 원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도 있었다.
"어쩌면…… 내가 이은 무맥의 후계자 중 한 명일 수도 있거든. 어쩌면 조금, 변하는 게 있을 수도 있어. 그러니까 미리 말한 거야."
엄밀히 따지면 도진은 후계자의 자격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무공을 전수하는 등의 행위를 했다.
때문에 여지껏 그들이 배운 것이 무엇인지도 명확히 이야기해 주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위연서는 경우가 다르다.
애초에 외부가 아닌 내부의, 같은 무맥의 구성원.
그러니까 규율에 걸릴 것 없이 도진이 '소천마'는 아니어도 '천마의 제자'라는 신분을 이야기할 수도 있다.
도진은 그것이 조금 걸려 이 시기에 그런 이야기를 한 것이었고 이를 통해 상미를 포함한 한울타리 내의 사람들도 위연서가 남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위연서가 독살 사건의 용의자로 의심받고 있다.
사실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위연서가 만약 양원치를 살해한 범인이라 해도 그것 자체는 도진에게는 그리 문제가 될 일이 아니었다.
세간에서야 살인자 취급을 할지도 모르지만 도진은 그것을 그리 대단하지 않은 일로 여기고 있었으니까.
양원치는 천마신교의 기준으로 보았을 때 죽어도 싼놈이었다.
존재하고 살아감으로써 수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는 악인(惡人).
그런 악인을 죽음으로써 징치하는 건 천마신교의 기준으로 죄가 아니었다.
천마신교가 '마교(魔敎)'라는 이름을 심지어 자칭하는 건 그런 기준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이 세간에서는 '마(魔)'로 비칠 수 있음을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도진은 그 천마신교의 교리에 동조하는 걸 넘어 수장으로서의 심지를 갖추고 있으니 양원치의 일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진짜 문제는…….
-진짜 문제는 이번 살인 사건이 밀실 살인 사건이라는 것인데요. 피해자는 외부 강사로 제자와 면담을 하다 제자와 함께 독에 당해 죽었습니다.
피해자가 양원치 하나가 아닌 '둘'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다른 한 명의 이름이.
'남욱현.'
그래, 남사현의 사촌형인 남욱현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남사현이 없는 이유였다.
약리지는 의선약가의 후계자로서 사건 현장 근처에 가문의 사람들과 함께 있었다.
그리고 남사현은 직접적인 관련자, 피해자가 속한 가문의 일원이자 직계로서 가문의 무인들과 함께 현장 근처에 있었던 것이다.
이 남욱현이 피해자로 포함되어 있었기에 이야기가 조금 달라졌다.
남욱현은 약리지가 지극히 싫어하는 타입이었고 객관적으로도 한심한 인간이었지만 천마신교의 기준을 적용한다 해도 '죽을 죄'를 지었다고 할 만한 인물은 아니었다.
그런 인물마저 위연서가 독살했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천마신교가 천마신교이기에 지극히 경계하던, '선을 넘어선' 사람일 수 있었으니까.
하늘을 대신하여 스스로 징치하는 천마신교이기에 그 기준은 엄격해야만 한다.
천마신교가 교(敎)일 수 있었던 중요한 기준이었으니 이에 관한 규율 또한 엄격할 수밖에 없다.
그 규율을 위연서가 지키지 않았다면…….
애초에 현실의 영역에서부터 살인 사건을 일으키고 그 용의자로 특정된다면 그것부터가 보통의 범주를 아득히 벗어난 일이다.
천마신교에서야 문제삼지 않을 수 있지만 이 현대에서 살인은 가장 엄중한 문제 중 하나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고민이 될 정도로 사건의 스케일이 크고 복잡해진다.
때문에 고민하는 도진에게 나지윤이 말했다.
"알게 되는 게 있으면 바로 알려 줄게."
"고맙다, 친구."
"그래."
친구라는 단어에 나지윤은 입꼬리를 스윽 올리는 꽃미남 미소를 지어 보였다.
오전의 시간이 지나고 외부자는 일단 퇴거하게 되었다.
무작정 학교를 봉쇄할 수는 없으니 내린 조치였다.
학생들은 기숙사에 남을 사람은 남고 아닌 사람은 나갈 수 있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은 본가로 돌아갔다.
당분간 휴교가 결정될 듯한 상황에서 괜히 남아 아까운 시간을 죽일 이유가 없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도진은 학교에 남아 어떻게 행동할지에 관한 생각을 계속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날.
나지윤이 찾아와 말했다.
"…용의자로 강한 의심을 받게 된 사람이 한 명 더 생겼어."
"누군데?"
"남사현."
"…사현이라고?"
"어. 그리고 남사현을 유력한 용의자로 만든 증거를 발견하게 만든 게."
위연서야.
도진의 얼굴이 굳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