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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52화 (352/741)
  • 351화

    독공 개론은 일반적인 구역이 아닌, 특히나 보안이 철저한 숭무고 부지 중앙에 가까운 종합 연구동에 강의실이 배정되었다.

    당연한 일이었는데, 전문적인 연구 시설이 필요한 독공은 본래 그 특성상 엄중한 관리와 보안 하에 취급되는 무공이자 학문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무공과 달리 독공은 과학과 결합할 수 있었기에.

    가장 과학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며 그 어떤 무공보다 빠르게 연구되고 발전한 것이 독공이었다.

    역설적으로, 그렇기에 독공은 특별 취급 대상이 되어 민감한 사안일수록 보기 힘든 무공이 되었다.

    무림에서 흔히 말하는 '독공은 비겁한 것'이라는 개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가 단위에서 논해야 할 위험한 물질'처럼 여겨지게 된 것이다.

    마약이나 총기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엄격하게 규제·관리가 되는 것이 독공이었고 그래서 피라미는 물론이요 규모가 큰 문파 또한 독공에 관해서는 민감할 수밖에 없었다.

    허나 그런 배경에서도 무림인이 가장 경계해야 할 것 중 하나로 독공이 꼽히는 건 강력하게 규제할수록 그것이 음지로 스며들기 때문이다.

    상대적으로 위험도가 떨어지는 것들, 그리고 규제를 피해 파생되는 것들은 필연적으로 어두운 흑도를 통해 유통되고 그런 것들을 입수한 흑도와의 싸움에서 경계가 부족하다면 독에 당할 수밖에 없으니까.

    이에 대비한 장비 또한 백신과 바이러스의 관계처럼 빠르게 발달하고 유통되고 있지만 장비에만 의존해서는 바보가 될 뿐이다.

    관련한 최소한의 지식은 있어야 했고 그래서 독공과 관련한 지식은 반쯤 교양 필수로 여겨지고 있었다.

    다만 그 특성상 파고들수록 머리가 아플 수밖에 없었고 암기해야 할 것들이 많아 외부 초청 강사의 특별 수업이었음에도 독공 개론은 그리 인기가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무공보다는 지식 쪽에 중점을 두는 분위기의 학생들이 많은 가운데 도진과 소담은 눈에 띄는 타입이었다.

    비하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분위기가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약간은 다른 분위기의 도진이었기에 수업을 맡은 외부 초청 강사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도진에게 가장 먼저 향했고.

    -제가 본 게…… 맞습니까, 스승님.

    -…….

    "……."

    그 눈을 마주한 도진은 처음으로, 외부에 동요가 드러날 정도로 놀랐다.

    외부 초청 강사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미녀였다.

    무림인이 보통 나이보다 어려 보이는 것을 감안하자면 실제 나이는 20대 중반 정도일까.

    재능을 타고나야만 무림인이 될 수 있고 개중에서도 뛰어난 사람이 돋보이는 법이니 강사의 나이가 어린 건 그리 특별한 일이 아니다.

    새하얀 블라우스와 피부, 검은 H라인 치마와 새까만 머리카락, 검은 스타킹.

    그리고 눈밑의 점이 화룡점정처럼 찍힌 그녀는 새하얀 한지 위에 검은 물감이 스며든 것 같은 외모에 이성을 빠져들게 만드는 특별한 매력을 두르고 있다.

    뛰어난 외모 또한 무림인이면 으레 그런 법이고 두르고 있는 분위기는 특별하다 할 만했지만 그것도 '평범함'의 범주에 넣지 못할 건 아니었다.

    그녀의 등장에 학생들이 술렁이긴 했으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도진이 외부로 동요를 드러낼 정도의 '특별함'은 보이지 않았다는 말이다.

    그래서 곁에 앉아 있던 소담 또한 도진의 동요에 전염된 듯 동요할 수밖에 없었다.

    -왜 그래, 도진아?

    조심스레 섭음술로 묻는 소담에게 도진은 '아니, 아니야'하고 마찬가지로 섭음술로 답했다.

    -조금 놀랄 만한 게 있었는데, 아직 이야기 할 만한 건 아니어서. 정리되면 말해 줄게. 걱정하지 마. 심각하거나 위험한 건 아니니까.

    -……응.

    그날, 도진은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는 기색이었다.

    이 또한 지금껏 도진이 한 번도 보여준 적 없는 모습이었다.

    혹자는 도진이 수석을 놓치지 않는 비결이 '수업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할 만큼 도진은 수업에 누구보다 집중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결국 마지막까지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했던 도진은 심지어 집행부 활동에서까지 수업에서의 동요가 묻어 나왔다.

    유지은과 상미가 그것을 알아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후배. 무슨 일이야?"

    "아, 생각할 게 좀 있어서요."

    도진은 자연스럽게 답했지만 이유는 말해 주지 않았다.

    유지은이 그런 도진의 곁으로 다가와 처억, 조금 더 거리를 좁히며 말했다.

    "무슨 일 있으면 누나한테 상담해! 얼마든지 힘이 돼 줄 거니까."

    마치 그린 듯 정석적이면서도 마음을 흔드는 태도와 말이었다.

    도진은 그것이 천재 유지은이 상황이 되면 한 치의 어색함 없이 행동할 수 있도록 연습한 것이라는 걸 꿰뚫어 보았다.

    그렇게 알면서도 흔들릴 수밖에 없는 그림 같은 모습이다.

    허나 도진에게는 아주 조금 부족했으니, 도진의 알맹이가 '유지은 누나'의 두 배에 가까운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네, 고마워요."

    "으으응……."

    오히려 기특한 딸내미라도 보는 듯한 눈빛에 유지은은 불만스런 얼굴로 패퇴해고 말았다.

    '내가 누나인데!'

    그렇게 유지은을 물린 도진은 자신에게 모인 집행부의 관심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조금 생각할 게 있어서요. 나쁜 일도 아니고 심각한 일도 아니고 지극히 개인적인 일이니까 걱정하지 말아요. 사람이 어떻게 고민 하나 없이 살겠어요. 안 그래요?"

    "응, 그렇긴 하지."

    한유아가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하나 틀린 부분이 없는 말이다.

    다만 그것이 '김도진'이다 보니 특별한 일이 되었을 뿐이다.

    집행부에서의 활동까지 마무리하고 도진은 이른 시간에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눈을 감고, 심상세계에서 스승들을 마주했다.

    심상세계에서 마주한 위지혁은 표정이 조금 흔들리고 있었으니 도진과 마찬가지로 이쪽 또한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었다.

    그렇게 이례적인 일을 불러온 것이, 오늘 보았던 외부 초청 강사의 '정체'였다.

    새하얀 도화지 위에 먹물을 예술적으로 물들인 듯한 이미지의 강사.

    허나 도진의 신안은 그 먹물의 본질을 꿰뚫어 보았으니 그것은 먹물이 아니라 '독(毒)'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그냥 독이 아닌.

    "독마(毒魔)의 후예를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구나."

    일전 도진이 직접 경험하기까지 한 독마의 독이었다.

    특별 수련에서 본 독마 하연화와 오늘 본 외부 초청 강사는 외모적으로도 닮은 부분이 많았다.

    흑과 백이 도드라지게 대비되는 아름다운 외모.

    그러나 그 이상으로 분명하게 닮아 있던 것이 그 내공에 깃들어 있던 독이었다.

    심상세계에서 분명하게, 몸으로 경험했기에 신안으로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녀가 몸에 깃들이고 있는 내공은 조금은 열화되어 있었지만 틀림없이 독마 하연화의 무공에 기원했다.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는 도진이지만 본 것이 본 것이어서, 혹시 내가 잘못 본 게 아닌가 싶어 위지혁에게 확인을 구했다.

    그리고 위지혁은 잠시의 침묵 후 그것이 '맞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녀는 틀림없이 독마 하연화의 무공을 이은 사람이었다.

    솔직히, 충격적이었다.

    가능성이 제로는 아니라 해도 거기에 한없이 가까운 것이 천마신교의, 그리고 장호의 후인을 만나는 일이었다.

    심지어 설령 만난다 해도 몰라볼 확률마저 있었으니 그만큼 분명히 그 존재를 증명하는 증거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림은 신기루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도진은 위지혁과 장호를 만난 뒤로 현대를 바꿔 놓은 무림에 관해 많은 자료를 찾아 보았다.

    천마신교가 실존했다는 증거가 혹시 있지는 않을까.

    나는 천마 위지혁과 사신 장호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으니 남들은 보지 못했던, 눈치채지 못했던 어떤 것들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도 있었다.

    그러나 자료를 찾아보면 찾아볼수록 오히려 자신감이 옅어지기만 할 정도로 무림에 대한 정보는 단편적이요 단절 일색이었다.

    분명히 무림이 존재했기에 발견된 증거들일 텐데 오로지 존재했음을 증명할 뿐인 단편적인 정보들 뿐이고 현대와의 연결 고리가 없다.

    독마 하연화는 물론이요 심지어 공주 주려취에 관한 정보가 그랬다.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란 문구가 출력될 뿐이고 혹여 나온 것들 또한 단어만 비슷할 뿐 완전히 다른 내용들이다.

    중국 본토의 정보는 아니어도 숭무고의 학생이기에 볼 수 있는 한국 최고의 도서관이나 데이터베이스도 다르지 않았다.

    이쯤 되면 정말로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미싱 링크.

    고대 무림과 현대 사이에 분명히 있어야 함에도 찾을 수 없는 연결 고리.

    과연, 국가를 넘어 지구 단위에서 찾고 있음에도 찾을 수 없었던 이것이 얼마나 난제인지를 알게 되는 시간이었다.

    가설 중 하나인 알려지지 않은 '대멸종'이 있어서 고대의 무림이, 인류가 한 번 제대로 된 흔적도 남기지 못할 정도로 멸망에 가까운 일을 당했다는 내용이 정답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철저하게 단절되어 있다는 것만 실감하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 믿을 수 없게도 독마 하연화의 전인이 강사로 나타나 버린 것이다.

    도진은 물론이요 천하의 위지혁이라 해도 놀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오로지 단절 일색이었던 고대와 현대가 이어져 있었음을 증명하는 존재.

    그것은 상상 이상으로 커다란 의미가 있을 수밖에 없었으니 인류의 역사 스케일까지도 확장될 수 있을 정도다.

    독마 하연화의 무공이 이어졌다는 건 무공만큼이나 섬세하고도 복잡한 정보가 이어졌으니 상대적으로 간단한 정보들, 그러니까 '역사' 또한 이어졌을 수 있다는 의미이니까.

    그래.

    미싱 링크로 대표되는 고대와 현대 사이의 역사 또한, 이어졌을지 모른다.

    동시에 '천마신교에 대한 역사'까지도.

    '…어떻게 살아왔을까.'

    도진은 믿을 수 없는 기적으로 시간을 거슬러 이렇게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다.

    천마신교의 지존인 천마 위지혁과 무림의 사신으로 불렸던 장호를 스승으로 모시면서.

    한데 생각해 보면 도진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림'을 잘 몰랐다.

    전생의 도진은 철저하게 현대 무림과 격리되어 있었으며 이번 생에서도 아직 학생의 신분으로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무림인이 아니었다.

    동시에, 고대 무림에서 현대로 이어졌을지도 모를 무맥(武脈)에 관해서도 아는 바가 없다.

    위지혁과 장호 또한 고대 무림을 살았으나 그 후의 일을 모르고 도진의 안에 깃들었으니 더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오늘 본 그녀는 달랐다.

    독마 하현화의 진전을 이은 그녀는, 분명히 도진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덩치를 키우며 휘몰아치니 도진은 동요를 감추지 못하고 생각에 골몰할 수밖에 없었고 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이른 시간에 심상세계에 들어선 것이었다.

    도진의 시선이 위지혁과 마주했다.

    천마신교의 무맥 중 하나를 이은 후인이 나타난 지금, 어떻게 해야 할까.

    도진은 스승의 의견을 구했고 제자의 시선에 위지혁은 숙고 끝에 나온 생각을 입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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