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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51화 (351/741)

350화

나쁜 의미로 도진의 전생의 삶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 중 하나가 강치환이었다.

도진의 성장기를 최악으로 바꿔 놓았던 일진 양아치.

동급생이었으며 심지어 같은 동네에 살기까지 했던, 도망칠 수 없는 지옥의 족쇄처럼 도진을 옭아맸던 인간.

허나 양원치는 그런, 도진에 의해 한창 죗값을 치르고 있는 강치환의 스승이자 문월고의 선생이었음에도 도진과 접점이 거의 없었던 인간이었다.

무림학교 고등반은 크게 대학교의 형식을 따르는 학교와 일반 고등학교의 형식을 따르는 학교로 나뉘는데 문월고는 후자였다.

자유롭게 둬봐야 답이 없으니 학교측에서 시간표를 짜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방식.

그에 따라 양원치는 담임도 아니었고 그저 수업 한둘을 맡아 진행할 때나 도진과 접점이 있었고 그나마도 낙제생에 관심을 주지 않았기에 '이벤트'라 할 만한 게 발생할 여건이 아니었던 것이다.

물론, 마냥 좋은 게 아니었다.

제자가 어떤 일을 하는지, 어떤 인간인지 알면서도 방관한 것이었으니까.

유유상종.

부패 교사이자 무림에서도 좋은 대접을 못 받는 인간이었다. 양원치는.

도진은 그런 양원치를 강치환의 스승이었기에 원망할 때도 있었으나 새로운 삶을 사는 지금 굳이 찾아가 이유를 만들어 징치할 정도로 가치를 두지는 않았다.

그럴 만한 가치가 없는 인간이었으니까.

마주쳐 앞을 막고 있다면 얼마든지 제거할 용의가 있었으나 그렇지 않다면 굳이 찾아가 감정과 시간을 소모할 만큼의 인간조차 아니었다.

때문에 도진은 개강 첫날 우연처럼 학교 안에서 양원치를 만났음에도, 그리 의미를 두지 않았다.

숭무고는 넓다지만 우연히 아는 인물을 만나는 게 불가능한 공간이 아니었으니까.

교사와 학생의 입장이라면 더더욱.

그저 알고 있는 인간을 만났다.

딱 그 정도로 여기며 아무렇지 않게 가던 길을 소담과 함께 걸었다.

"……."

양원치는 그런 도진과 다르게 행동했다.

마치 죄를 지은 것처럼, 만나서는 안 되는 '일진을 만난 피해자'처럼.

시선을 슬며시 돌리고 불편한 기색으로, 겁먹은 티를 애써 감추며 도진을 지나쳐 갔다.

전생보다 접점이 옅었음에도, 강치환의 스승이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가 켕기는 게 있었다는 말이다.

피식-

도진은 그게 조금 웃겼다.

"왜 그래?"

"응, 아니야. 니가 귀여워서?"

"뭐?!"

소담은 뜬금없는 도진의 말에 화들짝 놀라 얼굴을 붉혔고 도진은 낄낄 웃었다.

본래 때린 놈이 발 뻗고 잔다고 했는데.

상황이 반대였다.

때려선 안 될 놈을 때렸다는 생각으로 도둑이 제 발 저리듯 겁을 먹은 꼴이, 평생을 가해자로 살아온 놈이 피해자마냥 행동하는 게 도진은 조금 웃겼던 것이다.

그렇게 양원치를 마주했던 아침이 지나고 첫날이라 조금 빠르게 수업이 끝나, 시간이 맞는 멤버 도진과 소담, 나지윤, 그리고 약리지와 남사현까지 다섯이 모여 여유롭게 점심 식사를 함께 하게 됐다.

"생각보다 더 신청이 많았더라구요."

"흐음, 그래?"

"고유 무공이 걸려 있으니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는데 그거보다 더 사람이 몰렸어요."

점심을 즐기는 중에 예의 양원치의 이야기가 나왔다.

솜이를 연상케 하는 새하얀 차림의 약리지가 샐러드를 오물거리며 양원치의 특별 수업에 무려 800명이 몰렸다는 이야기를 해 주었다.

숭무고의 한 학년 총원이 가장 적었을 때가 200명 언저리였다고 하니 외부 강사의 특별 수업 하나에 한 학년 총원의 네 배에 해당하는 인원이 몰린 것이다.

어마어마한 일이었지만 사실 어느 정도는 예상된 일이었다.

무공이 자본이 되고 힘이 되는, 자본주의 시대의 금광과 같은 의미를 가지는 현대 무림이다.

그런 시대에 좋은 평가를 받는 고유 무공을 전수받을 수 있는 기회가 왔다.

그것은 특히나 '숭무영재고'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있어 천재일우의 기회에 다름없었고 뒤로 돈을 줘가면서라도 자리를 쟁탈하려는 게 당연했다.

총원을 무려 200명으로 많이 두었음에도 치열한 뒷경쟁이 있었다고 나지윤이 넌지시 말을 보탰다.

"그랬구나."

어쩌면 얼굴이 찌푸려지는 일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쁘지 않은 고유 무공 하나'는 지금 그만큼의 가치가 있었다.

도진은 새삼스레 자신이 손에 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되새겼고, 그러면서 시선을 약리지의 옆에 앉은 남사현에게로 향했다.

"너도 그 수업 듣게 됐다고?"

훤칠한 키에 건치 미소.

인싸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그는 약리지의 소꿉친구이자 명문 무가인 호협남가의 직계다.

누구에게나 친절히 대하고 그것이 위선이 아닌 보기 드문 사람.

그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지기에 그를 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사현의 호의에 호의를 되돌려 주게 된다.

그것은 도진도 다르지 않았는데, 반대로 그렇기에 동시에 피상적인 관계라는 생각도 하게 만든다.

약리지나 벽태웅과는 좀 더 근본적인 감정 교류가 있었던 데 비해 남사현과는 '기계적인 교류' 이외의 무언가가 없었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나쁜 관계는 아닌 남사현은 도진의 말에 네,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흐음.'

남사현의 긍정은 조금은 생각할 부분이 있는 것이었다.

호협남가는 명문 무가다.

금화나 오성처럼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큼의 명성은 가지지 못했어도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 50위 안에 들어갈 정도는 된다.

말이 50위지 대한민국 전체에서 50위 안이라는 건 쉽게 말해 '재계 서열 50위 안'과 비슷하게 볼 수 있다.

숭무영재고의 학생들 집안이야 고유 무공 하나가 아쉬워 '인간적으로 하자가 있는' 인물을 자제의 스승으로 대우하고 받아들일 수 있겠으나 호협남가쯤 되면 '굳이?'라는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재력이 아닌 무공으로 그 정도의 지위를 획득한 곳에 양원치의 철중권 이상 가는 무공이 없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사현이 양원치의 수업을 듣게 되었다면…….

"아버지께서 한 번 들어보면 어떻겠냐고 하셨거든요."

"그랬구나."

호협남가에서 추가로 무공을 원한다는 뜻이다.

남사현이란 인물은 호협(豪俠)이란 단어가 어울리지만 '호협남가'가 그 이름에 어울리는 곳인지는 모를 일이었다.

명문 무가로서 무림에서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많은 것들을 세상과 타협했다는 뜻이니까.

그런 가문을 이끌고 있는 인물들 대부분은 결국 호협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으니 자리가 사람을 바꾸고 만다.

그렇게 자리에 앉은 어른들이 다다익선, 무공은 많을수록 좋으니 남사현에게 철중권의 후계자가 되기를 바란 것이라고 도진은 예측했다.

단순히 철중권에만 그 가치는 그치지 않으니 철중권을 철저하게 연구함으로써 호협남가의 전체적인 무공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그 메리트가 인간 쓰레기 하나를 직계의 스승으로 모시는 것보다 크다고, 그들은 판단한 듯하다.

"새로운 무공을 경험해 보는 건 좋은 일이잖아요?"

그런 도진의 생각과는 아주 먼, 눈부신 미소를 당사자 남사현은 지어 보인다.

남사현 또한 숭무고의 후기지수 후보라 불릴 만큼 천재니까 도진이 생각하는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알고 있을 텐데도 그런 태도다.

요즘에야 보기 힘들지만 예전엔 흔히 볼 수 있었던, 고구마로 목이 막히다 못해 터져 버릴 듯 착한 주인공과 같은 성격이라 그렇다.

물이 너무 맑아 소꿉친구였던 약리지에게 오히려 악영향을 주기도 했지만 그 성격 자체는 결코 나쁜 게 아니다.

오히려 그것만 놓고 보면 존경받기에 부족함이 없을 만한 성정을 가진 게 남사현이다.

그러니까 모든 걸 알고 있음에도 저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호협남가란 이름에 가장 어울리는 직계.

허나 그렇기에 너무 커져 버린 가문을 이끌기엔 부적합한 직계.

그것이 바로 남사현일 거라고 도진은 생각했다.

굳이 불편한 화제로 이끌 생각은 아무도 없었기에 양원치에 대한 이야기는 스무스하게 넘어갔다.

그리고 잠깐 바깥으로 신경을 돌리니 그런 이야기가 들려왔다.

"부럽다……."

"그러게. 나도 저렇게 살고 싶다."

굳이 그럴 필요가 없기에 섭음술을 쓰지 않은 단편적인 말들이 들려온다.

여러가지 감정이 담긴 그 말이 가리키는 게 무엇인지, 도진은 물론이요 도진과 함께 한 멤버들 또한 다 알 수 있었다.

무림학교 고등반 2학년에게 있어 지극히 중요한 여름 방학을 화려한 이슈로 장식했던 도진에 대한 부러움이다.

무림열전3 프롤로그 챌린지의 원인이 되었으며 세계적으로 뻗어 나간 열풍이 동생들과 함께 했던 무림열전3 플레이의 생방송에도 미쳤다.

때문에 게임 전문 스트리머가 아니었음에도 전 세계에서 방송을 보기 위해 찾아온 이들로 무림열전3 플레이 방송과 다시보기 영상이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고 구독자 떡상의 계기가 되었다.

무림열전3의 최대 수혜자로 유애라와 더불어 김도진이 언급될 정도로.

그뿐인가.

방학 때 있었던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 아이돌 코리아에서도 이은지와 함께 화제의 인물로 언급되며 또 한 번 화제가 돼 아예 너튜브 구독자 수 100만 명을 목전에 두게 됐다.

전문적으로 스트리머로서 활동하는 것도 아닌데 그 정도 관심을 끌면서, 할 거 다하고 재미 볼 거다 보면서도 숭무고 수석을 놓치지 않는 무림인.

주변에서 보기에는 이렇게 '날먹 인생'을 사는 사람이 또 없어 보인다.

물론 도진의 주변인들은 결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도진이 얼마나 노력하는지, 얼마나 밀도 있는 삶을 사는지 곁에서 보고 듣고 느끼고 있으니까.

시간은 모두에게 공평하지만 그 시간을 얼마나 '밀도 있게' 쓰느냐는 개인마다 다르다.

그 시간의 밀도가, 도진은 주변에서 볼 때 질식할 만큼 짙어 보였다.

도대체 언제 잠을 자나 싶을 정도로 주어진 시간을 최대한 사용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에 진심이었으며 최선이었다.

하물며 도진의 주변에 있는 이들은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알고 있었고 타인의 노력을 폄하할 만큼 못난 이들도 아니었기에 도진의 노력을 짐작하고 그것을 자신의 발전을 위한 원동력으로 삼았다.

그리고 그것이 선순환이 되어, 도진 또한 더욱 노력하는 것이다.

노력해야만 했다.

천재가 아니었지만 그것을 노력으로 메꿀 수 있는 축복을, 기적을 손에 쥐었으니까.

심상세계, 천마, 사신.

노력을 보답받을 수 있었고 그 노력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는 스승들도 있다.

그것이 질식할 듯 밀도 높은 시간에도 도진이 웃으며 달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다만 그렇게 달리기만 하는 삶을 살지 않는 건, 스승 위지혁과 장호가 그것만으론 안 된다는 걸 깨달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걸어온 길이 어떤 길인지조차 모르는 채 정상에 올라서는 안 된다.

한 걸음 한 걸음을 느끼고 길을 꾸미고 있는 꽃의 향기와 색깔을 알아야 한다.

그런 스승들의 방침이 도진이 무공과 함께 '삶' 또한 배울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럼 수업 끝나고 보자."

"네, 선배."

점심 식사가 끝나고 여유를 즐긴 도진이 소담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수업을 듣기 위해 움직였다.

다음 수업은 외부 초청 강사의 특별 수업으로, 다름 아닌 '독공 개론(毒功槪論)'이다.

베이징고등무림학교를 수료하고 거기서 연구까지 했다는 인재.

도진은 그 인재를 강의실에서 직접 보게 되었고.

-제가 본 게…… 맞습니까, 스승님.

-…….

스승 위지혁과 함께 상상도 못한 것을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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