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350화 (350/741)

349화

-ㅖ?...

-뭐라구요?

-이게.. 이게 모슨 소리여?..

-이집 갈고리 수확 잘하네;;

도진의 선언에 시청자들이 착란에라도 빠진 듯 채팅창이 요동쳤다.

예상과 완전히 벗어난, 그것도 충격적인 선언이었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

한솥밥을 먹기도 하는 사이입니다.

그러니까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같은 '전형적인 변명'과 같은 느낌의 발언이었으니까.

한솥밥을 먹는다는 건 동거를 미묘하게 바꾸어 설명하는 느낌이고 '먹기도 한다'는 것 또한 그런 식으로 인정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뉘앙스를 흐리기 위한 단어 선택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다.

동시에 그렇기에 잘못을 들켰음에도 애써 감추기 위해 횡설수설, 어설프게 흐릿한 인정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고 마는 것이다.

오함마가 나올 줄 알았는데 이런 소리가 나오다니.

만약 그것이 채팅창이 아니라 기자 회견장이었으면 아수라장이 되었을 선언.

그러나 그런 상황을 만든 도진은 태연한 얼굴로 이은지와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걷기 시작했다.

김성덕의 카메라가 그 뒤를 따르는 가운데 도진이 이어 말했다.

"저번에도 보여드린 적 있는 거 같긴 한데, 여기가 저희집 거실입니다. 그리고 여기로 나가면……."

"이렇게 바깥으로 이어지죠."

태연하다.

너무나 태연하게 거실을 지나 정원이 잘 가꾸어진 마당으로 나오는 도진의 모습에 어리둥절하던 시청자들도 강제로 차분해지고 말았다.

-아 이거 또 밀당하시네

-화화공룡이라 그러신가 마음을 흔드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시네 ㅋㅋㅋ

무언가가 있는 것 같다.

기디했던 오함마는 아니지만 다른 형태로 무언가가 있다는 걸 직감한 시청자들이 기대하기 시작했다.

정원을 나온 도진은 이은지와 함께 걸어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춰섰는데, 다름 아닌 별채 앞이었다.

"이렇게 조금 떨어진 곳에 별채가 있습니다. 우 명장님의 손녀이신 우서연 님의 말씀으로는 잔디 관리를 포함해 집 전체를 관리해 주실 사용인 분들이 머무실 수 있도록 마련된 곳이라고 하셨죠."

-와.. 사용인. 겁나 낯선데 럭셔리하네

-하긴 집 규모가 저정도면 개인이 관리하기엔 무리가 있지.

"하지만 지금은 이은지 씨의 집입니다."

-?

"이은지 씨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겁니다."

-아니 이게 머선 근본 없는 드립이고 ㅋㅋㅋㅋ

"이은지 씨에게 이미 허락은 맡아 두었으니 함께 들어가 보도록 하죠. 열어 주시겠어요?"

"네."

지금껏 앞장서던 도진이 한 발 물러나고 이은지가 카드키를 이용해 문을 열고 먼저 안에 들어섰다.

-아니 이렇게 갑자기 집구경을 시켜준다고?;;

-화제 급커브 무엇?

화사한 현관을 지나 거실 겸 주방이 펼쳐진다.

우 명장의 손길이 묻어나는 곳답게 원룸 형식이되 넓고 고급스럽다.

그리고.

"레드슈나 안티체리 숙소랑은 비교가 안 되게 깔끔하죠? 은지 씨는 깔끔한 성격이시더라구요."

-엌ㅋㅋㅋㅋ

-아니 가만히 있던 레드슈랑 안티체리는 왜 패세요 ㅋㅋㅋㅋ

도진은 장난스레 어깨를 으쓱이고서 말했다.

"제가 사전을 찾아보니까 동거에는 두 가지 뜻이 있더라구요. 하나는 한 집이나 한 방에서 같이 삶, 그리고 다른 하나가 부부가 아닌 남녀가 므흣한 관계를 가지며 같이 삶."

-므흣..

-*-_-*..

-와 저 이모티콘 뭐냐;; 존나 오랜만에 보네;;

-저게 뭔데?

-아재들 척추 서요?

"일단 2번은 당연히 아니구요."

-2번이면 김도진이 김/도/진 으로 나뉠듯.

"1번이 좀 애매하긴 하더라구요. 은지 씨는 별채에서 그러니까 자취하는 느낌이거든요? 따지고 보면 다른 집에 살잖아요. 근데 또 이게 다른 집이긴 한데 전체로 보면 한 집이란 말이죠? 그래서 동거인 듯 동거 아닌 동거 같은 거긴 하죠?"

-그, 그렇죠?

-왜 그걸 우리한테 물어요 ㅋㅋㅋ

"그리고 밥은 같은 밥솥의 밥을 먹을 때가 있어요. 제가 집에 있을 때 은지 씨도 집에 있으면 우리 가족이랑 같이 밥 먹을 때가 있거든요. 그럼 한솥밥 먹는 거죠."

-아 ㅋㅋㅋ 그게 그 뜻이었구나 ㅋㅋㅋㅋ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이은지가 자취하는 거니까 특별하긴 한데 평범한 상황에 대입하니까 하나도 안 특별하네;

"제가 방송에서 저보다 더 절 믿어주신 분이 있으시다고 했잖아요. 그게 김도진 님이었어요."

그리고 이은지가 왜 이곳에 '자취'를 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했다.

숭무고 입학에 실패하고 레드슈에서도 탈퇴당하고.

그 뒤로 꿈을 계속해야 하는지 방황하고 있던 때에 도진의 도움을 받아서, 그리고 도진이 자신의 미래를 믿어줌으로써 용기를 가지고 계속 이 길을 걸어나갈 수 있게 되었다고.

그러면서 이곳에 지낼 수 있게 도와주었다는 말에 시청자들이 웅성였다.

-와.. 그러면 아이돌 코리아 우승자 이은지는 김도진이 만든 거자너..

-레드슈에 안티체리, 이번엔 이은지까지.. 이 정도면 바른 엔터 캐스팅 담당 아니냐;;

-ㄹㅇㅋㅋㅋ 여윽시 아빠 매니저님이다. 아빠 매니저 못잃어!

"예, 감사합니다. 그럼 잠시 PPL 타임을 가져보도록 할까요?"

"어…… PPL 할 게 없는데요?"

김성덕이 당황해서 답했다.

"아, 해명 방송이라 없나요?"

"해명 방송에 PPL을 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엌ㅋㅋㅋㅋㅋㅋㅋ

"그렇군요. 그럼 자체 PPL 하겠습니다. 제 채널이 구독자 100만을 향해 가파르게 치솟고 있죠. 100만이 되면 이벤트 하나 준비해서 할 테니 기대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아니 그걸 왜 그렇다고 자체 PPL을 해요 ㅋㅋㅋㅋㅋㅋ

-기대가 되긴 하는데 혼란하다 혼란해 ㅋㅋㅋ

* * * *

해명 방송은 좋은 분위기와 좋은 반응 속에서 마무리되었다.

스캔들이 '흔한 자취' 쪽으로 매듭지어짐으로써 뒷이야기도 없게 되었다.

-오함마가 나올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아빠 매니저 찬양이 되네.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는데, 사실 이번 스캔들은 오함마가 나올 만한 사건이 아니었다.

자극적으로 기사를 써올리긴 했지만 이 바닥에서 그 정도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고 따지고 보면 틀렸다고 하기도 힘들었다.

하물며 이은지가 어마어마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가운데 최소한의 '팩트'는 갖춘 기사였으니 여기다 대고 오함마를 들이밀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말이다.

그래서 도진은 '평범한 해명'을 했고 그것으로 좋게 사건을 마무리지을 수 있었다.

그리고 방학이 끝나 2학기가 시작되었다.

* * * *

무림학교 고등반 학생들에게 있어 크나큰 의미가 있는 여름 방학이 끝나고 2학기가 시작되었다.

2학년 2학기는 여름 방학에 이어 또한 학생들에게 지극히 큰 의미를 가지니 그들에게 있어 사회, 그리고 무림에 나아가기 전 마지막 학생으로서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무림학교 고등반 3학년은 사실상 무림인이다.

학생의 이름이 아직 남아 있긴 하지만 그것이 면죄부가 되지 못하는 시기란 말이다.

교복은 사회에게서 아직 여물지 못한 학생을 지켜주는, 면죄부까지도 주어지는 방호복이다.

그 교복을 더이상 입지 못하고 양복과 무복(武服)을 걸치고 사회와 무림에서 활동해야 하는 게 무림학교 고등반 3학년이고 그 3학년이 되기 전 마지막 학생으로서 지낼 수 있는 게 2학년 2학기인 것이다.

그런 시기인 만큼, 도진이 속해 있는 숭무고의 집행부 내부에서도 변화가 찾아왔다.

"이제 부장 자리를 내려놓을까 해."

첫 번째 변화는 한유아가 더이상 집행부의 부장이 아니게 된 것이었다.

수강 신청 기간.

개학 후 첫 모임에서 한유아는 그렇게 말하며 집행부의 부장 자리를 도진에게 넘겨 주었다.

3학년이 되었지만 민간 무력 기업을 운영하는 대표로서 이득이 되기에 계속 학교에 남았던 그녀였지만 그것도 이제 반 년밖에 남지 않았다.

본격적인 무림인이자 사회인으로서 활동해야 할 시기가 되었기에 집행부 부장의 자리도 넘겨주게 된 것이다.

사실 업무 처리 자체만 따지면 나지윤이 더 능숙했고 도진 또한 나지윤이 되어도 괜찮겠다 생각했지만 당사자인 나지윤이 간판으로서 도진이 더 나을 거라며 도진에게 넘겼다.

"자, 새로 부장이 된 도진이에게 박수!"

짝짝짝!

박수를 받으며 도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얼굴 마담으로서 열심히 할 테니 업무는 여러분들이 잘 처리해 주세요."

"와, 상상도 못한 취임사."

"다들 건배합시다!"

한유아의 경악에 도진은 씨익 웃으며 콜라 잔을 들어 불만이 나오지 못하도록 했다.

그리고 분위기가 무르익어 조금 들뜨자 각자의 이야기가 나왔다.

"3학년이 되면, 본격적으로 회사 일을 배워볼까 해."

오대용은 그렇게 말했다.

"결정한 거야?"

"응. 할아버지가 그러시더라고. 커다란 나무는 조금만 바람이 불어도 소란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오대용은 후계자 자리에 관심이 없었다.

그러나 오대용의 신분이 신분이다.

직계 3세로서 조용히 살고 싶다고 해도 그게 고스란히 받아들여질 수 없는 위치였다.

예전 망나니 시절이었다면 몰라도 너무 커 버린 지금은 조그마한 바람에도 소란스러워질 수밖에 없었으니 '조용히' 살 수가 없다.

그것을 인정한 오대용은 그렇다면 아예 제대로 그 자리에 어울리는 인간이 되자고 결심을 한 것이다.

"나는 대용이 따라가야지."

주정아는 그런 오대용의 힘이 되어주려 했다.

오성의 1차 협력사인 성운을 이어받은 후계자로서.

"너는 본격적으로 문파 확장해야겠네."

"뭐, 그래야지."

오대용의 말에 도진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성아의 도움으로 잠룡문은 본격적인 문파로서의 모습을 갖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

다만 중요한 건 그것이 결국은 잠룡문이 아닌 '천마신교'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울타리 안에 소담이 포함된 암산서가부터 시작해 인연을 맺은 사람들이 들어와야 한다.

"우리 병아리들은 아직 1년 반이나 남았네. 좋겠다."

한유아는 민지서와 함께 잔을 나누며 그렇게 말했다.

병아리, 1학년들은 그 말대로 아직 '사회'가 피부에 와 닿지는 않을 때다.

"에이, 선배. 뒷방 늙은이라도 될 것처럼 왜 그래요."

"뒷방 늙은이라니!"

도진의 말에 한유아가 버럭한다.

도진은 피식 웃었다.

"왜 그렇게 과민 반응하세요. 사회 나가면 선배도 파릇파릇한 병아리라구요. 스스로에 자신감을 가지세요."

"너한테 그런 말 들으니까 기분이 묘하네……."

여느 때와 달리 한유아는 조금 감상적이었다.

집행부 부장의 직책과 함께 또 하나 어떤 것을 놓아 버린 것처럼.

그런 한유아에게 오대용과 도진의 시선이 머물기도 하면서.

집행부의 개학 파티는 좋은 분위기 속에서 끝이 났다.

* * * *

도진의 2학기 수강 신청은 성공적이었다.

소담과 함께 듣기로 한 과목들을 빠짐없이 함께 신청할 수 있었고 2학기에 듣기로 계획했었던, 외부 초청 강사가 연다던 특별 독공 수업 또한 신청에 성공했다.

한유아의 예상대로 경쟁이 그리 심하지 않아 이 수업 또한 소담과 함께 들을수 있게 됐다.

"우리 암산서가도 현대의 독공을 좀 배워야 하거든."

소담은 그렇게 말했다.

암산서가는 처단자 가문이었지만 그 수단은 암살자보다 무인에 가까웠다.

그 특성을 살려 부활할 암산서가는 암살이 아닌 호위에 중점을 두지 않을까 싶었는데, 그러기 위해선 현대에서 특히나 큰 위협인 독공에 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우리라고 독공을 아예 모르는 건 아닌데, 아무래도 요즘 시대에는 뒤쳐져 있으니까."

그 말에 도진은 '응, 힘내자'하고 웃어 주었고 소담 또한 마주 웃어 보였다.

그렇게 수강 신청을 마치고 드디어 개강 첫날.

확정된 시간표에 따라 소담과 함께 기숙사를 나온 도진은, 첫날부터 아는 인물과 마주치게 되었다.

"……."

근육질의 몸에 결코 좋지 못한 첫인상을 안겨 주는, 뒷골목을 연상케 하는 분위기가 양복의 이미지를 바꾸는 중년인.

양아치 강치환에게 날개를 달아 주었던 문월교의 부패 교사.

철중권(鐵重拳) 양원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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