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348화 (348/741)

347화

아이돌 코리아의 실패 원인은 길게 늘어놓을 것도 없이 한 마디로 '구태의연'이었다.

그러니까 뻔한 문법을 답습했을 뿐 특별한 게 없었다는 소리다.

오디션 프로그램 대유행의 시초였던 프로그램 이후 몇 개나 되는 오디션 프로그램이 우후죽순으로 제작되어 방영된 것이 바로 이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나름의 차별점을 두려 했으나 결국 구태의연한 결과물이 나온 것이 아이돌 코리아였으니 스무스하게 묻혔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진이 과몰입하는 시청자가 된 건, 도진은 그 오디션 프로그램의 유행에 편승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전생에서의 도진은 TV에 관심이 없었고 오디션 프로그램에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화를 낸다거나 과몰입하는 건 말 그대로 감정 소모다. 그것도 아주 큰 감정 소모.

처음부터 그런 감정 소모를 꺼렸던 도진이었기에 유행중이던 오디션 프로그램에 애초부터 관심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 이유로 이번 생에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는데 인연이 닿아 결국 입문을 해 버렸고 그대로 빠져 버린 게 지금이다.

구태의연한 프로그램이지만 어쨌든 기존의 문법을 따랐으며 다듬기까지 했다.

그것은 오디션 프로그램에 관해 전혀 아는 바가 없었던 도진에게는 신세계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막장 드라마를 욕하면서도 보는 건, 그 '욕한다'는 감정 소모를 감수할 정도로 몰입을 했다는 뜻.

막장 드라마와 비슷한 선상에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은 마찬가지로 과몰입하게 만드는 요소들이 가득하다.

심지어 도진의 입장에서 아이돌 코리아는 주인공이 있는 드라마와 같았으니 다른 이들에게는 평범한 참가자 중 한 명인 이은지가 도진에게는 주인공이었다.

"…너 과몰입하는 거 처음 보는 거 같다, 야."

"응, 듣고 보니 그러네."

오대용의 말에 유지은이 동의한다.

함께 자리하고 있던 집행부의 다른 멤버들도 말은 안 해도 동의하는 기색이었다.

도진은 그런 집행부 멤버들의 반응에 어깨를 으쓱였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에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인데, 확실히 보다 보니 알겠네요."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고, 후배는 면역이 없어서 심한가 봐."

한유아의 진단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유진이의 버프로 시청률이 전생에 비해 올랐다지만 아이돌 코리아는 내려갈 팀은 내려간다는 격언을 증명하듯 평가가 썩 좋지 않았다.

-김유진 때문에 관심 생겨서 보긴 보는데, 별로 특별한 건 없네.

오디션 프로그램에 관심이 있던 네티즌들은 이미 본 것들과 그닥 차별화되지 않은 내용에 혹평했다.

결승전을 향해 가는 지금에 와서는 그나마 오디션 프로그램을 잘 안 보던 사람들이나 꾸준히 보는 상황이었다.

-그러게. 특히 고구마녀 좀 어케 해줘 제발;;

…그리고 거기서 도진이 주인공을 보듯 감정이입하는 이은지는 그런 평가를 받고 있었다.

* * * *

본선에 진출한 참가자들은 2라운드에서 팀 대결을 벌이게 됐다.

조를 결성해 이기는 팀이 진출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여기서 아무렇지 않게 연예계의 '뒷세계'가 섞여들었다.

'내정자.'

중소 기획사의 대표 자격으로 참가한 오대용은 그동안의 배움과 자라온 환경에 의해 생긴 눈으로 그것을 자연스럽게 꿰뚫어 볼 수 있었으니 흔히 '내정자'라 부르는 참가자들이었다.

그러니까 이미 내부적으로 어느 정도 확정된 인물들이 있었으니 은밀하게 힘있는 소속사와 연결되어 있는 참가자들이란 말이다.

방송에서 최대한 티나지 않게 돋보이도록 밀어주니 이들에게 있어 오디션 프로그램은 자신을 어필하고 홍보하기 위한 자리였다.

자연스럽게 그 외의 참가자들은 들러리가 될 수밖에 없고 그렇게 되도록 인위적인 편집이 들어간다.

그리고 그 편집의 주된 희생양이, 아이돌 코리아의 홍보에 이용되던 이은지였다.

이은지는 내정자들의 조에 들어가게 됐다.

티가 나지 않도록 그 조에 배정되는 곡의 작곡가는 무명인 권이솔이 되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네, 잘 부탁드려요."

가면을 쓴 내정자들은 웃으며 인사했고 그들에게 권이솔은 좋은 퀄리티의 곡을 주었다.

제멋대로에 팀에 섞여들려 하지 않는 자들로 구성되었던 이들에게는 과분한 곡.

"기타는 제가 해도 될까요?"

"아, 저도 기타 욕심나는데. 제가 하면 안 돼요?"

이은지는 장기였던 기타를 지망했으나 다른 내정자가 얌체처럼 채갔다.

곡에서 기타가 제법 비중이 있다는 걸 알고선 장기가 아님에도 지망한 것이다.

"아, 네. 그러세요."

이은지는 속도 없는지 그걸 알면서도 웃으며 양보했다.

"널~ 사~ 랑~"

"아. 잠깐만, 은지야."

"네, 언니."

"처음부터 그렇게 음을 높게 잡으면 혼자 튀잖아. 자제하는 게 어떨까?"

"아, 네. 죄송해요, 언니."

연습에서는 제대로 음을 잡고 연습하는 이은지를 음역대가 낮은 내정자가 타박했다.

자신이 노력할 생각은 안 하고 오히려 이은지를 끌어내리는 쪽으로 진행했다는 말이다.

그런 팀이었으니 결과는 말할 것도 없이 좋지가 않았다.

-아오;; 시바 그러게 기타는 왜 양보해가지고;;

-존나 세게 나가서 니년이 음역대가 낮은데 왜 내 머리채 잡냐고 싸웠어야지;;;

-고구마를 강요당하고 있는 것이다!!;;;

사이다의 시대다.

그런 시대에 고구마를 강요하는 이은지의 모습은 시청자들이 가슴을 두드릴 수밖에 없게 만들었으니 '고구마녀'라는 별명이 붙고 만 것이다.

실력이라도 없었으면 그냥 속 좋은 등신, 호구라고 욕하고 관심을 끊을 텐데 실력이 좋아 '각'이 보이니 그렇게 외면하기도 힘들어서 더욱 고구마를 강요한다.

-결과는 아쉬웠지만 가능성은 볼 수 있었던 무대였습니다. 과감하게 골드 티켓을 사용해 볼까 합니다.

2라운드를 말아먹은 내정자들은 골드 티켓으로 살아남았다.

DS 대표는 골드 티켓을 쓰면서 사람 죽일 듯한 눈빛을 은밀히 감추고 있었는데, 도진은 그것을 액정 너머로도 꿰뚫어 보았다.

-저희 작곡가님이 이은지 씨와 꼭 한 번 더 작업해 보고 싶다고 하셔서요. 저도 골드 티켓 사용하겠습니다.

그리고 오대용이 권이솔의 의견을 존중하여 이은지에게 한 장뿐인 골드 티켓을 썼고 이은지는 권이솔과 함께 작업하길 원하여 흔쾌히 그 티켓을 받아들었다.

DS의 선택이 의문을 낳았다면 이쪽은 그래도 잘했다는 의견이 많았는데, 무대에서 유일하게 머리채 잡혀 실력을 발휘 못했다는 이야기가 나온 게 이은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준결승 촬영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 * * *

준결승과 결승은 생방송으로 진행된다.

방학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였는데, 지역 예선의 시기를 생각하면 꽤 급박한 일정이었다.

평가가 썩 좋지 않은 가운데 시청률도 떨어지자 더 떨어지기 전에 일정을 바꿔 그냥 몰아치기로 결론을 내려 버렸기 때문이라는 뒷사정이다.

이건 전생에서와 마찬가지 진행이어서 일주일에 두 편씩 방영, 방학이 끝나기 전에 준결승과 결승을 보게 되었다.

그 생방송에 도진은 지인 찬스로 참가할 수 있게 됐다.

오대용이 표를 준 것이었다.

표를 주며 오대용이 물었다.

"그런데 너, 은지가 이길 거라고 확신하는 거 같은데."

"응. 맞아. 은지 씨가 우승할 걸?"

"…조금 삼천포긴 한데, 너 왜 은지랑 상호 존대하냐?"

이은지와 도진은 동갑이다.

사회에서 무림학교 고등반이 성인 대우를 받는다고 하지만 그래도 통념상으로는 학생이란 인식이 강하고 그들 사이에서도 그런 느낌이다.

한데 도진과 이은지는, 심지어 따지고 보면 같은 집에 사는데도 아직 서로 존대를 하고 있으니 이상하긴 이상한 부분이었다.

오대용의 물음에 도진은 어깨를 으쓱였다.

"뭐, 서로를 존중해서?"

"그게 뭔 대답이야."

도진이 피식 웃었다.

"어쨌든 두고 봐. 어차피 우승은 이은지니까."

"끙. 난 모르것다."

입장상 이은지를 절대적으로 믿어야 할 오대용이었으나 동시에 현실을 봐야 하는 입장으로 도진의 말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준결승.

대형 기획사에 쟁쟁한 작곡가 등 온갖 좋은 것들이 죄다 '내정자들'에게 붙었다.

심지어 대형 기획사 소속의 '아티스트'들이 지원 사격을 위해 나오는 경우마저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바른 엔터밖에 곁에 남지 않은 이은지가 우승할 거라니.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준우승까지 올라온 이은지는 분명히 대단하지만 그것만으로 우승할 만큼 오디션 프로그램이 만만치 않다는 걸 너무 잘 알게 된 오대용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준결승 무대는 그런 오대용의 생각대로 진행되었다.

와아아아아아-!!

공연장이 떠나가라 함성을 내지르는 방청객은 동시에 심사위원이었다.

그들은 DS의 내정자가 준비한 무대에 열광했다.

실력만이 전부가 아니다.

무대의 퀄리티, 비주얼, 그리고 어찌되었든 소속사의 지원까지 등에 업은 참가자의 무대에 방청객은 매료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DS만이 아닌 다른 대형 기획사의 무대가 진행된 뒤 가장 마지막 순서로 이은지가 배정되었다.

앞서의 모든 무대와 비교될 수밖에 없는, 바른 엔터의 입장에서는 가장 안 좋은 상황이었지만.

"나쁘지 않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관람하는 도진은 자신의 의견이 맞을 수밖에 없다고 확신하는 모습이었다.

마치 무얼 하든 아이의 재롱으로 여기는 것처럼.

함께 온 레드슈의 리더 박소진, 그리고 안티체리의 리더 주교은은 그런 도진의 자신감을 믿으면서도 근거를 찾기 어려웠다.

그 이유를 알 수 있는 시간.

이은지가 무대 위에 올랐다.

화려한 조명도 뒤를 장식하는 오케스트라도 없었으며 백댄서조차 없다.

그저 마이크를 쥔 채 올라오는 한 명의 소녀만이 전부인 무대.

그녀는 그저 홀로 선 채 마이크를 들고 입술을 뗐다.

"나에게도, 날개가 있었네."

"아……."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녀는 노래한다.

날개가 있었지만 그 날개를 믿지 못하고 연약한 두 다리로 걷기만 했음을.

그러면서 하늘을 그저 바라보기만 했음을.

투박하게.

그러나 짙은 호소력으로.

권이솔의 투박하면서도 그렇기에 더욱 와닿는 음(音)에 자신의 감정을 얹어 노래한다.

-고구마녀는 도대체 왜 그러는 거임?;;

도진은 그 의문에 대한 답을 알고 있었다.

이은지가 모든 것을, 착해 빠진 동화에나 나올 법한 답답한 양보를 계속했던 건 '그래도 되기 때문'이었다.

기타를 양보하고 포지션을 양보하고 온갖 것을 다 양보한 건, 이은지에게는 그것이 그리 중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내어줄 수 있는 선이 있고 내어 주어도 상관없는 것들이 있다.

이은지에게 있어 기타란, 백댄서란, 오케스트라란 그런 것들이었다.

마냥 착해서가 아니라 그래도 상관없었기 때문에.

그저 좋은 곡에 자신의 목소리를 싣는 것만으로도.

아직 개화하지 않았음에도 '미래의 여왕'은 햇병아리들 사이에서 충분했다는 말이다.

좋은 곡을 줄 수 있는 여왕의 작곡가가 가세했고 그 어떤 방해나 군더더기도 없이 무대에 올라 노래하고 있다.

도진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대의 의미로 이은지가 '불합리한 경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날아, 오를."

거야.

마치 날개를 펼치듯 가사를 읊조리고 이어 절정으로 치닫는 고음은 정말로 비상하듯, 공연장의 높은 천장마저 때리고 날갯짓에 의해 광풍이라도 생긴 듯 관중을 휩쓸어 버린다.

몰입해 보던 드라마의 주인공이, 다 씹어먹어 버리는 순간이었다.

씨익-

도진은 만족스레 입꼬리를 올렸다.

* * * *

-아이돌 코리아 우승, 이은지!

생방송으로 진행된 준결승과 결승에서, 이은지는 도진의 확신대로 우승을 차지했다.

시청률이 떨어진다는 건 조작 논란을 피하기 위해 시청자들의 점수 비중을 높인 아이돌 코리아에서 내정자에게 유리한 부분이었지만 '겨우 그 정도'로는 어찌할 수도 없을 만큼 이은지가 압도적인 무대를, 그것도 연속으로 선보여 버렸다.

그리고 그 무대는 아이돌 코리아마저 집어삼켜 버릴 만큼 어마어마한 관심 속에 백만 조회수를 단숨에 뚫어 버리고 이백만을 넘어 수직상승 중이었다.

그동안 뜸하던, 오디션 프로그램이 난립함에도 쉽사리 나오지 않던 오디션 스타가 또 한 명 탄생하려는 듯했다.

바로 그때.

-아이돌 코리아 우승자 이은지. 잠룡과 동거하는 사이?!

거대한 스캔들이 터져 버린 것이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