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6화
서태주에게 말했던 대로 도진은 유진이의 오디션을 뒤따라갔고 지켜보았다.
안으로 들어갈까 했지만, 가능하다 생각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그건 무단 침입이기도 하고 선을 넘는 게 아닌가 싶어 그러지는 않았다.
대신 오디션장 바로 근처에 앉아 최대한 감각을 집중하여 풀어내 내부를 생생하게 느끼는 방향으로 오디션을 지켜 보았다.
-DS는 나쁜 곳이잖아요. 안 갈래요.
유진이가 그렇게 말했을 때는 순간 풀어 놓은 감각이 요동칠 정도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역시 내 동생이야.
뿌듯했고, 그럴 리가 없는데 육체가 통제를 벗어나 웃음이 실실 새어 나왔다.
-저 씨발년 때문이야.
…그러나 그 통제를 벗어날 정도의 둥실거리던 기분은 그런 말을 하는 양아치 하나 때문에 박살이 나고 말았으니 '179번 참가자'와 그 일행이었다.
-저년만 아니었어도 DS 픽 받았을 텐데.
179번.
아무도 버튼을 누르지 않자 간절하게 자신을 어필했던 참가자였기에 도진도 기억에 남았다.
양아치였지만 그 간절함이 일말의 호감을 주었었는데 이렇게 되니 그 일말의 호기심마저 곱절로 비호감으로 반전했다.
그럭저럭 잘 하긴 했지만 딱 거기까지.
유진이는 초심자치고 잘한다는 가산점이라도 있었지 179번은 그럭저럭 잘 하긴 하는데 모든 면에서 '평균'이기에 뽑을 이유가 없는 참가자였다.
그런 스스로를 파악하지 못하고 유진이를 욕하고.
-씨팔. 한 마디 안 하고는 안 되겠다. 가자.
-야, 저 새끼 팔뚝 봐라. 건드려도 되겠냐?
-아이 씨발. 좆 달고 있는 새끼가 왜 이렇게 쫄고 지랄이야. 딱 봐. 저 새끼는 포스가 없잖아.
자신감에 차서는 유진이를 해코지하려 했다.
"그러게 마음을 곱게 써야지."
…그래서 도진은 서태주의 뒤를 이어 굳이 나서서 그들을 손 봐 준 것이었다.
그 더러운 입술을 후려치고 토사물보다 더러운 말을 내뱉었던 그 면상을 바닥에 문대 주었다.
어쩌면 정말로 DS의 심사위원 멘탈이 나가지 않았다면 그녀를 인상깊게 보고 어차피 남아 있던 골드 티켓을 사용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아주 잠깐 들었다.
그러나 깊게 생각하거나 고민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모든 걸 떠나 또래를 괴롭히는 양아치 따위가 아이돌이 되어 꿈을 이루는 건 도진의 가치관에서 '옳은 일'이 아니었으니까.
천마신교가 '마교(魔敎)'라 불리거나 스스로 그리 칭하는 데에 거리낌이 없는 건 실제로 그 교리가 모든 걸 떠나 근본적인 선악(善惡)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천마신교의 교리를 주관해야 하는 후계자의 입장에 있는 도진이었기에.
가능성을 따지기 이전에 이렇게 되는 게 옳은 일이라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믿을 수 있었다.
동생의 험담을 하고 해코지하려 했던 놈들의 면상을 토사물에 처박아 버리는 것 또한, 일말의 과함도 없는 참교육일 뿐이다.
겨우 양아치를 줘 패는 데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거창하게 보일 수도 있지만 반대다.
모든 생각과 행동은 가치관과 기준에 따르는 것이고 그 기준은 오히려 거대하고 포괄적인 법이니까.
…언짢은 기분을 풀기 위해 도진은 그런 생각을 하며 집으로 돌아왔고 점심을 먹고 돌아온 유진이와 서태주를 맞이해 주었다.
"잘 다녀왔어?"
"응, 오빠."
"별일 없었고?"
"있었는데 태주 오빠가 해결해 줬어."
"오, 그랬어? 고맙다."
"…그래."
도진의 인사에 서태주는 떨떠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도진이 분명히 몰래 뒤따르며 지켜보았을 거다.
당연히 그 양아치들 또한 보았을 텐데, 과연 그놈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도진의 성격상 결코 그냥 넘어가지 않았을 텐데…….
'합격한 애 있으니 걔 보면 짐작은 할 수 있겠지.'
무리의 중심으로 보이는 예쁘장한 애가 오디션에 합격했었다.
무사히(?) TV에 나온다면 도진도 적당히 손을 쓴 정도라는 걸 확인할 수 있을 거라 서태주는 생각했다.
"조만간 한 번 보자."
"그래."
남자들답게 무미건조하게 인사하고 서태주는 돌아갔다.
도진은 유진이에게서 오디션장에서의 일을 들었다.
처음 듣는 것처럼, 그러면서도 무난한 반응을 보여주었다.
"실망하진 않았어?"
도진의 물음에 유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응. 사실은 그렇지 않을까 했어. 얼마 안 배운 나보다 잘하는 사람들이 많은 게 당연하잖아."
"그럴 수 있지."
"더 열심히 해서 내년에 다시 도전할 거야."
기억대로라면 이후로도 오디션 프로그램은 몇 개나 진행된다.
도진이 피식 웃으며 손을 들었다.
"그래! 화이팅!"
유진이는 하이파이브를 원하는 도진의 손에 '나는 이제 어린애가 아닌데'라고 생각하면서도 마주 손을 들어 부딪쳐 주었다.
짝!
* * * *
아이돌 코리아는 그다지 이슈가 되지 못했던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다.
초반의 홍보를 그다지 좋지 못한 이슈와 함께 해체되었던 레드슈의 전 멤버인 이은지를 중심으로 전개했을 만큼 이렇다 할 특출난 부분이 없었으며.
전생의 기억 어디에도 '아이돌 코리아 출신'의 연예인이 없을 정도로 상위 라운드 진출자들 또한 이름을 날리지 못했다.
한데, 처음부터 도진의 영향으로 많은 것이 바뀌었던 아이돌 코리아는 조금 달랐다.
[잼민이한테 까인 DS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라는 제목과 함께 올라온 동영상이 그 시작이었다.
-DS는 나쁜 곳이잖아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제 DS 예쁜 잼민이한테도 까이냐?ㅋㅋㅋㅋㅋㅋㅋㅋ
다른 게 아니었다.
유진이가 DS 심사위원이 건넨 골드 티켓을 까 버리는 장면을 누가 촬영해 올려 버린 것이다.
결코 흔하지 않은 일이 사건이 워낙 대단하다 보니 일어나 버렸다.
제아무리 요즘 오물 폭탄을 맞았다지만 그래도 '바로 그 DS'가 뽑은 골드 티켓을, 그것도 예쁘장한 초등학생 소녀가 까 버렸다.
그 이후 나온 핵폭탄 발언과 정말 폭탄을 맞아 버린 듯 썩어 버린 심사위원의 표정, 싸해진 오디션장의 분위기는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지 않을 수 없는 대사건이었고 동영상은 온갖 곳에 무서운 기세로 번져 나갔다.
-엌ㅋㅋㅋ 저러고 나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구경한다고?
-미쳐불것넼ㅋㅋㅋㅋㅋㅋㅋ
그런 대사건을 일으키고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 구경까지 하고 있다.
사람들은 자지러지게 웃었고 DS를 조롱했다.
부자가 망해도 3년은 가는데 아직 망하지 않은 DS는 여전히 잘 나가고는 있었다.
3대 기획사로서 특히나 입지가 공고했으며 소속 아이돌들도 탑 티어.
여러 악재가 겹쳤음에도 지반이 탄탄했기에 무너지지 않은 것이다.
때문에 오히려 더더욱 욕을 먹었고 비호감의 대명사가 됐다.
이를테면 샌드백 같은 느낌이랄까.
DS 입장에서는 결코 좋지 않은 일이었다.
엔터 업계는 결국 이미지로 먹고 사는 곳이다.
한데 이런 식으로 계속 비호감을 사게 되는 건 당장은 괜찮아도 장기적으로는 치명적이었으며 큰 손해다.
연습생의 선택에서도 그게 드러난다.
같은 조건이라면 DS가 아니라 다른 기획사를 선택하지 않겠느냔 말이다.
때문에 이번 이슈 또한 돌아 버릴 일이었고 어떻게든 기사화는 막으려 했지만…….
-'아이돌 코리아' DS의 굴욕?
무리였다.
화제가 되지 않았으면 모르겠는데 이미 관심있는 사람들은, 심지어 관심없던 사람들도 죄다 아는 이야기가 되었고 그러자 조회수에 목마른 하이에나들이 기사를 좌르르 올려 버린 것이다.
친한 곳들은 막았지만 이래서야 아무 의미가 없어졌고 결국 메이저 연예부에서도 슬금슬금 복제 기사를 늘어놓게 돼 버렸다.
-그래서, 저 예쁜 잼민이는 누구임?
-지역 예선이라 인적 사항 없음ㅋ
이윽고 관심은 당연하게도 폭탄 선언을 한 소녀에게로 몰렸다.
지역 예선 참가자고 어디 기획사 연습생도 아니었으니 사실 오래가지 못할 관심이었다.
그러나.
-어? 김유진? 잠깐만.
어디 네티즌 수사대가 보통 수사력의 소유자들이었던가.
'김유진' 이름 석자에서 대번에 실마리를 잡고 수사에 착수해.
-저 옆에 서태주네. 숭무영재고 집행부 부부장.
-야, 김도진 동생 많이 컸네?
채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진실에 도달해 버렸다.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DS갘ㅋㅋㅋㅋ 김도진 동생한텤ㅋㅋㅋ 골ㅋㅋ듴ㅋㅋㅋ팈ㅋㅋㅋ켓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앜ㅋㅋㅋㅋ
DS는 또 한 번 웃음벨이 되어 버렸다.
악연에 악연으로 얽혀 있던 김도진의 동생에게 DS가 골드 티켓을 줬다는 게 만천하에 드러났다.
-DS : 자네, 우리와 일하지 않겠는가?
-김유진 : ㅎㅎ.. ㅈㅅ.. ㅅㄱ!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시발 저 심사위원 지금 본사에서 빠따 맞는 거 아님?
-에이, 아무리 그래도 요즘 시대에 ㅋㅋㅋ
빠악! 빠악!
…그리고 네티즌들의 댓글이 DS 본사에서 현실로 일어나는 중이었다.
"이 병신 같은 새끼! 눈깔을 뽑아 버릴 새끼!"
"아악! 아악! 잘못했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심사위원으로 나섰던 직원이 DS의 대표 무석호의 오른팔인 송원석 실장에게 야구 배트로 무자비하게 얻어맞는다.
뻑! 뻑! 뻑!
"죽어! 죽어 이 새끼야아아아아!!"
눈이 돌아가 직원을 구타하는 그의 행패를 사무실 바깥의 직원들은 애써 모른 척했다.
DS는, 비정상적이지 않은 회사였다.
* * * *
방학이 거의 막바지에 다다랐을 즈음.
본래 아무런 화제도 관심도 없이 마무리되었던 아이돌 코리아는 그래도 나쁘지 않은 시청률을 기록하며 결승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으니 유진이 덕분이었다.
유진이로 인해 아무도 관심없던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던 아이돌 코리아가 알려지면서 그 폭발적인 관심의 일부를 시청률로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이돌 코리아 입장에서는 만세를 부를 일이었고 그 프로그램에 합류했던 DS로서는 득보다는 실이 많아 표정이 썩을 일이었다.
이은지는 본선 진출에 성공했고 '중소 파트'에 소속되었다.
중소 파트는 정식 명칭은 아니고 시청자들이 임의로 붙인 이름인데, 아이돌 코리아가 의도했던 대형 기획사 대 중소 기획사 구도에 따라 나뉜 그룹 중 중소 기획사 쪽을 뜻하는 말이다.
본선 진출자들은 프로그램 진행에 따라 대형 기획사 혹은 중소 기획사 쪽에 소속되어 대결 구도로 경쟁을 하게 되는데 이은지는 중소 기획사 쪽의, 그것도 오대용의 바른 엔터를 선택했다.
오대용이 도진의 친구이기 때문이 아니라 미션 진행 중 한 번 무대를 같이 꾸몄던 작곡가 권이솔의 곡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꽤 재미있는 부분으로, 전생과 아주 많은 부분이 달라졌음에도 불구하고 이은지는 권이솔과 인연을 맺고 무대를 함께 하게 되었다.
도진의 시선에서 그것은 마치 흐르는 물처럼 보였다.
-물?
"예. 물길의 모양에 따라서 물이 흐르는 모양은 바뀔 수 있어도 물이 아래로 흐르려 하는 성질은 바뀌지 않잖습니까. 어쩐지 그런 느낌이 들어서요."
-껄껄. 도사 같은 소리를 하는구나.
"아하하."
-하지만, 그래. 그런 느낌이 확실히 있구나.
어쩐지 도인들이 화두로 둘 법한 소리를 하며, 그로 인한 미미한 깨달음마저 얻는 도진이었다.
그리고 그런 도진은.
"와, 쟤는 진짜 말이 좀 험하네. 안 그렇냐, 대용아?"
"……."
아이돌 코리아를 꼬박꼬박 챙겨보다 오대용을 붙잡고 참가자들의 모습 하나 하나에 과몰입하는.
"아, 쟤는 진짜 싸가지가 없단 말이지. 안 그러냐, 대용아?"
"……."
열혈 시청자가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