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3화
도진은 TV에는 취미가 없는 사람이었다.
어릴 적부터 만화 프로그램 말고는 보는 게 없었고 머리가 조금 굵은 뒤로는 만화도 따로 찾아보면 봤지 TV를 보진 않았다.
결정적으로 사고를 당하고 얼마간 TV를 완전히 끊게 된 뒤로는 컴퓨터에 심취하며 더더욱 TV를 멀리했고.
어쩌다 흥미가 가는 프로그램이 있으면 인터넷에서 찾아 몰아보는 식으로 봤지 불편하게 일시정지나 되감기, 캡처도 안 되는 실시간 방송을 볼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근본적으로 드라마나 예능이 얼마나 화제가 되든 관심을 두는 일 자체가 거의 없었으니 그렇게 찾아보는 경우도 드물었다.
그런 맥락으로 한창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이 화제가 되었을 때도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어이구, 한심한 새끼들 또 유행 따라 베끼기 바쁘지 병신들.'
…하고 욕이나 하는 게 전부였으니 프로그램의 이름도 하도 주변에서 떠들어댔던, 유행의 시초였던 프로그램이나 겨우 알 정도였다.
그런 도진이 별다른 화제도 일으키지 못했던 아류작 중 하나였던 '아이돌 코리아'의 이름을 아는 건 다른 이유가 아니었다.
꺼라 위키의 이은지 문서에 바로 그 아이돌 코리아가 나오기 때문이다.
단순히 출연 목록에 나오는 게 아니라 '여왕의 작곡가' 권이솔과 처음으로 만났던 프로그램으로 어느 정도 비중있게 다루어졌으니 기억에 남을 수 있었다.
그렇게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이 있었기에 도진은 알고 있었다.
아이돌 코리아에 '오대용'은 존재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로, 그러니까 이건 도진의 영향으로 미래가 크게 바뀐 부분 중 하나였다.
쉽게 보기 힘든 도진의 반응에 오대용이 푸후, 웃고선 말했다.
"네가 들어도 의외지? 나한테 섭외 요청이 온 거."
"어, 그러네."
그야말로 '상상도 못한 섭외 ㄴㅇㄱ'다.
그러나 아이돌 코리아의 시스템에 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던 도진이었기에 곧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후죽순 대국민 오디션 프로그램이 쏟아지는 시기다.
철판 깔고 유행에 편승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그래도 최소한의 차별점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이돌 코리아, 속칭 'K-아이돌'은 그것으로 '중소픽'을 택했다.
그러니까 보통 대형 기획사 대표들이 나와 심사를 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거기에 조커 형식으로 중소 기획사의 표를 더한 것이다.
대형 기획사에서 픽하지 않으면, 혹은 그에 앞서 중소 기획사에서 픽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이 친구 될 것 같다 싶으면 중소 기획사에서 표를 줄 수 있는데 대형 기획사에 앞서 표를 줄 경우엔 참가자에게 거부권이 있다.
대형 기획사가 선택하지 않을 경우에도 거부권이 있긴 한데 거부하면 탈락하는 상황에서 그걸 행사하는 경우는 보통 없다.
그렇게 해서 대형 기획사가 8표, 중소 기획사가 8표 해서 총 TOP 16을 뽑은 뒤 거기서 또 여덟 명을 추려내는 방식이었는데…….
그 중소 기획사 중 한 곳으로 제작진은 오대용을 섭외하려 한다는 것이다.
"속이 뻔히 보이네."
도진의 말에 오대용이 어깨를 으쓱하며 '뭐, 그렇지'하고 답했다.
그래, 속이 뻔히 보인다.
외적으로 볼 때 바른 엔터는 이제 겨우 인지도를 쌓고 있는 레드슈와 인지도는 폭발적이지만 그게 마냥 좋은 방향이 아닌 안티체리 단 두 팀만을 보유하고 있는, 아직 연습생조차 없는 회사다.
여기저기 용병으로 활동한 베테랑 스태프를 다수 보유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자 장점이지만 또 그것 뿐.
심지어 대표는 재벌 3세가 심심풀이로 낙하산 타고 떨어진 듯한, 이제 열여덟이 된 무경험자.
그런 인물을 제아무리 메인이 아닌 서브라 해도 섭외한다니 어이가 없는 일이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본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방송이란 건 결국 시청률과 화제성이고 그것을 모으기 위해서 '방송국놈'들은 온갖 수단을 사용하곤 한다.
그 수단 중 하나로 그들은 오대성을 점찍은 것이다.
숭무고 재학생이면서 재벌 3세.
그런 신분으로 '영세 소속사'의 대표로 있는 오대용.
심지어 김도진 패밀리의 일원이기까지 하니 섭외에 성공만 한다면 엄청난 관심을 끌 수 있지 않겠는가.
천재인 오대용이 그 속내를 짐작하지 못할 리가 없다.
그러나.
"그래도 참가해야지."
다 알면서도 오대용은 섭외 요청을 수락했고 도진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암. 영세 소속사 대표가 으딜 감히 섭외를 거절하겠어."
니가 선택한 대표 자리다. 악과 깡으로 해 나가라.
도진의 그 말에 오대용도 피식 웃었다.
"우리 애들을 위해서라도 내가 열심히 해야지."
레드슈도 그렇고 안티체리를 위해서라도 이런 섭외를 거절하기는 힘든 일이다.
그래서 섭외 요청을 받아들인 오대용의 고개가 슬쩍, 삐딱하게 기울었다.
"그런데 영세 소속사 대표라니. 이제 대기업 됐다고 벌써부터 갑질하냐?"
"으잉? 내가? 잠룡문도 영세 문파인데."
"너 이번에 주식으로 대박쳤잖아. 이제 영세 문파는 아니지."
그렇기는 하다.
사실 본래 '미래 로드맵'에는 없던, 이른 시기에 잠룡문을 개파하면서 문파 활동 자체가 소소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야말로 동네 체육관 정도나 될까 싶던 규모였으니 지금까지는 영세 문파란 말이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거기서 또 도진의 존재로 미래가 조금 바뀌어 어로스가 시작부터 말도 안 되는 떡상을 하면서 주식이 대박을 쳐 버렸다.
적어도 자금에 있어서 이제 잠룡문은 더 이상 영세 문파가 아니게 된 것이다.
"우리집 나무늘보가 집에서도 아주 좋아 죽으려고 해서 눈꼴 시려."
"푸흐흐."
제아무리 밖에서는 오성의 여신 눈나라도 호적 메이트의 눈에는 나무늘보일 뿐.
그 나무늘보가 집에서도 아주 신난 모습이라고 오대용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쨌든 뭐, 화이팅이다."
미래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도진의 입장에서는 크게 걱정할 만한 부분이 아니었다.
어찌되었든 이은지는 오디션에 참가하고 오대용이 추가되었지만 바른 엔터에 권이솔이 소속된 만큼 권이솔 또한 아이돌 코리아에 참석할 것이다.
중소 기획사의 섭외 조건 중 하나가 '곡을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회사'였으니 말이다.
될 사람은 결국 된다.
도진이 보았을 때 이은지와 권이솔은 될 사람이었고 많은 부분에서 미래가 바뀌었지만 그 바뀐 미래에서도 결국 될 것이었으니까.
걱정하지 않아도 좋은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그때를 대비하여 도진은 아이돌 코리아를 주시할 생각이었다.
다만 느낌으로 따지자면 꼬박꼬박 본방사수하는 시청자의 느낌으로.
한데 그런 도진의 계획에 천재지변과 같은 변수가 찾아왔으니.
"오빠."
"응, 유진아."
"나 아이돌 코리아 참가 신청 넣었어."
"뭐……?"
* * * *
랭킹전 축제 때 유진이는 가요제에 관심을 보였었다.
그리고 사실은 전생에서도, 유진이는 아이돌에 관심이 많았다.
보는 쪽이 아니라 되는 쪽으로 말이다.
…불행하게도, 전생에서는 그 꿈을 이루지 못했다.
단순히 환경만이 아니라 이가 갈릴 정도의 불행이 한 번 더 찾아온 탓에.
이번 생에서는 그 꿈을 이루어 주고 싶었던 도진이었기에 랭킹전 이후 물었다.
"유진아, 너도 제대로 시작해 볼래?"
학원 등록은 물론이요 할 수 있는 지원을 다 해 줄 생각이었다.
"으으응, 일단은 나 혼자 열심히 해볼게."
하지만 유진이는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았던지 너튜브 등을 보며 우선 독학으로 시작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학원에 등록하는 등 꿈을 위한 준비를 하게 된 것이 이은지가 별채에 머물게 되면서였다.
한 번 데뷔를 했었으나 실패하고 다시 준비하는 이은지.
그런 이은지를 곁에서 보면서, 이끌어 줄 사람이 생기면서 유진이는 마음을 먹었던 것이다.
"흠, 조금 이르긴 하지만 어떻게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니지. 빨리 시작할수록 좋은 거고 오디션 같은 건 정말 좋은 경험이 될 테니까."
도진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런 의견을 낸 것은 서태주였다.
어깨를 움츠려 더욱 왜소하게 보였던 서태주는 이제 없어서, 자리에 앉은 서태주는 '보급형 벽태웅'이라 할 만한 모습이다.
도진이 건넨 천마신교의 연단공을 꾸준히 해 온 결과로 내적인 부분에서는 아직 아쉬움이 있지만 적어도 겉으로는 괄목할 만한 피지컬의 성장을 이룬 것이다.
만약 재능이 더 있었다면 내적으로도 큰 성장을 거뒀겠지만 욕심을 낼 필요는 없다.
서태주가 익히고 있는 연단공은 하면 되는, 그러니까 '노력을 배신하지 않는 연단공'이었으니까.
하는 만큼 결과가 주어지니 그저 묵묵히 걸어나가면 되고 서태주는 그걸 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서태주가 도진을 조금 뚱한 얼굴로 마주하고 있었으니, 다급한 연락을 받고 달려와 봤더니 듣게 된 게 동생이 오디션에 참가한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서태주에게 있어 도진은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지존'이다.
친구이지만 동시에 마음속으로 도진을 또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런 지존의 심상치 않은 연락을 받고 달려왔더니…….
"응,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무엇이든 좋은 경험이 될 수 있고 유진이에게는 더욱 그렇겠지."
"그런데?"
-오빠는 따라오면 안 돼!
"…그런 말을 하더라고."
"……."
끙.
아니 이게 도대체 뭐 그렇게 심각한 일이라고 천하의 김도진이 다급히 연락을 하느냔 말이다.
"…너 시스콘이야?"
"시스콘이라니. 너 그런 말도 아는 구나?"
움찔!
샤이 오타쿠, 오타쿠 기질을 숨기고 있던 서태주는 움찔했으나 이내 그 기색을 숨기듯 버럭했다.
"야잇! 그게 중요하냐!"
"흠. 아니지. 어쨌든 말야, 위험할지도 모르잖아."
"……."
보고 있자니 이건 몇 살 터울이 아니라 아주 딸에 가까운 나이 차이가 나는 동생을 걱정하는 모양새다.
그리고 그게 정답이었다.
서태주야 알 수가 없겠지만 도진은 사실 서른 다섯의 나이에서 회귀한 입장이다.
그렇게 돌아와 보게 된 것이 아직 초등학생인 동생이란 말이다.
…행복하게 살았다면.
만약 행복하게 살았다면 몇 살 터울이 있어 도진의 입장에서는 귀엽지만 그래도 사춘기가 지나고 조금은 데면데면한 관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인터넷에서 흔히 보는, 데면데면하거나 투닥투닥거리지만 그래도 미소가 지어지는 남매 관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관계가 되지 못한, 불행에 짓눌린 과거를 지우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게 되긴 했는데…… 동생들과 달리 과거를 온전히 기억하는 상태로 되돌아 왔다 보니 동생들이 그야말로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같기만 하다.
"물론 이해는 돼. 내가 같이 가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도 못하고 나에게만 시선이 집중 되겠지."
유진이가 원하는 건 정당한 평가이며 오디션인 이상 온전히 스스로의 실력으로만 평가를 받아야 하는 게 맞다.
한데 거기에 도진이 붙어서 따라가면 그런 일은 불가능해진다.
유진이 또한 그것을 잘 알기에 도진이 따라오면 안 된다는 말을 한 것이다.
"그래서?"
시스콘 지존에게 서태주가 여전히 뚱한 얼굴로 물었다.
보아하니 뭔가 다른 수를 낸 거 같으니 그걸 물은 것이었다.
그런 서태주를 진지한 얼굴로 마주하며 도진이 말했다.
"니가 가라, 오디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