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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42화 (342/741)
  • 341화

    쿠콰콰콰콰-!

    혈마를 중심으로 하여 몰아치는 혈마기는 천재지변을 일으키는 괴물처럼 보였다.

    분명히 인간을 중심으로 하여 발산되는 기운이거늘 줄기줄기 뻗어 나가는 혈마기는 해일처럼 일대를 뒤덮었다.

    쿠오오오오오-!!

    하늘을 찌를 듯 치솟아 휘몰아치는 건 폭풍을 닮았고.

    꾸과과과광-!!

    내리꽂히는 무수한 피의 빗줄기는 하나하나가 치명적인 검강이었다.

    꽈과광!!

    그 빗줄기가 모여 거대한 줄기를 이루면 사람을 한 입에 씹어삼키는 이무기를 연상케 했다.

    모니터 너머 평면의 영상이 아닌 실제로 그 자리에서 보는 듯 실감나는 VR 속에 있었기에 시청자들은 가짜라는 걸 이성으로는 이해하면서도 실제 같은 감각에 압도되었다.

    그리고 그런 천재지변을 검 한 자루로 맞서는 도진의 모습에 경탄했다.

    스각-!

    찬란하게 백열하는 검이 해일을 가르며 치솟는다.

    도진이 허공답보를 응용하여 혈마기를 가르며 허공을 밟는다.

    까가가가가강-!

    그런 도진을 노리는 이어지는 무수한 혈마기의 빗줄기를 경로에 있는 것만 정확히 허섬으로 쳐내며 활로를 찾는다.

    쿠오오오오오-!

    꽈아앙-!

    그러나 혈마로 이어지는 길을 막은 이무기를 닮은 혈마기에 도진은 다시 뒤로 주욱 밀려나고 만다.

    -아;;; 개쎄네;;

    -존나 시스템적으로 '히히 못가'네 ㅅㅂ;;

    도진은 경이로울 정도로 완벽하게 캐릭터를 조작하고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었다.

    "…무림열전의 공격은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강기 같은 것도 '오브젝트'로 취급하거든요. 그 말은 곧 강기마저도 허섬으로 쳐낼 수 있다는 뜻이에요."

    유애라의 설명대로 도진은 철저하게 강기공(罡氣功), 그러니 내공으로 이루어진 강기를 원거리에서 폭격하듯 쏘아내는 혈마의 공격을 단순히 피하는 게 아니라 허섬으로 저격하는 신기를 숨쉬듯 보여 주었다.

    튜토리얼에서와 달리 허섬을 성공시키기 위한 '빈틈'은 쉼없이 움직이고 심지어 혈마의 강기는 그 범위도 바늘 구멍 수준이었다.

    실패하면 강기에 적중당해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을 것인데 얼마나 강심장인지, 아니면 스스로를 믿는지 한 번도 주저하는 법이 없었다.

    덕분에 도진의 캐릭터는 피해를 최소화하고 최소의 힘으로 최대의 효율을 얻고 있었으나 그것도 무한할 수는 없었다.

    어찌되었든 모든 움직임은 체력과 내공을 요구하고 있었으니 캐릭터의 체력과 내공은 계속해서 소모된다.

    심지어 도진의 캐릭터는 이미 절반 이상의 체력과 내공을 앞서의 전투에서 소모하기까지 했다.

    그에 비해 혈마는 여러가지 설정, 최종 보스의 보정으로 도저히 내공이 마를 기미가 보이지 않았으니 정해진 스토리를 진행하기 위한 '절대적인 장치'로 존재하고 있음을 체감할 수 있었다.

    말도 안 되는 컨트롤로 버티고는 있지만 말 그대로 버티는 것일 뿐 혈마에게 접근조차 못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 매드무비도 도진의 캐릭터가 모든 체력과 내공을 소모할 때까지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아름다운 패배'가 곧 다가올 것이고 사람들은 박수를 치려 했다.

    그런데.

    "흠, 될 거 같네요."

    도진이 그런 말과 함께 그 와중에도 설정창을 열어 설정을 변경했으니.

    [조작 난이도 : 절대고수(100%)]

    바로 조작 난이도의 변경이었다.

    그저 막대를 가장 우측으로 당길 뿐인 행위.

    그러나 그 행위 하나로,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었다.

    스각-!

    백열하는 검이 혈마기를 가른다.

    그래, 허섬으로 쳐내는 것이 아니라 '갈라' 버렸다.

    -? 뭐야?

    -설명 선녀님, 설명 좀요.

    지금껏 없었던 현상에 경악하며 설명 요청이 쇄도했고 유애라는 멍한 얼굴로 입술을 뗐다.

    "허섬의 연계 초식으로 '일소(一消)'라고 하는 초식이에요. 각성 초식인데, 강기공 계열의 공격을 말 그대로 지워버리는 거예요. 허섬의 대성공 이후 정해진 커맨드를 또 대성공해야만 성공하는 건데……."

    PC 버전 무림인 난이도 기준 0.3초 안에 모니터에 무작위로 뜨는 지름 2cm 가량의 원을 3연속으로 정확히 클릭하는 정도라고 했다.

    -? 그냥 되는 거 같은데?

    -아니시벌ㅋㅋㅋㅋㅋㅋㅋ

    도진은 그것을 빗줄기처럼 쏟아지는 혈마기를 대상으로 100% 성공시키고 있었다.

    스각-!

    해일을 가르고 빗줄기를 소멸시키며.

    꽈과광-!

    그리하여 더 크게 드러난 활로를 걸음으로써 혈마기로 이루어진 강대한 기운의 집합체인 이무기를 피해 버린다.

    저벅.

    도저히 줄일 수 없던 거리.

    혈마로 이어지는 길을 도진은 그리하여 기어코 한 걸음씩 줄여 나가고 있었다.

    시청자들은 그 광경을 마치 무림의 시대 절대고수의 싸움을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이 된 것처럼 경이를 느끼며 숨죽이고 도진의 걸음을 두 눈에 담았다.

    혈마를 두르고 있던 천재지변을 도진은 이윽고 완전히 돌파했다.

    한 자루의 검으로 천재지변을 지우며 그 앞에 닿고 만 것이다.

    그리고.

    푸욱-

    "…천검은 기어코 혈마의 권능마저 베어 버리고 마는 것이냐."

    혈마를 꿰뚫어 버렸다.

    -잡았다.

    -이걸 잡아 버리네;;

    혈마가 회색빛 재가 되어 사라진다.

    스토리를 진행해야 할 적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이제 어케 되는 거임?;;

    -이거 이러면 스토리 진행이 안되자넠ㅋㅋㅋㅋ

    -버그 발생하나요!

    시청자들이 웅성거렸다.

    원래는 여기서 혈교 세력이 남고 사주가 패하면서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야 했다.

    한데 바로 그 혈교 세력을 오히려 도진이 모조리 잡아 버렸으니 그런 진행이 불가능해져 버린 것이다.

    시청자들은 버그가 날지, 아니면 전투 결과와는 별개로 본래의 스토리에 따라 컷신이 진행될지를 지켜 보았다.

    그리고.

    두웅-

    [……그리하여, 천검문은 태동하던 무림의 암운을 또 한 번 걷어낸 것이었다.]

    나레이션과 함께 엔딩곡이 흐르며 스탭롤이 올라갔다.

    -?

    -....??;;

    […THANK YOU FOR PLAYING, Fin.]

    게임이 클리어 되었다.

    * * * *

    -아니 미친ㅋㅋㅋㅋㅋㅋ

    -프롤로그에서 최종보스를 잡고 엔딩인 게임이 있다?! 뿌슝빠슝!!

    -미쳤낰ㅋㅋㅋㅋㅋㅋㅋ

    생중계의 채팅창이 뒤집어졌다.

    무림열전3는 어로스가 사활을 걸고 만들어낸 대작으로 볼륨이 상당할 것이라 회사가 자부한 게임이었다.

    한데 그게 프롤로그에서 엔딩이 나 버렸으니 뒤집어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채팅창이 폭주하는 가운데 도진 파티의 시연이 끝났고 다급히 유애라와 도진 파티가 합석한 가운데 인터뷰가 진행되었다.

    -그래서, 일단 어케 된 거임? 조작 난이도 올리니까 갑자기 쎄지던데 조작 난이도 최대로 하면 버프라도 걸림?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었던, 도진의 캐릭터가 결코 줄일 수 없던 혈마와의 거리를 줄일 수 있었던 이유.

    가장 많이 나오고 있는 질문 중 하나에 유애라가 답했다.

    "먼저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맞아요. 버프는 아니고 조작 난이도가 올라갈수록 캐릭터가 세지도록 되어 있어요."

    "앞에 어떤 분께서 조작감에 관해 마우스 감도에 비유한 분이 계셨잖아요. 감도가 너무 높아서 도저히 컨트롤을 할 수 없으니 그 감도를 낮추는 걸 조작 난이도라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만약 그 감도에 적응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요? 더 적은 움직임으로 더 빠른 조작이 가능해지겠죠. 그러니까 캐릭터의 포텐셜을 조작 난이도를 높일수록 더 끌어낼 수 있는 거예요."

    "이게 다 도전 과제이면서 게임을 더 재밌게 즐기실 수 있도록 준비해 둔 시스템이죠."

    조작 난이도를 올릴수록 캐릭터가 더 강해지고 더 많을 걸 할 수 있게 된다.

    무림열전3의 플레이타임이 5000시간을 넘긴 폐인이 양산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

    일반인은 일반인 기준으로, 무림인은 또 무림인 기준으로 최고 수준에 이르면 그야말로 절대고수가 된 느낌으로 게임을 플레이 할 수 있었으니까.

    -저기, 김도진님은 그럼 그걸 알고 조작 난이도를 올리신 거였어요?

    이어지는 물음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조작 난이도를 내리는 건 캐릭터의 '성능'을 내리는 거더라구요. 처음엔 적응을 위해서 그걸 내려뒀었는데 혈마를 상대하려니까 내린 상태론 안 될 거 같아서 올린 거였어요."

    -ㅁㅊ;;

    -개쩌넼ㅋㅋㅋㅋ

    그렇게, 무림열전3 발표회는 성공리에 마무리되었다.

    말할 것도 없이 도진 덕분에 무림열전3 발표회에서의 영상은 폭발적인 조회수와 화제를 기록했고 초기 물량이 대번에 매진되고 추가 생산 때문에 어로스는 행복하지만 죽을 것처럼 바쁜 상황에 비명을 내질렀다.

    전생에서도 무림열전3는 잘 팔렸다.

    풀다이브 시스템이란 생소한, 그러나 가상현실에 한 발 더 나아간 게임으로 역사에 남을 것이란 평가를 받는 시스템을 채용했고 본사에 체험장 또한 마련했다.

    한 번 경험한 사람들과 영상으로 호기심을 느낀 게이머들은 바로 지갑을 열었고 그렇게 불길이 커지며 세계로 확장된 것이 무림열전3였으니까.

    이번 생에선 그것이 도진 버프로 인해 초기부터 확 타오르게 된 것이었다.

    당장 게임을 콘텐츠로 다루는 스트리머들부터가 너도나도 경쟁하듯 '무림열전3 프롤로그 챌린지'를 시작했으니 말이다.

    "유하! 안녕하세요, 여러분들. 오늘은 요즘 난리가 나고 있죠? 무림열전3의 프롤로그에서 바로 엔딩을 보는 도전을 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무림열전3는 스트리밍에도 특화된 시스템을 채용하고 있었으니 시청자가 해당 기술을 지원하는 VR 기기를 가지고 있을 경우 VR로 현장에서 시청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스트리머 또한 VR 내에서 채팅창을 확인하고 방송용으로 마련된 설정들을 이용할 수 있어 호평이었다.

    여러 이유로 인터넷 방송계에서 열풍이 불고 있는 무림열전3 프롤로그 챌린지에 컨트롤로 이름 높은 한 명의 스트리머가 도전, 방송을 시작했다.

    그는 완벽한 공략 영상을 추려 올리는 것만이 아니라 연습 과정 또한 시청자와 함께 하는 컨셉이었기에 미리 연습하지 않고 바로 무림열전3를 시작했다.

    "어…… 진짜 엄청나게 어렵네요."

    혁신적이지만 악명 높은, 예의 풀다이브 시스템에 그 또한 허우적거리기 바빴다.

    그러나 이미 각오하고 있던 부분이었기에 차근차근, 초보 단계부터 적응을 해 나갔다.

    시청자들 또한 재촉하지 않았으니 그의 컨셉이 이렇게 시행착오를 거쳐, 그러나 느리지 않게 적응하여 이내 고인물 같은 완벽한 컨트롤을 보여주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일주일.

    크런치 모드를 연상케 할 정도로 죽어라 무림열전3를 파던 그가 멍하니 중얼거렸다.

    "여러분들, 이거 안 되는데요……?"

    * * * *

    대한민국에 무림열전3 열풍이 불었다.

    도진의 플레이 영상이 포함된 발표회 영상 덕분에 한국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관심을 끌게 된 덕분에 어로스의 주가는 코인을 연상케 할 정도로 치솟았다.

    그런 어로스의 치솟는 주가를 보며 도진은 흐뭇하게 웃었고 곁에 있던 오성아가 말했다.

    "우리 문주님, 벼락 부자 됐네?"

    오성아의 말에 도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아니, 솔직히 저도 이 정도까지 이득 볼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되네요."

    "솔직히 처음엔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없지는 않았는데……. 사람들 말이 맞았나 봐. 앞으로는 나도 아침마다 도멘, 하고 기도할게."

    말뿐이 아니어서 오성아는 진짜로 두 손을 모으며 도멘, 하고 기도하는 시늉을 했다.

    그렇게 오성아가 숭배하는 도진이 한 건 다른 게 아니었다.

    '누나.'

    '응?'

    '우리 여유 자금 어로스 주식에 다 때려박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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