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9화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
지켜보던 이들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잠룡 김도진'이 스페이스x가 되는 모습은 상상하기 힘들다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이번에는 힘들지 않을까 생각하게 만든 것이 풀다이브 시스템의 조작이었다.
직접 체험해 본 사람들은 더더욱 그런 생각이 강했다.
"이게 그러니까, 마우스 감도를 말도 안 되는 고감도로 설정해 놓고 움직이는 느낌이란 말이죠."
구재성이 시청자들에게 설명했다.
"진짜 조금만 움직여도 화면 밖으로 나가 버릴 만큼 감도가 민감한데, 그게 포인터가 아니라 캐릭터가 되는 거예요. 상하좌우대각선이 아니라 3차원에서 그걸 조작해야 하는 거죠. 얼마나 어려운지 상상이 되시나요?"
-잘은 모르겠지만 점심 나가서 먹을 거 같은 수준이란 건 알겠음.
-존나 답답해서 내가 한 번 해보고 싶음 그냥 ㅋㅋㅋ
찰떡같은 구재성의 비유에 행사를 지켜보던 이들 다수가 감을 잡고 고개를 끄덕였다.
조작이 불가할 정도로 감도가 높은 상태의 '몸'을 컨트롤한다.
상상조차 하기 힘든 일이다.
-..그런데 잠룡은 저게 왜 됨?
-몰?루
…그런데 김도진은 그걸, 심지어 처음부터 해냈다.
"도진 님, 어떻게 하신 거예요?"
설명 선녀 모드로 함께 접속한 유애라가 물었다.
도진은 천천히, 마치 오래 병상에 누워 있던 사람이 감각을 되찾는 듯한 모양으로 움직이며 말했다.
"몸을 일으키는데 감각이 너무 다르더라구요. 그래서 신중하게 움직인 거죠."
-아.. 신중하게 움직이면 되는구나!
-리빙포인트. 음식이 싱거울 땐 소금을 넣으면 된다!
-에라이 ㅋㅋㅋㅋㅋ
"설정을 보니까 조작 감도 조절이 있네요. 음……. 저는 '절대고수' 수준으로 맞춰져 있네요."
도진은 가르쳐 주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설정에 찾아 들어가더니 조작 난이도를 확인했다.
조작 난이도는 일반인에서 다섯 단계, 그 위로 무림인을 기준으로 한 다섯 단계로 나뉘는데 그것은 이번 행사에서 일부러 무림인 기준 최고 단계인 '절대고수'로 설정되어 있었다.
때문에 테스터들이 스페이스x가 되어 화성에 갈 뻔 했던 것이다.
"네에……. 처음엔 그걸 낮춰서 초보 단계부터 적응해 나가시면 좋아요."
"네. 저도 조금 낮춰야겠네요."
그러면서 낮춘 것이 무림인 기준 초고수, 그러니까 80% 정도 수준이다.
이번 행사에 참가한, 일반인도 아니고 동일하게 '무림인'의 카테고리에 있는 사람들이 80%는 커녕 60%로도 제대로 움직이지조차 못했으니 도진이 하는 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 짐작해 볼 수 있었다.
-아니 아무리 잠룡이라도 이게 말이 되냐 ㅋㅋㅋㅋ
-허미 ㅋㅋ
지켜보던 이들이 경악하고 유애라마저 그저 눈을 동그랗게 뜰 뿐이다.
허나 도진에게는 이것이 완벽하게 '처음'은 아니었으니 심상세계 때문이다.
육체와 감각의 '차이'를 도진은 심상세계와 현실을 오가며 매일 겪고 있었다.
그 경험이 반영되어 이토록 빠르게 그 간극에 맞춰 움직일 수 있도록 해주었던 것이다.
"아으, 부끄럽네요."
그사이 스페이스x가 되어 날아갔던 우서진과 윤상미, 그리고 소담이 난이도를 조절하고 밖으로 나왔다.
셋은 일단 무림인 기준 초보, 첫 단계로 설정을 하고 조금은 삐걱삐걱하며 걸었다.
-그래, 저게 정상이지.
-무림인이니까 오히려 저게 정상인 거임;;
경지가 높을수록 감각이 민감하다.
그 말은 곧 감각이 어긋나면 더욱 거기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자신의 몸이 아닌데 감각마저 완전히 다른 상황에 맞춰서 '몸을 조작'하는 것이니 오히려 고수라 할 수 있는 소담과 상미, 우서진의 조작 난이도가 올라가는 것이다.
그래서.
"아침 수련 겸 대련입니다! 둘씩 짝을 지어 대련을 해보세요!"
"꺄아아아악!!"
-앗! 우서진이 반으로 갈라져 죽었다!
콰과과과광!
-앗! 집도 같이 반으로 갈라져 무너졌다!
…소담이 휘두른 검에서 뿜어져 나온 말도 안 되는 위력의 검기가 우서진을 반으로 가르고 집까지 폭삭 무너뜨리는 참사가 일어난 것이다.
-미친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게 진짜 머선 일이곸ㅋㅋㅋ
난이도를 낮추고 거기에 어느 정도 적응했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난 건, 튜토리얼 과정에서 잠겨 있던 시스템인 '내공'이 해금되었기 때문이었다.
띠링-!
[내공이 해금되었습니다. 이제 자유롭게 내공을 사용할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사용한 건 오직 캐릭터의 순수한 육체 능력이었다.
한데 거기에 겨우 적응하고 나니 산 넘어 산, 내공이 더해져 또 예상치 못했던 폭주가 일어난 것이다.
띠링-!
[개꿈을 꾸었습니다]
-그놈의 개꿈ㅋㅋㅋㅋ
"와, 많이 준비하셨네요."
소담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우서진에게 연신 미안, 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며 도진이 피식 웃었다.
이게 정식 튜토리얼은 아닐 것이다.
어디까지나 발표회이기에 인상을 남기고 웃음을 줄 수 있도록 세팅한 '발표회용 튜토리얼'일 터.
"에헤헤……."
도진의 말에 유애라는 정답이라는 듯 에헤헤 웃었다.
준비된 조크는 거기까지였기에 이후로는 정상적으로 튜토리얼이 진행됐다.
"여러분들은 지금 전설의 문파 천검문의 네 기둥(四柱)이라 불리는 절대고수의 캐릭터를 조작하고 계세요."
천검문은 무림열전 1과 2에서 주인공이 후계자로 있는 문파였다.
그 천검문의 최고 고수 네 명이 지금 도진 일행의 캐릭터가 된 것이다.
멀티 플레이를 지원하는 무림열전3에서 이 기둥은 유저수에 맞춰 최대 네 개가 된다.
튜토리얼에서 굳이 절대고수의 캐릭터를 플레이하게 해주는 건 무림열전3가 자랑하는 시스템을 튜토리얼과 함께 맛보여 주기 위해서였다.
"자, 이게 경공이에요!"
유애라의 안내에 따라 대련으로 어느 정도 조작에 익숙해지자 절벽을 타고 경공을 체험하게 되었다.
칼처럼 우뚝 솟은 산봉우리를 유애라와 시스템의 안내에 따라 경공을 사용하여 내려간다.
"타이밍에 맞춰서 내공을 뿜어내고, 그 내공을 밟고 하늘을 걷는 것이 허공답보(虛空踏步)예요!"
부착된 패치를 통해 '몸속을 휘도는 내공'의 느낌을 받는다.
그 내공을 의도하여 이끌고 발바닥으로 뿜어내는 '감각의 조작'에 성공하고 그것을 반복함으로써 플레이어는 전설의 경지 허공답보를 VR 게임에서나마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와... 개쩐다..
-나 이거 나오면 무조건 산다.
구름을 내려다 보는 절벽을 허공을 밟고 또 유영하여 내려오는 것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특별한 느낌을 받게 만들었다.
지켜보는 이들이 이 정도니 실제로 체감하는 건 과연 어느 정도일까.
그들은 빠져들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 플레이하는 도진 일행은 무림인으로서도 느낄 수 없었던 특별한 느낌에 절로 입가에 미소를 띠게 되었다.
한데 바로 그때.
콰쾅-!
구름 아래 멀리 위치한 천검문의 건물 사이에서 폭발과 함께 연기가 치솟았다.
그리고 컷신이 진행된다.
"무슨 일이지!"
"습격?!"
네 기둥이 크게 놀라고 천검문을 향해 단어 그대로 화살처럼 쏘아져 나갔다.
카앙-!
그리고 그들을 방해하기 위해 암기가 날아들더니 검붉은색 무복을 입고 입을 가린 자들이 나타났다.
"웬놈들이냐!"
"…죽여라."
띠링-!
[정체불명의 습격자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을 물리치고 천검문의 연무장으로 가야 합니다!]
컷신이 끝나고 캐릭터의 제어권이 돌아왔다.
그러나 실시간으로 진행되던 게임은 튜토리얼을 위해 턴제 방식의 게임처럼 바뀌어 있었다.
"기초 무공 두 가지를 알려드릴게요! 첫 번째는 허섬(虛閃)입니다!"
유애라의 안내와 함께 검붉은색 무복을 입은 적들이 각자 하나씩 도진쪽으로 검을 휘둘렀다.
그 검의 한 부분이 옅게 빛나고 있었다.
"무림열전에서는 그 어떤 공격이든 반드시 '허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허점은 실시간으로 바뀌기도 하고 크기도 하고 작기도 한데 이번에는 튜토리얼이니까 특별히 이렇게 알기 쉽도록 표시해 드렸습니다."
"허섬은 바로 그 허점을 찌르는 공격입니다. 한 번 직접 해보세요!"
유애라의 안내에 따라 도진이 적의 허점을 향해 검을 찔렀다.
챙!
"큭!"
상대의 검이 크게 튕겨나가고 빈틈이 훤히 드러났다.
동시에 검이 튕겨나간 적의 몸이 경직되었다.
"허섬의 판정에는 대실패, 실패, 성공, 대성공이 있어요. 성공하면 상대의 공격이 튕겨나가고 허점을 드러내고 대성공하면 추가로 경직 효과가 발생해요. 전투에 크게 유리하겠죠? 다만 실패하면 반대로 이쪽이 빈틈이 드러나고 대실패하면 반격을 당해 큰 피해를 입으니 신중하게 사용해 주세요!"
"그리고 이렇게 대성공을 하면 허섬과 연계되는 초식, 분광(分光)을 쓸 수 있어요!"
경직된 적의 몸 한곳이 빛난다.
아까와 마찬가지로 이곳을 노리라고 친절하게 안내해 주는 것이었고 도진이 안내에 따라 검을 휘두르자.
스칵-!
"컥!"
적이 양단되어 흩어졌다.
15세 게임이었기에 아까 우서진이 소담에 의해 반으로 갈라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잔혹한 연출이 아닌, 그래픽으로 나뉘어 흩어지는 연출이다.
"잘 하셨어요! 이것이 무림열전3의 기본 중 기본이자 아주 중요한 두 개의 초식인 허섬과 분광입니다. 뭐…… 까놓고 말하면 패링이랑 카운터예요."
-엌ㅋㅋㅋㅋㅋ
-않잌ㅋㅋ 일부러 유애라 지켜주려고 그 말 안하고 있었는데 먼저 해 버리넼ㅋㅋㅋㅋ
"좋은 시스템이긴 한데, 적과 나의 수준 차이에 따라선 빈틈이 보이지 않을수도 있고 대성공을 한다 해도 경직 시간이 아주 짧거나 반격이 불가능한 등의 정교한 시스템이니까 상황에 따라 잘 판단하고 활용해 주세요. 그럼, 이제 실시간으로 앞을 막고 있는 적들을 무찔러 주세요!"
유애라의 말이 끝나자 적들의 움직임이 실시간으로 돌아왔다.
찰나에 도진이 파악한 적들의 숫자는 서른.
단순히 생각해 네 명이서 상대하려면 두 명이 일곱, 두 명이 여덟을 상대해야 한다.
채채챙-!
그러나 도진과 소담, 상미와 우서진은 자연스럽게 서로의 뒤를 커버해 줄 수 있는 위치를 점하며 유기적으로 움직였다.
수준 높은 무림인답게 단순히 움직이는 게 아니라 무리(武理)에 따라 움직이는 것이다.
챙!
"……."
허나 그 움직임에는 평소엔 생각할 수 없었던 파탄이 조금씩, 그러나 계속 이어졌으니 역시나 캐릭터에 익숙지 않은 탓이다.
조작 난이도를 떠나 게임의 난이도부터가 네 사람에 맞춰 '무림인 난이도'로 설정되어 있다.
일반인과 무림인의 피지컬이 다른 만큼 둘은 구분되어 있었고 무림인에 맞춘 적들의 수준은 일반인으로선 하나하나가 말도 안 되는 컨트롤을 요구하는 보스 수준이었다.
그런 적들이 서른이나 포위망을 구성하고 때리는데 소담과 상미, 우서진은 아직 캐릭터의 세세한 조작이 힘들었으니 약간 고전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와, 무림인 난이도 진짜 미쳤네 ㅋㅋㅋ 저게 잡몹이냐?
-컨트롤 사기치는 장면만 모은 매드무비 갖다놔도 이 정돈 안 될 듯 ㅋㅋㅋ
-아니 스쿼드라고 심지어 잡몹 수를 다섯배로 늘려버리넼ㅋㅋ
채채채채채챙!!
짜고 쳐도 안 될, 1초에만 몇 번씩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현란한 장면이 이어진다.
여기서만 몇 번이고 죽은 사람들이 부지기수일 정도로 튜토리얼임에도 기본적인 난이도가 높았다.
사실 무림열전3는 그런 이가 박박 갈리는 살인적인 난이도로도 유명한 게임이었다.
이를 박박 갈며, 죽어 가며, 꾸역꾸역 반복하여 깨는 게 기본인 게임.
하지만 그렇게 '평범한' 모습을 도진 파티는 보여줘서는 안 됐다.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이 있었고, 도진 파티는 점점 캐릭터에 익숙해지면서 곧 그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챙-!
소담의 검이 그림처럼 움직여 허점을 찔렀다.
"큭!"
스걱-!
그리고 당연히 이어지는 결과처럼 찰나의 틈도 두지 않고 소담의 검이 한 명의 적을 분광으로 갈랐다.
-와, 저게 되네;
-여윽시 비봉이다.
삐걱이던 부분이 작품을 깎아내는 것처럼 점점 사라지고 더 유연해진다.
조작 난이도를 내리고 내공을 더한 움직임에 급속도로 도진 파티는 적응하고 있는 것이다.
"컥!"
"크헉!"
허섬에 이은 분광.
튜토리얼에서 배운 초식을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소담과 상미, 그리고 우서진의 모습은 벌써 고인물이 된 것처럼 보였다.
-와.. 후기지수쯤 되니까 역시 재능충 그 자체구나;;
-개쩐다 ㅋㅋㅋ
지켜보던 이들이 감탄했다.
그리고 그들은 다음 순간 어어, 하며 허공으로 시선을 향했으니 도진이 공중으로 치솟았기 때문이다.
쿠르릉-!
유형화된 내공이 번개처럼 대기를 울리며 도진을 휘감는다.
그것은 점점 더 크기를 불리더니 이윽고 거대한 용의 형상이 되어 포효했다.
쿠오오오오오-!!
-저, 저게 뭐임?
-????;;
시청자들이 놀라는 사이 기로 이루어진 거대한 용이 아래로 내리꽂혔고.
꽈아아아아아아앙-!!
남아 있던 적들을 모조리 분쇄해 버렸다.
"……."
유애라가 침묵했고 진행자 또한 '어…….'하는 얼굴로 진행팀에게 시선을 향했다.
그 시선을 받은 진행팀의 팀장이 고개를 휘휘 저었다.
그 몸짓에 담긴 시선은 명백했다.
'아니, 저런 거 안 가르쳐줬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