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333화 (333/741)

332화

"……."

"……."

긴장으로 인한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것은 도화선에 불을 붙이는, 아니 차라리 폭탄을 그대로 불에 던져 넣어 버리는 듯한 행동이었다.

4강 이외의 공방 소속 사람들이 존앤집스를 지적하지 않았던 것과는 조금 다른 이유로 4강의 나머지 세 공방은 존앤집스의 불편한 행동을 지적하지 않았으니, 그 이유는 다름 아닌 그들의 지적이 '싸움'으로 번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불편한 일로 인한 감정이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눈치를 보며' 제 나름대로의 결속을 다지던 존앤집스를 건드리면 바로 싸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모든 걸 떠나 이번 박람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곳이 존앤집스인데 그런 존앤집스와 혈맹 관계가 된 명성공방, 덴젤 공방 사이에 싸움이 벌어져서야 실이 너무 큰 것이다.

존 스미스가 나서 일을 벌였는데 결과는 엉뚱하게도 명성공방과 덴젤 공방의 '혈맹'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안토니오는 물론이요 후기지수임에도 명성공방을 대표하는 인물처럼 여겨지는 김도진은 결코 존앤집스를 좋게 볼 리가 없게 되었다.

위기감을 느낀 존앤집스는 내부적으로 결속을 다지고 그로 인한 일의 책임을 빌리 플로이드에 전가하며 벌어지는 게 이런 '지워지지 않는 불편한 얼룩' 같은 상황이었는데.

바로 그것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김도진'이 지적해 버린 것이다.

에둘러서도 아니고 아예 대놓고.

"…무슨 뜻입니까, 김도진."

후기지수나 후계자도 아니고 존앤집스 공방의 직원이 나서서 물었다.

미성년자 사이의 다툼이 아니라 회사 차원에서의 이야기가 될 거라는 뜻이 담겨 있는 대응이다.

물론 그런 것 따위로 물러설 거라면 나서지도 않았을 도진이었다.

"바보도 아니고 그걸 몰라서 묻는 건가요?"

"……."

눈가가 꿈틀거리는 걸 직원은 감추지 못했다.

도진은 거침없이 말을 이어 나갔다.

"애나 어른이나 할 거 없이 보기 추하네요. 애들은 중요한 메인 협동 무대 연습 중에 고의로 트롤짓이나 하고 있고 어른들은 그걸 말리거나 지적하기는 커녕 방관하고 있으니 보고 있기가 참 힘들고 불편하네요."

"무슨 말을……"

"그래도 생각이 있으면 뒤에서 따로 지적을 하거나 시정을 할 줄 알았는데 개최가 코앞으로 다가온 지금까지 이러고 있으니 이 자리에 있는 존앤집스의 사람들이 과연 제대로 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지 의심이 될 지경이네요."

이건 싸우자고 시비를 거는 게 아니라 아예 어퍼컷을 갈겨댄 모양새다.

"무례하구먼!"

안 그래도 마찬가지로 유감이 있던 존 스미스가 대번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소리쳤다.

제아무리 도진이 후기지수의 선에서 담을 수 없는 무림인이라도.

명성공방과 덴젤 공방을 함께 업은 무시무시한 상징성을 갖게 되었더라도.

그 역시 세계적인 명성과 규모를 자랑하는 존앤집스를 상징하는 명장으로서 분개하여 거침없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뭐?! 무례? 이 새끼가!"

꽝!!

그런 존 스미스의 분개가 마치 장난처럼 보이게 만드는 거친 목소리와 폭음이 터져 나왔으니.

"어, 어, 우 명장님!"

오히려 같은 소속의 직원들이 당황해 말리게 만드는 급발진을 한 우벽진이었다.

"아니, 놔 봐! 저 새끼가 지금 우리 도진이한테 소리치잖아!"

말리는 직원들을 주렁주렁 매단 채 그는 자신을 상징하는 무기인 통짜 쇠로 된 망치, 맹호추(猛虎鎚)를 든 채 쿵쿵거리며 존 스미스와의 거리를 좁혀 나갔다.

'어, 어어?'

대가리를 깨 버리겠다는 기세로 망치를 든 채 다가오는 우벽진의 기세에 존 스미스가 저도 모르게 엉덩이를 뒤로 빼고 말았다.

지켜보던 모든 사람들이 거침이 없으며 난폭한 우벽진의 돌발 행동에 당황한 얼굴이다.

스윽-

그런데 거기에 안토니오 또한 어느새 자신의 바스타드 소드를 든 채 우벽진의 옆에 서니 존 스미스는 지금 체면을 차릴 게 아니라 도주해야 하나를 진지하게 고민해야만 했다.

"존앤집스의 행동이 상식적이지 않다는 데에는 저 역시 동의하는 바입니다."

…그런 존 스미스의 고민을 해결해 준 건 아이러니하게도 대화를 위해 나선 우서연이었다.

우벽진이 으르렁거리며 존 스미스를 노려보고 안토니오 또한 허튼소리하면 반으로 갈라 버리겠다는 듯 바스타드 소드를 쥐고 있는 가운데 우서연이 논리정연하게 말했다.

"존앤집스는 명백하게 무대의 연습 분위기를 해치는 행동을, 그것도 고의적으로 해 왔습니다. 그동안은 존앤집스를 존중하여 그들 스스로 시정할 수 있도록 인내하며 기다려 왔습니다만 더 이상은 참기 힘든 상황이라 판단하여 김도진 후기지수가 의견을 낸 것입니다."

"그, 그것은……."

이 시점에서, 그래도 세계 최대 규모의 공방에 소속되어 중요한 행사에 파견될 만큼의 능력이 있던 존앤집스의 직원들은 일이 잘못되어도 아주 크게 잘못되었음을 파악했다.

심지어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는 것까지도.

지적을 받았을 때 직원들이 나서서는 안 됐다.

차라리 처참하게 깨지더라도 후기지수들의 선에서 봉합을 해야만 했다.

그랬으면 후기지수들 사이의 알력이 되었을 텐데 뀐 놈이 성낸다고 괜히 직원이 나섰다가 '공식적인 문제'로 비화돼 버린 것이다.

그들이 방패로 삼고 있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최악의 방향으로.

"우리 명성공방은 이번 일에 관해 정식으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고 건의하는 바입니다."

우서연은 이미 늦었다는 듯 확인사살을 해 버렸다.

"우리 덴젤 공방도 같은 의견이다."

처음부터 김도진이 아니라 공방 소속의 사람이 나섰다면 하지 않았을 실수.

그러나 김도진이 나서서 어그로를 제대로 끌어 버린 탓에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다.

존 스미스를 포함한 존앤집스 관계자들의 얼굴이 새하얘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봐주는 사람은 없었다.

"알겠습니다. 정식으로 이 안건에 관한 회의를 열도록 하겠습니다."

* * * *

운영위원회의 결정에 따라 정식으로 회의가 열렸고 존앤집스는 큰 손해를 입게 되었다.

본래 이번 세계 장인 박람회에서 가장 큰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것이 존앤집스였다.

공방을 대표하는 명장이 두 명 모두 참석했고 애초에 규모가 가장 큰 공방이었기에 칼을 갈고 나온 그들의 후원금을 포함한 영향력이 이번 박람회에서 최고인 게 당연했던 것이다.

한데 이번 회의로 그 영향력을 대폭 잃게 되었다.

돈은 돈대로 쓰고 홍보 또한 엄청나게 했는데 정작 박람회에서 전문 용어로 '쩌리' 신세가 되어 버린 꼴이다.

회의 결과 존앤집스 공방은 메인 무대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배제되고 말았다.

항상 말하던 '비중' 면에서는 변함이 없었으나 명백하게 중심에서 밀려나게 됐고 거기에 항의할 수도 없었다.

명성공방과 덴젤 공방이 눈에 불을 켜고 물어뜯는데 쿠사나기 공방은 방관하니 뭘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미국 본토에서는 이번 박람회에서 존앤집스가 칼을 갈고 나갔으니 뭔가 확실히 보여 줄 거라는 기대를 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들러리가 된 무대가 퍼져 나가면 어찌 될지…….

명품은 명성이 훼손되는 순간 그 가치를 잃는다.

존 스미스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 것 같았다.

도진은 그런 존앤집스와 존 스미스의 처지에 전혀 동정심을 가지지 않았다.

존 스미스의 추악한 수작을 꿰뚫어 본 도진이다.

결과적으로 그것을 역이용하여 좋은 결과를 이끌어 냈기에 오히려 이 정도에서 끝낸 것이지 그렇지 못했다면 존 스미스는 도진의 데스 노트에 이름을 올려야만 했을 것이다.

도진의 도기(道器)로서의 자비는 악인에게 결코 향하지 않는다.

그렇게 크게 데인 존앤집스는 당연히 이후로 일절 수작을 부리지 않았다.

의기소침한 채로 연습에 철저하게 임했고 준비는 착착 진행되어.

성공리에 세계 장인 박람회가 개최되었다.

* * * *

한국에서 열린 세계 장인 박람회는 여러모로 기념비적인 행사가 되었다.

냉정하게 말해 '그들만의 리그'였던 세계 장인 박람회가 대중에게 다가간 첫 번째 박람회가 되었기 때문이다.

무구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관계자들만이 참석한 가운데 진행되던 행사.

거기에 처음으로 대중의 관심이 집중되었고 그것은 운영위원회가 최초로 '온라인 생중계'를 시도하게 만들었다.

결과는 대성공으로, 업로드된 공식 영상의 조회수가 이틀만에 백만을 넘어섰다.

가장 주목받는 메인 무대가 아니었음에도 그 정도였으니 대중의 관심을 짐작할 만한 지표였다.

뜨거운 관심에 행사장 규모를 늘려 최초로 티켓의 2차 판매를 결정하고 그것이 매진되었을 때 이상으로 운영위원회는 기뻐 두 손을 번쩍 들었다.

-흠. 생각보다 볼 만은 했던듯.

-ㅇㅇ 근데 오래 보기엔 좀 밋밋하긴 하네 ㅋㅋ

물론 모든 것이 첫술에 배부를 순 없어 혹평도 적지 않았다.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것을 목적으로 찾는 사람들만을 대해왔던 그들이 흥미 본위로 찾아온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건 무리였던 것이다.

허나 이 부분은 개선해 나가면 될 일이었고 '비장의 무기'가 있는 운영위원회는 움츠러들지 않았으니 바로 오늘, 토요일 후기지수들로 꾸며지는 메인 무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메인 무대에 출연하는 아들을 보기 위해.

김서우와 서정원은 김유진, 김호진 남매와 함께 한껏 멋을 냈다.

올리버 웨일스 후작에게 선물받은 맞춤 양복을 깔끔하게 차려입었다.

그것은 유진이와 호진이도 마찬가지였으니 도진이 정식으로 웨일스 후작이 운영하는 맞춤 양복 브랜드에서 구매한 것이다.

그렇게 누구에게 견주어도 부족하지 않게 차려입은 서정원은 그러나 걱정을 다 지울 수 없었으니 내가 거기에 가도 괜찮을까 하는 걱정은 아니었다.

세상 누구도 부럽지 않을 아들이 무대에 서는 자리이니 그런 걱정은 전혀 없었다.

누구보다 당당하게 무대를 관람할 자신이 있었다.

걱정은 오히려 그런 자리이기에 혹여 실수를 해서 아들의 명성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이번 박람회 개최의 한 축이었던 올리버 웨일스 후작네 가족이 함께 가니 그나마 어느 정도 안심이 된다.

조언을 구해서 한 점의 흠도 잡히지 않아야겠다 다짐하며 약속 시간에 맞춰 서정원이 나가려 했을 때였다.

띵- 동-

웨일스 후작가가 아닌 다른 방문자가 벨을 눌렀으니 다름 아닌 도진이 문주로 있는 잠룡문의 식구들이었다.

"안녕하세요, 어머님, 아버님."

"안녕하세요."

"응, 어서와요."

미리 이야기가 되어 있었기에 서정원은 물론이요 도진네 식구들 모두가 살갑게 오성아와 소여은, 그리고 서소담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문주의 가족을 호위해야 한다는 등의 공식적인 이야기도 있었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소담은 도진의 부모님을 모시고 가야한다는 의무(?)를 내심 지고 있었으니 함께 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리고 이번 기회에 뭘 해야 할진 모르겠지만 어쨌든 가는 길에 도진의 부모님에게 단독으로 눈도장을 좀 찍고 싶다는 생각까지.

한데, 그렇게 의무와 사심이 섞인 일에 예상 외의 사람들이 끼어들었다.

띵- 동-

"어? 서연이 누나다."

"안녕하세요, 아버님, 어머님."

옆집 이웃인 우벽진 일가는 행사장에 함께 가지 못하게 되었다.

당연한 일로, 이번 박람회의 메인 공방인 명성공방의 핵심 인물들이었으니 말이다.

한데 그 명성공방 오너 일가의 한 명인 우서연이 등장한 것이었다.

"우리 명성공방의 VVIP인 도진이의 가족분들에게 잘 보여야 하잖아요?"

그렇게 말하며 우서연은 리무진을 대절해 왔다.

'…….'

예상 외의 방해였으나 소담은 이해하기로 했다.

도진의 부모님을 위해 리무진을 대절하고 모시겠다는 게 거절할 수도 없는 일이고 우서연은 '경쟁자' 포지션은 아니었으니까.

한데.

띵- 동-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어머니. 도진이에게 신세 많이 진 유지은이라고 해요."

3학년의 유지은이 정의검가 사람들과 함께 찾아왔다.

"……."

소담이 시선을 향하니 유지은은 완벽한 미소로 답한다.

"아, 이야기는 들었어요."

"도진이에게 초대장을 받았는데, 이 기회에 인사도 드릴 겸 함께 가면 어떨까 해서 찾아왔어요. 혹시 폐가 될까요?"

"아뇨, 그럴리가요. 저희야 좋죠."

도진의 선배라며 찾아온 사람을 문전박대 할 수 있을리가.

심지어 그것도 보통 사람과 세력이 아니니 부모님 입장에서는 오히려 환영이다.

띵- 동-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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