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330화 (330/741)
  • 329화

    "안녕하세요. 도진 스승님의 제자, 클로에 덴젤입니다. 잘 부탁합니다."

    클로에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인사하는 건 숭무고 1학년에 편입하며 동기와 선배가 된 집행부의 사람들이다.

    "어머, 나도 모르던 이복 동생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야."

    "우리 호적에 이름을 올렸으니까 앞으로 잘 대해주세요, 선배."

    "호적이라니. 충격적인 어감이네."

    언제나처럼 도진과 나이든(?) 농담을 주고받는 한유아는 과연 클로에와 이미지가 겹치는 부분이 있다.

    동양과 서양의 혼혈로 마력적인 미모를 자랑하는 한유아는 전통적이면서 동시에 이국적인 신비한 매력의 구미호를 연상케 한다.

    반면 클로에 덴젤은 '평범한 시골 소녀'라면서 눈이 번쩍 뜨이는 예쁜 소녀에게 복장만 시골 농장 복장을 입힌 듯한, 설명하기 미묘하면서도 잔잔한 두근거림을 느끼게 하는 이미지다.

    하지만 두 사람 다 예쁜 금발에 깊은 푸른 눈동자라는 공통점이 있으니 강한 연관성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어쩐지 무슨 이벤트만 있다 하면 새 멤버를 데려오는구나, 도진이는."

    "그러게. 저 정도면 진짜 무공이 페로몬이라는 소문이 사실일지도 모르겠어."

    …도진의 동갑내기 커플은 섭음술로 그런 소리를 중얼거린다.

    섭음술이다 보니 도진은 애써 그것이 들리지 않는 척을 했다.

    흘긋.

    끄덕.

    끄덕.

    1학년의 상미, 2학년의 소담, 3학년의 유지은은 무언지 모를, 그러나 많은 뜻이 담긴 시선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혹시 텃세를 부리면 어쩌나 했는데 며칠 두고 보니 오히려 클로에가 그 세 사람 사이에 녹아들어선 똑같이 시선을 주고받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도진은 모를 무언가가 네 사람을 대번에 이어 준 모양이었다.

    그렇게 집행부원은 아니지만 훌륭히 집행부에 녹아든 클로에는, 이어서 도진네 식구와도 금방 친밀한 관계를 형성했다.

    "안녕하세요. 스승님의 것이 된? 인생을 저당잡힌? 클로에 덴젤입니다."

    "…아니야, 클로에. 그건 부정적인 단어야."

    "그런가요? 한국어 아직 어려워서 죄송합니다, 스승님."

    "호호호."

    아버지는 물론이요 여유가 생겨 저녁을 함께 하게 된 이은지까지 모두가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서 클로에 덴젤은 그렇게 자기소개를 하며 제법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번에 제 제자가 된 클로에 덴젤이에요. 아직 한국어가 서투니까 이해해 주세요."

    "이해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다시 꾸벅 고개를 숙이는 클로에를 부모님은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색시도 아니고 제자를 데려오고…… 역시 우리 아들은 뭐가 달라도 다르네."

    "아하하."

    서정원은 이제 제법 덤덤하게 상황을 즐기는 모습을 보여준다.

    무얼 생각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아들에게 이제는 적응해 버린 것이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프랑스의 공주님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런 예쁜 소녀의 인생을 저당잡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들이니까, 라는 생각으로 이해하고 만다.

    "나 책에서 봤는데 저게 다 업보라고 했어."

    "그게 무슨 소리야?"

    "잘 모르겠지만 형아 보고 있으면 알 것도 같은 그런 거."

    동생들은 쬐그만 것들이 벌써부터 그런 소리를 하고 있었다.

    "김치, 맛있어요. 된장도, 맛있어요."

    "어…… 메뉴 중에 된장은 없는데."

    "한국에서는 이렇게 말하면 부모님들이 좋아할 거라고, 했어요."

    "아."

    그 유명한 K-입국심사(?)를 어디선가 본 모양이었다.

    "오호호."

    어쨌든 뭐 그게 효과가 있었던지 클로에를 도진의 부모님들은 꽤 흡족하게 봐 주었고 동생들도 장남의 제자라고 하니 호감을 가지고 대해 주었다.

    그리하여 제법 한국에 잘 녹아든 클로에는 방과 후 도진에게 본격적으로 수련을 받게 되었다.

    "너도 알다시피…… 지금까지의 너는 운이 좋았었어."

    "네, 스승님."

    마주 앉아 눈을 마주한 클로에가 도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 클로에는 정말로 운이 좋았다.

    "보통은 그렇게 억지로 수련하다가 큰일이 나는 결말로 끝나니까."

    내공 거부 체질임에도 불구하고 내공을 익히고 그것을 불려나가면, 육체는 그 영향으로 '고장'이 난다.

    그 고장에 의한 현상 중 하나가 '제어되지 않는 비정상 세포'이니 현대 의학으로도 여전히 정복되지 않은 무시무시한 '암'에 비견되는 것이다.

    육체의 시스템이 고장나고 그로 인하여 사망에 이를 수도 있으니 내공 거부 체질임이 판명되면 보통은 내공을 포기하는 게 정상이다.

    재능이 있어도 성공할 확률이 희박한데 심지어 목숨까지 걸고 지옥 같은 고통을 감수하여 익혀 나갈 사람은 없었으니 이 분야에 관해선 정보도 없다시피한 상황이다.

    하지만 클로에는 그러지 않았고 겉으로 보기엔 지독한 고통과 외상을 제외하면 몸이 '정상적으로' 작동했으니 계속 무공을 익혔다.

    정말, 무시무시한 정신력과 우직함이다.

    그리고 동시에 말도 안 되는 일이기도 했다.

    그걸 계속한 클로에나 지켜본 안토니오나 말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계속되었을 만큼, 두 사람 사이에는 클로에가 다 말하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와 감정이 있었을 것이다.

    어찌되었든.

    "결코 해서는 안 될, 솔직히 어리석기 짝이 없는 일이었지만……."

    기적적으로.

    "너의 그런 우직함이 천운을 불러왔다고 해야할 일이 일어났어."

    내공 거부 체질에 의한 '변이'는 일반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일어나지 않는다.

    과거 일반적으로 형질 변화가 좋은 뜻으로 쓰이지 않았듯, 굳이 고장이라는 단어를 쓸 만큼 내공 거부 체질을 가진 사람들이 내공을 가지게 되었을 때 나타나는 현상들은 모두 긍정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클로에처럼 몸이 내부에서부터 터지는 등의 현상과 그로 인한 견딜 수 없는 고통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클로에는 그런 고통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무공을 익히고 내공을 키웠다.

    보통은 그러다 죽음에 이를 만큼의 고장이 났어야 할 일.

    그러나 그녀는, 그 우직함과 익힌 무공의 특징으로 인해 육체가 다른 쪽으로 '변화'했다.

    "니가 익힌 무공은 육체를 활성화하고 치유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지."

    "네."

    클로에가 익힌 무공은 육체를 강화하고 동시에 치유력을 높이는 효과가 있었다.

    그것은 클로에가 익힌 무공이 가해지는 충격을 견디고 동시에 흡수하여 상대에게 되돌려 주는 것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충격을 견디고 흡수하여 되돌려 주기 위해선 그것이 가능한 육체가 필요했으니 내공 또한 그런 효과를 가져야 했던 것이다.

    벽태웅이 익힌 무공이 육체를 타고난 사람을 필요로 했다면 클로에가 익힌 무공은 수련을 통하여 무공이 원하는 대로 갖추어 나가는 식이다.

    바로 그 무공이 원하는 대로 육체를 갖추어 나가는, '변화시키는' 것이 기적의 기반이 되었다.

    "계속해서 자극받은, 그러니까 다치고 상처입은 육체가 치유되는 과정에서 니 몸은 바뀌어 나간 거야."

    본래는 내공을 거부하기만 하던 몸이, 계속해서 치유되는 과정에서 독이어야 할 내공에 조금씩이지만 적응을 하는 형태로 변화되었다는 거다.

    "그게, 원래는 공존할 수 없었을 내공이 공존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균형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 주었어."

    운칠기삼이라고 해야 할까.

    본래는 자살행위라 해야 할 일을,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계속함으로써 기적이 작용하여 클로에를 지금의 모습으로 살 수 있도록 해 주었다.

    "하지만 이대로 계속가면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어."

    "네."

    자신의 몸이기에 클로에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 '균형'은 아슬아슬한 것으로 내공이 더 불어나면 결국 무너질 거라는 것을.

    육체의 적응보다 내공의 증가가 더 빨랐으니까.

    하물며 계속해서 그 변화가 '긍정적'이라는 보장조차 없다.

    회복 과정에서의 변화가 긍정적이 아닌 부정적이 되는 순간,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파멸이 된다.

    굳이 운칠기삼, 운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말하는 건 그런 이유다.

    결국 이대로 가면 어느 쪽이든 파멸뿐이며 안토니오 또한 그것을 알았기에 그런 무리수를 두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해결법은 이거야. 체질을 원하는 방향으로 개선하고 그 속도를 높이는 것."

    내공 거부 체질을 완전히 개선하는데 그 속도를 내공의 증가보다 빠르게 하는 것.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바로.

    "불사마공(不死磨功). 이제부터 니가 익혀야 할 신공(神功)이야."

    "불사마공……."

    "응. 이건 내가 이은 무맥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이 남긴 아주 의미있는 무공이야."

    천마신교의 초기.

    천마신교를 떠받치는 기둥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인물이 있었으니 세간에 '불사마(不死魔)'라 불리던 절대고수였다.

    그는 그 시대에 클로에와 같은 내공 거부 체질을 타고났으며 억울한 누명으로 멸문지화를 당한 명문가의 유일한 생존자였다.

    그런 처절한 불행에 난자당한 그는, 그것에 불만이 있음을 세상에 소리치고 바로잡기 위해 목숨을 걸었고 이내 탄생한 것이 불사마공인 것이다.

    "그 사람이 목숨을 걸고 자신의 몸으로 만들어낸 신공이야."

    불사마공은 극단적으로 말해 몸을 부수고 새로 만드는 무공이다.

    그렇기에 마(磨)공.

    그리고 육체의 치유력을 극단까지 높이기에 '불사'란 이름이 붙었으며 그렇게 치유되는, 다르게 말해 '교체되는' 육체가 원하는 방향의 특성을 띠도록 의도했다.

    "그러니까 내공 거부 체질을 띠는 몸을 오히려 내공 친화적인 특성을 띠게 바꿔 나가는 게 불사마공인 거야."

    다만 내공 거부 체질이라고 해서 다 익힐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내공 거부 체질이되 불사마공을 익힐 수 있을 만큼의 내공을 갖추고, 그 내공을 불사마공의 가르침에 따라 운용할 수 있는 경지에 올라야만 했다.

    …보통은 그 경지에 오르기 전에 피를 토하고 죽어 버리니 도진이 알고 있는 이 '비술'은 모두를 구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를 도진은 이미 며칠 전 기자회견을 통해 밝혔다.

    예상대로 이야기가 퍼져 나가 소음이 생겼기에 아예 다 터놓고 이야기한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끝내지 않았다.

    "…이건 지금의 제가 드릴 수 있는 대답이고, 미래에는 좀 다릅니다."

    "미래라고 하시면?"

    "지금은 제가 이은 무맥이 어떤 것인지, 제가 누구인지조차 밝힐 자격을 얻지 못했지만 그리 멀지 않은 때에 저는 그 자격을 획득할 거거든요."

    "……."

    "그때가 되면 내공 거부 체질을 개선할 수 있는 부분만 따로 떼어 모두에게 공개하겠습니다. 제가 자격을 획득하면 그게 가능해지니까요. 아, 공짜로는 아니고 특허 등록을 해서요."

    "그건 상업적 이득을 취하겠다는 뜻이 아닙니까……?"

    "네. 그냥 풀면 그걸로 이득을 취하는 개발을 해내는 곳들이 생길 테니 그 이득 일부를 제가 받아 환원할 수 있는 만큼은 환원하려구요. 다만 오해하시면 안 되는 게, 그 개발을 통해 이득을 취하는 분들이 나쁘다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상상도 못할 자본과 인력을 투자하여 결과를 냈는데 그걸 공짜로 내놓으라는 게 나쁜 거잖아요?"

    "연구 자체는 제한없이 하실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할 겁니다. 지금이야 모두를 고칠 수 없고 그나마도 극히 제한적이지만 연구를 진행할 수만 있다면 언젠가는 답을 찾을 수 있을 테니까요. 인류는 언제나 그래왔잖아요?"

    "너무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니까 기대해 주세요."

    그런 식으로 세계에 작지만 분명한 인상을 남긴 도진은 지금, 그래도 구할 수 있게 된 눈앞의 소녀가 등을 돌려 앉도록 했다.

    지하 연무실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클로에는 등이 드러나는 특수 제작된 가운을 걸치고 있을 뿐 안에 아무것도 입지 않았다.

    곧 온몸에 상처가 나고 피가 흐를 것이기 때문에.

    스으-

    도진의 손이 새하얀, 그래서 더욱 선명하게 남은 상처가 도드라지는 클로에의 등에 닿았다.

    "…시작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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