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7화
"네게 한 수를 전수하려 한다."
그것은, 도진이 두 스승의 예상을 완전히 뛰어넘는 속도로 성장함에 따라 심과 체에 이어 기(技)에도 시간을 할애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장호가 한 말이었다.
"한 수라고 하시면……?"
그동안 도진은 장호에게 무공보다는 잡기(雜技), 그러니까 비하의 의미가 아니라 단어 그대로의 '여러가지 기술'을 더 많이 배웠다.
도진의 체술의 근간이 되는 무흔잠영 이상으로 '사람을 보는 법' 등의 전반적인 지식과 기술에 대한 배움이 더 많았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번에 말하는 '한 수'는 아무래도 그 느낌이 완전히 달라 꽤 무거웠으니 그 느낌은 틀리지 않은 것이었다.
"살수(殺手)가 살행(殺行)에 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초수(初手)이다."
대상을 살해함에 있어 그 무엇보다 가장 처음의 한 수가 중요하다는 말로, 그것은 진리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말이었다.
가장 처음 행하는 한 수.
그것이 가장 치명적이어야만 하는 것은 암살 대상이 가장 방심하고 가장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 바로 그 첫 수가 가해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 말은 곧.
"이것이 바로 사신(死神)으로서의 내 초수(初手)이니라."
이번에 장호가 전수하는 것이 사신으로서 장호의 '가장 중요한 한 수'라는 뜻이었다.
…….
그렇기에 그것은 소리가 없었으며 웅장하지도 않았고 화려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하늘마저 꿰뚫는 절대적인 한 수였다.
장호의 한 수를 볼 수도 없었고 느낄 수도 없었다.
하지만 장호의 시선을 따라간 그곳에는, 아득한 하늘 위 구름에는 '결코 메워지지 않을 구멍'이 뚫려 있었으니.
"초살(初煞)이라 한다.
사신이 다녀갔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흔적.
무림의 전설로 남았던 사신의 초수(初手)였다.
* * * *
그날부로 도진은 장호의 초수를 익히기 위해 매진하였고 유의미한 성과를 얻을 수 있었다.
"아직 많이 멀었지만, 그래도 어디 가서 나의 초수를 배웠다고 명함을 내밀 정도는 되는구나."
"감사합니다, 장 스승님."
처음에는 심상세계에서만 구사할 수 있었다.
그만큼 사신의 초수는 말도 안 되는 폭발적인 일점집중의 절초였다.
하지만 꾸준히 계속되는, 한계를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가는 도진이었기에 가까스로 현실에서 쓸 수 있는 영역에 도달했고 그것이 안토니오와의 한 수 승부에서 승리를 가져다 주었다.
"살수의 초수는 몇 단계 위의 고수도 단 한 번, 암살할 수 있는 영역에 이르러야만 한다."
장호는 초살을 전수하며 그렇게 가르쳤고 그에 따르면 도진은 경계를 넘지 못했으나 경계를 넘은 고수인 안토니오를 꿰뚫을 수 있어야 했다.
이 현대에서는, 이론적으로는 물론이요 실제로도 경계를 넘지 못한 고수는 경계를 넘은 고수를 이길 수 없었다.
온갖 첨단 무기와 아득한 스케일의 무대를 마련하고 시나리오대로 경계를 넘은 고수를 몰아넣는 정도의 일을 벌이지 않고서는 말이다.
장호의 초살은, '그 정도의 일'을 단 한 수에 집중하여 폭발시켜야 했다.
그것은 비유하자면 '총(銃)'이었다.
육체는 물론이요 내부의 혈도마저 총으로서 기능하여 초살이라는 총알을 격발하는 것이다.
심지어 여기에 본래는 총알 궤도의 정확성을 위해 새기는 강선의 역할을 하는 혈도에 '회전에 의한 위력 증폭'의 역할까지 하게 만든다.
무협식으로 하면 발경의 묘리를 더하는 것이다.
폭발에 의한 어마어마한 위력의 격발. 여기에 육체의 내부와 외부, 내공까지를 온전히 활용하여 가해지는 회전력.
상상도 못할 무시무시한 부담이 가해지는 초식으로 차라리 '두 번째 수'를 전혀 상정하지 않았다고 해야 할, 말 그대로 일격필살의 한 수였다.
그리고 그랬기에 도진에게는 최선의 한 수였다.
경계를 넘지 못한 무인으로서 경계를 넘은 무인에게 단 한 수의 일격필살로 승부한다.
모든 것을 담아, 그러고도 한 발 더 나아가 격발한 초살은 경계를 넘은 무인의 전력은 아니나 진심이었던 한 수를 영혼으로 깎아낸 작품마저 뚫어내고 그 목에까지 닿았다.
그럼으로써 도진은 사신의 한 수를 훌륭히 현대에 초현(初顯)한 것이다.
믿을 수 없는 현실에 경악으로 뒤덮인 현장에서 도진과 안토니오만이 묵묵히 자신들의 무기와 손을 회수했다.
분명히 결정되어 나타난 현실을 인정해야만 하는 순간.
"그게 무슨 말입니까, 대표!"
바로 그때 안토니오의 선언이 완전히 흩어지기도 전에 분위기를 찢듯 소리 높이는 자가 있었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고 거기에는 덴젤 공방의 고위직으로 보이는 사람이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안토니오의 시선이 그에게로 향하자 다시 한 번 격앙된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대표! 당신의 그 독단적인 판단으로 인해 덴젤 공방에 종사하는 모든 이들의 삶이 박탈될 수 있다는 걸 자각하고 있습니까!"
"……."
갑작스런 난입이었으나 그 말대로였다.
덴젤 공방의 대표는 안토니오 덴젤이며 동시에 공방을 대표하는 명장 또한 안토니오 덴젤이다.
그런 그가 이름과 명예를 내놓겠다는 건 곧 덴젤 공방의 공중분해를 뜻하는 것이었다.
덴젤 공방에 그를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그 여파는, 안토니오 덴젤의 독단으로 인한 결과로는 너무나 거대한 불행이다.
"…그렇군. 그래서는 안 될 일이지."
'……어?'
'뭐, 뭐야?'
허나 그렇다 해도 너무나 간단히 긍정하는 안토니오의 모습에 지켜보던 사람들은 앞서 대결의 결과조차 살짝 퇴색될 정도로 당황했다.
무인의, 그것도 안토니오 덴젤 정도 되는 인물의 발언은 차라리 법 이상으로 강한 강제성을 가진다.
무인이자 동시에 거대 회사의 대표인 안토니오이니 더더욱 그러할진대, 이렇게 쉽게 태도를 바꾸려 한다고?
모여드는 시선에도 안토니오는 여전히 담담한 얼굴로 도진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그의 말대로 나의 수석 명장으로서의 이름과 명예를 내려놓을 수는 없을 것 같군."
"……!!"
"……!!"
두 눈을 부릅뜨는 사람들.
그러나 도진은 안토니오에게 전염된 듯 담담한 얼굴로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안토니오 명장의 선택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일이 있어서야 저도 마음이 편치 않죠."
그리고 이어서 말했다.
"그러면 무엇을 대신 내놓으실 건가요?"
"내놓기로 했던 것과 동일한 것을 내놓아야 하겠지. 그래, 덴젤 공방의 미래를 자네에게 내놓기로 하지."
"미래라고 하시면?"
안토니오의 시선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지켜보고 있던 누군가에게로 향했다.
그리고 말했다.
"내 딸을, 자네에게 주지."
"……어?"
지켜보던 이들이 이번엔 얼이 빠진 얼굴이 되고 말았다.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도진은 예상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여 버렸다.
"네, 좋습니다. 당신의 수양딸, 클로에 덴젤을 받도록 하겠습니다."
"……????"
이해가 따라갈 수가 없다.
도대체 이 둘은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인가.
그런 의문에 마치 대답하듯 도진이 말했다.
"안토니오 명장이 내놓으셨던 건 덴젤 공방의 미래라 할 수 있는 것이었죠. 안토니오 명장의 후계자이자 딸로 덴젤 공방의 모든 것을 이어받을 클로에 양을 주신다면 얼추 값은 맞는 것 같네요."
궤변 같지만 맞는 말이다.
한데 그런 도진의 말에 안토니오의 표정에 처음으로 금이 갔다.
"……그 말은?"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안토니오 명장의 기술, 그리고 무공을 잇도록 할 겁니다."
쿠웅……!
"헉!"
가라앉았던 안토니오의 기세가 폭발적으로 일어나며 구멍 뚫린 바스타드 소드에 기세가 휘몰아쳤다.
마치 야차와 같은 기세를 두른 안토니오가 물었다.
"너는 분명히 나의 방식이 결코 행복해질 수 없는 방식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하며 나의 검을 꺾었던 네가, 클로에에게 계속 무공을 익히게 하겠다고?"
대답 여하에 따라선 서슴없이 심장을 꿰뚫어 버릴 것만 같다.
하지만 도진은 전혀 흔들리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이어 말했다.
"클로에 양은 그것을 원하고 있으니까요. 자신을 거두어 준, 누구보다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모든 것을 이어받고 싶어 하니까요."
도진의 시선이 클로에를 거쳐 다시 안토니오에게로 돌아왔다.
"그리고 저는, 그런 클로에 양이 행복하도록 만들어 줄 수 있습니다."
"…무슨 뜻이지?"
"저는, 클로에 양의 체질을 고칠 수 있는 비술(秘術)을 알고 있거든요."
쾅!
"……!!"
"……!!"
모두의 눈이 찢어질 듯 부릅 떠졌다.
예외가 될 수 없었던 안토니오는, 그것을 넘어 목숨과도 같은 검마저 버린 채 도진에게 쇄도하여 어깨를 붙잡았다.
"그 말, 진실인가?"
무시무시한 악력이 덮치지만 도진은 전혀 변하지 않은 표정으로, 분명한 진실을 담아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러니까 안토니오 명장. 당신의 딸을 제가 받아야만 합니다."
안토니오를 마주하며 도진은 말한다.
"이 비술은, 제가 이은 무맥(武脈)의 문외불출(門外不出)의 비기거든요. '남'에게는 결코 사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반드시 지켜져야만 하는, 문파라면 존재할 수밖에 없는 규율이었고 천마신교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러니까.
"클로에 양은 제가 문주로 있는 문파의 문도가 되어주셔야만 합니다. 다른 문파로의 입적은 허락하지 않겠으며 탈퇴도 허락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덴젤 공방의 이름을 잇는 것만은 허락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래야만 제가 손해를 보지 않으니까요."
도진이 씨익 웃으며, 악덕 상인 같은 얼굴로 안토니오를 마주하며 대답을 요구했다.
"이건 더 이상 물릴 수 없는, 안토니오 명장이 받아들여야만 하는 제안입니다.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안토니오는, 포커페이스가 무너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받아들이도록 하지."
* * * *
세계 장인 박람회가 코앞으로 다가온 어느날이었다.
온갖 커뮤니티를 강타하는 소식이 있었다.
-속보! 덴젤 공방의 후계자 클로에 덴젤, 숭무고등학교에 편입!
-? 이게 몬소리지?
-????? 갑자기?
-이건 뭔 구라핑이냐?
너무나 갑작스런, 저급한 낚시라고도 하기 힘든 내용이었다.
-뉴스 기사 첨부함.
-? 이왜진?;;;
-아니 이게 왜 진짠데?;;
그러나 단순한 소문이 아니라 한국과 프랑스에 동시에 뜬 기사가 그것이 진실임을 증명했기에 곧 주유소에 불이라도 떨어진 듯 폭발적인 반응이 일어났다.
-않이 잔 다르크가 왜 숭무고에 오는데?;;
-미친ㅋㅋㅋㅋ 실화냐 진짜;;
그리고 거기에 더더욱 장작이 떨어졌으니.
-? 클로에 덴젤 잠룡문 소속이 됐는데?
-아니시발이건또뭔소리얔ㅋㅋㅋㅋㅋㅋㅋ
-않이 떡밥 좀 천천히 주세요;; 배터지잖아요;;
숭무고에 편입한 클로에 덴젤이 잠룡문에 이름을 올렸다는 기사까지 뜬 것이다.
도저히 믿기 힘든, 낚시조차 되지 못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사실인 상황은 혼란을 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세계 장인 박람회에 대한 관심은 클로에 덴젤이 누구인가에 관해서도 꽤 자세한 정보를 한국의 네티즌들이 알 수 있도록 해 주었다.
그야말로 소설 같은 인생 역전을 한 유럽 전체에 유명한 후기지수.
거지 소녀에서 프랑스의 자랑인 안토니오 명장의 수양딸이자 모든 것을 이어받을 후계자가 된 소녀.
당연히 '굳이' 한국으로 올 이유도 없었으며 한국에서나 이름높지 냉정하게 말해 외국에서는 무명인 김도진의 잠룡문에 이름을 올릴 이유는 더욱 없었다.
그런데 왜. 도대체 무슨 이유로?
도저히 알 수가 없으니 온갖 커뮤니티가 아우성칠 수밖에 없었다.
-이유삽니다. 제발;;
-나지윤이라면 알지 않을까?
-ㅋㅋㅋ 돈싸들고 찾아가봤자 입구컷 당할듯ㅋㅋㅋ
-나지윤은 절대 말 안 해주지 ㅋㅋㅋ
-세계 장인 박람회 비하인드 테이프 집문서로 삽니다;;
-안 돼. 안 팔아줘. 돌아가.
-판사님 판사님도 솔직히 궁금하잖아요 십새키야!!
-ㅋㅋㅋ 미쳤누;;;
-이게 다 김도진이 화화공룡이기 때문이다 ㅡㅡ
-사실 김도진의 무공은 페로몬이 아닐까? 클로에 덴젤이 다 때려치고 김도진한테 폴인러브하는 거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