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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25화 (325/741)

324화

무대에 오른 우서진은 당당한 외침이 허울뿐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며 승승장구했다.

도진에 의해 기연을 얻은 우서진은 막강한 내공에 더해 '반쯤 환골탈태'한 육체적 우위가 있었다.

미소녀처럼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사기적인 요소들을 갖추고 있다는 말이다.

삼음지체를 극복하며 얻은 막강한 한기를 내공으로 치환하고 그것을 유사 환골탈태하며 갖게 된 진화한, 한기에 특화된 육체로 구사한다.

치열한 외국의 무림에서 후기지수라 불리는 이들은 한 명 한 명이 주인공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이야기와 요소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우서진은 그 이상으로 특별한 이야기와 요소를 갖추고 있었으니 외국의 후기지수들을 압도하는 것이다.

"열심히 할게요."

"그래. 화이팅."

뒤이어 무대에 오른 상미 또한 도진의 응원에 무시무시한 기세로 자신의 실력을 뽐냈다.

하이라이트는 4강에 해당하는 쿠나사기 공방의 후계자인 이치로와의 비무였다.

쿠사나기 이치로는 겉으로는 무인답지 않게 상당히 마른 육체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 그것이 단순히 좋은 육체 이상으로 대단한 것이었으니 그가 익힌 무공인 '발도(拔刀)'에 특화되도록 인위적으로 '깎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자연스럽게 이로운 방향으로 진화하는 육체를 단련하는 건 그저 순리에만 따르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의도적인 방향으로, 다른 방향으로 이끌고 조율하는 것은 상상도 못할 노력과 훈련이 추가로 필요한 것이었으니 그렇게 만들어진 육체는 특정한 부분에서 발군의 효과를 발휘한다.

이치로가 의도한 특정한 부분은 바로 그가 익힌 무공을 대표하는 발도술로, 그의 별호인 '신속(迅速)'이 허울이 아님을 증명했다.

빛살처럼 뿜어져 나온 첫 수는 그야말로 벼락 같은 속도와 힘을 내포한 발도술이었고 상미는 그것을 내공을 쏟아내 깃들인 서리를 겹친 검으로 빗겨 흘려냈다.

차아아아앙-!

빗겨 흘려냈음에도 지켜보는 사람들이 압도당할 만큼의 소리가 터지고 서리가 비산했다.

도진과 클로에의 대결을 연상케 할 만큼의 폭발적인 파괴력과 속도를, 이치로는 발도에 한해서라고 하지만 구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과연 한 나라를 대표하는 후기지수 중 한 명이라 할 만한 무공이었으며 상미보다 1년 이상 무공을 더 익힌 천재다운 면모였다.

상미는 그 위협적인 발도를 허용하지 않기 위해 몰아치는 서리를 연상케하는 검격으로 이치로를 몰아쳤고 이치로는 그것을 신묘한 보법을 가미한 도법으로 흘려냈다.

발도술이란 필연적으로 도를 한 번 집으로 되돌려야만 한다.

그것이 너무나 명확하고 또 커다란 빈틈이 되는 것이었기에 결국 발도술을 장기로 하는 무공은 그 틈을 얼마나 잘 메우느냐, 그리고 약점을 장점으로 얼마만큼 바꿀 수 있느냐에 따라 그 수준이 정해졌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치로가 익힌 무공은 과연 수준급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발도술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발도술 이후의 승기를 잡았을 때는 물론이요 그렇지 못했을 때의 상황을 모두 가정하여 '빌드업'을 할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무공이 구성되어 있었고 그에 따라 이치로는 납도(納刀)를 위한 그림을 차근차근 만들어 나가고 있었다.

그런 고급 무공들이 부딪치는, 흘러가는 시간을 인지하지 못할 정도의 공수 교환.

수준 높은 대결에 후기지수들은 빨려 들어갔고 어느 순간. 기회를 잡은 이치로가 기어코 도를 도집에, 납도(納刀)하는 데 성공했다.

치열한 수 싸움으로 서로 빠듯한 상황에서 이치로가 결정적인 한 수를 폭발시키는 그림을 완성한 것이다.

남은 건 그것을 뿌려 승리를 거머쥐는 것 뿐.

"……!"

허나 이치로는 성명절기이자 절초인 발도술을 시전하지 못했다.

그 찰나의 공백은 상미가 조용히 검끝을 이치로의 목에 겨누도록 만들었고.

"…졌습니다."

이치로가 패배를 선언하게 만들었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웅성거리는 후기지수들.

그들은 곧, 뒤늦게서야 이치로의 도집 내부에 문제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발도술이란 도집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한데 그 도집 내부 끄트머리가 얼어 있었으니 시전이 불가능했던 것이다.

"헉……!"

이치로는 공수의 교환 속에서 어떻게든 발도술을 뿌리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사이, 상미 또한 그 발도술이 실행되지 못하도록 준비를 하고 있었으니 내공과 함께 흩날리는 서리 알갱이를 이치로가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도집 안에 조금씩 채워 넣었던 것이다.

전체를 얼릴 필요는 없었다. 그렇게 하기도 힘들었고.

허나 끄트머리를 조금 얼려 채우는 것만으로도 이치로의 발도술을 봉쇄하기엔 충분했다.

이치로의 도 자체는 그득 담긴 내공으로 인해 서리가 침범할 수 없었다.

실제로 상미가 만들어낸 서리는 이치로의 도는 물론이요 이치로의 몸 자체에도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

허나 직접 쥐고 있지 않았던 도집에 관한 경계는 부족했던 것이다.

아니, 이치로의 경계가 부족했던 게 아니라 미미하나마 상미가 한 수 위였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수준 높은 무인인 이치로조차 눈치채지 못할 만큼 은밀하게, 그리고 여유가 없도록 몰아치면서도 그것을 성공해낸 상미의 무공은 여타 후기지수들이 벽을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그리하여 명성공방은 도진만이 아닌 상미와 후계자 우서진마저 한 수 위에 있음을 증명했다.

승리를 거둔 상미와 졌지만 인상적인 무공을 보여 준 이치로가 내려가고.

다음으로 어제에 이어 클로에 덴젤이 무대 위에 올랐다.

"……."

후기지수들은 웅성거리면서도 쉽사리 상대로 나서지 못했다.

그만큼 어제 보여준 도진과 클로에의 비무가 강렬했기 때문이다.

어제와 달리 새로운 건틀렛과 부츠를 장비한 클로에의 모습은 처음 전장에 나서는 소녀 기사를 연상케 했다.

백전연마를 거친 듯 세월의 무게를 더했던 기존의 장비와 달리 한 점의 흠도 없는 장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지가 그렇다고 해서 클로에가 정말로 초보자가 되는 것은 아니니까.

이미 차원이 다른 실력을 증명한 클로에의 상대로 굳이 나서서 들러리가 되고 싶은 후기지수는 없었다.

그렇게 서로가 눈치만 보느라 고요한 가운데.

이윽고 무대 위에 한 명의 후기지수가 올라섰으니.

터벅.

그 존재만으로 시선을 끄는, 어제 큰 망신을 당했던 미국의 흑표범 빌리 플로이드였다.

웅성웅성.

후기지수들이 웅성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기실 이번 박람회에서 메인에 설, 그러니까 진짜 주인공을 가리는 무대에서 겨룰 세 명으로 예상되었던 후기지수 중 두 명이 마주섰으니까.

그야말로 자연재해라고 밖에는 수식할 길이 없는 한국의 후기지수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빌리 플로이드, 클로에 덴젤, 그리고 쿠사나기 이치로가 메인을 겨루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림이 많이 달라졌다고는 해도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무대에 빌리 플로이드가 스스로 올라섰다.

"…덴젤 공방의 클로에 덴젤입니다."

"존앤집스 공방의 빌리 플로이드입니다."

예법에 따라 소속과 이름을 밝히고 마주선다.

이제는 되돌릴 수 없게 대진이 성립되었고 신호에 따라 두 후기지수가 격돌했다.

꽈아앙-!

폭음이 터진다.

듣는 사람의 손이 저려오는 굉음인 건 여전했지만 어제보다는 그 강렬함이 덜했으니 단순히 클로에가 힘을 뺀 게 아니라 빌리 플로이드가 그녀의 주먹을 정면에서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진은 그것을 거침없이 힘 대 힘으로 받아쳤지만 빌리 플로이드는 그럴 이유가 없었다.

빌리 플로이드의 장점은 클로에도 장점으로 내세우는 힘만이 아니라 클로에보다 훨씬 긴 리치와 탄력, 유연성까지 종합적인 육체적 우위다.

그것을 유감없이 발휘하여 클로에를 상대해 나갔다.

슥-

격돌의 찰나.

일반인은 인지하지도 못할 순간을 정확하게 포착하여 편 손바닥을 당겨 힘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하게 만든다.

작은 체구의 클로에보다 압도적으로 긴 사정거리는 먼저 나가 힘이 폭발하기 전 클로에의 주먹을 맞이하여 당김으로써 그 충격량이 대부분 소멸되게 만든다.

그리고 다 해소하지 못하여 전달되는 힘은 온몸의 탄력을 이용하여 다른 손에 전달함으로써 오히려 자기 것으로 만들어 되돌려준다.

꽈아아앙-!!

클로에는 그 반격을 놓치지 않고 마주 반대편 손을 내뻗어 대응하지만 예의 팔의 길이의 차이 때문에 손해를 보아야만 했다.

닿지 않는 거리에서 시작한 주먹은 어떻게 할 사이도 없이 힘을 폭발시키며 달려들기 때문이다.

꽈앙- 꽈아아앙-!

그리하여 이어지는 난타전은 빌리 플로이드가 소소하지만 계속 이득을 가져가는 전개가 되었다.

"으음……."

"블랙 레오파드. 저 정도였구나……."

후기지수들은 따라가기 힘든 속도와 궤적을 그리는 비무를 지켜보며 침을 삼켰다.

사실, 어느 정도는 빌리 플로이드를 얕잡아 보고 있었다.

흑표범. 사람 같지 않은 육체를 타고난 괴물이라더니 한국의 후기지수에게 너무나 쉽게, 속된 말로 '쳐발렸기' 때문이다.

한국의 후기지수가 말도 안 되는 천재지변 수준인 건 인정하지만 그렇다 해도 아무것도 보여주지 못하고 무력하게 당하는 모습이 한심한 건 변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아니었다.

긴 사정거리를 사람같지 않은 수준으로 정교하게 이용하고, 또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듯 보이는 근육의 탄력을 이용한 궤적과 기술은 직접 상대하고 있지 않음에도 철저하게 벽을 느끼게 만든다.

소속과 나라 때문이지 사실은 나도 그만큼 성공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은연중 가지게 만들었던 자만을 스스로 깨닫게 만들 만큼, 빌리 플로이드는 수준 높은 무인이었다.

'씨발! 그러면 한국의 후기지수는 도대체 얼마나 괴물인 거야.'

저런 말도 안 되는 장기를 전혀 구사하지 못하게 만든, 겉으로 보기엔 '평범해 보이는' 한국의 후기지수 대표는 도대체 뭐라고 해야 하는가.

지켜보던 후기지수들이 그렇게 자괴감을 느낄 때.

"큭!"

돌연 빌리 플로이드의 우위로 진행되고 있던 비무의 흐름에 변화가 생겼다.

지속된 이득을 바탕으로 과감하게 초식을 전개하던 빌리 플로이드가 낭패를 본 얼굴로 한 걸음 물러났다.

무슨 일인가 싶어 시선이 집중되는 가운데 빌리 플로이드는 얼굴을 찌푸리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과연. 이게 그 상대의 전의마저 꺾는다는 잔 다르크란 말이지.'

분명히 이기고 있었다.

단순히 이기는 게 아니라 승리를 점쳐도 될 정도로 클로에에게 대미지를 누적시켰다.

평범한 무인이라면 움직임에 티나게 지장이 생기고 어쩌면 피를 토할 만큼 적지 않은 대미지가 쌓였을 텐데.

클로에 덴젤은 그런 감각이 거짓말이 아닌가 스스로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아무렇지 않게 움직이며 무시무시한 힘이 담긴 주먹을 계속 뻗었다.

이러면 상대는 질릴 수밖에 없다.

내 공격이 전혀 통하지 않는 건가, 상대는 괴물인가, 하고.

이러다 갑자기 두어 배는 될 법한 힘을 충돌 순간 때려박는 신묘한 초식에 기습당하면 상대는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흥!'

하지만 빌리 플로이드는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만만한 무인이 아니었다.

심지어 어느 정도 그런 '트릭'에 관한 정보까지 알고 있는 상황.

빌리 플로이드는 겁먹는 대신 오히려 내공을 폭발시켰다.

'…내키지 않지만.'

추태를 보인 이상 그것을 만회하기 위해 존 스미스가 특별히 '부탁'한 것을 수행해야만 했다.

'포효하는 발톱.'

도진에게는 제대로 시전조차 하지 못하고 농락당했던 빌리 플로이드 비장의 절초가 펼쳐졌다.

시전 순간의 공백을 귀신같이 짚어내고 품으로 파고들어 이마를 밀어 거리를 만드는, 그런 말도 안 되는 행동을 클로에는 당연히 할 수 없었기에 초식을 막을 수 없었고.

꽈과과과과광!!

연속해서 폭격이라도 떨어진 듯한 폭음이 터졌다.

클로에는 빌리 플로이드의 절초를 완전히 방어하지 못했다.

할 수가 없었다.

포효하는 발톱은 빌리 플로이드의 육체를 한계까지 활용하여 폭발시키는 초식이다.

사정거리에서 뒤지고 근육의 탄력에서도 열세를 보이는 클로에는 인간으로서 과연 가능한가 싶은 궤적을 사정거리 밖에서 난사하는 모든 공격을 방어할 수 없었던 것이다.

'괜찮아.'

하지만 클로에는 흘리거나 막지 못한 공격을 몸으로 받아내며 꾸욱, 주먹을 쥐었다.

괜찮다.

이 정도의 피해, 그리고 아픔은 그녀에게 익숙한 것이었으니까.

큰 초식의 뒤에는 반드시 틈이 생기는 법이고 클로에는 그 틈을 공략하는 데에 자신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대로 버티고 역전의 한 수를 준비하자.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순간이었다.

찌이익-!

"……!!"

옷이 찢기는 소리에 클로에의 안색이 새하얗게 변했다. 동시에.

훅!

폭풍처럼 몰아치던 빌리 플로이드가 당황한 기색으로 훌쩍 물러났다.

"어, 어어?"

"뭐, 뭐야……?"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이 경악했다.

싸늘하게 가라앉는 무대.

그 싸늘한 분위기 속에서 존 스미스가 입을 열었다.

"이봐, 안토니오. 당신, 딸에게 무슨 짓을 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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