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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23화 (323/741)

322화

'역시 도진이란 말이야!'

우벽진은 스스로의 선택이 탁월했음에 기분이 좋아 만면으로 웃으며 생각했다.

세계 장인 박람회의 한국 개최.

한국에서는 우벽진을 '우느님'이라 부르며 찬양했지만, 사실 우벽진은 그렇게 마냥 칭송을 들으며 편히 기뻐할 수 없었으니 업계의 알력 때문이었다.

미국의 경매를 통하여 한 번, 명확하게 자신을 증명하고 알리는 데 성공하긴 했으나 말 그대로 '한 번'이었다.

출신도 변방에다 무명 취급받던 한국이었으니 그 명성을 공고히 하기엔 부족했다는 말이다.

그런 와중에 우벽진의 신제품 런칭 행사를 포함하여 한국에서 세계 장인 박람회를 진행하기로 결정이 났으니 업계의 기존 강자들이 협조적인 태도로 나오겠는가.

당연히 그에 관한 부분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와중에 심지어 메인 무대가 후기지수들의 자유 비무로 꾸며지게 됐다.

'아무리 서진이랑 상미라 해도…….'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냉정하게 따져 한국의 후기지수에 대한 외부의 평가는 부정하기 힘든 일이었으니까.

그것까지 감안하여 우서진과 윤상미는 실력은 독보적이었으나 결코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에서의 짐을 짊어지기엔 부담이 적지 않을 것이었다.

그래서 우벽진은 도진이라는 '치트키'를 쳐 버렸고 그것은 과연 치트키다운 위력으로 사전 비무를 뒤집어 놓으셨다.

블랙 레오파드를, 업계의 세력 중에서도 수위를 다투는 미국의 대표 후기지수를 도진은 이견이 나오는 게 불가능할 만큼 압도적으로 제압해 버렸다.

아깝게도 아니었고 조금의 수준 차이가 나는 것도 아니다.

그야말로 압도적으로 이 자리에서도 한 손에 꼽힐 후기지수를 제압한 도진은 스스로를 톱(TOP)이라 칭하는 것이 결코 과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비무로 실력을 가늠하고 메인 무대에서의 겉으로는 공평할 거라 말한 비중을 정한다니.

그야말로 '게임'같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 게임같은 이야기를 현실로, 그것도 이런 커다란 무대에서 실현되게 만든 건 몇 가지의 조건과 업계의 알력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꼴보기 싫던, 속을 살살 긁던 존 스미스의 배가 아파 죽으려는 모양을 보고 있으니 우벽진은 이토록 유쾌할 수가 없었다.

속 좋게 웃으며 다가가 '친구'가 되는 건 분명히 이상적이며 좋은 그림이다.

그러나 시간적으로는 물론이요 여러 배경 속에서 명성공방의 후기지수는 그런 스탠스를 취하기가 어려웠으니 차라리 이렇게 '상남자'스럽게 나가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이런 게 우벽진의 성향과도 맞았으니 박수를 치며 크게 기뻐한 것이었다.

이런 그림을 만들었으니 이제 도진을 상대하겠다는 후기지수는 나오지 않겠지…… 라고 생각한 그때였다.

스윽-

조용히 무대 위에 올라서는 후기지수가 있었으니 클로에 덴젤이었다.

160을 아슬아슬하게 넘는, 일반인 기준으로도 작은 키.

그러나 예쁘게 금빛이 어린 머리카락과 커다란 푸른 눈동자, 그리고 완벽한 비율에 시원시원하게 뻗은 팔다리가 인형같다는 수식어를 상투적이지 않게 만드는 소녀.

거기에 양팔에 낀 큼직한 건틀렛이 소녀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게 강렬한 이미지를 더한다.

"덴젤 공방의 클로에 덴젤입니다."

평이한 어조의 영어로 인사하는 그녀에게 도진은 마주 인사했다.

"명성공방의 김도진입니다."

그녀와 마주선 도진의 표정은 조금 미묘한 색을 띠고 있었다.

이유를, 성분을 짐작하기 힘든 그 표정을 읽은 몇몇은 그 이유를 궁금해했다.

"뭐지? 좀 껄끄러워 보이는데?"

"클로에 덴젤도 유럽 전체에서 알아주는 후기지수잖아. 아까 싸움에서 조금 무리해서 소모했을지도 모르지."

"그거 말 되네."

섭음술로 중얼거리는 후기지수들.

도진은 어설픈 내공의 막을 뚫고 감각이 전해주는 소리를 흘리며 편안하게 자세를 잡았다.

"어? 칼을 안 꺼내?"

"뭐야. 어디까지 건방진 거야, 저 녀석은."

집어넣었던 백설을 꺼내지 않는 도진의 모습이 약간의 웅성거림을 만든다.

그러나 클로에 덴젤은 신경쓰지 않았고 진행자 또한 굳이 배려하지 않고 비무를 시작해 버렸다.

"시작!"

쿠웅-!

시작과 동시에 비무대를 부술듯 진각을 밟으며 클로에 덴젤이 쇄도했다.

펑퍼짐한 무복의 사이로 그녀가 끼기엔 투박하고 커다란 건틀렛과 철을 덧댄 부츠가 눈에 띈다.

건틀렛은 양쪽 다 작은 방패를 댄 것처럼 부피가 큰데 뭉툭하게 튀어나온 부분이 있어 공격적인 면모도 갖추고 있다.

부츠 또한 무릎까지 올라오는데 철저하게 철을 덧대 무겁지만 공격적으로도 방어적으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수트 오브 아츠(Suit of arts).

프랑스의 명장 안토니오가 수양딸을 위하여 만든 건틀렛과 부츠의 이름으로 백타(白打), 맨손 무술을 장기로 하는 클로에의 무구였다.

단순한 방어구가 아니라 그녀의 무공을 보조할 수 있는 최첨단의 과학과 장인의 기술이 녹아 있으니 내뻗는 주먹부터가 범상치 않다.

후웅-!

금발벽안의 작은 소녀가 내지른 주먹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기세의 그것을, 도진은 정면으로 맞받아쳤다.

꽈아아아앙-!

"윽."

폭탄이라도 터진 것 같다.

퍼지는 여력도 여력이지만 그 소리만으로도 자신의 손이 저려오는 것만 같아 지켜보던 후기지수들이 얼굴을 찌푸렸다.

꽈아아아앙-!!

꽈아아아앙-!!

한데 그 폭음이, 전력으로 부딪친 것만 같던 주먹질이 쉬지 않고 연신 터져 나온다.

꽈과과과광-!!

"괴물이잖아……. 이건."

누군가가 섭음술도 잊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고 주변의 이들이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도대체 얼마나 단련하면, 그리고 얼마나 단단하면 저 정도의 힘을 담은 주먹을 연신 부딪칠 수 있단 말인가.

주변에서 느끼는 게 이 정도인데 직접 팔다리를 부딪치는 저들이 받는 충격은 도대체 얼마나 될 것인가.

새삼 후기지수들은 클로에 덴젤의 별명인 '잔 다르크'를 상기했다.

잔 다르크.

세계적으로도 이름 높은 위인의 이름.

하지만 그런 이미지와 다르게 일각에서는 그녀를 '인간 흉기'라고 부르니 영국과 프랑스가 교차 검증한, 그럼에도 믿기 힘든 일화들 때문이다.

장력만 70kg에 달하는 영국 장궁에 목과 어깨가 동시에 관통당했음에도 간단한 응급처치 후 전투에 뛰어들었다거나 공성전 중 머리에 바위를 지격당했음에도 멀쩡하게 일어났다거나 하는 등.

그런 터미네이터적인 면모가 일치했기에 클로에 덴젤은 사실 외모적으로 잔 다르크와 닮지 않았음에도 그런 별명이 붙은 것이었다.

꽈아아앙-!!

웬만한 상처나 타격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상당한 수준으로 상처입어도 아랑곳 않고 오히려 적이 질려서 압도될 정도로 파괴적인 무공을 구사하여 상대를 박살내는 인간 흉기.

그녀가 아직 여물지 않은 중학생 시절 뒷골목 흑도의 무리가 그녀를 납치하기 위해 십여 명이나 되는 인원으로 둘러쌌음에도 기죽지 않고 피투성이가 되어, 오히려 그들을 피떡으로 만들며 골목에서 나와 태연히 신고를 했던 일화는 이미 그녀를 대표하는 전설이었다.

혹자는 그것이 과장되었다 말하곤 했는데, 지금 이 자리에서 비무를 지켜보는 이들은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게 되었다.

믿기 힘들 정도로 흉포한 내공을 두른 한국의 후기지수의 주먹이, 일말의 망설임없이 내뻗는 클로에의 건틀렛과 격돌한다.

꽈아아아앙!!

지켜보는 사람의 손이 파르르 떨릴 정도로 과격한 격돌과 폭음.

건틀렛으로 감쌌다 해도, 또 단련을 하고 내공으로 감쌌다 해도 결코 충격이 없지 않을 텐데 클로에의 표정에는 일말의 변화가 없으며 이어지는 동작에도 딜레이가 없다.

정말 사람인가 싶을 정도였으며, 또 그렇기에 한국의 후기지수는 더 괴물 같았다.

클로에는 쇠로 된 건틀렛이라도 끼고 있는데 그는 맨주먹이었으니까.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대적할 의지를 잃고 마는 비무였다.

그렇게 이어지는 난타전 속에서 도진의 표정이 조금 더 찌푸려졌다.

'밀리는 건가?!'

후기지수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꾸우웅-!!

앞서와는 다른 묵직한 폭음과 함께 클로에의 주먹을 돌려차기로 받은 도진의 몸이 부웅 허공을 날았다.

"……!"

"클로에가 이겼다!"

일부가 그렇게 소리쳤다.

하지만 그건 상대적으로 실력이 떨어지는 일부였고 나머지는 비무에 더욱 집중했다.

힘에서 밀리거나 균형이 무너진 게 아니었다.

클로에가 무언가 수를 썼고 도진이 그것을 흘려낸 것이 지금의 결과였다.

-과격한 수를 쓰는구나.

-저 나이에 가지기 힘든 정신력입니다.

위지혁과 장호가 심상세계에서 말했고 여력을 흘리며 몸을 한 바퀴 빙글 돌리는 도진이 말없이 동의했다.

지켜보던 후기지수들의 생각대로, 난타전은 엄청난 '반작용'을 감당해야만 했다.

작용하는 힘에는 당연히 반작용이 따르게 마련이고 이 경우 정면에서의 난타전은 그 여력이 주먹과 몸을 덮치게 마련이었다.

도진은 그것을 연신극기공으로 단련된 육체와 내공, 그리고 움직임으로 최소화하고 흘려내며 미미한 것만을 감당했다.

한데 클로에는 많은 부분을 그냥 '무식하게' 감내했다.

배운 무공과 내공, 그리고 '어떤 체질'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

그렇게 난타전을 계속하다 돌연, 클로에가 감내하던 충격량을 배운 무공의 수법으로 도진에게 쏟아낸 것이다.

도진은 그것을 해소할 요량으로 힘에 거스르지 않고 몸을 날렸고 클로에가 기다렸다는 듯 추격했다.

쿠웅!

진각을 밟고 육체를 최대한으로 활용하여 진각에서 시작된 힘을 증폭, 주먹에 담는다.

이어서 건틀렛이 미사일처럼 쏘아진 주먹을 보조하여 마지막으로 충격을 더하고 그것은 허공의 한 지점, 도진이 필연적으로 머물러야 하는 순간을 노린다.

허공답보는 물론이요 운룡대팔식 같은 허공에서의 운신이 불가능한 도진으로선 피할 수 없어 보이는 일격.

클로에가 '빌드업'하여 준비한 회심의 연계기다.

하지만 도진은 이미 그것을 읽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몸을 수평으로 만들고선 한 팔로 뻗은 클로에의 팔뚝을 짚고서 회전했다.

임기응변이 아닌, 미리 클로에의 수를 읽고 준비한 한 수였다.

툭.

분명히 나비가 앉는 것처럼 가벼운 터치.

그러나 클로에는 마치 거대한 산이 내려앉은 듯한 무게감에 몸이 앞으로 쏠리며 순간 중심을 잃고 말았다.

그것은 지극히 한순간이었으나 준비하고 있던 도진에게는 승부를 결정지을 수 있는 치명적인 틈이었다.

몸을 뒤집어 균형을 잃은 클로에의 뒤에 내려선 도진의 양팔과 다리가 움직였다.

도진의 오른발이 중심을 잡으려던 클로에의 디딤발을 건드림과 동시에 왼 다리가 오금을 찔러 균형을 완전히 무너뜨린다.

왼손은 어떻게든 허리의 힘으로 타격을 주려던 팔꿈치를 부드럽게 받아내 제압하고.

마지막으로 오른손은 클로에의 건틀렛 잠금 장치에 닿았다.

그것으로.

우뚝.

도저히 멈추지 않을 것만 같았던 클로에의 움직임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클로에의 귓가에서 도진의 입술이 움직였다.

"여기까지만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어떻게 생각해요."

"……졌습니다."

클로에는 잠시간의 침묵 후 그렇게 말했고 도진은 품에 잡고 있던 클로에를 놓아 주었다.

다시 마주선 클로에는 조금 붉어진 얼굴로 꾸벅, 고개를 숙이고 비무대를 내려갔다.

"클로에까지 이겨 버렸잖아."

"한국에 이 정도나 되는 녀석이 있었다니……."

섭음술로 인하여 소리없는 웅성거림이 퍼진다.

클로에는 그 웅성거림 너머 양아버지, 명장 안토니오와 잠시 눈을 맞추었고 그 장면을 존 스미스가 지켜보고 있었다.

'호오…….'

그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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