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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21화 (321/741)

320화

쩌어억.

내부에 있던 사람들이 하나같이 입을 쩌억 벌리며 멍하니 시선이 고정되었다.

그만큼 지금 일어나는 일이 상식 밖의 말도 안 되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 자리에 있는 후기지수와 관련자들이 가지고 있던 공통된 생각이 하나 있었으니 한국의 후기지수가 아무리 대단해 봐야 한 수 아래일 것이란 생각이었다.

사실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는 생각이었다.

비록 '무림'이 등장하고 동양이 강세를 보이게 됐다지만 그것도 무림 르네상스 이전의 이야기였다.

무림 르네상스 이후 국가 단위의 투자로 인해 무서우리만치 분석·발전된 무공은 서양과 동양의 격차를 좁혀 주었고 어떤 면에선 추월까지 하게 만들었다.

그런 배경에 환경의 차이다.

한국의 인구는 적은 편이고 무공의 교육 환경 또한 '온실 속의 화초'라고 불렸다.

그런 환경에서 '압도적인 후기지수'로 불린다고?

그래봐야 온실 속 화초 중 1등 아닌가.

이런 인식이 엘리트인 그들 사이에는 있었던 것이다.

어느 정도는, 그리고 제대로 인사를 나눈 쿠사나기 이치로는 그것이 안일한 인식이었다는 걸 알았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지 못했다.

그리고 이곳에 모인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돋보이는 빌리 플로이드가 나서 도진의 앞에 선 순간 그 인식은 더욱 견고해졌으니 마주 선 구도가 그렇게 만들었다.

180의 키에 예술품처럼 자리잡은 근육.

도진은 분명히 좋은 육체를 가지고 있었지만 사실 무림인이라면, 심지어 후기지수라면 그것은 차라리 '기본'이었다.

지극히 특수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후기지수는 모두 그 정도는 된다는 말이다.

실제로 단순히 겉으로 보기에 도진보다 못한 조건의 육체를 가진 후기지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쿠사나기 이치로가 좀 말라 보이지만 그건 바로 그 특수한 경우, 무공에 걸맞는 육체로 '깎았기' 때문이지 육체적으로 못한 게 아니었다.

그래서 빌리 플로이드는 더욱 돋보일 수밖에 없었다.

덩치가 크다. 키가 크다.

힘이 세다. 민첩하다.

그런 육체적 장점을 가진 사람은 흔하디 흔하다.

그러나 그런 장점을 '모두' 가진 사람은 결코 흔할 수 없으니 그게 바로 빌리 플로이드였기 때문이다.

도진을 내려다 보는 2미터에 가까운 키와 도진의 허벅지에 비교될 만큼 굵은 팔뚝까지.

거기까지만 이야기하면 둔중한 거인이 있어야 할 텐데 빌리 플로이드는 그 별명처럼 '흑표범'을 연상케 한다.

크지만 날렵하고 유연한데 심지어 단단하기까지 하다.

그런 그를 상대로 육체적인 우위를 점할 자신이 있는 후기지수는, 당연하게도 이 자리에 단 한 명도 없었다.

하물며 그런 육체를 타고 나서는 무공까지 잘한다고?

이건 세상의 불평등에 관해 욕 한 마디 해도 누구 한 명 비난하지 못할 것이었다.

그런데.

"아아아아아악!"

그런 빌리 플로이드를, '난쟁이 한국의 후기지수'가 악수만으로 비틀어 버리고 있었다.

'…이게 뭐지?'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상황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다.

힘으로 상대를 압도하는 구도로 악수하는 상대를 악력만으로 비명을 내지르게 만드는 건, 차라리 너무 흔해 빠진 유머였다.

이건 바로 그 지독한 유머가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게 만들었다.

몇 초.

절대적으로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었으나 무인에게는 길디긴 시간.

그 시간동안 몸을 비틀고 비명을 내지르는 빌리 플로이드의 모습이 모두에게 새겨지고서야 도진은 놀란 얼굴로 손을 뗐다.

"웁스! 미안해, 친구. 긴장해서 '조금' 힘을 주고 말았네."

"……."

너스레를 떠는 도진의 말에 누구도 답을 해주지 않았다.

한국어가 아닌 영어였기에 모두가 알아들었을 텐데도 말이다.

하지만 도진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한 마디를 더 했다.

"빌리 플로이드라고 했지? 잘은 모르지만 워낙 몸이 좋아 보여서 조금 긴장하고 말았어. 이해해 줘."

"……."

고의다.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당사자라면 혈압이 올라 뒷목을 잡을 만큼 얄미운 그 의도가 고스란히 드러나는 '멕이는' 대사.

그러나 빌리 플로이드가 그랬듯, 그걸 대놓고 지적하지 못하게 만드는 '영어'였다.

숭무고는 대한민국 최고의 무림학교이며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들을 대상으로 하는 학교다.

당연한 말이지만 '영어'는 기본 중의 기본이었으며 전교 1등을 놓치지 않았던 도진은 영어 또한 진지하게 파고들어 수준급으로 구사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 도진의 영어 구사력은 현생의 삶이 가져다 준 자신감에 힘입어 한 치의 어색함도 없었고 흠을 잡을 수 없게 만들었다.

"……."

침묵이 어색함의 영역에 접어들 정도로 이어진다.

빌리 플로이드는 갑작스런 상황에 어찌해야 할지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얼굴이다.

그로서는 이런 식으로 엿을 먹은 적이, 애초에 그럴 거라는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으니 더더욱 어찌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허우적거리는 그 대신, 그래도 경험 많은 어른인 존앤집스의 관계자이자 그의 담당 실무자가 나섰다.

"이런, 빌리. 그 장난기를 여기서는 좀 억누르도록 해. 공식적인 자리잖아?"

조금 과장된, 서양인 특유의 텐션으로 그가 말하자 역시나 천재라 할 수 있는 빌리 플로이드가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표정과 태도를 달리했다.

"오, 그렇군요. 미안합니다. 너무 소란을 피웠군요."

마치 지금의 모습이 도진에게 맞춰준 '헐리우드 액션'이었다는 듯 너스레를 떤다.

누가 보아도 억지로 사태를 수습하는 모양새였지만 굳이 나서서 지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렇게 억지로 일을 수습한 빌리 플로이드는 분위기를 환기하듯 도진의 옆에 있는 상미에게 인사하며 손을 내밀었으나.

"쏘리. 나는 수상한? 모르는? 사람이랑은 악수하지 않아요."

"……."

일부러인지 모를 어색한 영어로 그렇게 말하는 상미에게 악수를 거절당하고 말았다.

"아, 미안합니다. 얘는 낯을 좀 많이 가리거든요. 그리고 아직 영어가 좀 어색해서. 이해바랍니다."

대신 나서서 말하는 도진이 더욱 얄밉다.

"그 악수는 제가 받도록 하죠."

"헉!"

그리고 반대편에서 나서서 대신 악수하는 우서진의 행동에 빌리 플로이드는 또 한 번 깜짝 놀라 몸을 움찔하고 말았다.

꽈악-

우서진이 악수하는 손에 힘을 담았기 때문이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고, 빌리 플로이드의 입장에서는 그리 대단하지 않은 수준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레 놀라 움찔하고 만 것이다.

"……."

당연히 쪽팔린 일이었다.

겉으로 보기엔 차라리 클로에처럼 예쁜 소녀처럼 보이는 우서진의 작은 손에 놀라 움찔하다니!

'뻑! 뻐킹!'

스스로의 평소답지 않은 못난 행동에 빌리 플로이드가 속으로 욕을 짓씹었다.

그런 빌리 플로이드를 올려다 보며 우서진이 씨익 웃었다.

"오랜만에 보는군요, 빌리 플로이드. 못 본 사이에 유머가 많이 느신 것 같네요?"

"하, 하하하. 그런가?"

억지로 웃으며 대답해 보지만 이미 개망신을 되돌릴 순 없었다.

우서진은 과거 미국에 있던 시절 자신을 조롱하던 빌리 플로이드에게, 남몰래 입꼬리를 비틀어 주었다.

부들부들…….

"…으음. 그럼 회의를 시작하도록 하죠."

억지로 분위기를 전환하며 존앤집스 공방 사람들의 말로 회의가 시작된 가운데 빌리 플로이드는 구겨진 얼굴을 다 감추지 못했다.

결코 편하지 않은 후기지수들 사이의 분위기.

그러나 도진은 오히려 입꼬리를 슬쩍 올린 여유있는 얼굴이었다.

들이박으면 그 이상으로 돌려준다.

이미 그렇게 이번 세계 장인 박람회에서의 태도를 결정했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동생들이, 가족이 오기로 한 자리다.

그런 자리에서 도진은 가족이 조금이라도 불편한 감정을 가지게 될 여지를 남기지 않을 생각이었다.

건드리면 몇 배로, 가루가 될 각오를 해라.

호의에는 호의로 답하겠지만 악의에는 그 이상의 악의로 답해준다.

그것을 요 준비 기간동안 확실하게 보여줄 것이다.

"미리 말하지. 거슬리게 하는 것들이 있으면 그냥 들이박아도 돼. 오히려 내가 부탁하는 거야."

세계 장인 박람회의 '뉴페이스'인 명성공방은 경계의 대상이요 이곳은 얕보이는 순간 먹이사슬의 아래에 처박힐 야생에 다름없었다.

그러니까 우벽진은 도진과 상미, 우서진에게도 그렇게 말했고 거리낄 게 없어졌다.

만약 기분이 좋았다면, 그리고 우벽진에게 다른 부탁을 받았다면 이 자리에서 이렇게까지 빌리 플로이드를 무호흡으로 두들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정이 있었기에, 도진은 본보기를 시작부터 제대로 보여 주었다.

이러고도 정신을 못 차린다면…….

'뭐, 더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겠지.'

그런 생각으로 도진이 웃는 가운데 회의가 계속되었다.

"미리 자료를 전해드린 대로 이번 메인 무대는 후기지수 여러분들의 '단체 자유 비무' 형태로 꾸며질 예정입니다."

단체 자유 비무.

그러니까 레슬링 등처럼 미리 약속을 하고 연출하는 무대와는 다르게 대본없이, 그것도 참가한 후기지수들이 단체로 비무를 벌이는 형태로 꾸미겠다는 말이다.

"물론 최소한의 가이드 라인은 제시할 것입니다. 국제 표준의 비무 규약을 최대한 맞춰서 적용할 것이고 공평한 비중을 위한 몇 가지 약속도 받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주인공은 4강, 명장들의 무구를 든 후기지수가 되겠지만 그래도 모두가 소외되지 않도록 여러가지 장치가 마련되었다는 말이 이어졌다.

물론, 모두는 알고 있었다.

그 모든 것이 보여주기식이라는 것을.

'공평'과 '비중'을 논할 거라면 차라리 약속된 무대를 꾸며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굳이 '비무'라는 단어를 가져왔으니 그건 결국 경쟁을 통해 무대의 비중과 스포트라이트를 쟁취하라는 것이었다.

"그럼, 구체적인 계획을 짜기에 앞서 더욱 퀄리티 높은 무대 준비를 위한 사전 개별 비무를 점심 식사 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경쟁의 시작이, 점심 식사 뒤로 결정되었다.

* * * *

"내가 미국에만 있어서 자네의 명성이 이렇게나 대단할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한국에서 자네는 그야말로 신이로군."

"…그거 참 고맙군."

우벽진은 옆에서 떠드는, 흰 머리가 무색한 근육질 백인 남성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고 있었다.

존 스미스.

그 흔한 이름을 가진 이 남자가 바로 존앤집스 공방의 두 명장 중 한 명이자 우벽진이 세계 기록을 경신했던 경매장에서 '2등'을 차지한 인물이었다.

호주 출신이면서 '미국의 꼰대'인 그는 인종차별의 성향을 띠는데 심지어 자존심마저 강했다.

그런 그가 명장이라고 하나 무명이었던, 심지어 동양인인 우벽진에게 완패를 하고 말았으니 얼마나 이를 갈았겠는가.

그걸 대놓고 부딪쳤다면 우벽진은 차라리 그를 좋게 보았을 것이다.

'한국의 꼰대' 성향이 없잖아 있는 그는 남자라면 그런 식으로 치고 박아 풀어야지, 하는 마인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존 스미스는 그러지 않았다.

요즘 젊은 말로 '극혐'하는 타입 그 자체로 은근슬쩍, 비비 꼬아서 그의 심기를 건드리는 것이다.

점심 식사 시간.

명장들을 포함한 장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는 일부러 우벽진의 옆에 앉아 친한 척을 했다.

자격지심이 있다는 걸 감추고 오히려 여보란 듯 친하게 지내는 척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내뱉는 말은 칭찬이라는 포장지 안에 비꼬는 내용이 한가득이다.

만약 평상시의 우벽진이었다면 볼 것 없이 망치를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우벽진은 조금 달랐으니 이유 모를 여유가 넘쳐 존 스미스의 말을 가볍게 흘리니 도발하는 입장의 존 스미스가 오히려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

'뭐지? 뭐가 있길래 이놈이 이러는 거지?'

불 같은 우벽진의 성정을 그 집착으로 대번에 파악한 존 스미스였다.

평소라면 살살 긁히는 속에 심기가 불편한 게 눈에 보여 긁는 맛이 있었는데 오늘은 반응이 영 아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어 존 스미스는 몸이 달았고 점심 식사 이후.

그토록 바라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뻐엉-!

"친구. 자네쪽 후기지수 날아가는데?"

블랙 레오파드가 도진에게 걷어차여 허공을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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