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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19화 (319/741)
  • 318화

    평일 저녁.

    가족들이 다 모인 자리에서 나온 도진의 말은 언제나 그렇듯 예상 밖에 있었다.

    자랑을 하는 게 오히려 부담스러울 만큼, 어디에 내놓아도 뿌듯한 얼굴을 감추기 힘들 만큼 대단한 아들은 요즘 들어 무언가 이야기를 꺼내 놓았다 하면 스케일이 달랐다.

    지금 도진의 옆에서 냐아앙하며 고기를 뜯고 있는, 풍성하고 폭신한 털을 자랑하는 고양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물인 솜이에 관해 이야기 할 때도 그랬는데 이번에는 그만큼은 아니어도 역시나 내용이 범상치 않았다.

    솜이의 일로 약간은 면역이 생긴 서정원이 물었다.

    "국제 무대 모델?"

    "네. 이번에 한국에서 세계 장인 박람회가 열리잖아요."

    "응, 그렇지."

    우벽진에 의해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리게 된 세계 장인 박람회의 이야기로 한동안, 그리고 요즘 또 떠들썩했기에 김서우와 서정원 또한 잘 알고 있었다.

    특히 김서우는 종사하는 곳이 무림 업계이다 보니 일반인들보다 조금 더 잘 안다.

    그래서 뒤에 나올 내용을 자세히 예상할 수 있었고 그 예상대로였다.

    "그 박람회에서, 우 명장님의 모델로 무대에 서게 됐어요."

    "어머! 정말?"

    "네, 정말이요."

    자세히는 모른다.

    그러나 그녀 또한 시사에 소홀하지 않았기에 한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세계 장인 박람회에 관한 최소한의 지식은 있었다.

    모든 걸 떠나 '세계적인 무대'에 '우 명장의 모델'로 서는 게 결코 보통의 일일 수는 없으니 서정원은 아들의 커다란 경사에 뿌듯한 얼굴로 기뻐해 주었다.

    유진이와 호진이는 잘은 몰랐으나 분위기가 좋자 덩달아 들뜬 얼굴로 맏이에게 물었다.

    "형아, 형아. 장인 박람회가 뭐야?"

    도진이 호진이의 눈을 마주하고 웃으며 말했다.

    "패션쇼인데 옷 말고 무기로 하는 패션쇼 같은 거야."

    "와아! 무기로 패션쇼도 해?"

    "너도 이제 고학년인데 뉴스도 좀 보고 그래!"

    귀엽게 말하는 호진이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유진이가 슬쩍 타박을 준다.

    머리가 슬슬 굵어지니 티격태격하는 모습을 보이곤 하는 둘이다.

    그런 모습까지 귀여운 도진이 하하하, 웃으며 조금 더 설명을 해 주고선 부모님에게 말했다.

    "그래서, 이렇게 초대권을 받게 되었거든요."

    식탁 위에 VIP 초대권 네 장을 꺼내 놓는다.

    "전시회 자체는 한 달 동안 진행되는데 제가 나오는 메인 행사는 토요일이 될 것 같아요. 가능하시면, 보러 오시면 어떨까 싶어요."

    말씀드리는 것 자체가 부담을 드리는 건 아닌가 싶어 조금은 조심스럽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말씀드리지 않으면 오히려 그것이 더 좋지 않은 일 같아 도진은 말했고 부모님은 거기에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가야지! 우리 아들이 모델 데뷔하는데 안 가서야 되겠어?"

    "어, 괜찮으시겠어요?"

    "당연하지! 안 그래요, 여보?"

    "그래. 가야지."

    서정원의 말에 김서우 역시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6월 중순.

    성수기인 7월 이전으로 오히려 더욱 조용한 잠시였으니 시기상으로도 절묘했다.

    대목 이전에 조용하듯, 폭풍전야처럼 방학 시즌인 7월 이전 6월은 조용한 시기였고 김서우 또한 부담없이 연차를 쓸 수 있는 시기였으니 말이다.

    "와! 그럼 우리 가족 다 같이 갈 수 있어요?"

    "응. 다 같이 오빠 보러 가자!"

    "오예!"

    기뻐하는 동생들의 모습에 김서우와 서정원 또한 흐뭇하게 웃었다.

    요즘은 이렇게, 웃을 일이 참 많았다.

    도진 또한 그 분위기에 조금 더 짙은 웃음을 띠며 '서열 정리'에 조금, 진심이 되기로 마음 먹었다.

    "태주한테도 초대권 줬으니까 태주네 부모님이랑 같이 오셔도 좋을 거 같아요."

    "어머, 그랬니? 그럼 내일 언니랑 이야기해 봐야겠다."

    서정원은 요즘 태주네 어머니와 언니동생할 만큼 사이가 좋다.

    부쩍 성장하는 회사 일을 함께 하다 보니 자연스레 사이가 좋아진 것이다.

    함께 오면 더 좋을 것이다.

    "먼저 말씀드린 건데, 아마 내일이면 기사도 날 거예요."

    * * * *

    도진의 말대로 다음날 세계 장인 박람회에 관한 기사가 쏟아졌다.

    -특보! 최초로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 장인 박람회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무대가 있다!

    -세계 장인 박람회, 후기지수들의 무대를 메인으로!

    -세계 장인 박람회의 무대에 서는 한국의 후기지수는 잠룡, 빙봉, 미룡!

    -세계 장인 박람회의 무대에 잠룡과 빙봉, 미룡이 선다!

    한국에서 처음 열리는 세계 장인 박람회.

    우벽진이 중심이 될 박람회였기에 안 그래도 관심이 뜨거웠는데 거기에 새로운 장작이, 그것도 아주 잘 타는 장작이 추가되었다.

    본래 세계 장인 박람회의 무대는 도진이 말했듯 '무기로 하는 패션쇼' 같은 느낌이었다.

    톡 까놓고 말해 '그 기괴하고 난해한 패션 센스'로 인해 몰입하지 못할 패션쇼와는 다르다 해도 역시나 '재미'라는 측면에서는 부족함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한데 그 재미가 이번 세계 장인 박람회에 더해지게 되었으니 메인 무대가 재미없는 런웨이 대신 각국의 후기지수들이 모델이 되어 단체로 '경쟁'을 하는 그림이 나올 거라는 게 알려졌다.

    이것은 그야말로 월드컵이나 올림픽에 비할 수 있을 만큼의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다.

    -와, 이게 뭐냐. 솔까 뽕이 좀 차긴 했어도 볼 생각은 없었는데 무슨ㅋㅋㅋ

    -단체비무라고 하니 후기지수들끼리 분명히 기싸움 조낸 할 거임ㅋㅋㅋ 와 개꿀잼이겠는데 ㅋㅋㅋ

    그들 또한 알고 있었다.

    갑자기 혜성처럼 등장한 우벽진과 그에게 라이벌 의식을 가진 '기존의 강자들'의 구도를 말이다.

    필연적으로 이번 세계 장인 박람회의 후기지수들로 채워진 무대는 그 구도 하에 재미있을 수밖에 없다!

    -와! 후기지수 대결! 와! 표! 산다!

    -어ㅋ무리 ㅋㅋ 이미 매진됨ㅋㅋㅋㅋ

    -?시발?

    -뭐야시발팔아줘요.

    -첫 기사 떴을 때 이미 서버 다운되고 난리났었음ㅋㅋㅋㅋㅋ

    -않이이게무슨짓거리야 문열어

    그들은 크게 기대하며 표를 사려 했으나 그것은 이미 번개같이 매진되어 아우성으로 커뮤니티가 가득찼다.

    -속보! 2차로 표 판다고 함ㅋㅋㅋ 대기타셈ㅋㅋㅋ

    -아 ㅋㅋ 딱대! RTX 표 대리예매 셔틀하던 실력 풀로 발휘한다 ㅋㅋㅋ

    -아니 도대체 학교 생활을 어케 하길래 남돌 표 대리 예매를 셔틀하냐?

    -묻지마 시**아.

    -엌ㅋㅋㅋㅋ

    그 아우성을 잠재우려는 듯 2차로 표를 예매한다는 기사가 뜨고 그것만으로도 들썩일 만큼, 이번 세계 장인 박람회에 대한 관심은 뜨거웠다.

    그리고 그 관심의 불길은 당연하게도 이번에 참가하는 후기지수들에게로 옮겨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잠룡이 참가하는데 이미 한국 우승 확정 아님?ㅋㅋㅋ

    -아 ㅋㅋ 의심할 필요 없습니다. 도멘-

    -도멘-

    -미안하지만 이번만큼은 프랑스를 응원하기로 했다.

    -??

    -프랑스에는 잔 다르크가 있워요. (클릭해서 사진 보기)

    -? 뭐지? 왜 천사가 있는 것이지?

    당연히 잠룡이 포함된 한국을 응원해야 한다는 의견에 대치되는 댓글.

    비난이 쏟아질 법도 했으나 곧 술렁이고 말았으니 첨부된 사진의 인물인 금발벽안의 소녀가 너무나 예뻤기 때문이다.

    -클로에 덴젤이라고, 이쪽 업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프랑스의 후기지수임.

    클로에 덴젤.

    프랑스를 대표하는 명장인 안토니오 덴젤의 양녀로 한국인을 기준으로 했을 때 한국에 우서진이 있다면 프랑스엔 클로에 덴젤이 있다, 고 할 수 있는 후기지수였다.

    본래 고아로 뒷골목을 전전하던 거지 소녀였던 그녀는 안토니오 덴젤의 호주머니를 노리다 붙잡혔다.

    그리고 안토니오가 클로에의 재능을 알아보고 수양딸로 삼았는데 그녀는 그 은혜에 보답하듯 프랑스를 대표하는 후기지수이자 명장의 수제자로 자라난 것이다.

    그 스토리와 인형 같은 외모는 당연히 프랑스 내에서 폭발적인 인기와 명성을 자랑했는데 한국에도 그 이야기는 몰라도 사진만큼은 본 사람이 여럿 있을 정도였다.

    -와.. 얘가 그 금발 엘프녀였음?;; ㅁㅊ

    -ㅈㅅ 잠시만 도진교 탈퇴함;;

    -야이 미친 배신자색기들아 같이 가;;

    -저저저 얼빠 색기들;;

    잠시 소요가 이는 가운데 누군가 진지하게 말했다.

    -진지빨고 말해서, 클로에 얘 진짜 괴물이라고 소문이 자자함. 우리한테는 잘 안 알려져 있는데 유럽 전체에서 인정할 정도로 대단한 후기지수임.

    -외모랑 다르게 완전 인간 불도저, 인간 흉기라고까지 불리더라;; 괜히 별명이 잔 다크르가 아니라고.

    -덴젤 아틀리에라고 하면 누구나 인정하는 공방이잖아. 거기서 아무나 내놓을 리가 없지.

    -중국이나 일본, 미국도 사실 만만치는 않지.

    중국은 국가에서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자하여 인프라를 구축하고 인재를 양성했다.

    그에 힘입어 업계의 주류가 될 수 있을 만한 인재풀을 갖췄다.

    일본은 특유의 장인 문화와 대를 이어 가업을 계승하는 방식으로 깊은 저력과 높은 퀄리티를 자랑했다.

    이들이 선정한 후기지수와 각 공방의 후계자들 또한 나라에서 손꼽히는 자들이라는 건 굳이 볼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공방만이 아니라 나라의 자존심까지 걸린 일이 되어가는 양상이었으니 더더욱.

    -내가 볼 땐 미국이 제일 칼갈고 있을 거 같음.

    -ㅇㅇ 동감임. 저번 경매 때 콩등한 게 미국이었으니까.

    -콩등한 미국쪽 명장이랑 우 명장 사이가 안 좋은 건 이미 유명한 이야기지.

    -오, 그럼 개꿀잼 기싸움 볼 수 있는 거임?

    -그건 이미 사전 미팅 때부터 있을 테고 우리는 못 보겠지 ㅋㅋㅋ 우리가 볼 수 있는 건 결과뿐임.

    -아.. ㅁㅊ;; 비하인드 영상 같은 거 촬영해주면 안 되나?

    -헐 그거 개쩌는 아이디어네 ㅋㅋㅋ

    -ㄹㅇ 그런 거 촬영해서 팔면 백 만원이라도 산다.

    각 공방, 더 나아가면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후기지수들의 기 싸움.

    당연한 이야기지만 그게 아니더라도 그 나이대의 후기지수들이 모인 자리였으니 기 싸움은 자연스레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 기 싸움을 한국은 물론 각국의 커뮤니티에서 관심을 가지는 가운데 드디어 그들이 처음으로 모이는 날이 밝았다.

    * * * *

    주말.

    이른 아침부터 각국의 유명인들이 공항에 속속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그 신분을 몰라도 눈이 갈 수밖에 없는 특별한 아우라를 풍기는 외국인들은 다름 아닌 세계 장인 박람회에 참석하기 위해 한국에 입국한 유명 공방 소속의 사람들이었다.

    핵심 인물들이야 기일이 임박해서 도착하겠지만 그 아래 준비를 해야 할 사람들은 조금 더 일찍 모여야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 세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는 후기지수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오, 저 학생……이 존앤집스의 후기지수군요."

    "학생이란 단어가 저렇게 어색하기 힘들 텐데, 대단하네요."

    진을 치고 있던 기자들이 수군거린다.

    그 대상은 거대한 흑표범 같은 이미지의 흑인 남학생이었다.

    '프레임이 다르다'고 하던가.

    그는 분명히 후기지수라 불리는 고등학생이었건만 그 학생이란 단어가 기자들의 말처럼 어색할 만큼 완숙한 무림인으로 보였다.

    키가 크고 빈틈없이 거대한 근육으로 들어차 있으나 결코 둔중해 보이지 않으니 프레임, 골격부터가 일반인과 비할 수 없을 만큼 차별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흑표범.

    그는 미국에서 '블랙 레오파드'라는 별호로 불리는 후기지수로 이번 세계 장인 박람회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공방인 존앤집스의 대표로 낙점되었다.

    하얀 이를 드러내며 씨익 웃는 그의 곁에서 존앤집스의 관계자가 말했다.

    "자신있게 해도 돼. 더 말 안 해도 알겠지, 빌리?"

    그의 말에 블랙 레오파드, 빌리 플로이드는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

    "걱정말아요, 제리. 나는 그들을 적수로도 생각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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