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317화 (317/741)

316화

도진의 전생 학창 시절을 시궁창으로 만들었던 주범은 강치환이다.

그 강치환은 현생에서 도진에 의해 죄가 낱낱이 드러나며 무림맹으로 끌려가 죗값을 치르고 있다.

징역 30년.

그것도 단순 징역이 아니라 무공을 익힌 '무림인'을 대상으로 한 징역 30년이다.

무림이 현대에 섞이며 덮어놓고 인권 타령을 하던 자들의 목소리는 힘을 잃었고 그로 인해 징역형은, 특히 흉악범의 징역형은 가혹했다.

강치환은 여기서 그냥도 아니고 모범수로 인정받아야만 단전 파괴를 피하고 출소할 수 있었다.

그렇게 단전 파괴를 피한다 해도 끝이 아니니 출소 후 10년간 특수 감찰 대상으로 단 한 번의 문제도 일으키지 않아야만 비로소 '일반 시민'으로 인정받는다.

사람은 결코 쉽게 변할 수 없는데, 과연 강치환이 그렇게 일반 시민이 될 수 있을까.

도진은 어렵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렇게 인간 말종인 강치환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던 인물이 바로 '철중권(鐵重拳)' 양원치였다.

강치환이 익혔던 철중권을 가르쳤던 인물로 무림 르네상스 이후 괜찮은 고유 무공의 소유자로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무공과 같은 별호인 철중권이 나름 퍼져 있던 무림인이었다.

나쁘지 않은 고유 무공을 어느 정도 수준급으로 익혔고 당시만 해도 무림인이라면 어쨌든 대우받던 시기였으니 기회만 잡았다면 꽤 괜찮은 삶을 살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지 못하고 이내 '급'에 맞지 않는, 문월고의 부패교사가 되었으니 그 성격이 문제였다.

강치환을 제자로 삼은 데서 그 인성이 보이니 끼리끼리 논다고 양원치 또한 한 마디로 '상종을 못할 놈'이었다.

편협하고 폭력적. 무림 르네상스 이후 아직은 혼란이 가라앉지 않은 시기가 아니었다면 벌써 무림맹으로 끌려갔을 거라는 소리마저 듣던 인간이었으니 그나마 실력이 아니었다면 문월고 교사조차 되지 못했을 자였다.

바로 그 양원치의 이름이, 서류 중 하나에 있었다.

어디까지나 조금 쓸만한 실력이 있을 뿐인 자.

실력만이 아닌 명성 또한 동반되지 않고서야 발을 들이지 못할 이곳 숭무고에 있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기에 도진은 어째서 그 이름이 있나 서류를 살펴 보았고 이내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제자를 찾겠다고.'

서류에는 철중권 양원치의 제자를 찾기 위한 특별 수업이 배정될 예정이라 적혀 있었다.

그러니까 다른 것도 아니고 철중권이란 괜찮은 고유 무공을 전수할 제자를 찾겠다는 말로 수업을 따냈다는 것이다.

강치환이 제자 구실을 못하게 되었으니 그 대체제를, '노후를 기대할 만한 제자'를 구해 보려는 의도가 보였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상가와 무가의 구분이 없어질 거라고 전문가들은 입모아 말했으며 많은 사람들 또한 거기에 동의했다.

그런 시대에 대비하기 위해 능력 있는 집단은 구분없이 무공의 수집에 노력을 기울이는 추세였다.

바로 그런 능력 있는 집단의 자제들이 다니는 숭무고와 숭무영재고에 괜찮은 무공을 전수할 제자를 찾겠다는 무림인이 나타났으니 그 인물에 관한 문제는 제쳐두고 수업을 배정해 준 것이다.

무공이 아쉽지 않은 집단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인물에 대한 문제는 제쳐두고 상당한 경쟁이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도진이었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네.'

양원치에 관해서는, 따지고 보면 '직접적인 원한'은 없었다.

강치환에게 철중권을 전수한 문월고의 부패교사.

허나 그가 직접적으로 도진과 부딪친 적은 없었기에.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충실하게 살았던 도진은 굳이 양원치에게까지 죗값을 묻기 위해 시간을 할애하지 않았던 것이다.

한데 그 양원치가 제 발로 이렇게 숭무고에 찾아왔다.

스승으로서 제자의 복수를 하겠다는 의도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이제 양원치는 감히 도진에게 댈 급이 되지 않으니까.

다만 그래.

굳이 버려 두었던 인연의 한 줄기가 이렇게 닿았으니 어쩌면, 만나는 부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도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도진은 미미하게 웃고선 고개를 들었고 그런 도진을 한유아와 유지은, 그리고 나지윤의 시선이 스쳐갔다.

도진에게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으면서 많은 정보를 알고 있는 셋은 그 웃음에 깃든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2학기에 있을지 모를 사건의 불씨를 두고 시간은 흘러갔고 방과후 어느날 도진에게 영상 통화가 한 통 걸려왔다.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나요?

초승달처럼 휘어지는 눈웃음이 인상적인, 우서진을 닮은 신비한 외모의 그녀는 다름 아닌 우서연이었다.

중학교를 마치고 미국으로 건너가 공부했으며 명성공방의 경영전략 팀에서 일하던 그녀는 이제 스무살이 되어 본격적으로 일을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참여하고 있는 프로젝트가 바로.

-설란 런칭 프로젝트에 관한 일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으면 해서 연락 드렸어요.

명장 우벽진의 차기 작품인 '설란'의 런칭에 관한 프로젝트였다.

"예, 오랜만이네요. 안녕하세요."

우서진과 달리 그녀는 자주 볼 수 없었는데, 아무래도 이렇다 할 접점이 없는데다 그녀는 공방의 일에 매진하느라 본가에서 나와 따로 지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성숙해진 그녀는 액정 너머로도 완연한 커리어 우먼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그녀는 청순한 외모와 달리 할아버지의 피를 진하게 이어 호쾌한 성격으로 길게 이야기를 끌어가지 않고 약속을 잡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 주말에 뵙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때 뵐게요."

* * * *

짧은 통화로 잡았던 약속날인 토요일.

도진은 상미와 함께 집앞에서 우서진, 우서연 남매를 마주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인사를 나누는 도진을 포함한 네 사람이 오늘 일정을 함께 할 일행이었다.

"타세요."

우서연이 운전하는, 그녀의 성격을 반영하듯 공격적인 디자인의 대형 SUV를 타고 숭무동을 나가 명성공방 내에 있는 우벽진의 공방으로 향했다.

본래 대한민국에서 손꼽히던 명성공방은 세계로 퍼져 나가는 명성을 보여주듯 크게 확장하고 있었는데 그 중심에 우벽진의 공방이 있었다.

"어서오게."

명장의 열기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클래식한 공방 내에서 우벽진이 양팔을 펼쳐 일행을 맞이해 주었다.

"오래 기다렸어. 이게 바로 자네에게 주기로 했던 난상(蘭霜)이야."

그리고 우벽진은 거두절미하고 바로 설란 시리즈의 화룡점정 중 한 점을 상미에게 건넸다.

사아…….

상미는 받아든 검에서 퍼지는 차갑지만 결코 꺼려지지 않는 냉기와 은은한 향기에 아, 하고 낮은 감탄성을 내뱉었다.

당연하다는 듯 손에 익는 질감.

그리고 거기서부터 이어지는 일체감이 감탄성을 내뱉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그토록 발달한 현대 과학으로도 규명할 수 없는 명품을 만들어내는 사람을 명장으로 부른다 했던가.

상미는 이 검을 받아들고서야 비로소 그 '명장'이란 이름이 가지는 의미를 알게 된 것 같았다.

설원처럼 새하얀 가운데 은은하게 존재감을 발하는 녹빛이 설란이란 작품명을 상징한다.

검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 상미였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이것이 그야말로 값을 매길 수 없는 '명검(名劍)'임을.

"그리고 이게 너에게 줄 망치, 상청(霜靑)이란다."

뒤이어 손자를 위해 만든 또 하나의 화룡점정, 상청을 받아든 우서진은 그저 아득히 감탄했다.

'이게…… 할아버지의 지금.'

상청은 설란 시리즈의 또 하나의 화룡점정으로 우벽진이 도진에게 손자가 목숨을 구함 받았던 그날의 감정을 반추하며 벼려낸 망치였다.

겨울이 가고 이내 봄이 찾아왔던 그날을 망치에 담아 두드리고 또 두드려 만들어낸, 설원에 피어난 죽순과도 같은 빛이 상청에는 깃들어 있었다.

우벽진에게 무공만이 아닌 대장장이로서의 가르침도 받고 있는 우서진이기에 알 수 있었다.

이것은, 그야말로 아득한.

마치 하늘 위의 구름 같은 잡을 수 없을 것만 같은 경지였다.

그러나 우서진은 절망하지 않았다.

도진에 의해 새로운 삶을 살게 된 그 역시, 길이 보이지 않으면 그 길을 만들어서라도 갈 의지가 있었기 때문에.

그의 할아버지가 그랬듯 설령 그곳이 하늘이라도 말이다.

우서진 또한 우상이 된 사람이 목표로 하고 있는 하늘 너머에 가기 위해 매진하고 있었으니 하늘 위의 구름이라면 오히려 더 좋았다.

"…할아버지."

"오냐."

"제가 꼭 따라잡을게요. 따라잡아서, 형이 쓸 검은 제가 만들도록 할게요."

"푸하하하! 요놈아, 대뜸 선전포고냐."

그야말로 선전포고.

그러나 우벽진은 오히려 그런 손자의 모습이 너무나 기꺼워 크게 웃었다.

아끼는 손자이자 제자가 스승과의 거리를 실감하고도 오히려 의욕을 불태우는데 어찌 기껍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손지간의 훈훈한 모습을 보며 상미 또한 난상을 꾸욱 쥔 채 다짐했다.

'오빠를 위해 이 검에 어울리는, 아니 더 대단한 무인이 되어야 해.'

그녀의 구세주는 분명히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사람이 될 것이었다.

그 미래는 그녀에게 있어 해가 동쪽에서 떠 서쪽으로 지는 것보다 더 당연한 진리였으니 상미는 그런 구세주가 사소한 것에 신경쓰지 않을 수 있도록 옆에서 조력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그런 다짐을 하는 상미를 지나 상미가 쥔 난상을 보며 도진은 자신의 백설과 대조하고선 스윽 웃었다.

'실력이 많이 느셨네.'

높은 경지로 갈수록 더 나아가기 위한 한 걸음은 제곱으로 어려워지는 법이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명장 우벽진의 한 걸음에 과연 얼마나 되는 어려움이 동반될지 예상하는 건 그것만으로도 어려운 일이었다.

한데 명장 우벽진은 그 걸음을 하나도 아니고 무려 몇 걸음이나 나아간 곳에 있었다.

아니, 분명히 지금도 쉬지 않고 그 한 걸음을 내딛고 있을 것이었다.

백설과 비교하여 눈부시게 발전한 난상과 상청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허나 그렇다고 하여 백설의 빛이 바래는 건 아니었으니 은은하게 미소짓고 있는 우벽진이 그것을 가장 잘 알아보았다.

'역시 그 검을 자네에게 맡기는 게 정답이었어.'

백설은 그 이름처럼 누구도 밟지 않은 새하얀 벌판이었다.

어떻게 채우느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검.

그것이 바로 백설이었으며 그렇기에 우벽진은 자신이 '하늘'에 닿기 전까지 도진이 쓸 수 있기를 바라며 오랜 세월 벼려낸 검을 맡긴 것이다.

그 판단은 틀리지 않아서, 도진과 함께 한 백설은 분명히 진보한 그의 기술로 탄생한 난상과 상청에 뒤지지 않는 명검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우벽진에게 이쯤이면 되었다는 만족감 대신 더욱 정진해야 한다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그렇게 잠시간 훈훈한 분위기가 퍼져 나가고 이내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공방을 나가 조용한 곳의 둥근 테이블에 모여 앉았다.

우서연이 이해에 도움이 될, 그녀가 직접 정리한 자료가 담긴 서류를 나눠 주었고 코앞으로 다가온 런칭 행사에 관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우서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화이트보드 앞에 서서 말했다.

"음, 우선 말씀드려야 할 게, 이번 런칭 행사에 특별 합동 무대가 하나 추가 되었는데요."

"네."

"아무래도 그 합동 무대 때문에 조금, '서열 정리'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어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