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316화 (316/741)
  • 315화

    그게 뭔데 십덕아!

    인터넷에서 간간이 볼 수 있는, 아싸들의 밈 중 하나가 머릿속에 재생된다.

    얀데레.

    일본에서 넘어온 '그쪽 세계의 용어'로 좋아하는 사람에게 병적으로 집착하고 이내 정상적이지 않은 일을 실행해 버리는 캐릭터로 묘사된다.

    -지금 다른 사람 생각하고 있지?

    -왜 문자 답장 안해?

    일 때문에 지극히 사무적으로 만나는 사람마저 경계하고 수백이 넘는 문자를 보내 놓고선 단 한 통이라도, 심지어 1초라도 답장이 늦으면 발작하는 무시무시한 성격.

    그리고 결국엔.

    -계속…… 함께 있자?

    …라면서 대상을 토막내 냉장고를 집으로 만들어 버리는 짓까지 할 수 있는 게 '얀데레'란 것으로 그쪽 세계에선 통한다.

    애인이란 게 드래곤보다 현실성 있게 취급되는 방구석의 친구들 사이에서는 그것이 매력으로 다가오곤 하지만 사실은 결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는 심각한 성격이다……라는 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고.

    '아이고…….'

    도진은 자신이 스승님들에게 독, 아니 꽤나 오타쿠스런 지식까지 심어드리고 말았구나 하고 생각했다.

    전생의 도진은 필연적으로 방에 처박혀 온갖 게임, 만화 등에 심취할 수밖에 없었고 거기에는 당연히 오타쿠 문화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을 스승들 또한 고스란히 접하고 말았던 것이다.

    오타쿠 속성(?)이 추가된 고금제일천마 위지혁이 말을 이었다.

    "그렇게 극단적이진 않았다만 아무래도 충성심이 너무 과하다 보니 과유불급이라 부딪침이 없을 수 없었지."

    "그래도 주변 녀석들이 정도의 차이만 있지 비슷비슷한 성격이라 결국은 다들 좋게 지내더구나. 껄껄."

    "아, 예에……."

    아무래도 도진이 생각했던 수준의 캐릭터는 아니었던듯 위지혁은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아니, 잠깐만. 비슷비슷한 성격이었다고?'

    거긴 어떤 지옥인 거지?

    도진은 그런 생각을 했는데.

    "네가 시일이 지나 천마신교의 계승을 선포한다면……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그 후예가 나타날지도 모를 일이지."

    이어진 말에, 조금 분위기가 묘해졌다.

    "나를 따르던 아이들에게는 모두 특별한 한 수를 전수해 주었다. 그 시대가 언제인지도 모를 만큼 미궁에 빠진 시기라지만, 그래도 발굴되는 것들이 있지 않더냐. 어쩌면, 정말로 어쩌면 그 연원과 무공이 전수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지."

    "……예."

    현대에 '무림(武林)'이 등장한 건 그 시대가 실존했음을 증명하는 '유물'들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여전히 정확한 시기를 알 수 없고 전체적인 윤곽마저 그리기 힘들 만큼 한정적이지만 그래도 분명히, 꾸준하게 흔적들은 발굴되고 있었다.

    그렇다면.

    스승의 말대로 정말로, 열화되고 풍화되었을지언정 그 맥이 이어져 온 경우 또한 있을지 모르고 거기에 천마신교의 후예가 포함될 수도 있는 일이다.

    스승은 간단히 얘기했지만 혹시나 하는 기대가 옅게 묻어나 있던 것을 도진은 장호에게 배운 것들을 통해 읽어낼 수 있었다.

    "혹시라도 그런 아이들을 만난다면, 상황이 된다면 거두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예, 스승님."

    스승의 말에 도진은 힘주어 대답했다.

    그리고 조금 분위기를 환기하듯 다른 인물에 대해 물었다.

    "그러고 보면 그 공주님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스승님."

    "음. 취아 말이구나."

    어쩐지 부르는 호칭이 보통이 아니다.

    독마 하연화에 대해 말할 때도 그랬지만 이쪽도 보통 이상의 관계였음을 짐작할 수 있을 만큼의 감정이 담겨 있다.

    "그 아이는…… 천마신교에 감화된 공주였다."

    천마신교. 그리고 황실.

    둘은 결코 양립할 수 없는 집단이었다.

    한쪽은 황족, 다른 한쪽은 그 황족을 인정하지 않는 이념을 가진 집단이었으니 말이다.

    혼란기에 일어나 들불처럼 번진 천마신교와 황실은 그래서 서로 피흘리며 싸웠고 천마신교가 천산으로 떠나 몸을 숨기며 '휴전'을 한 것이 위지혁이 교주가 되기 전 역사였다.

    그 후로 황실과 정파가 천마신교를 음해하기 위해 온갖 수작을 부리며 그들에게 '마교'란 이름이 붙었고.

    "내가 교주가 되었을 땐, 그래도 조금 분위기가 완화되었다."

    천하제일인을 넘어 고금제일인.

    고금제일천마로까지 불린 위지혁의 등장은 위선적이고 뻔뻔하기 짝이 없던 정파의 인사들마저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없게 만들었다.

    여기에 도(道)에 어긋나지 않았던 위지혁의 행보가 무림친화적이고 온건했던 당대의 황제와도 맞는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입장상 천마신교를 인정할 수는 없었지만 굳이 대립하려 하지도 않았기에 평화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었고 그런 배경 하에 공주 주려취는 천마신교에 관한 정보를 접할 수 있었다.

    "취아는 황제, 평락제(平樂帝)가 말년에 얻은 막내딸로 총애를 받았지. 그러나 일찌감치 권력에 뜻이 없음을 천명하며 바깥에 관심을 두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황실 내의 암투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바깥이 다름 아닌 무림이었던 것이다.

    위지혁이 흣, 웃으며 말했다.

    "정체를 감춘, 그러나 뛰어난 무공 실력을 가지고 활보하던 취아를 무림에서는 비봉이라 불렀느니라."

    비봉(秘鳳).

    우연스럽게도 그녀의 별호는 현대의 소담과 같았다.

    어쩐지, 특별한 수련에서의 안내 음성이 소담이더라니 이게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생각한 도진이었고 그것은 정답이었다.

    "그렇게 황실보다 무림, 그리고 민초와 가까웠던 취아는 천마신교에 감화되었고…… 그 때문에 황실에서 존재가 지워지고 말았다."

    황실과 천마신교 사이의 평화적인 분위기는 황위찬탈, 그러니까 쿠데타 때문에 반전되어 초기만큼이나 험악해지고 말았다.

    주려취의 삼촌이 황제를 참칭하며 반란을 일으켰고 그것이 성공하고 말았다.

    수많은 황족이 죽었고, 그렇게 황제가 된 자는 자신의 권위를 위해 천마신교를 더더욱 배척한 것이다.

    주려취는 그런 아버지의 원수를 용서할 수 없었고 새로이 황제가 된 삼촌 또한 그녀가 천마신교를 가까이 했음을 알고 있었기에 그를 빌미로 존재를 지워 버렸다.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느낌이지 않느냐."

    심각해지려는 분위기를 무마하듯 위지혁은 웃으며, 거기까지만 말했다.

    도진은 그 다음의 이야기를 묻지 않고 예,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휴식은 여기까지 하고 그럼 오늘은 독에 관한 이론과 실전 수업을 좀 해보면 좋을 것 같구나."

    "예. 잘 부탁드립니다."

    * * * *

    특별한 수련이 있었던 토요일, 그리고 평범하게 보낸 일요일이 지나 월요일 아침이 되었다.

    수련 겸 솜이의 산책을 끝낸 도진이 학교를 향해 걸으며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한 손에 들고 조작하기엔 조금 큰 휴대폰.

    그러나 도진은 서커스하듯 한 손으로 휴대폰을 허공에서 자유자재로 조작하고 있었으니 수공(手功)의 응용이다.

    그런 재주를 부리며 도진이 휴대폰으로 하고 있는 건 다름 아닌 검색.

    그리고 검색하는 단어는 바로 '주려취'였다.

    -'주려취'에 대한 검색 결과가 없습니다.

    '역시 이렇게 되나.'

    여기저기 사이트를 옮겨가며 검색을 해 본 도진.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비슷한 내용은 커녕 아예 검색 결과가 없다는 창을 띄우는 사이트가 부지기수였다.

    그나마 몇몇 결과라도 표시한 사이트 역시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내용뿐이었다.

    '평락제' 역시 마찬가지였으며 천마신교의 독마 하연화에 대한 내용 또한 당연히 찾을 수 없었다.

    주려취는 황실에서 존재가 지워졌다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무슨 전설로라도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지 않을까 싶었는데 어림도 없었다.

    '…중국 정부의 기밀문서 같은 데엔 혹시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마저 해 본 도진이었지만 당연히 그런 문서를 볼 방법 같은 건 없었으니 이 이야기는 이쯤에서 접어두어야 할 것 같았다.

    도진은 결론에 따라 휴대폰을 넣고 걸음을 조금 빨리하여 기숙사로 향했다.

    등교 준비를 마치고 다시 벚꽃길로 나오니 약속처럼 나무 아래 소담이 미소지으며 서 있었다.

    "안녕."

    "응, 안녕."

    일상이 된 하루의 시작. 도진이 웃으며 먼저 물었다.

    "본가에는 잘 다녀왔어?"

    "응."

    본가(本家).

    본래 주말에도 기숙사에만 머물던 소담에게도 다시 본가가 생겼으니 다름 아닌 암산서가의 가족들이 머물고 있는 새로운 집이다.

    문주를, 아버지를 기다리기 위한 새로운 보금자리.

    소담은 이제 주말이 되면 그 보금자리에서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 안에는 도진과 공유하는 시간 또한 있었으니 암산서가가 잠룡문과 함께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진과 공유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또 깊어진 소담은 그만큼 도진에게 향하는 마음 또한 커져 있었다.

    그런 이유로 지긋이 바라보는 소담의 시선에 도진이 웃으며 손을 움직였다.

    "냐아앙."

    어깨에 앉아 있던 솜이를 품에 안는다.

    그리고 안 그래도 가까웠던 거리를 조금 더 좁혀 어깨가 닿을 만큼 소담과 가까워졌다.

    "자. 쓰다듬어도 돼."

    "……응."

    소담은 솜이 때문인듯 볼을 발갛게 물들이며 그 보드라운 등을 쓰다듬었다.

    마치 꽃이 핀 난초처럼 풍기는 체향과 조심스레 닿는 체온과 보드라움.

    도진은 솜이를 쓰다듬느라 다가온 소담의 그것들을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함께 걸어 집행부실에 도착했다.

    "안녕하세요."

    "응, 안녕."

    "안녕하세요, 선배!"

    "그래. 일찍 왔네."

    선배들, 후배들, 그리고 동기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그리고 도진은 모닝 커피와 함께 조금의 여유가 있어 보이는 한유아에게로 다가갔다.

    "선배."

    "응?"

    "혹시 들을 만한 독공 수업 알고 계세요?"

    "독공? 흥미 생긴 거야?"

    "네, 조금요."

    "흐응……."

    한유아는 입술로 매력적인 선을 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독공은 마이너한 장르지만 폭넓게 무림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의외로 필수처럼 선택하는 무공이기도 했다.

    초식이 아닌 육식에서는 특히, 현대 화기 이상으로 위협적인 게 바로 독이었으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도진이라면 충분히 꺼낼 수 있을 법한 화제였다.

    "마침 2학기에 들어볼 만한 외부 초청 강사님이 있어."

    "외부 초청 강사님이요?"

    "응. 베이징고등무림학교를 수료하고 거기서 연구까지 진행하던 분이 마침 다음 학기에 특별 수업을 여시기로 했거든."

    "오. 베이징고등무림학교."

    한유아의 말에 곁에 있던 오대용이 감탄했다.

    베이징고등무림학교.

    한 마디로 중국의 숭무고 같은, 중국을 대표하는 무림 교육 기관 중 한곳이었으니 그곳에서 수료하고 연구까지 진행했다는 사람의 실력과 지식은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독공 수업이니까 특별 수업이라 해도 경쟁이 그렇게까지 심하진 않을 거야. 뭐 다른 추천 수업도 없는 건 아닌데, 하나만 선택할 거라면 여기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아."

    "그렇네요. 역시 선배네요. 감사합니다."

    다른 곳도 아닌 숭무고의 학생들이다.

    학생이라 해도 이들의 스케쥴은 주먹구구식이 아니니 극단적일 경우 3년의 계획이 이미 다 짜여 있는 학생마저 있다.

    그런 그들을 위해 학교에서는 미리 여러 정보를 공지하곤 하는데 이렇게 특별 수업에 관한 정보 또한 그러했다.

    한유아는 미리 꿰고 있던 그런 정보들 중 하나를 도진에게 알려준 것이다.

    그에 감사를 표시하며 도진은 혹여 더 눈여겨 볼 만한 정보가 있나 싶어 관련 서류를 살펴보았고, 이내 시선을 멈추게 만드는 이름 하나를 보게 되었다.

    '…이 사람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