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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15화 (315/741)
  • 314화

    무인으로서 보통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놀랍게도 도진은 자신의 전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르고 있었다.

    도진이 다름 아닌 천마심공의 4성 끝자락에 머물러 있기에 생긴 일로, 5성에 이르기 전의 도진은 결코 전력을 다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천마기의 단순 보유량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허나 그 가진 천마기를 온전히 행사하였을 때의 위력이 어느 정도일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크아아아아아!!"

    도진은 4성을 넘어, 심지어 5성의 경지마저 넘어서 제한없이 폭주하는 상상을 초월하는 위력의 천마기를 맞상대하고 있었다.

    꽈아아아아앙!!

    한정없이 덩치를 불린 흉포한 괴물이 몸을 짓이기기 위해 휘두른 앞발을 받아친 것만 같다.

    천마기가 제어없이 미쳐 날뛰는 건 이런 느낌이구나.

    그것을 체감하며 도진은 이를 악물었다.

    뿌득-!

    연신극기공으로 단련된 몸에 가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천마기를 동원하였음에도 육체가 위험한 소리를 내며 삐걱였다.

    백설이 지이잉 울고 충격이 삐걱이는 몸을 중구난방으로 새어나간다.

    만약 천마군림을 통하여 연결된 자연지기로 내공을 보충하고 육체에 활력을 더하지 못했다면 몇 수 나누기도 전에 도진은 패배하였을 만큼 마인이 되어 버린 중년인은 압도적인 파괴력을 쏟아내고 있었다.

    '…강해.'

    만약 단신으로 무림 전체를 피로 물들일 마인을 등장시킨 무협 소설이 있다면.

    그리고 그 무협 소설에서 마인이 날뛰는 장면에 떨어진다면 이럴까 싶은 느낌이다.

    옳은 신념만이 신념은 아니다.

    악한 신념도 얼마든지 신념이 될 수 있으며 단단해질 수 있다.

    지금 눈앞에 천마가 되지 못한 마인이 그러했다.

    뒤틀리고 흉포한 신념이지만 평생에 걸쳐 켜켜이 쌓이고 단단해진 신념은 그를 천마기와 일체화함으로써 지극히 높은 경지에 보내 버렸다.

    지금 도진은 엄두도 내지 못할 만큼 높은 곳에.

    '…하지만 이길 수 있어.'

    하지만 그런 중년인을 상대로 도진은 승리를 확신했다.

    꽈아아아앙-!

    비록 육체가 삐걱이고 비할 데 없을 만큼 힘의 차이를 느끼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진은 무너지지 않았다.

    극한의 상황에서 삐걱이는 육체를 가지고도 가진 최선을 다하는 건 도진이 일상적으로 해 온 수련과 다르지 않았기에.

    크오오오오오-!

    두웅-!

    그리고 그런 육체에 깃들어 일대를 울리는 도진의 천마기는 '더욱 진화한' 천마기였기에.

    도진이 익힌 건 고금제일천마라고까지 불리던, 하늘에 닿고서 이내 그 너머까지 도달해 버린 위지혁이 인간 수명마저 넘어선 시간 동안 궁구하여 제련해낸 진화한 천마신공이다.

    그 천마신공의 핵심인 천마군림을 습득하고 운용하는 도진은 그렇기에 더 높은 경지에 있는 마인인 중년인을 상대하면서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뿐이었다면 부족했을 것이다.

    버틸 수는 있지만 이기기 위한 걸음을, 격차를 줄여 승리를 확정짓기 위한 검을 닿게 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도진은 수없는 반복을 통하여 조금씩 격차를 줄이기 위한 걸음을 걸으려 했다.

    버릇 하나하나.

    초식 하나하나.

    심지어 무의식 중에 이어지는 호흡마저도 낱낱이 분석하여 그에 관해 알고, 익숙해지고, 완전히 간파함으로써 격차를 메꾸는 것이다.

    한데 그 계획을 위해 각오하고 있던 반복을.

    꿀럭.

    아무래도 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중년인의 드러난 두꺼운 팔뚝에 시커멓게 일어난 핏줄이 꿈틀거린다.

    소름이 돋을 만큼 기괴한 증상과 동시에 도진에게 가해지던 압력이 줄어들었으니 독공의 고수인 여자가 은밀히 하독하여 중년인을 흔든 것이었다.

    이미 도진은 겪었다.

    흉포하기만 한 천마기는 독을 밀어내는 데에는 그리 효과적이지 않음을.

    중년인도 다르지 않았다.

    비록 벽을 뛰어넘어 경지에 이르렀지만 그는 오로지 흉포하기만 한 천마기를 구사했고 그것이 뛰어난 독공의 고수인 여자의 독을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하는 약점이 되었다.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거칠게 휘도는 천마기는 결국 독을 찢어발길 것이고 그에게 해가 되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의 찰나의 순간, 그리고 찰나의 틈이 중년인에게는 결정적인 한 수를 펼치지 못하게 하는 치명적인 방해이자 도진에게 숨을 돌리고 재정비 할 수 있는 크나큰 조력이 되었다.

    여기에.

    꾸우우우웅-!

    "건방진!!"

    장엄하기까지 한 기세가 깃든 찬란한 황금의 용의 형상을 한 검기가 끝없이 중년인이 독으로 인해 드러난 틈을 도진 대신 노렸다.

    황룡무상신공(黃龍無上神功).

    깊이에 있어선 부족하지만 그럼에도 신공이라 불릴 만큼 뛰어난 그 무공은 황족의 무공이 됨으로써 그 가능성을 최대한으로 발휘했다.

    "천벌을 받아라!"

    "흥!"

    노성과 함께 쏟아지는 천마기를 가녀린 공주는 코웃음 치며 오히려 정면에서 부딪쳤다.

    꾸우우우웅-!!

    가슴이 답답해질 만큼 밀도 높고 거대한 폭발음.

    그리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내공의 폭풍 속에서도 주려취는 흔들리지 않았다.

    황제의 딸.

    그런 신분으로 태어난 그녀는 천하에서 온갖 좋은 것들의 정수를 몸에 깃들이며 무공을 익혔고 그 덕분에 비할 데 없이 막강한 내공을 보유하게 됐다.

    그리고 황룡무상신공은 모자란 깊이를 압도적인 내공으로 보충하는 무공.

    두 조합은 당연히 최고의 시너지를 발휘했고 그 나이대에는 감히 가질 수 없는 힘을 주려취는 얻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경지를 넘어선 천마기에는 손색이 있었으나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으니 주려취가 철저하게 독공으로 인한 틈을 노려 하는 공격에 중년인은 조금씩이나마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도진이 화룡점정을 찍었다.

    아무리 두들겨도 절대 쓰러지지 않는 도진의 모습에 중년인은 조금씩 압도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거짓말처럼, 놈은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어째서, 어째서 쓰러지지 않는 거냐!!'

    자신을 부정했던 저주스런 놈의 말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하는 것처럼.

    제아무리 겉으로는 부정해도 마음 속으로는 인정하고 만 '소천마'는 결코 쓰러지지 않고 자신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었다.

    미친듯이 두들기는 천마기를 뚫고.

    그렇게 좁혀지는 거리만큼 중년인이 느끼는 압박감은 커졌고, 그것이 이윽고 치명적인 한 수로 이어지는 길을 만들었다.

    푸우욱-!

    "……!!"

    커지는 중년인의 눈.

    그 눈이 아래로 향하며 단전에 박힌 백설에 꽂혔다.

    "……내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어물거리는 입.

    그러나 그는 이윽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고개를 완전히 떨궜다.

    도진이 무너진 그를 보며 속으로 읊조리듯 말했다.

    '이겼……다.'

    단 한 번도 반복하지 않고 중년인을 이겼다.

    그로 인해 머릿속에서 퍼지는 여러 생각에 잠시 내부에 침잠했던 도진은 이내 고개를 들었고.

    "훌륭하다."

    다음 순간 '무림'이 아닌 자신의 심상세계 위에 서 있었다.

    * * * *

    모습을 드러낸 스승들을 마주하며 도진은 특별한 수련이 끝났음을 깨달았다.

    어쩌면 주말을 다 쓰고도 클리어 못 할 수도 있겠다 싶었던 것을, 단 하루만에 완수해 버렸다.

    도진은 그 경험을 반추하다 물었다.

    "제가 본 것들은…… 위 스승님의 기억에 기반한 것이었습니까?"

    도진의 물음에 위지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대로다. 내 기억을 바탕으로 장 제와 함께 만든 위지혁, 장호표 무림열전 같은 것이었지. 재밌었으냐?"

    "아하하. 예."

    심상세계가 없었다면, 그리고 스승들이 아니었다면 결코 할 수 없었을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그 경험의 재미를 더해주듯 위지혁은 이번 수련의 '비하인드'까지 말해 주었다.

    "독공을 쓰던 그 아이는 무림은 물론이요 황실마저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던 독마(毒魔)가 되었다."

    "독마."

    "그래. 그날로 교에 귀의하였지."

    "그 객잔에 있었던 면면들.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우연이 아니었다."

    세상의 모든 필연은 결국 우연으로 인해 얽히는 것이다.

    모든 일은 우연. 그러나 우연이 모임으로써 '필연'이라 할 만한 우연이 생긴다.

    "독마, 연화는 천마신교와 연이 닿아 있던 전대 독마의 제자였다."

    부모를 잃고 매질까지 당하여 마을 밖에 버려졌던 여자, 하연화를 우연히 전대 독마가 거두었고 그 자질을 알아보고 제자로 삼았다.

    그 사연과 스승으로 인해 하연화는 자연스레 천마신교의 교리에 심취하였고 복수 후 천마신교에 귀의할 결심을 하였다.

    그런 제자를 위해 천마신교에 서신을 보낸 전대 독마였으나…….

    "그 서신이 중간에 배교자(背敎者)들에게 탈취당한 게 일의 발단이었지."

    독마의 제자가 '천벌'을 내리려 한다.

    그 정보를 입수한 배교자들은 이번 대 독마가 될 강력한 고수를 포섭하고자 했고 그를 위해 직접, 배교자들의 핵심이었던 천마가 되지 못한 중년인이 나선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새어나간 정보가 황실의 귀에까지 들어갔으니 바깥으로 나돌던 말괄량이 공주까지 몰래 끼어든 게 그날의 면면이 모인 배경이었지."

    "…그런 배경이었군요."

    처음엔 이 무슨 맵단짠을 다 때려박은 자극적인 음식인가 싶었는데 듣고 보니 제대로 된 과정을 거쳐 나온 결과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도진을 보며 위지혁은 피식 웃고서 툭, 말을 던졌다.

    "네가 이겼던 그 사람은 나의 사촌형이었다. 정말로 인연이 있었던지 고아로 알고 있었던 내가 기적처럼 만난 혈육이었지."

    "……."

    도진은 무어라 말해야 할지 몰라 머뭇거렸다.

    닮은 부분이 많아 설마했는데 정말로 혈육이었다.

    위지혁은 그런 도진을 보고선 웃으며 말했다.

    "자질이 있어 스승님 밑에서 함께 수학했었다. 재능이 나쁘지 않았지만 나와 비교할 수는 없었고…… 그것 때문에 어긋났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는 극단적이었다.

    천마신교의 교리에서 '패(覇)'만을 중요시하였고 중심을 잡아줄 '도(道)'를 경시하였다.

    그것이 그가 길에서 벗어나게 된 원인이었으며 천마의 후계자인 '소천마'라 칭할 자격조차 얻지 못했던 이유였다.

    "그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교를 떠나 배교자가 되었다. 그리고 천마신교의 이름을 더럽혔지. 그를 잡기 위해 나는 직접 그 자리에 나갔으니 본래 네가 있던 자리에는 내가 있었느니라."

    특별한 수련에서 도진이 있었던 자리에 본래는 위지혁이 있었다.

    짐작하고 있던 부분에 도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자리에 위지혁이 있었다면, 사건 또한 상당히 다른 방향으로 진행되었을 것이었다.

    "그는 내가 직접 단전을 폐하고 뇌옥에 가두었다. 그래야만 할 일이었지."

    답이 있지만 그것이 답이 될 수 없는 일.

    위지혁 또한 피할 수 없는 일이었고 그는 그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

    도진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고 제자의 그 모습에 위지혁은 다시 한 번 피식 웃고선 말했다.

    "그리고 연화 그 아이와 잠시 천벌을 내리기 위해 함께 다녔지."

    "천벌이라 하시면."

    "그래. 줄행랑을 놓았던 현령을 포함한, 벌하지 못한 자들을 벌하는 여행이었다."

    사실 객잔에 들어온 순간부터 그들은 독에 중독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연히 그들은 도망칠 수밖에 없었고 일부러 놓아주었던 그들을 추격하며 천벌을 내린 '후일담'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연화는 그 여행에서 나를 꽤 극진하게 대접했지. 교에 귀의하고서도 워낙 지극정성이라 조금 걱정되기는 하였다. 나이는 차는데 영 짝을 찾으려 하지 않아서 말이지."

    "그랬었군요."

    "워낙 충성심이 대단해 조금은 다른 녀석들과 삐걱이기도 했지. 그, 요즘에 그 아이를 설명하는 일본에서 넘어온 단어가 있지 않느냐. 얀데레라고."

    "……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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