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2화
선풍도골(仙風道骨)이라는 단어가 잘 어울리는 풍채의 중년인이다.
다만 날카로운 눈매와 무거우면서도 사나운 기세를 두르고 있어 자비로운 신선이라기보단 계율을 어긴 자를 벌하는 투선(鬪仙)으로서의 이미지가 강하다.
도진은 그 중년인의 얼굴과 분위기, 그리고 느껴지는 '천마기'로 인해 크게 놀라야만 했으니 그가 다름 아닌 젊은 시절의 위지혁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천마신교를 언급하는, 심상세계에서 마주하는 스승이 중년의 나이에는 이랬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모습의 중년인.
여기에 결정적으로 도진보다 높은 경지의 천마기까지 느껴졌다.
조금 다른 부분들이 있고 심상세계의 스승과는 비할 수 없었지만 그래서 더더욱 그런 생각이 강해졌다.
'지금'의 위지혁은, 도진이 알고 있는 위지혁은 심지어 천마신교의 천마로서 지냈던 시절의 위지혁보다 아득히 높은 경지에 있는 무인이었다.
절대고수였던 이승에서의 삶에서 끝나지 않고 영혼으로서 오랜 세월을 궁구하여 완전히 새로운 위지혁만의 천마신공을 만들어냈고 그것을 전수하는 스승의 모습이 도진이 아는 위지혁이다.
그러니까 따져 보면 도진이 아는 위지혁과 비교해 많이 손색이 있는데다 조금 다른 모습이 오히려 고증에도 맞다는 이야기다.
때문에 도진이 놀라 굳어 있는 사이 계단을 내려와 현장의 중심에 들어선 중년인이 현령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모름지기 현령이라면 민초를 굽어살피고 친족이 연관되어 있다면 더더욱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여야 할진대 오히려 부정을 저지르다니."
중년인의 손가락이 마치 칼날처럼 현령을 가리킨다.
"천마신교의 교리는, 저 여자가 아닌 너희를 천벌을 받아야 할 자들로 규정하고 있느니라."
"크, 크윽!"
무형의, 그러나 분명하게 존재하는 무거운 기세에 현령이 비틀거렸다.
중년인은 그렇게 현령을 압박하며 이번엔 여자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너는 고민하거나 죄책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아아……."
마치 계시라도 받은 듯 여자의 탄성이 흘러나온다.
중년인이 그런 여자를 마주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하늘은 결코 자비롭지 않으며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는다. 하늘은 그저 존재할 뿐이며 인간의 바람에 응답하지 않음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직접 악을 심판할 권리가 있는 것이다."
중년인의 시선은 피를 토하며 고통에 허우적거리는 자들을 지나 공포에 질린 병사들, 그리고 이내 다시 현령에게로 향한다.
"사람은 그리하여 가지는 심판의 권리를 지도자에게로 양도하였다. 다수의 권리가 소수에게 집중된 것이다. 그렇다면 소수는 그 권리를 더더욱 무겁게 받아들이고 행사에 신중하고 엄중하여야 하는 법. 하지만 너는 그리하지 않았다."
"으으으……."
옥죄는 날카롭고도 무거운 기세. 가능하다면 눈을 까뒤집고 기절하고 싶은데 오히려 정신은 맑아지기만 하는 미칠 듯한 상황에 현령은 신음했다.
"그렇다면 너는 응당 그에 대한 죗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뿐인가. 너를 감시하지 못한 어사, 더 나아가 도찰원, 최고 책임자인 황제 또한 그 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음이라!"
쿠쿵-!
번개가 치는 듯한 선언이다.
중년인의 말은 담긴 힘과 기세만이 아닌, 내용 또한 범상치 않은 충격을 듣는 자들에게 안겨준다.
황제라니!
그 이름을 가벼이 입에 담는 것만으로도 중죄이거늘 오히려 황제에게 죄가 있다는 선언을 해 버렸다.
그런 그의 발언이, 지금껏 존재를 감추고 있던 이를 자극했다.
"황실에 대한 그 발언, 그냥 넘어갈 수 없군요!"
"공주님!"
벌떡 일어나 외치는 여자.
그리고 그런 여자의 돌발행동에 놀라 소리치는 중년인.
두 사람에게로 시선이 옮겨간다.
면사로 시선을 가린, 그러나 충분히 꿰뚫어 볼 수 있었던 수준이었기에 확인한 여자의 얼굴은 예상대로 앳된 얼굴이었다.
아직 피지 못한, 그러나 만개한다면 세상을 사로잡을 화려한 미래가 보이는 외모다.
총명함이 가득한 반짝이는 눈동자를 통하여 '천하의 주인'이 재물을 아낌없이 풀어 온갖 가장 좋은 것들로 키웠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단지 그렇기 때문에 세상 물정을 잘 모른다는 느낌 또한 공존한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오히려 호위다.
'아니, 거기서 정체를 실토하면 어떡하냐고…….'
보아하니 내놓은 공주도 아니고 제법 사랑을 받는 공주인 것 같은데 그런 공주를 바로 곁에서 호위하는 놈의 수준이 이래도 되는 건가 싶은 도진이었다.
그런 호위에게 공주가 시선을 주지 않은 채 말했다.
"괜찮아요. 이미 다 알고 있었으니까."
"으, 으음……."
제 입으로 정체를 실토한 한심한 호위의 실책과는 별개로 그녀의 말대로였다.
여자도 중년인도 그녀의 난입에 전혀 놀란 기색이 아니다.
심지어 여자는 처음부터 이들이 잠든 척만 하고 있었다는 것까지 파악하고 있었다.
독공의 고수인 그녀가 그들이 가지고 있던, 황실 보물고에서 꺼내 온 피독주(避毒珠)가 작용하는 것을 놓칠 리 만무했으니까.
중년인 또한 마찬가지였다.
황실의 무공이 어떤 것인지 그는 잘 알고 있었고 그 기운을 고수인 그가 읽지 못할 리가 없었다.
숨겨봐야 그들보다 중년인의 경지가 훨씬 높았으니까.
그러니까 그들은 이미 객잔의 테이블에 앉은 순간부터 노출되어 있었다.
또한 그렇기에 중년인의 발언을 공주, 주려취는 용납하지 못해 박차고 일어난 것이었다.
자신의 존재를 알고서도 중년인은 그런 말을 했으니까.
중년인은 자신을 당당하게 마주하는 주려취의 모습에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
"그냥 넘어갈 수 없다면, 어쩔텐가?"
"……."
막상 당당하게 묻자 주려취는 할말이 궁색했다.
그것은 무력에서 밀리기 때문이 아니었다.
또한 그녀의 언변이나 재지가 부족해서도 아니었으니 오히려 그것이 넘치기에 생긴 침묵이었다.
계급사회의 부조리.
그리고 그 부조리를 찌르는 천마신교의 교리에 그녀는, 은밀히 동조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로 인한 침묵에 중년인이 말했다.
"황제를 천자(天子)라고 했던가? 그 말부터가 언어도단이다만 백보 양보하여 인정한다 하여도 내 말은 부정할 수 없음이다."
"무심한 하늘의 아들을 참칭하기 때문인가? 억울한 민초를 돌보지 못하고 권선징악을 실천하지 못하는 자의 어디가 쓸모 있고 귀하단 말인가. 오히려 그 크고도 깊은 죄에 석고대죄하며 목숨으로 고하여도 용서되지 않음이다."
"…감히!"
꽝!
분기탱천하여 박차고 들려던 호위는 그러나 채 진각을 밟기도 전에 중년인의 빠르고 조용한, 그러나 무거운 장풍에 휩쓸려 벽에 처박혔다.
단 한 수.
그 한 수에 어리숙해 보이긴 했으나 실력만큼은 의심의 여지가 없던 자가 무력화되었다.
"……."
싸해지는 분위기.
자리의 분위기를 지배하는 중년인이 다시 현령에게 시선을 향하며 여자에게 말했다.
"너에겐 심판의 권리가 있음이다. 그리고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힘도 있으니 무에 망설일 것이 있단 말인가. 거침없이 심판하도록 하라."
"공정히 일을 처리하지 않았던 현령. 그 현령의 명령에 따라 선과 악을 판별하지 않고 그저 따름으로서 죄를 짓는 병사들. 더 나아가 황제에게까지도!"
그가 선언한다.
천마기를 일으켜 일대를 지배하며.
그 선언은 절대적인 명령과도 같았고 여자는 명령을 충실히 수행하는 신의 사자라도 되려는 듯 손을 움직이려 했다.
현령과 병사들은 처절하게 울리는 생명의 위협에, 그러나 공포에 질려 손 하나 움직이지 못했다.
이대로라면 그들 모두 상상도 못할 고통과 함께 녹아내려 이내 한 줌 핏물이 될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건 좀, 아닌 것 같네요."
조용히 듣고 있던 도진이 나섰다.
* * * *
"……."
여자, 주려취, 그리고 중년인까지 움직일 수 있는 모든 자들의 시선이 목소리를 낸 도진에게로 향했다.
그 시선을 받으며 도진은 담담히 자리에서 일어나 중앙에 섰고 중년인이 물었다.
"무엇이 아니란 말이지?"
중년인의 물음에 도진은 생각을 정리하며 답했다.
"우선은…… 그래요. 이 자리의 병사들을 모두 심판하라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까요?"
그렇게 말하며 도진은 여자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이제 막 스물이 되었을까 싶은 얼굴이다.
현생의 도진보다는 연상이지만 전생을 기준으로 하면 아직 아기라 할 만하다.
"이들 중 당신의 부모님의 억울한 죽음과 직접적으로, 혹은 간접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는 자들이 있나요?"
갑작스런 물음이었다.
굳이 대답을 강요하는 강한 어조도 아니었으나 여자는 충실히 그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젊은 자들 중엔 없나이다."
도진은 고개를 끄덕이고서 중년인과 눈을 맞추었다.
"이분은 연관없는 자들이 휘말리거나 피해를 입지 않도록 일부러 더욱 어려운 용독술로 구분을 했어요. 그런 노력까지 하며 '도(道)'를 지키려 한 사람을, 당신은 살인귀로 만들려 했어요."
꿈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중년인의 천마기가 크게 튀었다.
마치 괴물이 으르렁거리는 것만 같은 흉포함에 현령과 병사들이 몸을 떨었다.
"마치 내가 다 죽이라고 말이라도 한 것처럼 여기는구나."
"결국은 그렇게 되었겠죠. 현령을 죽이고 병사들까지 벌하고 이내는 황제까지 벌하기 위해 폭주했다면."
"천마신교의 교리는 하늘을 대신하여 사람이 사람을 벌하는 걸 죄라 규정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분명한 도(道)가 있습니다. 한데 당신의 말에는 그 도가 없었습니다."
이 일은 의선약가의 본가에서 있었던 '답이 없는 가치 문제'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었다.
하나하나는, 단편적인 상황에서의 답은 분명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그 단편들이 엮인 상황에서의 답은 쉽게 나오지 않는다.
어느 한 부분이 맞으면 어느 한 부분이 어긋나는, 그래서 결코 꼭 들어맞는 게 나오지 않는 일인 것이다.
여자의 경우도 그렇다.
부모님에게 누명을 씌우고 이윽고 옥중에 목숨을 잃게 만든 직접적인 관련자들을 처단하는 건 과연 옳은가.
현대 사회에서는 그것을 '잘못되었다'고 법으로는 규정할 것이다.
이 시대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천마신교에서는 그것을 '옳다'고 한다.
그렇기에 천마신교는 '마(魔)'이며 '마교(魔敎)'라 불리는 걸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마교를 민초들은 지지하고 따르니 그것이 단순한 마(魔)가 아닌 분명한 도(道)가 깃든 '마도(魔道)'이기 때문이다.
그 도에 따라 옳은 것을 궁구하고 또 궁구한 뒤에야 비로소 천마신교는 벌하기 위하여 움직인다.
한데 중년인은 그러지 않았다.
궁구할 것 없이 그저 끝없이 죄를 묻고 피의 길을 걸으라 말했다.
그러니까.
"하하하하!!"
구구궁-!
도진이 쐐기를 박기 전.
중년인은 기세를 담아 웃었다.
"크으윽!"
"아악!"
거기에 담긴 천마기의 흉포한 기세가 듣는 자를 고통스럽게 짓이긴다.
그리하여 이내 무릎 꿇은 자들을 굽어보며, 무릎 꿇지 않은 도진을 노려보며 중년인이 말했다.
"감히, 천마에게 교의 교리를 설파하는 것이냐?"
"헉!"
"흐어억!!"
고통에 무릎 꿇은 자들이 경악했다.
천마(天魔).
천마신교의 지존이자 지주.
그리고 천하제일인(天下第一人).
황제마저 두려워하는 천마라 스스로를 칭하는 중년인의 말에 모두가 경악했다.
본색을 드러난 거대한 천마기가 그들에게서 발언에 관한 의심을 완전히 앗아간다.
그렇게 천마기를 일으킨 중년인의 시선이 여자에게로 향했다.
"천마로서 허(許)하노니. 너는 이들에게 죄를 물을 수 있음이라."
천마의 허락이 떨어졌다.
그러나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왜 그러느냐. 내가 허하였으니 너는 망설일 것이 없다."
다시 한 번 중년인이 말했으나 이번에도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 모습이 중년인을 자극했다.
"감히 천마의 언령을 못 들은 체하는 것이냐!"
쿠웅!
무겁고 흉포한 기세가 말에 실려 여자에게 쏘아진다.
여자는 그에 맞설 기색이 없어 보였고 이대로라면 여자 또한 앞서의 호위처럼 천마기에 난도질당할 상황.
거기에, 또 다른 천마기가 끼어들었다.
콰앙!
무형의 기세가 허공에서 부딪쳐 돌풍을 일으키며 흩어졌다.
"……!"
중년인이 경악하고 그 돌풍에 머리카락이 흩날리는 여자의 앞에 도진이 섰다.
오오오오오-
객잔에 퍼져 나가는 또 다른 천마기의 주인, 도진이 중년인을 마주하며 말했다.
"당신은, 천마가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