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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해서 지존까지-312화 (312/741)

311화

"바로 시작하겠느냐?"

"예, 스승님."

심상세계에서 스승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도진은 바로 수련에 '로그인'했다.

눈 깜빡하는 사이 세계가 바뀌고 도진은 객잔에 앉아 있었다.

이미 음식을 먹고 중독이 된, 몇 번이고 되돌아왔던 바로 그 시점이다.

'여기서부터 시작이구나.'

도진은 이미 해결했던 곳이라 투덜대는 대신 다시 한 번 독을 밀어내는 데 집중했다.

투덜거릴 이유가 없었다.

바로 이것이 스승이 의도했던, 그리고 도진에게 필요했던 수련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천마기에 대해 모르는 게 많았어.'

도진에게 있어 천마기란 '본래 가지고 있던 것'이라 할 수 있을 만큼 자연스러운 기운이었다.

위지혁의 말대로라면 재능.

허나 그것이 4성에 이르면서 조금은 불편하고 경계해야 할 대상이 되어 버렸다.

문제는, 그런 천마기에 대해 도진이 알고 경험한 바가 너무 좁고 얕았다는 것이다.

천마심공의 5성에 이르기 위해 천마기에 관해 궁구하긴 했으나 그것이 피상적이었고 다각적이지 않았음을 이번 수련으로 인해 깨닫게 되었다.

도진만의 잘못은 아니었다.

그럴 수 있을 만한 '환경'이 갖추어지지 않았던 것도 컸다.

때문에 위지혁과 장호는 도진을 위해 이렇게 특별한 환경을 만들어 주었던 것이다.

도진은 그런 스승들의 의도까지 이해함으로써 수련의 효과와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심상세계가 도진에게는 있다.

독 같은, '실전'을 겪기엔 어려운 요소들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 심상세계를 통하여 더욱 다양하고 과감하게 천마기에 관해 알아가야겠다 도진은 생각했다.

당연하다 여기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지극히 높은 차원의 것이지만 반대로 그럼으로 인해 '안다는 것을 모르는' 문제 또한 가지게 되곤 한다.

당연하게 여기기에 앎으로써 익숙해지는 게 아니라, 익숙하기에 앎이라는 과정을 건너뛰어 버리게 되니까.

도진은 스스로가 그런 문제를 가지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고 그 깨달음을 통하여 천마심공의 5성에 또 한 걸음 가까워지는 계기가 될 것이었다.

여기에.

-얼마 전 뒷골목 잡배가 독에 당해 살해당했다는 뉴스가 있지 않았더냐. 그래서 떠올랐지.

'독에 관한 경험과 대처' 그 자체도 위지혁과 장호가 의도한 바였다.

도진은 머지 않아 분명한 강자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런 강자에게는 무력 이외의 여러 수작이 가해질 수 있는 법.

개중 하나가 될 수 있는 독에 관해서도 경험해 두어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 스승들의 의도대로 도진은 이번 경험으로 독에 관한 상당한 내성을 기를 수 있었다.

천마기는 그 자체로 해로운 것을 용납하지 않는 존재.

천마기를 전신에 퍼뜨리는 것만으로도 웬만한 독은 배제할 수 있다.

-이번 수련이 끝나면 그렇게 모은 독을 배출하거나 태우는 법도 알려주도록 하마.

-그 외의 이론과 기술은 내가 알려주마.

그리고 거기에 관한 지식과 기술을, 이번 특훈이 끝나면 스승들에게 배우기로 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우선 한구석에 모아두는 것으로 독의 처리를 마무리하고 도진은 스토리를 진행하기 위해 외부로 신경을 돌렸다.

쿵!

쿵!

하나둘, 드문드문 앉아 있던 객잔 내의 사람들이 정신을 잃고 테이블에 머리를 박았다.

도진과 마찬가지로 마취독과 수면독에 의한 것이었다.

그 안에는 앳되지만 범상치 않은 분위기의 여자와 중년의 남성도 포함되어 있었는데, 이쪽은 정말로 당한 게 아니라 그런 연기를 하는 것임을 도진은 장호에게 배운 눈썰미로 간파할 수 있었다.

'음.'

풀썩.

그 연기에 도진도 동참했다.

몇 번이고 해독을 위해 상황을 반복하며 단편적으로 보고 들은 것들이 있긴 했으나 그것만을 가지고 전면에 나서는 건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닐 터.

그러니까 연기를 하는 그들과 마찬가지로 독에 당한 척 늘어진 채 은밀히 상황을 파악해 보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쿠에에에에엑!!"

"꺼, 꺼걱! 꺼거거걱!!"

"으아아아악!!

중앙의 테이블에 앉아 있던 '단체 손님'들이, 피를 토하며 발작하기 시작했다.

외곽의 손님들과 달리 그들은 그저 마취와 수면으로 끝나지 않았다.

마치 지옥문이 열리고 그 안에서 끊임없이 고통을 당하는 자들처럼.

그들은 심약한 사람은 마주볼 수도 없을 만큼 일그러진 얼굴로 녹고, 썩고, 변질되어 버린 내장의 편린을 피와 함께 쏟아내며 엎어지고 나뒹굴었다.

그들 중 한 명, 이런 말이 어울리진 않겠으나 '비교적 멀쩡한' 남자가 두 눈을 부릅뜨며 객잔의 주인을 노려 보았다.

다름 아닌 무리의 중심으로 보였던 쥐수염의 관리였다.

"네, 네놈! 살인멸구(殺人滅口)하려는 수작이었더냐!"

피를 뿜으며 손가락질하는 그에게 독에 당하지 않은 듯 멀쩡한, 그러나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객잔 주인이 팔과 고개를 미친듯이 저으며 부정했다.

"아,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럴 리가!"

'…거짓말이 아닐 거야.'

도진은 그런 객잔 주인의 부정이 거짓이 아니라 판단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그럴 만한 근거가 여럿 나오기 때문이다.

우선은 정말 살인멸구, 그러니까 죽여 입을 막을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곳에서 일을 진행할 이유부터가 없다.

여기서 이렇게 독살해 버리면 그가 가장 먼저 의심을 받을 것이요 현장을 중심으로 조사가 진행될 것이니까.

심지어 지금은 백주대낮이다.

두 번째로는 독을 이용한 수법 그 자체다.

비록 그 걸은 길이 달라 차이가 있다지만 어쨌든 도진은 무려 위지혁의 천마신공을 수련하고 천마심공이 4성에 이른 무인이었다.

그런 도진마저 느끼지도 못하고 당할 만큼, 알고 난 뒤에도 몇 번이고 시행착오를 거쳐서야 대처할 수 있었던 무시무시한 독이다.

여기에 단독으로는 전혀 독으로 기능하지 않는 것들을 음식에 나누어 섞고 소화되는 과정에서야 은밀히 발동, 기능하도록 만든 독을 '무림'에서 아무나 쓸 수 있을 리가 없다.

하물며 일괄적으로 같은 효과를 발휘한 것도 아니고 외곽과 중앙의 효과가 다르기까지 했다.

그 정도의 용독술(用毒術)로 일어난 일에서 '일반인'인 객잔 주인을 범인이라 보는 건, 아무리 편견없이 생각한다 해도 무리가 있었다.

그러니까 범인은.

"쿠에에에엑!!"

"허, 허허헉!!"

돌연 피를 뿜으며 발작하는 객잔 주인의 뒤에서 천천히 걸어 중심으로 나온, 경악하여 뒷걸음질치는 관리의 앞에 선, 피풍의로 모습을 감추고 있던 여자였다.

사람들이 정신을 잃고 쿵, 쿵 테이블에 머리를 박는 와중에도 태연했던 여자.

대놓고 나 범인이요, 하는 것처럼 혼자서만 아무런 증상이 없었으며 연기할 생각도 없었던 여자.

처음부터 도진이 주시했던 바로 그 여자가 범인이었다.

"누, 누구냐!"

피를 튀기며 피범벅이 된 입으로 쥐수염의 관리가 소리쳤다.

여자는 스르륵, 얼굴을 가리고 있던 피풍의의 모자를 내렸다.

"……!"

사라락.

기다란 검은 머리카락이 해방되어 흩어진다.

그야말로 빨려들 듯 새까만 머리카락은 그렇기에 파르라니 핏줄마저 비치는 새하얀 얼굴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그리고 그 머리카락과 피부만큼이나 검은 눈동자와 흰자위 또한 대비되었다.

빨려들 듯 대비되는 아름다운 얼굴.

그러나 그 아름다움은, 차라리 본능적으로 꺼려지는 악마적인 아름다움이어서 사람을 경계하게 만들었다.

그렇기에 경계하는 쥐수염의 관리에게, 여자가 피처럼 붉은 입술을 열어 물었다.

"나를…… 기억하지 못하시겠습니까?"

"네, 네 년이 누구기에 헛!"

쥐수염의 남자가 소리치다 순간 흠칫했다.

동시에, 아직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던 자들 또한 이어서 무언가를 떠올린 듯 몸을 떨었다.

"너, 너는……!"

이제서야 알겠다는 생존자들의 반응에 여자가 다행이라는 듯, 정말로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예. 기억하시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피가 번지듯 미소짓고선.

"부모님의 원수들이여……."

섬뜩하게 중얼거렸다.

'음.'

수많은 '이야기'를 접했던 도진은 대략적인 배경을 파악할 수 있었다.

부모님을 잃었던 여자아이가 독공의 고수가 되어 피의 복수를 하고 있다.

도진이 거기에 우연히 휘말린 것이 지금 상황인 듯 보였다.

그리고 사건은 거기서 더 확장되었다.

"무슨 일이냐!"

콰아앙!

외침과 함께 객잔의 문이 부서지며 병사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병사들의 도열이 완료되자 가장 마지막으로 화려한 복장에 칼을 찬 남자가 안으로 들어왔다.

"혀, 현령 나리!"

현령.

그러니까 이 마을을 다스리는, 시대적 배경으로 유추하자면 이 마을에서만큼은 황제 못지 않은 권력을 자랑하는 관리였다.

그리고 도진은 상황상 그들이 누군가의 신고에 의해 들이닥친 게 아니라 본래 오기로 되어 있었던 것이라 짐작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했다고 하기엔 지금까지 외부가 너무 조용했기 때문이다.

여기에 중간부터 외부에 병사로 보이는 자의 기척이 기웃거리고 있었고 뒤이어 도착한 현령을 포함한 병사들이 그의 보고를 받고서 한껏 준비를 하고 들이닥치는 것까지 감각으로 파악하고 있었다.

그렇게 들이닥친 현령의 눈이, 독에 당한 듯 널부러진 내부의 풍경에 파르르 떨렸다.

현령의 표정을 눈에 담은 여자의 붉은 입술이 움직였다.

"오셨나이까, 현령 나리."

예를 갖춰 꾸벅, 고개를 숙인다.

그런 여자의 모습에 현령이 다급히 표정 관리를 하고선 버럭 소리쳤다.

"네년이 일으킨 일이더냐?!"

"예, 그렇나이다."

여자는 담담히 대답한다.

현령이 그 모습에 심상찮음을 느끼고선 꿀꺽, 침을 삼킨 뒤 목소리를 조금 낮추어 말했다.

"왜 이런 일을 벌인 것이냐?"

"이들이 소인의 부모님에게 누명을 씌워 죽였기 때문입니다."

"누명……!"

현령의 눈동자가 다시 한 번 흔들렸다.

그 눈동자의 파문 안에는, 분명히 내막을 알고 있다는 정보가 내포되어 있었다.

여자의 붉은 입술이 다시 한 번 피가 번지듯 싱긋 웃었다.

"이자들은 작당하여 소인의 부모님에게 누명을 씌웠고 억울하게 옥살이를 하다 돌아가시게 만들었나이다. 그래서 제가 심판하였습니다."

"……."

"끄, 끄으윽……!"

쥐수염의 남자와 객잔의 주인, 그리고 몇 명이 고통스레 피를 토하며 엎어진 채 비르적거렸다.

몸속이 천천히 녹아내리는 고통 속에서 쉽사리 죽지도 못한 채 그 고통을 계속 강요받는 몰골이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현령이 도둑이 제 발 저리는 것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쳤다.

"네 이년! 감히 현령의 친족을 죽이고도 무사할 줄 알았더냐!"

상대를 압박하듯 강하게 호통쳤으나 여자는 전혀 밀리지 않고, 오히려 목덜미에 서늘한 비수를 들이대듯 바로 되물었다.

"……현령의 친족을 죽이는 건 무사할 수 없는 일이고, 민초의 가족을 죽이는 건 무사할 수 있는 일이더랍니까?"

"뭐, 뭣이라?!"

서늘한 한이 서린 물음에 현령이 주춤했다.

여자가 말했다.

"억울함을 풀고 싶어 어린 계집의 몸으로 관아에 고하고 또 고하였나이다. 하지만 누구 한 명 어린 계집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고 오히려 소란을 일으켰다 하며 곤장을 쳤나이다. 그래서, 직접 복수할 수밖에 없었나이다."

"……."

보아하니 지금 죽지 못하고 고통받고 있는 자들이 핵심 주동자였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가 현령의 친족이었던 탓에 수사가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고 사건을 덮으려고만 했다.

여자는, 그런 사건에 희생된 부부의 딸로 결국 스스로의 힘으로 복수를 했다는 이야기다.

그렇게 독공의 고수가 된 여자가 현령의 눈을 마주했다.

"저는, 잘못을 한 것입니까?"

여자의 기백에 압도된 현령은 이윽고 정신을 차리기 위해 이를 까득 물었다.

"그렇다! 너는 잘못을 한 것이다! 국법이 지엄한데 감히 사적으로 살인을, 그것도 나라의 녹을 먹는 관리의 친족을 살해하였으니 어찌 큰 죄가 아니겠는가!"

잘못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 결코.

그런 생각으로 현령은 힘주어 외쳤고 여자는 결국 그런 대답이냐는 얼굴이었다.

스윽, 긴 소매에 가려져 있던 새하얀 손이 드러났다.

채채챙-!

현령의 손짓에 따라 병사들이 창과 칼을 들었다.

그리고 여자의 붉은 입술이 다시 한 번 열리려 할 때였다.

"참으로 역겨운 자로구나."

"누, 누구냐!"

갑작스레 들여온, 귀에 파고드는 내공이 담긴 목소리에 모두의 고개가 돌아갔다.

나 여기 있다고 분명하게 존재감을 실었기에 모두의 시선이 2층으로 이어진 계단으로 향했다.

계단을 통하여 천천히, 중년의 남자가 걸어 내려오고 있었다.

중간에 개입하여 천마신교를 언급했던 바로 그 중년인이었다.

그리고, 그 남자의 모습을 비로소 제대로 확인한 도진의 눈동자가 크게 흔들렸다.

'……스승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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