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해서 지존까지-309화 (309/741)

308화

김도진은 재능이 없는 사람이다.

그것은 전생의 끝을 지나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지금에서는 자조하는 게 아니라 그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는 것이었다.

본래 김도진은 재능이 '있는' 아이였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때.

무공 수업 시간 도진은 잘난 척을 한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우등생이었다.

한 번 보여주는 것을 그대로 따라하고 심지어 바로 이해할 수도 있었고 그래서 동작조차 제대로 따라하지 못했던 열등생들을 이해하지 못했다.

뒤늦게야, 중학생이 되어서야 알았다.

그것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는 것을.

김도진은 100명 중 10명 안에는 들 수 있었지만 10명 중에서는 9명 안에도 들 수 없는 '열등생'이었다.

도진이 쉽게 통과할 수 있었던 거름망이 사실은 구멍이 무지막지하게 큰, 정말로 최소한의 역할만을 하는 것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그래서, 쥐꼬리만 한 재능이나마 있었기에 도진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재능이 없다는 것을.

한데 스승 위지혁은 말한 것이다.

도진이 재능충이라고.

이미 여러 번 들은 이야기들이 있었기에 도진이 웃으며 말했다.

"저도 사람인데 잘하는 게 몇 가지는 있지 않겠습니까, 스승님."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재능이 없음에 절망하지만 그것은 '갖고 싶은 재능'이 없는 것이지 절대적으로 재능의 수치가 제로인 건 아니다.

분명히 잘하는 게 있다.

다만 그것이 사회가 원하는, 그리고 스스로가 원하는 게 아닐 뿐.

위지혁은 도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말대로다. 그리고 제자야. 네 재능은 천마신공이다."

"어……. 그렇습니까?"

"그래."

위지혁이 도진의 조금은 미지근한 반응에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교주로 교에 머물던 시절 꽤 많은 아이들을 가르쳤다."

무림맹의 맹주였던 불세출의 천재 검성 혁련휘.

친우이기도 했던 그의 영향으로 위지혁은 꽤 많은 제자를 들이고 가르쳤다.

"난다긴다하는 녀석들이 많았지."

다른 곳도 아니고 무림을 단일 세력으로 맞상대할 수 있었던 천마신교였다.

그 천마신교의 역대 최고의 교주였던 위지혁이 들였던 제자들은 누구 하나 범상한 인물이 없었다.

"하지만."

위지혁은 씨익 웃었다.

"그놈들 중 누구도 천마기를 그토록 아무렇지 않게 대하지는 못했다."

천마기(天魔氣).

그 존재만으로도 무림만이 아니라 황궁마저 벌벌 떨게 만들었던 천마의 근원.

그 근원이 평범할 리가 없다.

"나름 정신 무장이 된 녀석들이었다만, 심공 수련 때만 되면 겁쟁이가 되어 버렸지."

-이겨내 보겠습니다!

-교주님, 아니 스승님이 내리신 시련, 기필코 극복하겠습니다!

이겨내 보겠다. 극복하겠다.

그 말부터가 이미 천마기를 두려워하고 버거워하고 있음을 시인하는 것이었다.

처음 천마기를 발현한 그 순간부터, 과거의 제자 녀석들은 하나 같이 천마기를 두려워하고 벌벌 떨었으며 그 흉폭한 것의 성장을 꺼려했다.

4성이 아니다. 입문하는 그 순간부터 말이다.

"그런데 너는 아니었다."

-모, 몸속에 흉측한 날붙이를 덕지덕지 바른 맹독충이 기어다니는 것만 같습니다.

-조,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몸이 안에서부터 터질 것만 같습니다.

제자 녀석들은 천마기에 대해 그렇게 말했다.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었다.

위지혁은 하늘에 닿은 무인이었지만 아래를 굽어보지 못할 만큼 편협하고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천마기가 어떤 기운인지 오히려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그럴 수 있다 생각했다.

한데 여기서 만난 제자는.

'애완동물.'

그래, 어처구니없게도 천마기를 애완동물에 비유했다.

아니, 실화인가?

제자의 시야를 통해 보았던 인터넷에서의 그런 댓글을 떠올릴 정도로 위지혁마저 어이가 없는 비유였다.

그리고 그것이 허세가 아님을 증명하듯 천마기를 다루어냈고 3성까지 초스피드로 돌파해 버렸다.

전생에서의 삶으로 인해 단련되었기 때문인지, 혹은 그것이 쌓은 한(恨) 때문인지, 아니면 정말로 그저 타고난 것인지는 모르겠다만.

어느 쪽이든, 어떻게 된 것이든 이것은 분명히 재능이 아니겠는가.

그뿐이 아니다.

"연신극기공도 너처럼 그렇게 무식하게 할 수 있는 녀석도 없었다."

연신극기공은 육체 외부만이 아니라 내부에마저 부하를 걸어 수련의 효율을 극한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 연신공(鍊身功)이다.

육체 외부와 달리 내부는 아주 미약한 것도 격렬한 자극이 된다.

그 말은 곧 조금만 부하를 걸어도 육체만이 아닌 정신적으로도 엄청난 부담이 된다는 말이다.

그것을 가장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요로결석이라는 무시무시한 질환도 있다.

도진은 그런 연신극기공의 부하를 매일 감당하며 수련을 했다.

그냥 하는 것도 아니고 철저하게 매일 자신을 채찍질했다는 말이다.

뭐지? 이게 정말 사람이 맞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위지혁이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끊임없이.

그로 인해 생긴 '여유'였다.

처음 위지혁과 장호는 수련 계획을 짜며 여러가지 변수가 있을 거라 당연히 예상을 했다.

어쩌면 도진이 예상보다 더 느릴 수도 있고 어쩌면 며칠은 멘탈이 깨져 수련을 멈춰야 할 수도 있을 거라 이미 각오를 했다.

하지만 그런 관대함까지 더해진 예상은 아주 커다란, 그러나 전혀 불쾌하지 않은 하나의 변수로 인해 와장창 깨지고 말았으니 '제자가 수련을 너무 잘함'이었다.

덕분에 말도 안 되는 속도로 제자는 천마신공의 4성에 도달해 버렸고 심지어 연신극기공을 통한 육체의 기초 공사 또한 '조기 완공' 되었다.

그리하여 이렇게 심(心)과 체(體)를 따라오지 못하고 있던 기(技)를 예상보다 빠르게 단련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도진의 상태는 비유하자면 '구도(求道)'의 과정에서 우연히 얻은 부산물로 이적을 발휘하는 도인(道人)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도를 얻어 물 위를 걷고 심지어 허공도 걸을 수 있지만 정작 날아오는 시정잡배의 칼은 못 피하는 그런 느낌.

도진은 그런 도인이 아니라 천마의 제자였기에 그렇게까지 극단적이진 않았으나 느낌 자체는 비슷했다.

때문에 천마심공이 4성에 이르렀음에도, 무려 천마의 제자임에도 그만큼의 '포스'를 보여주진 못했던 것이다.

높은 곳에 올라 산을 굽어볼 수는 있었으나 그 안을 알지는 못했다.

그런 약점이 이제 기술을 배우면서, 정석적으로 첫 단계부터 밟아 나갔다면 알아야 했을 것들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하루하루.

도진은 무서운 속도로 성장해 나가고 있었다.

다만.

"5성의 벽은 여전히 높네요."

그런 도진에게도 천마심공 5성의 벽은 쉽지 않았다.

천마의 후계자임을, 소천마임을 당당하게 천명할 수 있는 자격.

그리고 현대에서는 사자군 오군성 등과 같은 절대자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힘을 거머쥘 수 있는 경지이기도 했다.

지금 도진의 위치는 현대의 절대자들에게 한 걸음, 그러나 아득히 먼 한 걸음이 부족한 곳이었다.

현대의 무공이 위지혁의 시대에 비할 바가 아니라지만 무공이 그렇다 해서 무인들까지 뒤떨어지는 건 아니었다.

뒤쳐진 무공이라 해도 그것을 평생 고련하고 깨달음을 얻은 무인들은, '끊임없이 노력한 천재'들은 이윽고 한계를 넘어서게 된다.

그리고 그렇게 한계를 넘어서 '경지'에 이른 무인들이 바로 사자군 오군성과 같은 무인들인 것이다.

도진은 아직 그 경지에 이르지 못했으니 그것이 바로 천마심공의 5성이었다.

그러니까 도진은, 천마심공의 5성에 이르는 것이 수많은 의미에서 출발선에 서는 것이 된다.

"껄껄."

위지혁은 짓궂은 얼굴로 웃었다.

"왜 그러십니까, 스승님."

제자의 물음에 위지혁이 짓궂은 얼굴 그대로 말했다.

"그게 다 네가 천재라 경험해야만 하는 시련이니라."

본래는, 지금 도진이 겪고 있는 천마기를 감당하는 등의 문제는 사실 천마심공에 입문하는 그 순간부터 겪어야 할 문제였다.

"그토록 공포스러운 천마기와 공존하며 성장하는 것이 '정석 트리'인데 너는 그 과정을 생략했지 않느냐."

"그러니까 너는 5성의 벽을 두드리는 게 조금 더 어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니라."

너무 쉽게 성장한 천재는 그렇기에 처음 시련을 마주한 순간이 그토록 어렵고 힘든 것이다.

위지혁은 이 잘난 제자에게 그런 의미를 담아 짓궂은 얼굴과 말을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스승의 의도를 이해한 도진은 약간 단맛이 묻어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가 천재라니. 천재가 겪어야 하는 시련을 겪는 것이라니.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굳이 말할 것도 없겠지만 조바심 낼 필요 없느니라. 항상 그러했듯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자연스레 답을 알게 될 것이니."

당연한 말이지만 위지혁은 도진이 가진 문제가 무엇인지, 필요한 깨달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

허나 그것은 말로 하는 순간 답이 아니게 된다.

도가도비상도(道可道非常道).

도를 도라고 말하는 순간 이미 그것은 영원한 도가 아니게 된다.

깨달음이란 건 말로 하기 힘들며 말로 해봐야 온전한 것이 아니다.

말은 결코 모든 걸 담을 수 없으니까.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같은 깨달음을 함축한 말 같은 게 없는 건 아니지만 설령 그런 것이라 해도 온전할 수 없다.

받아들이는 사람의 성격, 가치관, 지식 등이 결코 같지 않으니까.

더욱, 깨달음이란 건 온전히 스스로 깨닫는 것이 가장 좋은 것이기에.

위지혁은 제자를 믿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하여 살아가는 도진이다.

궁구하고 또 궁구하다보면 자연스럽게 5성의 벽은 도진을 허락할 터.

필요한 건 그 삶 속에서 얻게 될 깨달음뿐이다.

다만, 그래.

스승으로서 조금 더 다양한 삶을 경험하게 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위지혁은 그렇게 생각하며 너무나 자연스럽게 존재를 세상에 녹이고 있던 장호와 시선을 교환하고선 도진에게 말했다.

"제자야."

"예, 스승님."

"마침 주말이기도 하니 조금 특별한 수련을 한 번 해보지 않겠느냐."

"특별한 수련이요?"

"그래."

특별한 수련.

무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스승의 친우라 했던 검성 혁련휘의 제자 독고휘와의 대련이었다.

무자비한 폭력이라고까지 말할 수 있는 압도적인 재능의 소유자였던 유지은과의 비무를 앞두고 했던 특별한 수련이다.

그 수련을 떠올리는 도진을 보며 위지혁이 씨익 웃었다.

"장 제와 네 수련에 관해 이야기하다 떠올린 아이디어인데, 한 번 해보겠느냐?"

거절할 이유가 없었기에 도진은 당연히 예, 하고 대답했다.

"좋다. 그러면 우리가 너의 심상세계에 조금 깊게 개입을 해야 하니 네가 수락을 해야 한다."

이야기만 들어선 조금 아리송한 감이 있었는데 도진은 곧 그 뜻을 체감할 수 있었다.

'음.'

머치 머릿속의 풍경에 누가 끼어드는 것만 같았다.

도진은 그것이 스승들의 의지라는 걸 깨닫고 곧 마음을 열었다.

컴퓨터로 따지자면 '관리자 권한 수락'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이내, 심상세계의 풍경이 변했다.

* * * *

'음?'

눈을 한 번 깜빡이다 떴는데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그러니까 마치 캐릭터는 그대로 두고 배경만 바꿔치기한 듯한 느낌이다.

캐릭터는 당연히 도진 자신이고.

은근한 음식 냄새가 풍기고 주변은 한산하면서 동시에 부산스럽다.

앉은 자리는 최소한의 기능만 하는 딱딱한 의자이고 팔은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그렇게 도진이 앉은 곳은, 펼쳐진 풍경은 다름 아닌 '객잔'이었다.

객잔(客棧).

그래, 마치 무협지 속의 객잔을 영화에서 재현한 듯한 곳에 지금 도진은 앉아 있었다.

꿈이 아닌 현실로 생각하게 할 만큼 진하고도 명확한 현장감과 현실감이었다.

마치 정신 차린 순간 이세계로 전이되었다면 이런 느낌일까 싶다.

그리고 그런 느낌이 자연스럽게 어떤 것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도진은 떠올린 그것을 바로 입에 담았다.

"상태창."

…….

…….

…….

아쉽게도 그런 건 없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