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1화
갑작스런 도진의 말에 우서진과 상미는 물론이요 약리지의 시선까지 도진에게로 집중되었다.
아니, 갑자기?
약리지의 집에 간다고? 왜?
의문 가득한 병아리들의 시선에 도진이 스윽 웃었다.
만약 이 자리에 한유아나 압도적인 천재인 유지은이 있었다면 시선이 도진에게로 닿기까지의 짧은 순간만에 그 말에 담긴 배경과 의도를 읽을 수 있었을 텐데 아직까지 병아리인 신입생들은 그러지 못했다.
도진은 시선들을 받으며 힌트를 말해 주었다.
"솜이 때문에."
"어, 솜이요? 아……."
그래도 천재는 천재.
세 병아리들은 솜이라는 힌트만으로도 곧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날 협의 사항 중 하나가 솜이가 기질 검사를 받을 것이었거든."
기질(氣質) 검사.
그것은 단순한 성격유형검사 등이 아니라 말 그대로 '기질'을 검사하는 것으로, 대상이 발산하는 기(氣)를 정밀 검사하여 대상에 대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검사다.
대표적으로 성격과 성질 등이 있는데 놀랍게도 그 사람이 선인(善人)인지 악인(惡人)인지마저 구분해낸다.
이 검사는 의선약가에서 특허를 냈는데 바로 그 의선약가에서 전문적으로 수련하고 익힌 의사가 아니면 분석조차 할 수 없다.
때문에 도진은 기질 검사를 위해 의선약가로 가야만 했던 것이다.
따로 사람이 몰릴 만한 검사는 아니었고 특별히 필요한 것도 없었기에 오전의 연락만으로 협의가 되었다고 생안부의 최 과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정부 쪽에서 비용을 포함한 모든 걸 해결했고 도진은 예약이 잡힌 토요일 오전에 가기만 하면 됐다.
"그러고 보면 반려동물의 기질 검사를 하는 게 유행이었던 적이 있었죠."
우서진의 말에 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기질 검사는 대화가 통하는 사람보다 대화가 통하지 않는 동물을 대상으로 더욱 메리트가 있는 부분이 있었고 한때 SNS를 중심으로 유행을 했었다.
우리 누구누구가 기질 검사를 했는데 악(惡) 성향으로 나와서 걱정이라느니, 그거 큰일이니 교정을 해야겠다느니, 우리 애는 선(善) 성향으로 나왔는데 왜 이렇게 말썽이냐느니…….
사실 겉만 보면 단순한 SNS 활동이지만 그 기질 검사가 지금도 그렇지만 초기엔 정말로 비쌌던 데다 허세, 과시 등의 수단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았고 이 결과 때문에 반려동물을 파양하거나 유기하는 등의 사례까지 적발되어 꽤 시끄러웠었다.
그런 검사와는 한참 먼 삶을 살았던 도진이었기에 완전히 남 이야기였는데 이게 또 이렇게 이번 생에선 인연이 닿았다.
"뭐, 그래서 이번주 토요일에 너희 집에 가게 될 거 같아."
"그러셨구나. 음……."
도진의 말에 약리지가 조금 고민하는 얼굴이더니 곧 고개를 들었다.
"선배."
"응?"
"그날, 제가 안내해 드려도 될까요?"
"어? 니가?"
예상치 못했던 말에 되물었다.
겉으로만 보면 이상할 게 없는 말이지만 파고들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말이 '너희 집'이지 사실은 아주 큰 종합 병원이다.
거기다 약리지는 고등학생이 되며 실습을 받고 있는 몸.
주말에는 학교가 아닌 본가에서 실습을 한다지만 분야가 다른 만큼 약리지가 안내한다는 건 의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도진의 물음에 약리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분야는 다르지만 어차피 공식적인 행사잖아요?"
"응, 그렇지."
"그러면 안내역은 그 분야가 아니더라도 문제없을 테고 저라면 공식적인 행사에 얼굴 비추기엔 딱이니까 어른들도 허락하실 거 같아요."
"그렇네."
단어 자체는 좋지 않은 어감이지만 그녀의 말대로 약봉 약리지는 정부가 연관된 공식 행사에서 더없이 좋은 '얼굴마담'이다.
어차피 업무를 볼 전문가들과는 협의가 되고 있으니 안내역은 그와 관련되어 있지 않아도 상관없다.
다만 왜 굳이 약리지가 그 안내역을 자청하는지가 의문이었지만.
"여러가지 경험을 해 보는 건 언제가 되었든 다 인생의 도움이 되는 일이니까요."
약리지의 말에 도진은 그 의문을 해결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면 전생에서도 약리지는 참으로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경험은 모두 인생의 윤택함을 위한 밑거름이 되어 주니까요.
SNS에서 약리지는 그렇게 말했었는데, 그러니까 경험이 될 만한 것은 주저하지 않고 실행하는 성격이었다는 말이다.
약리지의 입장에서 정부의 협조 요청 하에 이루어지는 영물의 기질 검사를 지켜보는 건 그만큼 경험이 될 만한 일로 보였다는 거다.
"그럼 그렇게 되면 부탁할게."
"네. 결정되는 대로 말씀드릴게요."
도진의 입장에서도 아는 후배가 안내역을 맡아 주는 게 나쁠 것 하나 없는 일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고 다음날 바로 안내역이 되었다는 말을 약리지에게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한 주의 평일이 끝나고 토요일.
본가에서 하룻밤 자고 새벽에 일어난 도진은 솜이와 함께 간단히 수련을 마치고 아침까지 먹은 뒤 숭무동을 나섰다.
지정석인 어깨에 솜이를 올리고 숭무동을 나오니 최 과장이 몇 명의 사람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예. 잘 지내셨습니까."
정부에서 준비한 차량을 타고 얼마간 달리자 곧 외곽에 위치한 의선약가의 '본가'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본가는, 진입을 위한 전용 도로까지 깔린 의선약가의 본가는 본가하면 흔히 떠올릴 수 있는 고전적인 이미지의 넓은 저택이 아니라 대규모 첨단 의료 단지였다.
일반적인 병원만이 아니라 무림인들을 위한 전문 병원까지 보유한 의선약가는 대한민국 최고의 의가였고 그에 걸맞는 시설까지 갖추었으니 본가가 바로 대한민국 최고 최대 규모의 의료 단지가 되었던 것이다.
도진이 약리지에게 '너희 집 간다'고 한 게 단순한 장난이 아니었던 이유다.
미리 약속이 되어 있었기에 도진이 탄 차량은 안내에 따라 넓은 의료 단지 내를 헤매지 않고 바로 기질 검사를 위한 장비와 인력이 대기하고 있는 곳 앞으로 이동했다.
"어서오십시오."
"어서오세요."
"예, 감사합니다."
차에서 내린 도진과 최 과장 일행을 의선약가의 인물들이 반겨 주었다.
그리고 그 안에는 예의 흰 가운을 걸쳤으나 평소 이상으로 돋보이게 꾸민 약리지가 포함되어 있었다.
머리를 올려 묶고 가볍게 화장을 했는데 여기에 일명 '꾸안꾸(꾸민 듯 안 꾸민 듯)' 스타일로 과하지 않으면서도 포인트를 주어 시선을 사로잡는다.
평소에 무심한 스타일임에도 돋보이던 약리지였는데 신경써서 꾸미니 과연 그 파괴력이 대단했다.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런 본가의 직계, 약리지의 안내에 따라 도진과 최 과장 일행이 안에 들어섰다.
괜한 소란이나 시선이 붙지 않도록 전용 통로를 이용했고 예약까지 되어 있었기에 바로 검사실까지 직행할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오늘 검사를 맡은 약정후입니다."
많은 장비가 가득 들어와 있으나 워낙 깔끔하게 놓여 있어 화사하고 넓어 보이는 검사실 내에서 스마트한 인상의 훤칠한 남자가 일행을 맞이해 주었다.
약정후.
의선약가의 실력 있는 젊은 의사 중 한 명으로 약리지의 삼촌뻘 되는 사람이었다.
부드러운 인상의 그는 동시에 실력에서 나오는 자신감까지 발산하고 있어 대면하는 순간부터 환자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타입으로 보인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사람이었기에 도진은 좋은 분위기에서 검사를 진행할 수 있었다.
"반려동물에게는 조금 불편할 수 있겠지만 이것들을 부착해 주셔야 합니다."
장비와 선으로 연결된 여러가지를 솜이는 주렁주렁 매달게 되었다.
도진이 알려주는 대로 직접 연결했기에 솜이는 냐앙, 하고 불만스레 한 번 울긴 했으나 순순히 그것들을 단 채 얌전히 앉아 있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상태 그대로 내공만 발산하도록 해주시면 됩니다. 1분씩 다섯 번입니다."
그 뒤로는 보유한 내공을 발산해야 했다.
일반 사람이나 동물의 경우엔 자연스레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을 체크하는 방식이었지만 무림인이나 내공을 보유한 경우엔 이렇게 기운을 의도적으로 발산함으로써 더욱 정확하고 정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자, 솜이야."
도진은 솜이와 눈을 마주하고 자신의 기운을 흘렸다.
아직 말을 알아듣지는 못하는 솜이였으나 높은 지능으로 어느 정도는 의사소통이 가능했고 산책 겸 수련 중 기운을 발산하기 위한 '키워드'가 있었기에 기질 검사에 필요한 기운을 발산하는 것 또한 수월했다.
다만.
화아악-
"……!"
"헉!"
"으음……."
검사실에 퍼져 나가는 솜이의 기운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숨을 삼키며 주륵, 땀을 흘렸다.
도진이 가볍게 자신의 기운으로 솜이를 자극하자 솜이가 도진의 의도를 이해하고 내단의 기운을 풀었다.
위협을 담지도 않았고 그저 억누르고 있던 내단의 기운을 흘리는 수준.
그러나 그것만으로도 지켜보던 사람들은 어두운 밤 맨몸으로 깊은 숲 안에서 귀신불 같은 눈을 빛내는 거대한 맹수와 마주한 듯한 공포를 느끼고 만 것이다.
착각이 아닌 실제로 검사실의 공기를 데울 만큼 뜨거운 영물의 열양지기는 그렇게 공포를 느끼는 사람들이 주르륵 땀을 흘리게 만들었다.
'솜이는 귀여우니까요.'
오싹한 공포와 동시에 한여름이라도 된 듯 땀을 흘리는 최 과장은 문득 도진의 말이 떠올랐다.
과연, 외모가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이 대단하다는 생각을 새삼 하고 만다.
저토록 작고 귀여운 외모를 하고 있음에도 기세를 풀자 이렇게 공포스러운데 금황호처럼 기세에 어울리는 외모까지 가지고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만약 외모가 이렇게 귀엽지 않았다면 결코 이토록 쉽게 '일반 가정'의 반려동물로 지내는 것이 결정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생각과 함께 긴장을 늦추지 말라는 공문을 새로 내려야겠다 최 과장이 생각하는 사이 검사는 끝이 났다.
"패턴 저장과 출력 확인해 주세요."
"파형과 파장의 오차 계산해서 저장해 주시구요."
1분의 발산. 그리고 잠시 쉬는 사이 이어지는 약정후의 지휘는 그렇게 어려운 단어로 이루어져 있지 않았다.
그러니까 쓸데없이 어렵거나 긴 단어는 포함되어 있지 않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자리에서 검사에 관해 추론할 수는 없었으니, 여기저기 기기를 통해 보이는 건 그 자체만으로 어렵고 난해하며 그 가짓수도 많았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협조를 잘 해 주셔서 금방 끝났습니다."
"예. 수고하셨습니다."
약 15분 정도의 검사가 끝났다.
약정후는 도진과 최 과장을 포함한 사람들을 마주하며 검사 결과를 이야기해 주었다.
"열양지기를 품고 있지만 성격은 오히려 느긋하면서도 냉철한 편으로 보입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마치 정신수양을 한 듯한 부분들이 보이는 게 놀랍네요. 기운과 성격에서 불안한 부분들이 보이지만 중심이 딱 잡혀 있어서 그로 인한 소란은 쉽게 일어나지 않을 것 같습니다."
결과는 마치 딱 들어맞는, 그러나 사실은 그것이 큰 범위의 것이라는 트릭이 있는 성격 검사를 듣는 듯했다.
놀라운 건 그게 그렇게 두루뭉술하여 잘 들어맞는 심리 테스트 같은 게 아니라 그동안 쌓아온 빅데이터와 연구를 토대로 하여 나온, 믿을 수 있는 '팩트'라는 부분이다.
"자세한 결과는 분석이 끝나는 대로 연락을 드리고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예, 수고하셨습니다."
지금 들은 건 어디까지나 당장 알 수 있는 개략적인 부분이었고 자세한 검사 결과는 추후 받을 수 있다.
이후 오늘 이곳에 도착해서부터 중간중간 찍었던, 행사를 진행했다는 증거이자 홍보에 쓰기 위한 사진을 마지막으로 몇 장 더 찍는 것으로 일정이 다 끝났다.
"수고하셨습니다. 그럼, 검사 결과가 나오는 날 다시 뵙겠습니다."
"예. 수고하세요."
정부 부처가 하는 일은 으레 그렇듯 '믿을 수 있는 서류', 그리고 '보여줄 수 있는 결과'를 필요로 한다.
이번 기질 검사는 그 일환으로 진행한 것이다.
이 뒤로도 보고서 등 몇 가지 함께 해야 할 일들이 있지만 다 솜이를 위해서이고 복잡하고 번거로운 부분은 최 과장을 포함한 공무원들이 할 일이었기에 도진은 자신이 해야 할 일에만 신경쓰면 됐다.
오늘은 그 자신이 해야 할 일, 검사의 협조가 끝났으니 할 일을 다 했다.
'그러면…….'
안내역으로 함께 해 준 후배, 리지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가야겠다 생각한 도진은.
"먼저 좀 해 줄 수도 있는 거잖아아아아아악!!"
터져 나온 처절한 목소리에 집으로 향하던 발걸음을 멈추게 되었다.